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68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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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한다. 옛 세상이 재가 되어 모래만 날리고 있으니, 지금을 불길의 시대라.
혹자는 말한다. 과거의 가식이 모두 타버리고 가장 날것의 본능이 삶을 이끌고 있으니, 그야말로 순수의 시대라.
그리고 대다수의 커뮤니티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만나지를 못하며, 홀로 남아 작은 쉘터 접속기에 쓸쓸하게 걸터앉아, 휘영청 달이 떠오른 밤에 혈기를 주체하지 못할 때면 선택지라곤 오른손과 왼손 둘 중의 하나밖에 없는, 커뮤니티의 지박령으로 가득한 시대. 백수(百獸)의 시대라.
그런 사람들 앞에 교수와 아나야의 애정행각은 너무나도 큰 자극이었고, 47구역 대화방은 전에 없던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하지만 해일에도 파형이 존재하듯, 그 거대한 불길 또한 다양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었으니….
– 간장게이바 : 기만자! 기만자! 기만자아아아아!!!!!
– 팔라노이아 : 주, 죽여버리겠다! 감히, 감히 우리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앞에서 정통 순애의 길을 걷다니! 죽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을 찾아, 기필코 거세해 버리고 말겠어어어어!!!!
– 그이새키 : 외롭다. 아아, 너무 외로워서 죽어버릴 것 같아…. 나 자살하면 피로 교수라고 써놓고 죽을거야…..
– 남바쓰리 : 교수 형님, 선을 넘다 못해 아주 그 위에서 텝댄스를 추시지 말입니다.
– 뉴트리아지나 : 니가 기어코 나를 접속기로 달려오게 만드는구나! 일하면서 공유기로 방송 보다가 욕 처박으러 접속기까지 뛰어왔다 새꺄!
– DORitas : #@&@#&)(*)(((*#&^&*!!!
– xhxmsjavos : #(*(^&^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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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아나야의 달콤한 애정행각을 보고 자연 발화해서 재가 되어버린 고독자 무리.
– 킬퍼 : O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H!!!!!!아나야! 아나야! 아나야!!!!!
– 만박만일 : 후욱, 후욱! 세상의 끝에서 만난 두 연인! 시대가 그 둘을 갈라버리고, 먼 훗날 재회를 약속하며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 10점….. 10점이오!
– 홀리 : 너무 아름다워요….. 이런 러브스토리라니. 저, 지금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 수상하게돈이많은 : 저희 19금 플레이 협동조합에서는 `professor`님의 정통파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저희는 믿습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교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에 보답하사 [성인 플레이 필터]를 조용히 내려주실 것을. 간절히 믿고, 기원합니다.
– 노루Drug해요 : 고맙다 교수. 영상 떠놨다. 오늘은, 아니 당분간은 이거다.
– uiyt5443 : (*@#*&()!(^&^#^%&@!!!
– KeitLome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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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다고 헤벌쭉하게 늘어진 무리.
– 스피드 웨건 : 사막이라…. 이쪽 관련해서 좀 알고 있는 사람 있음?
– 무카바 : 그쪽이 모르는걸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 화약과 피 :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국가의 요인과 친분이라. 외교적으로 분명 도움이 되는 구석이 있을 텐데.
– Jokass : 아나야라는 히어로 유닛에 대한 정보도 없음. 얘도 최초야. 사실 3월드는 밝혀지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1,2월드에 비해서 많기는 하지. 사막 쪽을 제대로 건드려본 사람도 없고.
– 스피드 웨건 : 1,2월드의 레빗 프린세스와는 달리 월드3를 클리어한 천류제는 무지성 컨트롤빨로 그냥 마구 밀어서 클리어했으니까. 특전 계승같은거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덤벼서 썰어서 클리어했다고 하잖음. 덕분에 4월드로 넘어간 게 거의 없어서 지금 공략 최전선에서 구르는 랭커들이 피똥 싸고 있는 거고.
