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65
Chapter.5 인사이드 아웃(11)
***
“예, 예. 선배님. 별일 아닙니다. 아니,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니라니까요. 예? 암구호요? 까먹었는-”
“[#*(&$@&*()*$(!!!!!]”
“아아아! 기억났다! 기억났어요!. 로켓에 캔디, 맞죠?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예? 벌써 3팀은 하던 일 다 내려놓고 투입 준비까지 마쳤다구요? 무장 적재까지 다?”
교수 일당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퉁퉁 부은 볼을 잡고 일어난 에젤은, 잠시 멍한 얼굴로 교수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튀어나오는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덧 서쪽으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해를 보고는 사색이 되어서 슈트로 달려가더니 10분이 넘게 내장형 송수신기 옆에 붙어 계약 날려먹은 샐러리맨 마냥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야, 벡스. 뭐라고 하고있냐? 들려?”
“쉬잇! 거리가 좀 있어서 다는 안 들리는데….. 로켓- 투입- 무장?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씨부럴, 그거 쳐들어온다는 소리잖아! 교수! 짜리몽땅!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니들은 당장 짐부터 싸고 있어! 내가 들어오는 길목에 가지고 있는 트랩 다 깔아 놓을 테니까!”
“여차하면 간게놈을 인질로 잡자. 최근에 토브룬에서 인질극 한번 해봤는데, 나 이쪽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아.”
“아까 그 밧줄 끊지 말지 그랬냐.”
“한 번 더 쓰게 될 줄은 몰랐지.”
그렇게 뒤에서 세 친구가 시커먼 흉계를 꾸미는 줄도 모른 체, 에젤은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예 예. 아유, 그럼요. 시말서요? 안 그래도 감찰국 벽지 낡아서 맨날 보기 싫다고 하셨는데, 잘됐네. 이번 기회에 시말서로 아주 도배를 해버릴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십쇼. 공금으로 3팀 친구들한테 술이라도 한잔 사 주시고. 아하이, 참. 당연히 나중에 제 봉급에서 까는 거죠. 예, 예. 금방 복귀하겠습니다. 예에 들어가십쇼~”
핏-
에젤은 인 이어를 내려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서 마빡이 까지도록 연속 오체투지를 해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일단 당장 급한 상황은 어떻게 잘 마무리한 것 같았다.
‘교수네도 생각만큼 나한테 그렇게 원한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말이지.’
아무튼, 이렇게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다 잘 해결되는 것 아닐까? 수십 장의 시말서로 BDSM의 수장과의 해묵은 원한을 해결했다면, 수지가 맞아도 보통 맞은 게 아니다.
‘그래! 이건 오히려 기회야! 교수와 향신료상의 실력이라면 앞으로 BDSM의 크기가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하지! 교수와 친분을 이용해서 내가 돔과 BDSM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면, 징계는커녕 승진하게 될 수도 있어!’
또 그렇게 살살 좋은 관계를 굴리다가 BDSM이 돔에 영입이라도 된다면 교수도 돔에 들어와 살게 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모두가 행복한 Win-Win이 아닐까?
“표정이 되게 좋아 보이네?”
“흐이익!”
언제 다가왔는지 옆에서 말을 거는 교수를 보며, 에젤은 행복의 나라에서 빠져나왔다.
“음? 아, 그게. 얘기가 잘 풀렸거든.”
“잘 풀렸어?”
“그, 그래. 필사적으로 설득했더니, 어떻게 이해는 해주시더라고. 여기까지 문제가 번지는 일은 없을 거야.”
“오. 그거 다행이네. 어이, 벡스! 그거 내려놔! 돔에서 습격 나올 일 없대!”
“응?”
에젤은 갑자기 그의 뒤를 향해 소리치는 교수를 보며 고개를 돌리니, 언제 접근했는지 그 벡스라는 늙은이가 쌀자루 같은 것을 들고 자신의 등 뒤에 바짝 접근해있는게 아닌가?
“습격 안 해? 그러면 얘 납치 안 해도 되는 거지?”
“나, 납치?”
“응. 그래. 다행히 좋게 끝났어. 참 다행이다. 그렇지? 간게야?”
