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69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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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건물 근처에는 사람들이 개미떼 처럼 바글거리고 있었다. 저마다 나무로 된 솔이나 헝겊 같은 걸 들고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새하얀 건물은 수해의 흔적 하나 없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데엥-
“오오오, 라투라, 로 하람.”
“라투라. 안식을 주소서….”
교수가 그 장엄한 광경에 잠시 감탄하는 사이, 땅 밑에서 묵직하고 깊이 있는 소리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인들이 발끝부터 몸 전체를 울리는듯한 그 소리에 감탄하며 태양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동안, 교수의 감각에 건물 주변에 규칙적으로 뚫려있는 작은 구멍 같은 것이 들어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신기한 구조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종이 울릴 때마다 땅도 같이 울리는게, 뭔가 대단히 큰 의식의 일부가 된 느낌인걸?”
– 스피드 웨건 : 거의 모든 광명 교단 건물이 저런 형식의 건축 방법을 고수하고 있음. 단순히 울려 퍼지는 소리를 통해 청각만 자극하는 것 보다, 소리와 진동, 청각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해서 저 종소리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거임.
– 노루Drug해요 : 그게 뭔소리여. 그니까, 종소리가 발밑에서 울리게 하면 사람들이 그냥 소리만 들을 때보다 더 기억을 잘한다는 거야?
– 스피드 웨건 : 싱싱한 오렌지 같은 거 생각해보셈. 오렌지를 떠올리면, 그 향을 상상할 수 있지. 반대로 오렌지 향을 맡으면, 그 오렌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고. 대상에 연관된 자극의 가짓수를 늘리면 그만큼 대상을 연상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는거임. 자연스럽게 더 깊은 이미지가 남는거고.
– takealook : 나같은 빡대가리를 이해시키다니. ㅈㄴ 1타 강산데?
– 스피드 웨건 : 아무튼 저 건축 방식은 그런 부분에서 머리를 상당히 잘 굴린 양식임. 교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면, 그게 곧 강한 믿음으로 이어지고, 결론적으로 교단의 힘이 되니까. 물론 그것 말고도 교단 지하에 종을 파묻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함. 이 세계의 종교단체라는게 워낙 지하 시설을 사용할 일이 많잖음. 지하 감옥에서 뇌수가 흔들릴 정도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있으면, 죄인들의 영혼이 정화될 거라 믿는다는 설이 있음.
– 무카바 : 아, 그거 최근에 사제 플레이 하는 사람이 확인했는데, 썰이 아니라 팩트래. 평사제로 고위사제의 수발을 들고 있었는데, 종소리랑 같이 지하로 향하는 계단 너머에서 비명소리가 들릴때마다 흐뭇하고 웃고있었다고 하더라고. 밖에서 들으면 그 비명소리도 종소리의 일부처럼 들려서 더 신비하게 들린다더라. 그 플레이어는 그날부로 짐싸서 신전 나왔다고 함.
“으으으…. 극혐.”
그만 알아보자. 들으면 들을수록 저기 입구에서 화사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사제들이 괴물처럼 보이잖아. 나 좀 있다 저 사람들 한테 가서 ‘그쪽이 찾고 있는 죄인이 나요.’ 하고 말해야 한다고. 그 지하 감옥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단 말이다.
교수는 스멀스멀 떠오르는 나쁜 상상들을 애써 무시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제들중 하나에게 다가갔다. 광명 교단을 멀리할 수는 없다. GG에서 교세가 가장 큰 교단 중 하나. 감염인자의 치료에 신성주문이 필수적인 만큼, 뮤트와의 전쟁에서 교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거든. 어떤 식으로든 뮤트와 싸우다보면 교단 사람들을 여러번 만날텐데, 쫒아온다고 도망다니다 나중에 더 큰 의심을 품고 만나는 것보다는 지금 빠르게 정리하고 웃으면서 만나는 편이 훨씬 좋다는 거다.
환한 얼굴로 감격한 교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던 여사제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교수에게도 그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라투라, 로-하람! 오늘도 당신의 길에 빛이 함께하기를. 형제님, 혹시 빛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까?”
“아, 예. 그….. 제가 죄를 지어서 로-하람의 이름 앞에 죄를 고하고자 합니다만….”
교수가 불안한 표정으로 우물거리며 말을 꺼내자, 여사제는 조금 전보다 더욱 환한 미소를,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불안이 사그라드는 그런 미소를 보이며 교수의 손을 잡았다.
“정말 잘 선택하셨습니다. 형제님! 무릇 세상의 눈에서 숨어들 수는 있지만, 빛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으니, 이미 로-하람 께서는 형제님의 죄를 알고 계십니다. 그저 형제님은 그분 앞에 자신의 죄를 털어놓음으로서, 가슴속에 응어리진 죄를 덜어내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여사제는, 교수가 고해를 하기로 한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이렇게 선한 사람이라니. 아마 이 여자는 태어날 때도 울지 않고 방긋방긋 웃으면서 태어났을 거야!’