– Jokass : 갑자기 교수 방송에 사람들 모인 게 그거랑 관련 있을 수도 있음. 말도 안되기는 하지만, 이런 방향으로 히어로유닛 꾸준히 모아가면서 넓은 범위에서 클리어하게 되면 천류제의 클리어 시드랑은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한 클리어 시드가 나올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미 GG라는 게임 말고는 다른 모든 것에 달관해버려서 지금 상황이 게임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토론하는 고인물 무리.
“어어…. 어버버버…..”
– 간장게이바 : 저저저, 또 체리인척하는 거 봐라. 이젠 안 통한다!
– 노루Drug해요 : 저게 다 기술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척해서 모성을 자극해 여성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역시 BDSM의 수장이야! 스킬이 남달라!
– 화약과 피 : BDSM 캐러밴이 오면….. 여자와 아이를 숨겨라…. 메모….
그렇게 수많은 시청자의 원성과 환호성 속에서, 교수는 그저 그 뜨거운 숨결과 사라지기 직전 아나야의 마지막 애틋한 눈빛을 되뇌고 있을 뿐이었다.
***
드르륵- 덜컹!
웅성웅성-
수군수군-
그렇게 멍하니 있던 교수가 정신을 차린 것은, 슬슬 여관 1층에 사람이 늘어나며 주변이 시끄러워질 무렵이었다.
‘일단 움직여야겠다.’
주변의 소음들 사이에서, 그를 살피는 날카로운 눈빛이 몇 개가 그의 감각을 건드렸다. 아나야가 그를 데려온 여관은 도시 외곽 뒷골목에 있는 낡은 여관. 경비대의 눈을 피하기에 적합해서 많은 범죄자들이 찾는 곳이지만, 그런 만큼 현상금 사냥꾼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었다.
‘탈주범 교수에게 걸린 현상금이 1만 5천 정도. 그때 경비대 감옥에서 마법사의 진술에 따라 별다른 위험도 없는 인물이라고 소문이 났으니 주머니가 홀쭉한 현상금 사냥꾼이나 뒷골목 왈패들이 눈여겨볼 만 하지. 이곳에 계속 있다간 소란이 일어날거야.’
물론 지금은 그런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은 한주먹에 정리할 수 있지만, 마탑 사건으로 온 도시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지금 굳이 소란을 피울 이유는 없었다. 교단이 찾는 수배자인 데다, 실제로 그들이 찾고 있는 주범이 그 자신인 경우에는 더더욱.
교수는 재빨리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몇 명 눈에 띄었지만, 그대로 그가 큰길로 나가자 의심을 접는 모습이었다.
아직 물기운이 흥건한 도시의 대로를 걸으며 교수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나야가 마지막에 광명 교단에서 찾는 게 붉은 뮤트가 아니라고 확신했는데, 그럼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잖아? 왜 모른다고 했지?”
[그만큼 타클란으로 같이 가고 싶으셨다는 뜻이겠지.]“으으으으….”
머릿속에 울리는 하이드의 흐뭇한 음성에 교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여자 경험이 부족한 그로서는, 그런 종류의 애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몰랐으니까. 어찌 됐건 광명 교단이 마탑 일로 그를 찾는 게 아니라면,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탈주범은 별것 아닌 잡범 취급이니 허드렛일을 좀 하거나 그도 아니면 기부를 좀 하면 될 것이다. 참회권을 받아 다시 평범한 용병 신분으로 돌아가면 이제 그가 원하는 대로 게임을 좀 할 수 있겠지. 흑마법사를 잡아서 명성도 얻고 돈도 얻고, 쓸만한 동료도 만나고, 뭐 그런, 평범하지만 클리어를 위해 꼭 필요한 그런 플레이 말이다.
그그그극- 덜컥!
“어이! 밧줄 걸었으니까 당겨!”
“어이싸!”
