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70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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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GG의 세계에서 설득하기 어려운 직업군을 고르라면, 1순위가 마법사 라는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 지들이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이해를 토대로 현실을 비틀어 마법을 사역할 정도이니,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실 마법사는 쉽게 설득당하면 안 된다. 막말로 [물은 차가운 것이다] 라는 깨달음으로 마법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이 엄청난 이론으로 그것이 옳지 않음을 눈앞에서 증명했다고 하자. 만약 여기에 설득되어버리면? 그 길로 심상이 무너져서 해당 깨달음에서 비롯한 마법을 못 쓰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세간의 인식과 달리 마법사는 좀 무식하고 세상 이치에도 좀 어두운 편이다. 자기 머릿속의 세상에서만 사는 편이 그런 막무가내로 쌓아 올린 깨달음을 지키는데 안전한 편이니까.
그렇다면 종교인은 어떨까?
“자, 잠시만요! 저는, 저는 정말로 제가 이곳에 왜 왔는지를 모릅니다!”
“이런 불경한···. 너무도 많은 죄를 지어 그 가짓수를 헤아리지도 못할 지경이로구나.”
“사지의 힘줄을 자르고 신전 지붕의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백일 동안 바싹 말려서….”
“라투라, 로 하람….. 불경한 이의 말을 귀에 담는 것을 용서해주소서…..”
‘시발! 뭐라도 좋으니 말 좀 들어줘! 제발!’
단언컨대, 종교인은 0순위다. 이들이 한번 확언한 대상에 대해서는, 특히 그것이 그들의 신과 얽혀있다면 그들은 설득이 완전히 불가능하다.
지금 내 혀를 옭아매고 있는 주문처럼, 신성력에서 비롯한 힘을 신성 ‘마법’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본적인 원리는 마법과 같기 때문이다.
마법의 경우, 어떤 대상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이 정립한 깨달음에 대해서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옳다!’ 라는 강력한 믿음을 획득하며, 그 믿음을 통해 타인의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법칙을 구축해 마법을 형성하게 된다.
반명 신성마법은? 위에 말한
[이해->믿음->법칙의 성립->힘의 발현] 으로 이루어진 단계에서 ‘이해’가 빠진다.종교는 이성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순수한 믿음이 그 근간이다.
[로-하람께서 태초의 빛을 사역하시니, 필멸자들의 눈에 세상을 비추셨다.]교인들은 이 문장에 ‘왜’라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신앙’이니까. 믿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 별은 반짝인다 와 같이 자신들의 신앙이 세상의 구성요소라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이해의 논리가 파고들 틈조차 없는 순수한 믿음. 그것이 신성력을 이루는 근간이다.
수많은 종교들이 교세의 확장에 열을 올리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믿고 섬기면, 그 믿음의 수만큼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해지니까.
‘신탁이 내려왔다고 했지. 저놈들 입장에서 신탁은 무조건 옳은 말이니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져야해. 앞에 비수가 박힌 도시는 누가 봐도 토브룬 이지만, 뒤쪽의 자리잡은 어둠이라는 문장은 상당히 해석이 난해하니까. 그것에 대해서 찾던중 놈들의 레이더에 내가 덜컥 걸려든거야. 신탁을 부정할 순 없으니, 그 해석을 어떻게든 뒤틀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개똥 같은 소리를 지껄이기 전에, 나에 대한 변론을 확립해야해!’
저들이 더 말을 하게 내버려두면 지들끼리 알아서 내가 그 악이라고 확정해 버린 뒤 재판을 진행해버릴테니, 이 자리에서 당장 나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바꿔야 한다.
‘우선 저들이 어떤 사실을 통해 나를 신탁의 대상이라고, 뮤트의 첩자라고 확언했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을 반박해야 할지 알아야 판을 짜든 판을 엎어버리든 할테니까!’
교수는 바싹 말라붙은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은 뒤집을 수 있다. 아직은!
“좋습니다. 죄인이 주의 앞에서 스스로의 죄를 듣기를 청하니, 교인 된 도리로서 그 죄를 일월하에 낱낱이 고해드리죠.”