“이럴 게 아니라, 얼른 안으로 들어가셔야죠, 형제님! 한시라도 빨리 그 가슴속에 무거운 짐을 덜어놓을 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
“가, 감사합니다.”
“후훗, 제 기쁨인걸요. 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교수는 여사제를 따라 교단의 성문(聖文)을 입으로 되뇌며, 활짝 열린 교단의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북적거리는 교단의 밖과 달리, 어떤 마법적인 힘으로 외부의 소리를 차단했는지 교단 안쪽은 숨 쉬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했다. ‘빛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비춘다’ 는 교단의 가르침에 따라 바닥에 작은 자리를 깔고 앉는 교단의 풍습 덕분에, 건물 내부에는 의자 하나 없이 기다란 금속 촛대로 이루어진 길과 그 끝에 선 거대한 로 하람의 성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은은하게 타오르는 촛불 사이를 지나, 여사제는 로 하람의 성상 앞, 건물 지붕의 구멍으로부터 새어들어온 빛이 비추는 자리로 교수를 안내했다.
“여기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잠시 대기해주시겠어요?”
“여기서…. 하는겁니까?”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라는 말이 생략된 교수의 물음에, 여사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은 로-하람의 전당이니까요. 이미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거짓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아, 물론 속세의 눈길이 부끄러울 수는 있으니 문은 닫아 드릴게요.”
팅팅-
여사제가 성상 앞에 있던 작은 금속 막대를 들어 옆에 있던 금속 잔을 두드리자, 어디 숨어있었는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건장한 사제 둘이 거대한 문의 양쪽에 달라붙어 힘을 쓰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구구-
쿠웅!
문이 닫히자 빛의 신을 모시는 교단의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주변이 어둑해졌다. 건물 안쪽에 남아있는 빛은 희미하게 사제들의 얼굴을 밝히는 촛불의 미약한 빛과 천장에서 새어들어와 교수가 무릎 꿇은 자리를 밝히는 빛, 딱 두 가지 뿐이었다.
– 간장게이바 : 심상치 않은데?
– Jokass : 존나 수상한데?
– 흥안만두 : 누가 봐도 좆됐는데?
– takealook : 고해라는 게 고문하고 해부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 홀리 : 헉! 설마….. 아나야가 자신을 거절한 교수님한테 복수를 하기위해서….?
‘재수없는 소리 하지마! 빌어먹을….. 진짜 분위기가 영 이상한데?’
일단 확실한 사실 하나. 그를 이곳까지 안내한 여사제는 그냥 평범한 사제가 아니다. 좀 전까지 화사하고 예의 바른 아가씨는 어디 갔는지, 손을 모으고 교수의 옆을 지나는 여사제에게선 은은한 후광 같은 것이 비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교단 사람을 부리는 태도와 눈에 보일 정도로 흘러나오는 저 신성력. 역시, 이 여자는…..’
“신의 뜻은 참으로 공교롭지요. 세상이 움직여 그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뜻이 임하는 곳에 세상이 그렇게 자리 잡고 있으니.”
여사제는 조용히 교수의 곁을 지나, 로 하람의 거대한 성상 아래, 복잡한 무늬가 새겨진 하얀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누가 봐도 이곳의 수많은 자리 중 상석으로 보이는 그런 자리. 그리고 그 앞에 마주 앉아 무릎을 꿇고 있는 나.
처음부터 준비된 자리다.
“제가 올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라투라, 로-하람. 세상에 빛이 비추지 않는 곳은 없으니. 오늘 아침 우리 주께서 성녀님에게 속삭이길, [도시의 품에 비수가 박혔으니, 자리 잡은 어둠을 경계할지어다.]”
사박 사박
사박 사박-
무릎 꿇은 교수의 주변으로 흰옷을 입은 사제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무릎을 꿇고 마주한 교수와 여사제를 둥글게 둘러쌌다.
“주의 뜻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곳 토브룬을 가리키고 있음이라. 도시의 품에 박힌 비수는, 지금도 마탑에 박혀 불길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공마석을. 이곳에 자리잡은 어둠은….”
교수를 마주한 여사제는,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새하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곳, 토브룬에 제 발로 찾아온 저 흑마법사의 권속, 저 인간을 흉내내는 괴물의 첩자인 당신을 뜻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잠깐-”
“변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단의 종인 제가 교적의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 용모파기 그대로의 얼굴. 탈주범 교수는 당신이 틀림 없습니다.”
척, 척, 척, 척-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둘러싼 사제들의 주변으로 하얀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 벽처럼 모여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적막한 신전 안에 완벽하게 고립된 공간이 완성되었다.