와르르르-
신전을 향하는 길에 눈에 들어온 도시는 범람한 강물이 휩쓸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무너진 가판대, 골목마다 커다랗게 뭉쳐있는 토사와 잡동사니가 얽힌 더미들. 힘겹게 그 잔해들을 파헤치며 거리를 복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교수는 약간 죄책감을 느꼈다. 결국 도시가 이렇게 된 것은 돈 벌겠다고 마탑에서 깽판을 친 자신 때문이니까.
“한 번 더! 당겨어!”
“어이쓰아아!!”
털썩.
밧줄을 붙잡은 남자들이 힘을 썼지만, 건물 사이에 낀 나무기둥은 미동도 하지 않고있었다.
“제기랄! 사람이 더 필요해! 끝에 뭐가 잔뜩 얽혀서 건물 틈에 끼었는지 꿈적도 안 한다고!”
“흠흠, 잠시 제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지나가던 길에 마음의 짐도 덜 겸, 한 손 거들어볼까 하고 교수가 다가서자, 낯선 목소리에 잠시 주춤하던 사람들은 그 커다란 덩치와 우람한 팔뚝을 보더니 금세 화색이 되었다.
“오! 보아하니 힘깨나 쓰게 생겼군그래! 우리야 고맙지! 저기 저 기둥을 뽑아야 거기 얽힌 다른 것들을 좀 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힘을 써도 요지부동이지 뭔가!”
“수해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뭐, 이 도시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지.”
교수의 손에 밧줄을 쥐여주던 남자는,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듯 교수의 옆에 바짝 붙어 목소리를 낮추었다.
“외지인인 용병은 모르겠지만, 이 도시의 마법사들은 성미가 아주 고약하단 말이야. 마법사 놈들이 그놈의 ‘물 이용세’를 올릴 때마다, 시민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이렇게 강물을 넘치게 하곤 했거든! 까딱 마음에 안 들면 도시를 물에 잠기게 해버리겠다, 뭐 그런 의미의 협박이었지!”
“쉬이이! 길리암 이 친구가 또! 제발 말좀 조심하게! 자네가 그런 소리 하는 것을 마법사의 끄나풀이 듣기라도 한다면….”
옆에 있던 말라깽이 남자의 말에 잠시 움찔하던 배불뚝이 남자, 길리암은 이내 기세등등한 표정이 되어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흥! 듣고 싶으면 들으라지! 지금까지야 마법사 놈들이 무서워서 쥐 죽은 듯이 지냈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라고! 자넨 저게 안 보이나?”
말라깽이 남자와 교수가 길리암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반쯤 부서진 마탑과 그 옆에 장절하게 박혀 보라색 빛을 뿜어내는 공마수정이 눈에 들어왔다. 묘하게 괜찮은 각도로 공마수정이 박힌 마탑은 주변의 눈길을 끄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나름 절경이라면 절경이었다.
“어젯밤에 큰 소리와 함께 마탑 쪽에서 빛이 번쩍번쩍 하더니, 아침에 일어났을 땐 강물이 뚝! 끊겨있고 탑이 저 꼴이 나 있지 뭔가?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뜨끔!
“….마탑놈들이 아주 끝장난 거야! 제대로 임자를 만난 거라고!”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신나게 말하는 사내를 보며, 말라깽이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어휴, 길리암 저놈 말은 새겨듣지 마시오. 워낙 마탑에 쌓인 게 많은 친구라 저러는 거니. 이래 봬도 가업으로 제법 큰 상단을 굴리던 놈인데, 마탑에 밉보여서 쫄딱 망하고 말았거든. 그 이후로는 마탑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흥분해서 앞뒤 안 가리고 욕을 해대고 있지요.저놈이 제 몸의 반만큼만 혓바닥이 무거웠으면 훨씬 편하게 살았을 텐데.”
