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67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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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교단(光明敎團)
게드로이츠의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라면, 무조건 한 번쯤은 얽히게 되는 집단이다.
게임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1월드 중반쯤이며, 2월드에서 언데드의 진군을 막아내는 데 있어 가장 큰 공헌을 하기도 한 빛의 신 로-하람을 모시는 종교집단.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커다란 성세를 펼치고 있으며, 3월드에 와서는 그 위세가 정점에 도달해 웬만한 국가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놈들이다.
사실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광명 교단과 매우 친하게 지내야 한다.
이건 교단 사람들의 위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들과 친할수록 플레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월드3을 플레이하면 어떤 식으로든 뮤트나 흑마법사를 상대하게 되는데, 뮤트와 전투에서 공을 세우거나 흑마법사를 사살하면 교단에서 그 성과를 토대로 교단 공헌도를 기록해준다. 그 공헌도를 쌓아서 성직자 NPC를 동료로 영입할 수도 있고, 신성 속성이 부여된 장비를 구매하거나, 성수나 성속성 포션 같은 요긴한 소모품을 살 수도 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나 게임하는데 필요해서 흑마법사를 잡았는데 교단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와서는 잘했다면서 템도 주고 사람도 빌려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좀 나쁜 짓을 저질러서 범죄자인 상태라면?
그럼 평범한 플레이어보다 더 간절하게 광명교단에 매달려야 한다.
왜냐하면, 광명교단은 죄 지은자가 제 발로 찾아와, 절차에 따라 고해를 마친 뒤 교단에서 내려주는 ‘성스러운 임무’ 몇 개를 수행하면 그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리, ‘참회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보통 권한 아니다. 대상이 어떤 국가에서, 어떤 범죄를 저질렀던 신전의 권한으로 그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말이니까. 광명교단이 이 시대에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잘근잘근-
교수는 여관 1층으로 내려와,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참회권…. 받으러 가면 안되겠죠?”
“글쎄요? 그거야…. 교단이 ‘누굴’ 찾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문제는 이거다. 교단이 그냥 ‘탈주범 교수’를 찾느냐, 아니면 6위계 마법사를 살해하고 마탑을 무너뜨리고 도시 전역에 홍수를 일으켜 혼란을 야기한 ‘붉은 뮤트’를 찾고 있느냐. 둘 중 어느 쪽인지를 모르니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것이다. 전자라면 가서 ‘히히 죄송’ 한번 해주고 허드렛일이나 좀 해주면 되는 일이고. 후자라면…..
‘사악한 것! 빛의 심판을 받을지어다!’
‘영겁 불멸의 고통 속에서 타오를지어다! 오오! 로-하람이시여! 당신의 종이 저 사악한 존재의 가죽을 벗기겠나이다!’
‘음. 안 봐도 뻔하지. 광명 교단 사람들 되게 무섭거든. 정원에서 호호 웃으면서 나무를 치던 수녀님도 이교도를 만나는 순간 눈을 까뒤집고 야수처럼 도약하며 정원 가위를 휘두른단 말이야. 괜히 이름에 광 자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광명 교단은 그 오랜 역사는 그대로 이단과 투쟁의 역사가 되었으며, 그 세월만큼 진득한 원한이 쌓여있었다. 그래서 인간의 죄라면 얼마든지 용서해주지만, 그들의 신에게 반하는 대죄, 흑마법을 사역한다거나, 흑마법과 관련된다거나, 흑마법사인줄 모르고 악수를 한다거나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차없이 분노의 철퇴를 내리는 것이다.
교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수프를 떠먹으며, 고뇌에 찬 그의 모습을 즐거이 감상하는 락샤샤에게 물었다.
“락샤샤, 어떻게 생각해요? 그래도 도둑길드를 운영하던 당신이라면, 이것보다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을 텐데.”
“음, 미안하지만 교단과 얽힌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아서. 저도 갑자기 교단에서 수배에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가지고 있지만.”
식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교수가 고개를 들어 말없이 그 의견에 관해서 묻자, 락샤샤는 한층 더 즐거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는 없잖아요? 만약 ‘탈주범 교수’와 ‘붉은 뮤트’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들통 났다면, 교단을 찾아가는 건 자살행위니까. 그냥 이대로 나랑 같이 대사막을 넘어서, 타클란으로 가는 건 어때요?”