교수는 여주교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지난밤. 토브룬에 있을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의 말을 하며 사고하는 괴물, ‘붉은 뮤트’라는 끔찍한 존재의 손으로 이루어진 참상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시민이 고통받았으며, 주의 뜻을 따르기엔 눈이 너무 어두운 우리는 그 비극을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오오오, 라투라, 로-하람.”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교수는 침착한 척,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 여교주의 말을 경청했다. 붉은 뮤트와 탈주범 교수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걸렸으면 이미 게임 오버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바로 다 뒤집어엎고 도망쳐야 한다.
“교단이 사태를 파악하고 서둘러 리드 플로우 마탑으로 향했을때는, 이미 그 악적이 순식간에 참상을 저지르고 도주한 뒤. 우리는 로 하람의 성상앞에 스스로를 채찍질 하기에 앞서, 우리는 맹세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참상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찾아내어,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벌일 수 없도록 만들겠다고.”
여교주는 잠시 손을 그러모아 기도하며, 자신을 책망하듯 눈을 감았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해당 마탑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잡아들였습니다. 6위계 마학자 ‘아이작 만달리우스’의 시체에서 평범하지 않은 흔적, 촉수 같은 것이 경추와 머리를 파고든 흔적을 발견하였으며, 그와 관련된 제자들이 감히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의 불경한 연구를 진행한 사실 또한 확인되었으니.”
팔락-
엘 세나디스는 하얀 법복 안에서 물에 젖었던 흔적이 역력하지만, 잘 말려서 알아보는 데는 문제가 없는 양피지를 몇 장 꺼내서 교수앞에 펼쳐들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증거물에, 당신의 흔적이 아주 또렷하게 적혀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어라? 저건?’
교수는 설마 저것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게, 세나디스의 손에 들린 양피지가 그에게 대단히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item : 물에 젖은 아이작 만달리우스의 연구일지]그것은, 탑의 비리를 밝히기 위해 그가 직접 허공에 흩뿌린 아이작의 연구일지였다.
***
[어떻게 할 거야? 혼자 도망칠 수 있겠어? 도와줄까? 내가 밖으로 나가면 이 녀석들 정도는 단숨에 뿌리칠 수 있어.]‘광폭화 없이도 표면으로 나올 수 있어?’
[아직은 불가능하지. 육체적인 면에서는 몸 전체의 감염인자가 활성화 되어야 하고, 의식적인 면에서는 껍데기 네가 정신을 잃거나 운전대를 넘겨야 가능한 것 같아. 뮤트의 피 문제는….. 이 녀석들을 단숨에 뿌리치고 도시 밖으로 전력으로 달리면 해결되지 않을까? 이제 토브룬은 최전방이잖아. 근처에 뮤트 한둘쯤은 돌아다닐 거라고. 말라 죽기 전에 어떻게든 시간이 될 거야.]‘….아니, 너무 위험해. 그리고 아직 완전히 끝장난 것도 아니야.’
일단 가장 중요한 포인트. 방금 확인됐는데, 놈들은 내가 붉은 뮤트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모른다.
‘연구일지를 통해 내 존재를 확인했다면 확실하지. 거기에는 내가 잡혀와서, 실험체로 살았던 모든 날들이 적혀있으니까. 나를 찾을 때도 ‘탈주범 교수’의 이름으로 찾고 있었으니 토브룬에 들어올 때 경비병 앞에서 마법사가 나를 인간이라고 확언한 것도 알고 있을 거야. 일단 제일 중요한 문제는 잘 넘어갔어!’
놈들이 붉은 뮤트로서의 내가 아니라 실험체로서 나를 의심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당황하는 척을 해야지.’
대화를 섬세하게 구성해 잘 유도해야 한다. 카드로 만들어진 탑을 쌓아 올리듯, 진실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니 진실로 상대를 속여넘기는 수밖에.
“그, 그런….!”