“라투라.”
“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신전에 모여든 사람들이 성문을 합창함과 동시에, 희미하게 일렁이던 촛불이 모두 꺼지며 천장의 빛이 비추는 교수와 은은한 후광을 뿜어내는 여사제를 남기고 모두가 어둠 속으로 사그라들었다.
“전능하신 로-하람의 뜻에 따라 죄인이 이곳에 자리했나니. 지금부터 토브룬의 빛을 그러모으는자, 엘 세나디스의 권한으로 종교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질식할듯한 분위기 속에 식은땀을 흘리는 교수의 앞에서, 엘 세나디스는 새하얀 웃음과 함께 지금 이 시간부로 교수의 생사여탈권이 교단에 속했음을 선언했다.
***
GG를 플레이한다면 누구나 광명 교단과 한 번쯤은 얽히게 되어있다.
그런 만큼 광명 교단을 상대하는 법에 대해서도 꽤나 자세히 공략이 되어있는 편인데, 하이드가 읽어준 기억에 의하면 교단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은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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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을 만났을 때, 환하게 웃고있음.
기본적으로 교단 사람들은 매우 선하다. 그들은 당신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나 있고, 어떤 식으로 플레이 하던, 심지어 당신이 교단의 방향과 어긋난 성향의 플레이(일반적인 범죄자 플레이를 말함.)를 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교단 사람들은 당신을 아군으로 여기며,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그들의 찡그린 얼굴을 볼 일이 없다. 명심해라. 이들은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무리다. 이들이 당신을 좋게 본다면, 맞장구쳐주는 것만으로도 금방 친해질 수 있다. 교단의 성문(聖文), ‘라투라 로 하람’을 외워가자. 대충 ‘로 하람의 은총을‘ 같은 의미인데, 이것 하나만 알고있어도 교단 사람들은 당신을 10년 전에 헤어진 친형제처럼 여길 것이다.
2. 약간 애매한 웃음을 짓고 있음.
여전히 그들은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과 친해지기에 약간의 절차가 필요한 상태를 말한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 아마 연쇄살인범으로 수배 중이거나, 귀족, 황족 납치에 얽혀있거나, 드래곤의 보물에 손대서 엄청난 숫자의 저주가 당신을 따라다니고 있다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일 것이다. 참회권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자. 당신이 얼마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로 하람에 대한 애정이 솟구치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해라. 그들은 당신을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참회를 위한 임무를 내리거나, 혹은 당신을 교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보호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GG에 광명 교단만큼 선한 NPC는 정말 드물다.
3. 뱀눈.
좆됐다. 당신은 절대로 얽혀서는 안 될 것, 흑마법과 관련된 문제에 얽혔다. 광명 교단은 흑마법이 조금이라도 얽힌 인물을 대하는 순간 선한 종교인에서 미치광이 십자군으로 돌변한다. 그런 거에 얽힌 적 없다고? 그건 니 생각이고.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교단의 엄격한 기준에 걸렸을 것이다. 흑마법사와 거래를 하거나, 흑마법사가 만든 피조물과 얽혔다거나, 저 멀리 1km 밖에 지나가는 정체 모를 검은 로브의 무리를 미처 보지 못하고 교단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거나. 흑마법에 대한 그들의 증오는 이성의 경계를 한참 넘어서 있다. 그러니 만약 교단 사람이 당신의 앞에서 쭉 째진 눈에 금방이라도 당신의 골통을 부수고 싶어 손발이 들썩들썩 한 상태라면, 게임을 접거나 광명교단의 영향력이 적은 국외로 도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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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교수는 슬쩍 눈을 굴려 자신을 둘러싼 사제들을 훑어보았다.
일자로 단단히 다물어진 입. 옆으로 쫙 째진 눈.
만지작, 만지작,
철컥, 철컥-
입술을 씰룩거리며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메이스를 수상쩍게 쓰다듬는 성기사들.
확실했다. 여기 모인 모든 교단 사람들은, 교수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빌어처먹을! 신탁이라니! 내가 뭔 잘못을 그렇게 크게 했다고 신탁까지 내려와! 설마 진짜로 걸린 것은 아니겠지? 신탁이라며. 진짜 신이면 내가 뮤트의 편을 드는 것 보다 뮤트를 때려잡는 편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아나야도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짜 붉은 뮤트에 대한 의심이었다면, 그녀의 말대로 교단이 도시를 봉쇄하고 인퀴지터를 위시한 이단심문관들이 우르르 몰려와 도시를 불태우며 붉은 뮤트를 찾아댔을테니까. 붉은 뮤트에 대한 의심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일과는 별개로 내가 했던 일들 중 뭔가가 광명 교단 사람들의 심기를 아주 사정없이 건드린 모양이다. 이렇게 확신에 찬 눈으로 나를 갈구는 것을 보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꼼짝없이 흑마법사의 하수인으로 진짜 아까말한 지하감옥에서 뇌가 곤죽이 될 때까지 종소리나 듣고 있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놈들을 때려눕히고 탈출하면?