“타클란? 사막국가 타클란 말입니까?”
“어머, 모른 척 해주는 거에요?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거에요? 당신처럼 눈치 빠른 사람이, 설마 아이작과 나의 대화에서 내 정체를 유추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그녀가 손끝에서 실을 풀어 작은 거미를 만들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작이랑 얘기할 때 그냥 도둑길드 마스터는 아니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설마 동부 사막국가 중 가장 큰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타클란 출신이라니.
‘어쩐지 심하게 이쁘더라.’
이 게임에서 정도 이상으로 잘생기고, 예쁜 캐릭터는 전부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히로익 포인트라는 게, 플레이어한테만 쌓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하면 무조건 잘생기고 예쁜 이미지를 떠올리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처럼 엄청나게 크고 흉악하게 생긴 사람이 소문이 날 정도로 영웅적인 행동을 했다고 치자. 취미라곤 하루 일이 끝나고 저녁 내내 주점에 앉아 떠들어 대는 것뿐인 이곳 특성상,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된다.
이 소문은 음유시인의 입을 거쳐, 다음 마을로 넘어갈 때쯤 이렇게 변한다.
[몸집이 좋고, 남자다운 얼굴에 용력이 산을 뽑을 정도의 용사님이 별다른 도움 없이 다룬 마을을 구해주셨다는군!]그리고 최종적으로 수도에 도착해 가십거리가 될 때쯤에는 [강인하고 훤칠한 용사님께서 악적들에게 호통을 치며 대검을 휘두르시니, 산과 강을 갈라버리며 악적들을 단숨에 계도시켰다. 그 당당한 체구로 악적을 줄줄이 묶어 귀환하는 모습이 마을 여인들의 방심을 사정없이 흔들어 혼절할 정도였다 하더라] 까지 변하는 것이다.
NPC 하나하나가 이 게임에 대한 작은 권한을 가진 주체적인 시스템 관리자인 만큼, 그렇게 어떤 인물에 대한 인식이 고정되면 캐릭터도 그 모습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농담이 아니라 게임 후반부에 히로익 포인트가 잔뜩 쌓이면 내 못생긴 캐릭터도 스리슬쩍 남자다운 얼굴로 바뀌어있을걸? 외교만 전문으로 찍은 말빨 캐릭터라도 일반 기사 정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이유도 그거고.
아무튼, 요점은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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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익 포인트가 쌓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외모 보정이 붙는다.
락샤샤는 누가 봐도 어떤 서사시의 주인공을 해도 될 만큼 예쁘다.
그러므로, 락샤샤는 히로익 포인트를 가진, 히어로 유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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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지만, 꽤 믿을만한 가설.
‘시스템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이름이 락샤샤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히어로 유닛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대상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플레이어의 동료가 되었을 때.
하지만 락샤샤는 지금까지 나와 제법 여러 가지 일을 함께했고, 방금 전처럼 아주 농밀한 친분을 보였음에도 히어로 유닛은커녕, 동료로 영입되었다는 메시지조차 뜨지 않았다.
‘다른 왕국에서 보낸 첩자의 신분. 플레이어의 동료가 되긴 힘든 상황이지. 어쩌면 지금까지 보여준 그 친근한 모습조차 다 연기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좀 허탈하긴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정보수집, 잠행, 암살 및 전투 능력을 보면 쉽게 동료가 될 수 없는 것도 이해가 간다. 못해도 A- 급. 한 달 정도 진득하니 관련 퀘스트를 수행해야 동료가 될까 말까 한 인물인 것이다.
생각에 빠진 교수의 모습을 고민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락샤샤는 진지한 모습으로 속삭였다.
“당신이 예상한 것처럼, 나는 타클란에서 중앙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보낸 요원이랍니다? 어제 당신이 자고있는 사이에 중앙을 습격한 뮤트에 대한 정보를 본국으로 보냈고, 오늘 아침에 막 답신이 왔거든요. 본국에서도 사안의 중대성을 인지하여, 외부에 파견한 요원들을 불러들여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락샤샤는 부드럽게 교수의 손을 잡고, 그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교수? 나와…. 타클란으로 함께 가지 않겠어요? 당신의 신변은 내가 책임지고 보장해 줄게요.”