교수가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주교는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아이작과 그 제자들이 뮤트와 협력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뮤트의 습격에 의해 죽었지만, 악의에 물든 괴물과 협력했다면 언젠가 배신당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협력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피에 물들었으니 언젠가는 괴물이 되었겠지요. 몸속에 변형된 무언가가 파고든 그 아이작처럼 말입니다. 목숨으로 죗값을 치룬 이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일과 얽힌, 살아남은 이들이죠. 바로 당신처럼!”
교수는 공포에 사로잡힌 눈으로, 필사적으로 입을 놀렸다.
“마, 말도 안 됩니다! 그 연구기록을 보셨다면 오히려 잘 알 거 아닙니까! 내가 단순히 그들의 실험체였다는 것을! 나는 피해자였습니다! 선량한 시민이었다고요!”
말을 하면서도 입안에 달라붙은 끈적한 기운에 발음이 자꾸 엉켜져 나왔다. 일단 입에 담은 것은 모두 사실이니 어떻게 허용범위 안에는 들어간 모양이다.
‘좋아. 여기까지 잘 끌고 왔어. 여기서 내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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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라. 선량한 시민이라….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선량한 시민이‘었’던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교수, 그대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내 주변을 에워싼 기운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백 주문. 질문에 앞서, 입에 담는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입을 봉해버리는 주문에 더욱 신성력을 불어 넣은 것이다.
“교수. 당신이 마법사들의 실험에 끌려가 고통받은 한낱 ‘실험체’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괴물에게 점령당한 투란에서 살아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요? 강력한 기사도, 고위 마법사도 아닌 평범한 실험체에 불과한 당신이?”
‘왔다! 미끼를 물었어! 피해자 얘기를 하면 이쪽으로 치고 들어올 줄 알았지!’
내 행적을 더듬어 봤다면, 투란에서 실험체가 된 다음 토브룬의 경비대에 붙잡힐 때까지가 텅 비어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의심하겠지. 이 텅 비어있는 기간 동안, 마법사의 실험체로 마구 유린당하던 남자가 무엇을 했을까. 매일같이 마법사들에 의해 사지가 잘려 나가는 고통을 겪은 사람이니, 인간에 대한 증오가 싹트지 않았을까? 매일같이 그 감염성 높은 괴물의 피에 몸을 담갔으니 끝내 괴물이 되고 만 것은 아닐까? 하고.
‘여기다. 여기서 비틀어야 해!’
교수는 크게 숨을 들이쉰 뒤, 속으로 몇 번이나 심사숙고하여 고른 문장을 하나하나 입에 담기 시작했다. 처연하고, 슬픈 표정으로. 마치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남자처럼.
“역시…. 다 알고 계셨군요.”
고개를 푹 떨구고, 입술을 꽉 깨문다. 감정이 격앙된 것처럼 몸을 좀 부르르 떨어주는 것도 좋겠지. 슬픈 생각, 슬픈 생각! 나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해바라기의 오태식처럼,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고 나의 업보를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 Jokass : 야야, 얘 또 뭐 한다.
– 노루Drug해요 : 교수네 캐러밴에서 물건 사면 큰일 나겠다. 저런 놈이 쳐들어와서 존나 입 털어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머니 탈탈 털어서 물건 다 사버릴 듯.
– takealook :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 치 혀를 단련한 자…..
– 간장게이바 : 교수가 아니라 교순(狡脣 : 교활한 입술)이라고 불러야 할 듯.
또르륵-
뚝, 투둑!
외야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슬픈 주인공을 이미지하는데 성공한 교수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 맞습니다. 저는 괴물입니다. 마법사들이 저를 투란에 버려두고 떠난 뒤로, 제 감염에 대한 아무런 관리도 받지 못한 저는, 끝내…. 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울며 고백하는 교수의 모습에, 세나디스를 비롯한 사제들과 성기사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감돌았다. 지금 그들이 잡아들인 죄인이,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괴물들이 ‘여왕’이라 칭하는 존재의 목소리를 들었나요?”