에젤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환하게 웃는 교수를 보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분명 교수는 여전히 그의 친구였지만, 아주 무서운 친구니까. 해묵은 원한은 대부분 방금 묶어놓고 갈궜던 일로 허허, 웃으며 넘어간 것 같지만, 교수가 모르는게 아직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에젤이 어젯밤 감찰부에서 만들어버린, 아주 신선한 원한이.
‘그것까지 걸리면 정말 저 온실의 비료가 되어 생을 마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에젤의 마음을 모르는 교수는, 5년 만에 겨우 얼굴을 보게 된 지인이 바로 떠나는 것이 영 아쉬운 눈치였다.
“에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는 거야?”
“응? 아아, 바로 가야지. 지금도 복귀 한참 늦었는데, 더 늦었다간 우리 감찰부가 아니라 집행부에서 움직일 수도 있거든. 엑소 슈트는 돔의 자산이니까.”
“하긴. 돔만큼 유능한 건 아니지만 렙터에도 기술인력이 없는 건 아니니까. 엑소 슈트의 마이너 카피라도 나오는 순간 끝이지.”
“그래서 사용자로 등록된 인원의 심박음이 멈추고 15분 안에 새로 등록되지 않으면 자폭하도록 설계되어있어.”
기이잉- 철컥.
엑소 슈트에 올라탄 에젤은, 교수 일행과 작별하기 전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교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음? 뭔데?”
“45구역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알고 준비한 거야?”
돔은 45구역에 미리 정보원이 가 있기도 했고, 항상 주시하는 렙터의 분쟁에서 발생한 사건이니 남들보다 한발 빨리 알아차리고 준비할 수 있었다.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된 과거 그 지역 건물주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하벙커의 설계도를 입수하고, 복잡한 장기전, 난전이 될 것을 상정하여 가장 적합한 장비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인원을 준비하여 급파한 것이었다. 하지만 교수는 45구역 분쟁이 격화되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GG안에서 허덕이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준비한 것인가?
“아아, 그거? 사실 그렇게 대단할 건 없어. 그냥 이거 환불하러 43구역으로 가는 길에 여기 작은 친구를 만났는데, 45구역에 대단한 보물이 있다고 하길래 이쪽이 더 돈이 될 것 같아서 들어가 본 거야. 커다란 녀석은, 그 안에서 만난 거고.”
“어…. 그러니까, 미리 철저한 준비를 거쳐서 들어간 작전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다 만난 사람들이랑 의기투합해서 들어갔다 나온 거라고?”
“음…. 요약하자면 그렇지?”
“크흐흐흐! 나도 그 난리통에 손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심지어 그냥 손님도 아니고, 환불하러 온 손님을 말이야.”
덜덜덜덜-
에젤은 교수의 손에 들린 샷건을 가리키며 히히덕 거리는 그들을 보며 다시 한 번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냥 지나가다 털었단다. 돔과 렙터가 이를 벅벅갈고 눈에 쌍심지를 켜면서 한바탕 붙은 그 지옥 같은 곳을, 무슨 동네 마실 다녀온 것처럼 털고 왔단다.
“음? 에젤 너 왜 또 땀을 그렇게 흘리고 있냐? 아아, 아까 다한증 있다고 그랬지?”
“어, 어어어어! 그, 그렇지!”
“에휴. 47구역에 살아서 다행이구먼. 물 부족한 구역에 살았으면 너도 오래 살기 힘들었겠다. 이거 가져가면서 마셔라.”
휘익!
에젤은 교수가 던져준 수통을 가까스로 붙잡은 다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나, 그럼 진짜 간다?”
“아, 맞다.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덜컥!
에젤은 방금 자신의 심장이 분명 콩팥 근처까지 떨어졌을 것이라 확신했다. 또 뭐지? 설마 눈치챘나? 내가 이름 바꾼 거?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온 교수는, 제법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스물 둘이라고 했으니까, 5년 전이면 17살이지? 그때 너 뭐했냐?”
“어? 그야, 학교 다니고 있었지? 돔은 시민들에게 최대한 구시대와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가르치는 과목은 옛날과 다르지만, 초, 중, 고등학교 정도는 있거든.”
“그래? 음…. 그럼 그 일과는 확실히 관련이 없겠군. 알았다. 조심해서 가고. 지나갈 일 있으면 가끔 들르고. 아참! 혹시 가능하면 우리 ‘빅 드림 캐러밴’에 관련해서는 좋은 얘기만 해주고.”