그녀의 진지한 모습에, 일단 이 모든 것이 연기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접어두었다. 밝혀서는 안 되는 첩자라는 신분까지 밝혀가며 본국으로 나를 데려가려는 모습. 어디까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를 향한 호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게.
내가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놓자, 그녀의 작은 얼굴에 아쉬움이 한가득 맺혔다.
“왜….죠? 혹시 타클란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해요. 동부 사막국가는 중앙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낙후된 국가가….”
“그거야 나도 알죠. 타클란이 얼마나 번성한 국가인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타클란은 특유의 강인한 전사들도 유명하지만, ‘사막의 피’를 이용한 대지 마법이 진짜 끝내주는 곳이다. 얘네 석유 뽑아서 마법 쓴다고. GG에서도 오일 매직의 파워는 건재하다 이 말이야.
“그렇다면 왜-”
“막아야 할 것 아닙니까. 락샤샤도 봤잖아요. 한 마탑의 수장에 가까운 인물의 몸속에 침투하여, 그를 조종하던 괴물을. 순식간에 도시 세 개를 함락시킬 만큼의 힘을 가지고도, 저렇게 음험한 수를 쓰는 놈들의 모습을.”
지금 락샤샤를 따라 타클란으로 가면 편하기야 하겠지. 신분도 보장되고, 중앙의 국가들과 달리 능력지상주의인 사막국가에서는 이 모습과 능력을 양지에서 마음껏 휘두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가면 도시 세 개를 날려먹고도 정신을 못차리는 로드릭은? 로드릭이 함락되면 수 많은 시민을 제물 삼아 중앙대륙을 덮쳐올 뮤트들은 누가 막는단 말인가? 동부 사막국가? 남부 대수림? 중앙이 넘어가면 반 년도 버티지 못하고 뮤트에게 갈려나간다. 이 세상이 멸망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이상, 현실을 등지고 도피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막아야 한다…. 그건…. 복수심인가요? 당신을 그렇게 만든 놈들에 대한?”
“복수심이랄 것까지야.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마탑이지, 뮤트 놈들이 아니잖아요?”
“그럼 왜 굳이 놈들을 막으려고 하는 거죠? 당신이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알지만…. 겨우 개인일 뿐이잖아요. 심지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양지로 나가 남들의 칭송을 받을 수도 없는.”
락샤샤의 의문에, 솔직히 이거다, 라고 대답할 만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글쎄요.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이대로 두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막고 싶은 거죠. 그뿐이에요.”
플레이어로서의 입장 같은 건 아니다. 이제 돈도 많고, 사실 하이드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이딴 거지 같은 게임 굳이 할 필요도 없지. 그런데 여기 있는 NPC들, 이거 그냥 프로그램 쪼가리가 아니잖아. 전부 스스로 사고하고, 감정도 있고, 고통도 느끼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온갖 희노애락을 다 느끼는 복제된 영혼들이라고. 이 사람들 다 죽어 나갈 것을 알면서 외면할 수가 없다. 이곳은, 실제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니까.
‘이런 것 때문에 이 게임이 하기가 싫었는데.’
GG는 하면 할수록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게임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인간적으로 변하거나, 혹은 인간성을 버리게 만들거나. 누군가 강압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스스로가 그런 선택을 반복하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또또, 쓸데없는 이유 가져다 붙이면서 헛소리하지, 또. 제일 중요한 이유를 빼먹었잖아?]고민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조용히 있던 하이드가 불쑥 튀어나와 신경을 건드렸다.
‘….쓸데없이 예민한 부분 건드릴래?’
[도와주는거지. 네가 정말 힘들어졌을 때, ‘내가 이딴 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래서 포기하고, 네가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야.]키득거리는 속삭임과 함께 하이드가 머릿속에 띄운 장면. 작고 평범한 나무집. 마당에 작은 밭을 키우고, 울타리 너머로 실개천이 흐르며, 얼굴도 모르는 여행자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부부가 사는 그 집.
[네가 이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알지?]키득키득.
‘….재수없는 녀석.’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솔직해진다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면서 부끄러운 느낌이다. 그래. 나는 그분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에디와 마사, 복제된 영혼이라고 해도, 두 번다시 그분들의 삶이 전화(戰火)에 휩싸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지키고 싶습니다.”