“….예. 지금도 제 머릿속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나를 조종하고, 내 몸의 자유를 빼앗으려 하는, 크흑! 그 목소리를! 하지만 저는 괴물이 아닙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비록 몸은 놈들과 같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흡족한 얼굴로 당장이라도 ‘정화’를 명령하려던 여주교의 얼굴이, 교수의 절절한 외침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당신은 분명히 ‘여왕’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고, 지금도 듣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증언에 한 치의 오차도, 거짓도 없음을 맹세할 수 있습니까!”
“맹세합니다, 맹세하고말고요! 저 광명의 로-하람 앞에! 단 하나의 거짓도 입에 담지 않았음을 맹세합니다!”
혀 뿌리가 약간 뻐근한 감각은 있지만, 여전히 자백 주문은 내 혀를 옭아매고 있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지. 전부 사실이거든!’
여왕의 목소리? 들었지. 감염 초창기에. 내게로 오라~ 뭐 어쩌고 하는 소리를 분명 들었으니까.
머릿속의 목소리? 지금도 듣고 있잖아. 하이드라고, 24시간 침을 질질 흘리며 내 육체의 주도권을 앗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목소리가 지금도 선명한걸?. 여왕에 관한 질문 다음에 대답하긴 했지만, 나는 ‘여왕’의 목소리라고 한 적은 없다고?
진실밖에 말할 수 없다? 에잉, 그런 반쪽짜리 주문을 쓸 때는 질문을 잘 골라서 하셨어야지. 말을 하는 쪽이 억제되어있다면 말을 ‘안’하는 내용을 조절하면 되는 거잖아? 나는 주어를 생략하고 말했지만,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고? 그 생략된 주어에 관한 내용은 우리 사제님들이 알아서 잘 상상해서 채워주신 거고.
‘현대 사회의 언론은 팩트체크만으로는 사실을 구분할 수 없다, 이 말이야. 조각난 팩트도 잘 끼워 맞추면 훌륭한 거짓말이 될 수 있거든?’
교수는 속으로 실실 웃으며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여기까지가 1단계. 우선 내가 여왕의 명령하에 있지 않음을 공표한다. 지들이 자백 주문까지 걸고 확인했으니, 이제 이건 확실하게 증명된거지.
여주교, 엘 세나디스는 잠시 당황했지만 빠르게 얼굴에서 그런 기색을 지운 채, 다시 근엄한 표정이 되어 교수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괴물에게 감염되어 여왕에게 몸을 빼앗겼지만, 다시 자신의 의지로 되찾았다, 이 말입니까? 지금까지 그 어떤 이도 이겨내지 못한 감염을? 로-하람의 사제들조차 이겨내지 못한 감염을 당신의 의지로만 이겨냈다고 말하고 싶은겁니까!”
으음. 교단의 권위와 관련된 부분. 여기서는 다시 팍 수그려야한다. 교단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감염을 이겨낸 모습을 보여주는게 좋겠지.
교수는 더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지 않았다. 눈물이 흥건한 눈으로, 여주교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얘기하고 있었다.
“저는 인간으로 죽고 싶었으니까요. 저도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제 의지로만 이런 일을 해냈다고 하기에는, 마법사들이 제 몸에 장난을 너무 많이 쳐놓은 뒤였습니다. 그들이 제게 행한 실험과 수많은 약물이, 제 의지와 어떤 식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의지로 하이드의 공격을 이겨냈고, 그 전까지는 마법사의 약물과 그 ‘부상 치료’에 의지해 감염을 억제하고 있었거든.
수군수군-
술렁술렁-
“이렇게 되면…. 저자는 교단의 적인가? 아니면 여왕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가여운 영혼인가?”
“어허! 불경한 말을 입에 담지 마시오! 신탁이 내려오지 않았소! 분명 이 토브룬에 악적이 있음을 뜻하는 신탁이! 설마 로-하람의 뜻을 의심하는 것이오!”
“으으음…. 라투라, 로 하람.”
“라투라, 로 하람.”
교수의 증언이 쌓일수록, 주변에 시립한 사제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만, 그만! 정숙하세요! 아직 재판 중에 있습니다!”