“그, 그래! 무, 문제없지! 대화방에서 보자!”
위이잉- 위이잉-
1분 1초가 영겁과도 같은 만남이 끝나고, 마침내 교수 일행의 시야에서 벗어난 에젤은 전력으로 돔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에, 돔과 렙터라는 황무지 최대급 전투집단 사이에서, 정보 하나 없이 놀러 나온 사람처럼 지나가던 사람 몇 명 데리고 스윽 들어가서 자기 볼 일 다 보고 사상자 하나 없이 나왔다고? 그게 인간이냐! 우리가 저쪽을 너무 얕보고 있었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HIV는 돔이 지금 예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집단이야!’
그리고 에젤은 어젯 밤, 그 괴물의 꽁지에 불을 붙여버린 참이다. 교수의 캐러밴이 외부활동을 시작하는 순간 그가 저지른 일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터.
‘아아, 업보로다. 살면서 지은 모든 죄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고 하더니. 내가 지은 죄가 너무나도 많구나….’
그렇게 에젤은 퉁퉁 부은 얼굴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감찰국 병기창에 도착한 다음, 도대체 무슨일이냐고 캐묻는 키미를 밀어낸 채 순식간에 보고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진심이 가득 담긴 보고서를 완성한 에젤은 곧바로 국장에게 그 보고서를 상신했으며,
[BDSM 캐러밴 위험도 조정 및 대응 매뉴얼 건의서] 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그 보고서에는 이 집단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통 캐러밴으로 생각하고 대응했다간 돔에 얼마나 큰 피해가 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가득 담겨있었다.***
“이상한 놈이었다.”
“이상한 놈이었지.”
“냅둬. 원래 그런 놈이니까.”
한바탕 난리가 지나간 뒤, 벡스와 이안이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는 동안 교수는 코듀로의 드론에게 다가가 미리 꺼두었던 음성 장치를 다시 켜 주었다.
띠리리릭-
“푸하! 아이고, 답답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님! 제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런 사소한 오해는 금방 해결해드렸을 텐데!”
“사소한 오해를 해결하면서 말도 안 되게 거대한 오해를 만들었겠지. 안봐도 비디오다 임마. 가서 밥이나 해와.”
“히잉.”
코듀로는 툴툴 거리면서도 마지막 남은 고기와 정원에 있던 감자, 당근 및 기타 먹을 수 있는 풀을 이용해 푸짐한 만찬을 차려 식탁에 올렸다.
“이야. 진수성찬이네? 교수, 너 맨날 이런 거 먹고 살았냐?”
“나도 어머니 돌아가시고 5년 만에 처음이다. 냉장시설에 쓸 전력을 아껴야 하니 고기 같은 건 들어오는 대로 바로 먹어치우는 게 좋지. 이런 화려한 밥상도 오늘로 마지막이야. 내일부터는 감자랑 풀떼기로 만든 칼로리 바나 씹어먹게 될걸?”
“퉤! 난 그런 거 먹고는 못산다. 우리 돈도 많은데, 고기 정도는 사 먹고 살자고.”
“그래 맞아. 나도 더는 돈 없는 스캐빈저가 아니라는 말이지. 햅번이랑 죠 고기반찬 정도는 사먹일 수 있어.”
교수는 커다란 펜 위에 올려진 큐브 스테이크를 그릇에 담으며 벡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열쇠, 아직 거래소에 올라가 있다고 했지?”
“꿀꺽- 어, 그렇지. 아직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어서 묵히는 중이야. 죠, 거기 당근 좀 줘봐.”
달칵-
“자. 그런데 그거 지금 얼마까지 올라갔더라?”
“확인해봐야 알 것 같은데. 어…. 코듀로? 혹시 원격 접속 가능해?”
“옙! 물론이죠 새 주인님! 시간 배율상 플레이어가 접속기에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GG와 관련된 것에 데이터 입력은 불가능하지만, 나와 있는 데이터를 열람하는 정도는 가능하니까요! 새 주인님 이름으로 접속해 드립니까?”
“어. ‘백수’로 들어가 줘.”
벡스 는 닉네임을 입력한 뒤 자신의 바이오 패턴 인식을 마친 다음, 거래소에 접속하여 교수에게 화면을 돌렸다.