“퉤! 3대를 이어온 가업도 말아먹고! 마누라는 죽었고! 애들은 이 도시에서 못 살겠다고 용병단을 따라 집을 나갔어! 내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나? 그리고 이제 나도 믿는 구석이 있있으니 이러는게 아니겠나?”
“믿는 구석? 자네가?”
“그래! 그 이상한 수도승들 말이 옳았잖나! 말하는 뮤트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이미 붉은 피부의 뮤트가 기사단장을 농락하며 마법사를 쥐고 흔든 것은 토브룬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이니, 그들의 말이 옳았던 거지! 나도 그 소문을 듣자마자 바로 그 수도승인지 사제인지 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세례를 받았네. 이제 나도 구원교단 신자야! 마법사 놈들이 까불면, 선별자님이 나타나서 우리를 구하고 마법사 놈들을 묵사발을 내줄거라고!”
콰악!
퍼엉!
“우와앗!”
“어이쿠야!”
흐뭇한 얼굴로 사람들과 함께 슬슬 밧줄을 당기고 있던 교수는, 배불뚝이 남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저도 모르게 밧줄을 쥔 손에 힘을 줘버리고 말았다.
후두두둑-
수많은 잔해에 얽혀 골목에 박혀있던 나무기둥이 한순간에 뽑혀 나오며, 그 여력에 같이 얽혀있던 잔해들이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교수를 마음씨 좋은 외지인 보듯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아연하게 변했다.
“호, 혹시, 기사….셨습니까?”
“그럼, 귀, 귀족?”
“아니, 저는-”
털썩!
“아이구우우우! 기사님! 이 촌 무지렁이를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마법사님들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요놈의 입! 그저 입이 문제입니다요! 에잇! 에잇!”
교수는 순식간에 바닥에 납작 엎드려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후려치는 배불뚝이 남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마탑의 마법사들 중 상당수는 귀족이니까. 저들 입장에서는 귀족 앞에서 귀족의 욕을 한 것이다.
교수는 엎드린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귀족이 아니라 용병입니다. 그냥 힘이 좀 센 용병, 교수라고 합니다.”
“으, 으응? 용병?”
남자는 교수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나야가 사준 고급스러운 가죽바지에, 터질 듯 부풀어오른 셔츠. 옷은 분명 깔끔했지만, 등에 매고있는건 어디 귀족가 커튼이라도 뜯어온 것처럼 생긴 보따리에, 무엇보다 검이나 메이스 같은 무기가 보이지 않았다. 기사라는 족속들은 다른건 다 놓고 다녀도 무기를 손에서 떼는 일은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교수의 허름한 생김세에 확신이 생긴 남자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젖은 무릎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구야. 나는 또 귀족 나으리 앞에서 실컷 귀족을 씹은 줄 알았지 뭔가!”
“하하하. 제 소개도 하지 않고 불쑥 끼어든 제 잘못이죠. 뭐.”
“아니, 뭐 그렇게까지 말하고 그러나. 다 촉새 같은 요 입이 방정이지.”
교수는 남자를 안심시킨 뒤, 뽑아낸 기둥을 대충 옆에 세워두고 말했다.
“그런데….. 아까 이상한 수도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던데, 그것에 대해서 좀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음? 아아, 그거야 뭐. 어려울 것도 없지. 당장 오늘 아침 시장거리에서만 해도….”
조금 전까지 입이 문제라고 자책하던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신이 나서 입을 열었고, 그의 이야기를 듣던 교수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었다.
***
교수는 이 게임을 하며 계획을 세울 때, 가끔 체스나 장기 같은 것을 두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뮤트가 투란을 공격했으니, 그쪽을 막고. 다른 왕국이 경계심이 없으니, 경계심을 키워 반대쪽에서 북부를 압박하게 하고.