시종일관 차분하던 여주교의 목소리도, 그런 그들의 흔들림 앞에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잠시 찌푸린 얼굴로 고민을 하던 여주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 팔라딘 아슈웰. 죄인 제스커를 재판장으로.”
미간을 찌푸린 그녀의 말에 잠시 무리에서 이탈한 성기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남자 한명을 데려와 교수의 옆에 무릎 꿇렸다.
“으으으, 어어어어….. 서, 선별자님?”
‘이, 이 자식이 왜 여기서….?’
낯익은 얼굴. 분명 토브룬에 들어오기 전, 길에서 만난 엉터리 강도 3인방중 구원 교단에 대한 정보를 뱉었던 그놈이다. 얘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교수. 이 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예. 토브룬으로 오는 길에 만난 도적입니다.”
“맞습니다. 정확히는 도적이었지만, 어제부터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원 교단’이라는 이단을 입에 담으며 붉은 뮤트의 습격을 예고했던 자 입니다. 교단의 신자중 하나가 이자를 포획하였고,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알아낸 뒤 사형대기에 있던 죄인중 하나이지요. 그런 죄인의 입에서 나온 얘기 중, 투란에서 토브룬으로 걸어온, 흉터투성이에 맨발을 한 거구의 사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죄인 제스커가 말하길, 그 사내가 붉은 뮤트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알려주며 자신을 선별자라고 소개했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제기랄! 이쪽은 생각 못해놨는데!’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자백 주문에 걸린다. 시간을,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흐, 흐흐흐흐…. 멍청한 교단놈들…. 너희들은 이제 끝이야, 끝이라고!”
그때,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거리던 도적, 제스커가 입을 열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피투성이에 손톱과 발톱이 모조리 빠지고 온몸에 지져진 자국이 역력한 제스커는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대소했다.
“멍청한 교단놈들…. 이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아무런 구속하나 없이 이곳에 모셨구나! 이분이 바로 하룻밤 만에 마탑을 박살낸 그분, 붉은 뮤트 님이시다! 오오오! 선별자님! 여기까지 저를 구하러 오시다니! 이제 연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아, 그 마법사들을 때려죽인 힘을 발휘해서 이 위선자들을 모조리 찢어 죽여주십시오!”
제스커는 그렇게 말하며 기대와 복수의 열망에 가득 찬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예스! 고맙다, 제스커!’
나는 그런 제스커의 말에, 몹시 당황하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응수했다.
“아, 그, 그게….”
교수는 잠시 말을 우물거리다가, 제스커를 데려온 성기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팔을 내밀었다.
“저…. 성기사님? 죄송하지만 제 팔을 내려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로-하람의 앞에 증명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세게, 하지만 팔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휘둘러 주시면 되겠습니다.”
성기사는 내 이상한 요청에 잠시 당황한 듯하였다.
“…..주교님?”
“그리하세요. 증명에 필요하다고 하니.”
하지만 고민도 잠시, 여주교의 허락이 떨어지자 성기사는 내가 부탁한 대로, 적당한 속도로 건틀릿을 낀 팔을 휘둘렀다.
퍽!
우드득!
가볍게 휘둘러지는 팔. 그리고 예상했던 데로, 고통과 함께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는 나의 팔. 저런 갑옷 입은 기사가 휘두르는 건틀렛은 금속 몽둥이나 다름없다. 내 몸이 어느 정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됐다고 해도, 아직 그 정도 충격을 견딜 정도는 아니거든?
“팔라딘 아슈웰!”
“아, 아닙니다, 주교님! 분명 그리 세게 휘두르지는 않았는데···.”
교수는 부러져서 덜렁거리는 팔을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이게, 제가 저 도적들 앞에서 그런 참담한 거짓말을 해야 했던 이유입니다. 제 몸은 이토록 허약합니다. 비록 괴물의 피가 섞여 회복이 빠르긴 하지만, 강해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이토록 쉽게 부러지고, 상처 입지요. 그래서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내가 교단의 선별자다, 너의 적이 아니다, 라고.”