녀석이 머릿속의 가식을 강제로 걷어낸 덕분에, 입에서 나온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날것의 진심이었다.
순간 자기 입으로 그 말을 내뱉고도 부끄러워서 얼굴이 시뻘게진 교수의 시선에,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물들어있던 락샤샤의 얼굴이 점차 당황으로, 놀람으로, 그리고 알아보기 힘든 복잡한 감정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찾았….다.”
어느덧 눈가가 촉촉하게 물들인 락샤샤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그런 교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내밀고 있던 손을 회수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특별한 사람이었네요?”
무언가 참아내듯, 다짐하듯 자신의 앞섬을 잠시 꾹 쥐고 숨을 가다듬던 락샤샤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교수, 당신의 숭고한 뜻은 잘 알아들었어요. 남자한테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한 것도 처음이고, 그러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도 처음이네요. 이런 식으로 나 정도 되는 여성의 첫 경험을 가져가다니. 역시 보통 남자는 아니었네요?”
“아, 아니, 그건 또 무슨-”
교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부드럽게 다가온 락샤샤가, 그의 얼굴을 붙잡고 강렬하게 입을 맞췄기 때문에.
영혼을 휘감는듯한 격정적인 입맞춤이 끝나고, 평소의 부드러운 표정이 아닌, 흐트러지고 상기된 표정의 락샤샤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교수의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자, 잠깐만! 여기서 그런- 크윽!”
순간 락샤샤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에 불로 지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쇄골 부근에 붉은색 주인(呪因)이 나타났다가 스르륵 피부 속으로 사라졌다. 주인이 사라진 자리에는 작은 실로 만든 매듭이 묶여있었다.
“어머, 무슨 생각을 한 거에요? 당신?”
“아, 아니, 나는….”
“아아, 정말. 그렇게 강렬하다가, 또 이렇게 귀엽다니.”
손가락으로 교수의 콧잔등을 튕겨준 아나야는, 허리를 숙여 교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번에는, 내가 참아주는 것으로 할게요. 타클란의 여인은 인내심이 깊은 편이니까. 하지만 너무 기다리게 하면 화낼 거에요?”
“기다리게 한다니, 무슨-”
“교단을 찾아가도록 하세요. 그들이 정녕 당신을 의심했다면, 수배서를 붙이는 게 아니라 토브룬을 포위하고 도시를 불태웠을 테니. 아마 ‘탈주범 교수’를 찾고 있을 거에요. 가서, 당신이 원하는 일을 행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마침내, 언젠가 당신의 별이 지기전에, 그 찬란한 과업의 끝이 다가오게 된다면….”
말끝을 흐리며, 가늘고 긴 락샤샤의 손가락이 교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가장 섬세하고,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이곳에서 정 동쪽으로, 시안과 도플론의 별 사이를 향해 걷다가 세 번째로 만나게 되는 우물에서 나의 표식을 보이도록 하세요.”
그녀의 말과 함께, 쇄골에 각인된 주인이 엷게 붉은빛을 내었다.
“그리하면, 정인을 찾아 별을 헤매며 사막을 건너온 남자와,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알을 세듯 님을 그리던 여인이 만나게 될지니. 사막의 여인, 아나야는 오랜 기다림 끝에 그 짝을 찾게 되리라.”
아나야는 보랏빛이 섞인 검은 눈동자에, 이제는 숨김없이 애정을 담아 그녀의 가장 진귀한 보물이 될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다릴테니, 당신이 나를 찾는 그 날까지 강녕하소서. 나의 님이여.”
사라락.
바람이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던 락샤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띠링-
[정보 업데이트 : 히어로 유닛 – 아나야 타므 샨데아(락샤샤)와 우호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 ‘아아, 그 예언이 틀리지 않았구나. 사막의 모래알 같은 인간 군상 속에서, 그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나의 님이 찾아오셨구나.’ / 현재 관계 : 정인(情人)]“락샤샤? 아나야? 저, 정인?”
얼이 빠진 교수의 앞에 남은 것은, 깜박이는 시스템 알림과 한쪽 구석에서 미친 듯이 폭주하는 대화창, 그리고 희미한 온기를 내뿜는 주인(呪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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