상황을 읽고, 적의 움직임을 예측해 유리한 전장을 고르고, 우세한 상황을 만든다. 14 특작대에 있던 시절 다른 대원들에 비해 전투력이 부족했던 교수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늘 해왔던 일이었다. 미리 싸움 날 곳을 찾아서, 우리쪽에 필요한 시설 잔뜩 만들어놓기.
마탑에서 붉은 뮤트의 모습으로 일부러 몸을 드러내고, 다소 도발적으로 행동한 것도 그런 계획의 일환이었다. 로드릭 제1기사를 패퇴시킨 말하는 뮤트. 이번에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6위계 마법사를 살해하고 마탑을 무너트린 말하는 뮤트. 이 정도면 직접적인 공격이 없어도 인근 국가에서 저 뮤트라는 세력을 대단히 큰 위협으로 판단할 만한 지표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공동전선을 형성할 때 잡음이 생길 우려가 줄어들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번 타워재킹에서 노린 목표였다. 빚 갚고, 원한도 갚고, 인근 국가들에 겁도 좀 주고. 나름 잘 진행됐는데, 갑자기 그 결과에 구원 교단이라는 놈들이 끼어들었다.
그의 수에 맞춰 진행되는, 상대의 다음 수.
‘공포가 되어서 스며들어야 했을 소문을 교단의 공로로 돌리며 교세를 더욱 확장했다. 누군가 있어. 확실히 상황을 읽어가며 대응하는 놈이.’
교수의 머릿속에, 자신의 앞에 늘어선 판의 맞은편에 앉아 말을 옮기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구원 교단, 그리고 광명 교단이라….. 둘이 같은 시기에 움직인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축축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교수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상대는 다음 수를 두었다. 그에 맞추어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면, 꼼짝도 못 하고 교단이라는 끈끈한 그물에 얽히게 될 것이다.
저 멀리, 광명 교단 특유의 새하얀 건물이 보였다.
***
똑. 똑. 똑.
저 멀고 먼 북부. 어떤 생물의 접근도 허가하지 않는 북부 영구동토의 땅.
그 산맥 깊숙한 곳. 커다란 동굴 속에 히죽거리며 웃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아, 그래. 그렇군. 아이작, 그 마법사가 당한 것인가. 아깝군. 조금 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쓸모있는 패 였는데.”
또옥. 또옥.
종유석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규칙적인 소리가 이곳이 얼음이 얼지 않을 만큼 따듯한 장소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북부에서는 보기 드물만큼 따뜻한 곳.
보그르르륵-
그곳에, 둥글고 거대한 고치가 하나 있었다. 마치 여왕의 둥지를 감싼 거대한 고치를 모방한 듯, 표면에 굵은 핏줄이 선명하고 안쪽이 맑은 녹색액체로 가득찬 그 고치안에서 목소리는 자신에게 연결된 권속들을 통해 세상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잠시 귀를 기울이던 그는, 자신의 가슴을 울리는 익숙한 명령에 상기된 목소리로 답했다.
“아아, 어머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가 움직였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었사옵니다. 계획에 차질은 없습니다. 예, 그렇구 말구요. 어머니, 무능한 형제들과 달리, 저는 어머니를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지 않습니까?”
“— —-”
가슴을 울리는 만족스러운 울림에, 목소리는 더없이 행복해졌다. 어머니의 의식이 멀어진 뒤, 목소리는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는 토브룬의 상황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부디, 더욱 발버둥쳐주시오. 나의 대적자여. 이 모든 전장을 통틀어 가장 값진 수급이 될 수있도록, 그것을 어머니께 바치는 순간 어머니가 더 없이 기꺼워하실 수 있도록. 그리하여, 저 멍청한 형제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귀한 자식임을 일깨워드릴 수 있도록.”
보그르륵-
목소리는 다시 눈을 감았다. 대국은 시작되었고, 그의 대적자는 움직이고 있으니.
여왕의 세번째 자식, 팔카투스는 ‘그’와의 만남을 고대하며 다시 그의 권속들의 의식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