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7
Chapter.1 오, 해피데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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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으니 현재의 불행이 미래의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인데…..
“이게….. 내 캐릭터?”
이건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세상일 모르는거라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쓰레기처럼 확고하게 보이는 미래도 있다고!
유리 몸에, 정신쇠약. 전사로서도, 마법사로서도 미래가 없는 캐릭터. 이제 정말로 남은 희망이라곤 딱 하나, 입 털어서 말빨로 먹고사는 외교형 캐릭터였는데….
– 무카바 : 엌ㅋㅋㅋㅋㅋㅋ
– Jokass : ㅅㅂㅋㅋㅋㅋㅋㅋㅋ
– 간장게이바 : 역시 GG야! 항상 짜릿해!
모든 설정이 끝나고 내 눈앞에 나타난 캐릭터는 그 실낱같은 희망마저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내가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전사의 모습. 외교나 사교적인 모습과는 100만 광년 정도 떨어져 보이는 그런 참 전사의 모습이다.
– 스피드 웨건 : 진짜 답도 없네.
– 하이웨이나초맨 : 얔ㅋㅋㅋㅋ나 숨넘어간닼ㅋㅋㅋㅋㅋ
– 무카바 : 외형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게 또 저렇게 넘어가네 ㅋㅋㅋㅋ
– 홀리 : 저….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외형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분위기가 그래 보이는데……
“그럼요. 정말 중요하죠.”
이제는 완전히 해탈해버렸는지, 허허로운 눈으로 캐릭터를 바라보고있던 교수가 설명했다.
“GG는 그 힙스터 영감이 맨날 말하는 것처럼 리얼리티가 엄청 빡쎄게 들어간 게임이거든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말쑥하게 차려입은 미남자가 상큼하게 웃으면서 ‘우리 대화 좀 해볼까요?’ 하는거랑 아니면 지금 저 캐릭터처럼 생긴 남자가 씨익 웃으면서 ‘크헬헬헬! 어이! 나랑 얘기 좀하지!’하는거랑, 어느 게 더 협상이 잘 될 것 같습니까?”
– 홀리 : 아.
“바로 그겁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특성이지만, 외형도 특성 못지않게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많이 미치거든요.”
짧게 설명하느라 많이 간추렸지만, 외형이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방금 말한 것처럼 NPC와 하는 모든 전반적인 대화에 방향성을 결정하고, 호감도 같은 부분에서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외모이기도 하다.
얌전히 설명을 듣고있던 홀리가 외형의 중요성을 깨달을 무렵, 스피드 웨건은 다른쪽으로 뭔가 깨달은 모양이었는지 내게 말을 걸었다.
– 스피드 웨건 : 지금 그런 부분이 문제가 아님.
– professor : ?
– 스피드 웨건 : 너 유리 몸이잖음. 내구도 90 고정.
“그런데요.”
– 스피드 웨건 : 어떤 상황에서든 내구도 90 고정이라는 건, 표면적이 넓어졌을 때 단위 부피에 대한 내구도가 더 떨어진다는거 아냐. 안그래도 지금도 몸집이 커서 단위면적당 내구도 할당이 적을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커질수록 그게 더 떨어진다는 소리임.
“!!!”
– 홀리 : 으엑
– 피와 화약 : 그렇다는 것은….
– 고래가난다요 : 엌ㅋㅋㅋㅋㅋ 그냥 유리도 아니고 얇은 유리몸ㅋㅋㅋㅋㅋ
– 스피드 웨건 : 대충 비교하면 잘깨지는 일반 유리랑 실험용 커버글라스 정도의 차이일껄
– Jokass : 아아, 이 몸 말인가? 이건 ‘풍선 근육’이라는 것이지. 손대지 마라. 아프다.
– 하이웨이나초맨 : 톡 하면 터질 것만 같은 그대~(진짜 터짐)
“흐어어어…..”
더이상 절망할 기운도 없다. 내 캐릭터, 정말 완벽하게 쓰레기구나.
캐릭터 생성 페이즈가 완료되었는지 2미터짜리 거한을 바라보고 있던 내 시선이 돌아가며 시점이 확 높아졌다.
[캐릭터 동기화 완료] [구원자님, 부디 게드로이츠 대륙을 구해주시길….]– 고래가난다요 : 여신 : 이게….. 구원자?
– 朝樂氣多際 : GG의 미래는 어둡다
낄낄거리는 갤러리의 글자들이 점점 멀어지며, 의식이 붕 뜨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나는 다짐했다.
‘한 달, 딱 한 달 돈 되는 퀘스트만 하고 때려친다!’
화아아악-!