‘그 순간 교단의 공적 확정이지.’
현상금이 100배는 넘게 뛸거고, ‘탈주범 교수는 흑마법사의 쁘락치다.’ 라는 교단의 선언 한번이면 냇가에 빨래하는 아낙도, 추수의 기쁨에 노래를 부르던 농부도 교수라는 이름 두 글자에 광전사로 변해 미쳐 날뛸 것이다. 당연히 로드릭이나 다른 국가의 방어에 개입할 수도 없을거고.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은 어떻게든 여기서 교단을 설득하는 것 뿐이다.
흘끗-
교수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진작에 태워죽였을 정도로 교수를 노려보고 있는 사제들과, 내 어께위에 달린 것이 불편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손가락을 씰룩거리는 성기사들. 이들은 제외다. 이미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대신, 눈앞의 엘 세나디스 라는 여자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 professor : 빛을 그러모으는 자 라고 했지. 분명 이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겠지?
– 무카바 : 정답. 토브룬의 빛을 그러모으는 자라고 했으니 토브룬을 관리하는 급 사제임. 주교급으로 보면 되겠지.
– 홀리 : 저…. 주교면 얼마나 높은거에요?
– 스피드 웨건 :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보좌주교, 수도원장, 사제, 신도 순서임. 주교면 한 교구의 총수이며 인퀴지터와 성기사단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기사에 대한 명령권을 가지고있는 고위사제니까. 엄청 높은 사람임.
지위가 높은 것도 있지만, 일단 이 여자는 지금도 웃고있으니까. 처음부터 내가 교수임을 알면서도 감정을 숨기고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은 적어도 다른 사제들처럼 교단의 적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이성을 잃고 광신도로 돌변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하긴, 이렇게 큰 집단인데 정치적인 상황 판단이 가능한 인물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굴러가겠지.
요점은, 적어도 이 엘 세나디스라는 사제는 대화정도는 가능한 상태라는 점. 저 여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이번 시드에서 양지 생활은 꿈도 못꿀 것이다.
‘강하게 나갈까? ….아니야. 이들에게 빛의 신보다 높은 존재는 없다. 지금 저들은 그 신의 대리인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으니. 여기서 괜히 틱틱거리다가는 괘씸죄로 그냥 목을 날려버릴수도 있어. 여기선 최대한 비굴하게, 그들의 말대로 죄인처럼 굴어야 해.’
순식간에 상황파악을 마치고 대응방안을 정한 교수는, 무릎 꿇은 상태로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잔뜩 겁먹은 목소리 말했다.
“오,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 종교재판이라니, 내가 교단의 적이라니!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나, 나는 그저 토브룬 경비대의 감옥에서 탈출한 죄를 고하고자….”
교수가 입을 열자, 주변에서 찢어죽일 듯 노려보고 있던 사제들의 눈빛이 한결 더 험악해졌다.
“이단이 로-하람의 전당에서 감히 입을 열다니….”
“나는 로-하람의 수족일지니, 내 가슴속에 들끓는 분노는 곧 로-하람의 뜻일진저….”
“이빨을 모조리 뽑고, 혀를 다섯토막 내어 끓는 물에….”
‘씨발! 뭔 말 한마디에 저 지랄이야!’
재판이라며! 변론좀 하겠다는데 그거 잠깐 말한거 가지고 벌써 어떻게 죽일지 정하고있으면 그게 무슨 재판이야!
“그만.”
눈이 뒤집힌 사제들이 슬금슬금 원을 좁혀오자,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사제가 그들을 멈춰 세웠다.
“로-하람이 저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경거망동하지 마시길.”
“으음….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그렇게 말 한마디에 사제들을 물린 그녀는 맞잡은 두 손을 이마에 붙이더니,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투라, 로-하람. 무릇 모든 존재는 나고 지는 모든 순간에 로 하람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숨 쉬고 말하는 자라면 그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수 없음이라.”
후우우웅-
짤막한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교수는 주변에 기묘한 압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뭔가 끈적한 실이 혀와 목구멍에 달라 붙은 것 같은 기분.
‘신성주문! 이 내용은…. 자백 주문?’
여주교, 엘 세나디스는 그런 교수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주의 앞에 단 한톨의 꾸밈도 없는 진실만을 이야기하게 됐으니. 이제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도 좋습니다, 부디, 교적(敎敵)에 대해서 최대한 많이, 그 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떠들어주시길.”
교수는 여주교의 환한 웃음속에, 진득한 살기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그녀를 설득하는 것 또한 쉽지는 않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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