“자, 여기. 잠깐 안 본 사이에 꽤 많이 올랐네.”
“우물우물- 그럼 어디 고기반찬 사 먹을 정도는 되나 볼ㄲ-”
[경매 : 45구역 지하벙커 보안키 1/2(좌측) – 경매 시작가(1,000k /sil) / 최고 입찰가(10,320k / sil)]“푸우우우웁-!”
“으아악!”
“우라질! 박교수! 밥 혼자 쳐먹냐!”
“이….이게 뭐시여….”
뒤에서 이안이 욕하는 소리? 벡스가 투덜거리는 소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10,320k. k가 뭐의 약자였지? 1000단위 나타낼 때 뒤에 붙이는 거잖아? 에헤이 설마 그럴 리가. 그럼 저 코딱지 만한 열쇠가 천만 실링이 넘는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코, 코리아의 약자였구나, 그렇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리안 실링이라는 새로운 화폐가 등장한 거야. 그렇지 벡스? 저거 만 삼백이십 코리안 실링이라는 거지?”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거야? 국가 같은 게 사라진 지가 언젠데.”
교수는 음식이 튀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의 그릇에 야채와 고기를 덜어가는 벡스의 팔을 붙잡았다.
“그, 그럼 저게 진짜로 천 삼십이만 실링이라고?”
“그렇….지?”
스르륵-
풀썩!
교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크흐흐흐. 나도 벡스 저놈이 공금으로 쓰자면서 거래소 맨 위에 올라간 매물 보여줬을땐 기절하는줄 알았지. 햐, 역시 진짜배기 근본 황무지 생존자, 스캐빈저는 뭐가 돈이 되는 물건인지 보는 눈이 남다르단 말이야?”
히죽거리는 두 사람 사이에서, 교수의 머리가 모터를 단 것처럼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당초 예상은 최대 500만 정도였어. 어떻게 저기까지 가격이 치솟을 수 있지? 저렇게까지 값을 높여 부를 수 있는 건 돔과 렙터, 두 집단뿐이야. 상황? 상황이 바뀌었다? 최근 일어난 사건의 나비효과?’
최근 일어난 큼지막한 사건들을 떠올리자, 교수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결론이 도출되었다.
“군비경쟁…. 저건 단순히 저 시설에 대한 가격이 아니구나?”
“햐, 역시 대가리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이야. 우리가 사흘 밤낮으로 토론한 결과가 1분 만에 튀어나오는군.”
“크힛! 그거 하나로 먹고사는 녀석이니까.”
이안과 벡스의 대화는 그들도 교수의 의견에 동의함을 뜻했다. 교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머릿속에서 도출해낸 결론을 입에 담았다.
“돔한테 너무 좋은 상황이 되어버렸어. 알다시피 돔은 자기 도시 근처, 그러니까 엑소 슈트의 정비와 충전이 가능한 지역에서만 불합리한 전투력 투사가 가능한 집단이지. 반대로 그 구역을 벗어나면 렙터한테 쪽도 못쓰게 되어버리고. 자연스럽게 돔은 도시를 건설하는 쪽에, 렙터는 그걸 막는 쪽에 사활을 걸게 되었어.”
교수의 목소리가 당황한 떨림에서 흥분에 의한 떨림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이 상황에 대한 해석을 통해 슬슬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돔과 렙터가 45구역에서 맞붙었고, 이런 요상한 결론이 나버린 거지. 지상에서 한쪽이 다른 쪽을 밀어내도 벙커 시스템에 접속을 못 하니 저 안에 들어가면 스스로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렇지. 저런 지하 벙커는 환기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면 위에서 불만 피워도 그대로 관으로 변해버리지.”
“결국 렙터는 저 열쇠만 차지하면 돔의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반대로 돔은 저 열쇠가 승리의 필수 조건인데, 자기들 쪽은 돈이 썩어나니까 경매가 붙은 순간 열쇠는 자기 들 것이나 다름없고, 렙터의 병력만 밀어내면 스캐빈저들이 떼 몰살 당해서 텅 비어버린, 방사능도 없고 도시의 뼈대가 상당히 남아있는 45구역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게 되어버린 거야!”