눈부신 빛이 잦아들며, 마침내 나는 새로운 몸으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
“스으으으읍- 하아아아아~”
으음~ 이 청량한 공기. 대체 얼마만이냐!
바람이 분다. 모래먼지 가득한 바람이 아니라, 시원하고 청명한 맑은 바람이. 눈앞을 가득 채운 푸른 나뭇잎들이 그 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스치는 소리를 내고, 어디선가 작게 새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밖에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할 아름다움. 확실히 게드로이츠의 게임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났다.
“일단….. 어떻게 시작하긴 했네.”
캐릭터만 만들었는데 근 1년치 스트레스는 다 받은 것 같다. 으음, 이러면 안되지. 정신 안 차리면 순식간에 죽어 나갈 거다. 집중하자 집중!
– 하이웨이나초맨 : 뭐부터 할거임?
– 朝樂氣多際 : 당연히 가방부터 따야지.
– Jokass : 뭔 소리여. 몸이 저따군데 당장 노가다라도 뛰어서 스톤스킨 마법서부터 사야지.
“거 조용히 좀 합시다, 좀. 안 그래도 막 동기화해서 정신없어 죽겠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상태를 확인하는 것. 우선 몸을 보았다. 거의 누더기가 다 되었지만, 찢어지고 더럽혀지기 전에는 꽤 고급 옷감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옷 한 벌. 심지어 신발은 흙 투성이가 되어서도 아직까지 제법 광채를 간직하고 있었다.
‘[몰락한 기사 가문의 서자] 라….. 생각보다 더 괜찮은 집안이었나 보군.’
이건 나쁜 소식이다. 그 정도로 괜찮은 가문이었다면, 그 가문을 멸망시킨 적들의 수준 또한 높다는 소리니까.
– Jokass : 저거 성장기 맞냐?
– 스피드 웨건 : 아까 캐릭터 시트에는 20살이라고 나왔음.
– 간장게이바 : 20세? 저게 어딜봐서 파릇파릇한 새내기 대학생이냐? 볼장 다본 야가다 마스터지.
시야로 볼때 키는 190cm가 좀 넘는 것 같았다. 팔다리를 휘둘러 보니 벌써부터 단단해 보이는 팔뚝과 다리가 훙훙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게, 전에 전사 캐릭을 키웠던 사람으로서 참 마음에 드는 몸이 아닐 수 없었다.
최대 내구도 90 고정만 아니었다면.
뚜둑-!
“으아아악! 뭐야 썅!”
몸도 풀 겸 스트레칭을 하며 힘차게 팔을 휘둘렀는데, 옆에 있던 나무에 손끝이 한번 툭! 하고 툭하고 닿더니 그대로 손목이 접질려버렸다.
“아으으윽, 뭐, 뭐야 이거. 지금 스트레칭하다 나무에 살짝 박았다고 손목이 나간거야? 이거 진짜냐?”
– 하이웨이나초맨 : ‘엄선된 쓰레기 캐릭’
– 간장게이바 : ‘실력과 운으로 빚어낸 걸작’
– 고래가난다요 : ‘마스터피스’
이 인간들, 아주 신이 나셨다.
“닥쳐봐 좀! 심란하니까! 계획이고 나발이고 확인부터 좀 해야겠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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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info
이름 : ???
직업 : 미정
종족 : [휴먼]
성별 : [남]
기원 : [몰락한 기사 가문의 서자]
연령 : [성장기(20)]
+특성 : [ 호기심 ], [ 마력적성 ], [ 반짝이는 시선 ], [ 유리 몸 ], [ 정신쇠약 ]
+ Log
+ Item : ㅁ / ㅁ / ㅁ /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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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어를 외치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이 심플하기 짝이 없는 글 상자가 이 게임에서 제공하는 상태창이다. 이 게임의 상태창은 여타 게임과는 확실히 다른점이 있는데, 바로 플레이어가 알고있는 정보만 표기해준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월드에 막 떨어졌을때는 정말 아무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름, 직업, 목표, 하다못해 연도나 날짜, 시간까지. 정말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어디보자….. 랜덤 스타트라도 기본 아이템 정도는 줬겠지. 부목, 제발 부목 있어라!”
아이템 창에 네 칸이 꽉 차있는 것으로 보아 주머니에 뭔가 넣어두긴 한 모양이다. 피가 흐르는 손으로 너덜너덜한 옷을 훑어보니 돌돌 말린 천 쪼가리 비슷한 물건이 하나 나왔다.
[오염된 붕대 x 4 : 출혈을 멈추고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붕대. 하지만 보관을 소홀히 하여 오염되었습니다]“붕대. 나쁘진 않은데 붕대만 4개있네? 이걸로 대충 때울 수 있으려나?”