현대 언론 상식 두 번째. 변명에 틈이 있다면, 자극적인 사건을 만들어 눈을 돌리고 후다닥 넘겨라. 대충 맞아떨어지긴 했지만 빈틈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변명이었지만-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분은 분명 구원 교단의 선별자가….!”
“아슈웰, 죄인을 다시 감옥으로.”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선별자님! 선별자니이이임!!!!”
눈앞에서 또각! 하고 팔이 부러지는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저쪽에서 더 의심하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 이미 붉은 뮤트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으니, 제스커를 이용한 심문은 여주교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약한 사람이 붉은 뮤트일 리는 없으니 내 결백이 더 확고해졌지만.
‘제스커라는 도적이 내가 놈들 앞에서 난리 피운 얘기를 했으면 그냥은 못 넘어갔겠지. 그래서 빨리 넘기려고 일부러 더 눈에 띄는 쇼를 했던 거고.’
아무튼 자백 주문과 제스커의 증언, 그리고 약간의 쇼를 곁들인 덕분에 나는 절대 붉은 뮤트와 동일 인물이 아니며, 몸은 괴물이지만 여왕의 명령에 따르지도 않는 결백한 사람임이 증명됐다. 좋았어! 완벽해! 사실 자백 주문 없이 말로만 밀어붙였으면 끝까지 의심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되면 저쪽에서도 믿을 수 밖에 없거든!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엘 세나디스는, 교수를 향해 돌연 부드러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거군요. 당신은 그 수많은 고난을 뚫고, 끝내 인간의 의지를 놓지 않는 데 성공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신자였는데.”
‘인정했다! 나에 대한 이미지가 죽일 놈에서 무려[신자]로 바뀌었어!’
하지만 그런 언행과는 달리, 세나디스의 이어지는 행동은 더욱 교수의 명줄을 앞당기고 있었다.
“…..팔라딘 드란티스, 앞으로.”
그녀의 말에, 뒤에 시립 해있던 성기사들중 유난히 덩치가 큰 성기사가 주변을 둘러싼 사제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교수, 당신의 신실함은 로-하람의 이름 앞에 증명되었습니다. 허나, 주께서 위협을 예고하신 것도 분명한 사실, 비록 당신이 여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그 목소리가 들리는 한 언제고 다시 그들의 편으로 돌아서 우리 인류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첩자가 될 수도 있으니. 당신이 진정으로 악을 배척하고 인류를 위한다면, 여기서 순교해 주셔야겠습니다.”
스릉-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기사가 등 뒤에서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뽑아들었다. 세인트 메탈을 벼려 만든 거대한 십자검. 메이스나 둔기로 때려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칼에 목을 베는 것으로, 내 죽음을 존중해주겠다는 뜻이다.
‘마지막 고비다. 신탁. 저들의 신앙에 따라 신탁은 무조건 진실이야. 해석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교인들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잘못된 해석이라도 따라서 이루어져야 하지.’
성기사의 대검이 교수의 목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떨어져 내리기 직전, 교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토브룬에 스며든 악(惡!) 그건 제가 아니라 구원 교단을 뜻하는 것입니다! 저는 비록 여왕의 뜻을 따르고 있지 않지만 놈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저는 살아있으면 분명히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탁의 내용을 들었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 비수가 박힌 도시는 분명 토브룬을 뜻하는 것. 적어도 교단의 생각처럼 그 악은 내가 아니니, 다른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뜻인데….
‘광명 교단 놈들은 구원교단이 그냥 수많은 이단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게 제대로 된 해석이지! 로-하람! 이거 듣고 있으면 나 진짜 살려줘야 된다! 너희 애들이 헛발질 하는 거 내가 다 커버해주는 거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거대한 성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교수의 눈에, 손을 들어 성기사의 행동을 멈추는 주교가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 미약하게 떠오른 감정은, 분명 흥분과 기대였다. 생각치도 못한 훌륭한 도구를 얻었다는, 그런 종류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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