천만 실링? 이렇게 보면 거저 주는거나 다름없다. 저건 앞으로 45구역에 세워질 새로운 도시의 대문 열쇠나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보면 아직 충분히 가격이 올라갈 여지가 남아있는 것이다.
“벡스 너, 정말 말도 안 되는 부자가 되어버렸구나······.”
“히히히. 섭섭하게시리. 너라니, 우리라고 해야지. 저 돈은 여기 자리 잡고, 캐러밴 운용하는 데 필요한 공금으로 쓸 거니까.”
음, 그렇게 쓰고 남은 잔돈만 해도 매일 고기 정도는 사 먹을 수 있겠군.
낄낄거리 벡스의 말에, 교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햅번, 말 나온 김에 좀 물어보자. 저거 언제쯤 팔아야 할 것 같아?”
“계속 붙잡고 버티는게 낫지 않을까? 돔도, 렙터도 쉽게 손에서 놓으려고 하지 않을 텐데?”
“아니, 지금 당장 팔아야 해.”
교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안과 벡스는 의문을 표했다.
“벌써? 충분히 더 오를 수 있는데?”
“더 올라가니까 문제지. 돔에서 손익 계산을 시작할 테니까.”
천만 실링 정도야 우리 같은 개인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돔 정도 되는 집단의 예산에서는 약간의 출혈일 뿐이다. 하지만 그 출혈이 점점 더 커지면?
“저 열쇠값이 돔이 생각하기에 [잘은 모르지만 개빡쎄보이는 전투집단 HIV] 와 전투를 했을 때 발생하는 예상 전투비용을 초과하는 순간, 놈들은 주저없이 우리에게 달려들어서 우리를 죽이고 열쇠를 가져갈 거야. 마침 우리는 돔의 구역에 들어와 있으니까. 천만 까지 버틴 것은, 아마 우리가 제발로 47구역에 기어들어왔으니 돔 쪽에서는 우리의 영입 가능성을 보고 영입에 실패했을때의 손해까지 계산해준 덕분이겠지.”
교수의 말에, 둘은 무릎을 탁 쳤다.
“제기랄! 그럼 43구역에서 조금만 더 버티면서 비싼 가격에 팔고 넘어올걸!”
“그건 또 아니지. 렙터는 계산할 생각도 안 하고 HIV의 근거지를 발견하는 순간 털어버리려고 할 테니까. 43구역에 큰손들이 빠져나가는 중이었다면서? 그 친구들이 렙터를 억제하고 있었는데 그 억제력이 사라졌으니 이제 렙터도 43구역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해지지 않았을까? 돔의 구역으로 넘어온 것은 현명했어.”
드르륵-
몸을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은 교수는, 살짝 식은 스테이크와 야채를 입에 끌어넣으며 말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격은 지금 경매가 정도가 최고라는 말이지.”
“크흐흐흐. 하긴. 천 삼십이만 실링 정도면 한 3일 죽도록 고생한 것치고 제법 괜찮게 벌었지.”
“음. 그럼 그럼. 우리 빅 드림의 사이즈에 비하면 소소한 이득일 뿐이라고.”
말과는 달리, 두 사람 모두 히죽거리며 입가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교수는 이 돈으로 뭘 할지 고민하며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다.
‘바깥일은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하게 정리가 됐다. 이제…. 슬슬 내 문제를 해결하러 돌아가도 되겠어.’
빅 드림은 성공적으로 발족을 마쳤다. 돔 쪽에 훌륭한 인상도 심어줬고, 간게 녀석이 잘 말해준다고 했으니 나름 괜찮은 취급을 받을 수 있겠지. 벡스와 이안과 같이 살게 되면서 외부의 위협에서도 한층 더 안전해졌다. 렙터와 적대 관계가 되긴 했지만, 그거야 47구역을 떠나지 않는 한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고.
‘자잘한 일을 정리했으니. 이제 큰일을 해결할 시간이야.’
[키득키득. 나 불렀어?]‘그래 임마. 너 말이다 너.’
하이드.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영혼. 암과 같이 자라나 언젠가 그의 의식을 잡아먹을 병원균. 희미하지만, 이 녀석을 치료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놈을 만들어낸 GG뿐이다.
“슬슬, 다시 치킨레이스를 시작해 보자고, 하이드.”
교수는 접속기를 바라보며 사납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