붕대는 여유가 있으니 어디서 단단한 나뭇가지만 구해서 접질린 부위에 대고 묶어주면 될 것 같은데…..
꽈아악-
“으아야악! 아파! 더럽게 아파!”
손으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기 위해 힘껏 잡고 당겨봤더니 손바닥이 홀랑 다 까져버렸다.
[ item : 오염된 붕대 x 2 ]슥슥슥슥-
접질린 오른쪽 손목. 피투성이 왼쪽 손바닥.
게임 시작하고 한 일. 체조. 나뭇가지 꺾기.
“이건 아니야. 이건…. 이건 정말 아니라고! 말이 안되잖아! 나뭇가지 하나 꺾지 못하는 몸이라니! 이걸로 세상을 어떻게 구해!”
– 간장게이바 : ㅋㅋㅋㅋ 그럼 설마 그 몸으로 클리어 각 보고있었음?
– Jokass : 교수는 아직 소년이구나. 가슴속에 꿈을 다 품고.
– 스피드 웨건 : 생각을 바꿔야 함. 니가 알고있던 몸이 아니라 유리 세공품으로 이루어진 장갑 같은걸 꼈다고 생각하는게 좋음.
“유리…. 세공품이라….”
보기만 해도 힘이 넘쳐 흐를 것 같은 거구의 근육질 몸을 보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
한숨과 함께 속에 품고있던 기대를 여러모로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24시간 잠입 미션 한다는 느낌으로. 소음은 곧 반작용을 의미하니까, 사뿐 사뿐. 천천히.
부목을 만들기 위해서 내 몸에 힘을 주는 대신, 체중을 이용하기로 했다. 남아있는 붕대로 팔과 다리를 둘둘 감고, 천천히 나무를 기어올라 제법 굵은 가지위에 단단히 자리잡은 다음, 조심스럽게 몸을 흔들었다.
뚜둑- 우드드득!
“돼, 됐다! 부러진-다아아아!!!”
쿠우웅!
“크아아악!”
획득 : 단단한 나뭇가지 x 3, 좌측 정강이 골절.
“내 허리 높이도 안됐는데!”
지금 내 상태를 보라. 우측 손목 골절, 좌측 다리 골절. 좌측 손바닥 벗겨짐. 사지중 2개를 완전히 못쓰게 됐고 하나는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든 상태다. 이 모든 것이 부목으로 쓸 단단한 나뭇가지를 구하는 중에 일어난 일이다.
교수는 바닥에 떨어진 단단한 나뭇가지를 들어올렸다.
띠링-!
[item : 단단한 나뭇가지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나무에서 꺾은 가지. 뗄감이나 지팡이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 player 지식보정 : ‘나뭇 결도 좋고, 강도도 괜찮군. 무기로 써도 되겠어.’
한손둔기 / 공격력 3 / 내구도 45 ]
“허…..”
플레이어 지식보정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이 세계에서 관찰한 지식이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 상태창에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지난 월드2 플레이에서 양손전사 키우면서 부직으로 대장장이 스킬을 조금 올렸더니 이런식으로 보정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내구도가 45? 내 몸의 딱 절반이라고?”
내 몸의 내구도가 90이니, 저 막대기 2개를 동시에 꺾을수 있는 정도의 힘만 있으면 내 허리를 그대로 접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 참. 이젠 화도 안나네 진짜…..”
스슥- 슥
꽈악!
띠링-!
[급조한 오염된 부목 x 2 : 가공되지 않은 나무와 오염된 붕대를 엮어 만들었다. 큰 치료효과는 기대할 수 없지만, 골절 부위의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뭐, 어떻게든 되긴 됐네.”
다리를 부러뜨려가며 얻은 나뭇가지 3개중 2개는 팔과 다리에 부목으로, 하나는 부러지지 않은 손에 들려 지팡이처럼 짚었다.
붕대와 부목으로 칭칭 감은 팔과 다리. 꾀죄죄한 옷에 간신이 짚은 지팡이. 그야말로 패잔병이었다.
“일단 마을부터 가자.”
그냥 숨만 쉬어도 이정도다. 길에서 들개라도 나오는 순간 개한테 산채로 뜯어먹히는 감각과 함께 50만 실링짜리 계정이 날아가겠지.
온 몸이 머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아팠고, 지끈거리며 찌르는 듯한 두통은 생각을 못할 정도로 심했다.
“서두르자.”
탁, 지익.
탁, 지익.
교수는 저 멀리 보이는 성벽을 향해 절뚝이며 나아갔다.
마침내, 모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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