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75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10)
***
푸쉬이익-
덜컹.
“으어어어…..”
가끔 커뮤니티 훑어보다 보면 ‘게임 방송하는 놈들 요즘 세상에 그렇게 편하게 돈 버는 일이 어디 있냐.’ 같은 소리가 가끔 보이는데, 그거 안 해본 놈들이나 하는 소리야. 진짜 위험한 동네 아니면 대구경 탄환 쓰는 총 아무거나 들고 나가면 산책하듯이 돌아다닐 수 있다고. 현실의 변종들은 뮤트처럼 감염될 위험도 없잖아.
“어? 햅번? 일찍 나왔네?”
“밥 먹으러 왔냐? 마침 잘됐네. 같이 먹자.”
접속기에서 나와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뭘 하고 있었는지 땀이 흥건해서는 거실에 앉아 쉬고 있던 벡스와 이안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감압실이 위이잉-거리면서 돌아가고 있는 게 밖에서 일하다 온 모양이다.
“밥? 웬 밥?”
“점심 말이야. 접속기에 식사 기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와서 먹는 것만큼 충족되는 느낌은 없잖아.”
“아….점심. 지금이 그럼 정오밖에 안된 거구나.”
GG를 하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이거다. 시간 배율이 다르다는 것. 아침에 게임 시작해서, 아나야와 여관에서 같이 일어난 다음 헤어지고 내 발로 교단에 걸어 들어갔을 때까지가 대충 게임 시간으로 오후 2시쯤. 세나디스한테 재판받고 쑥덕거리다 새 동료들 찾아가서 얘기를 다 듣고 나오니 해가 저문 지 오래였다. 대충 아침 여섯 시부터 오후 여덟 시쯤이었다고 계산하면 14시간. 현실 : 게임 시간 비율이 1:5 니까 내가 그 개고생을 하는 동안 현실에서는 겨우 2.8시간, 2시간 48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햅번? 되게 피곤해 보이네?”
“으어어- 죽겠다. 몸은 쌩쌩한데,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해. 왜, 그런 거 있잖아. 밤에 자야 되는데, 새벽 다섯 시고 여섯 시고 잠은 안 들고 머리는 띵하고 한 그런 기분.”
“아, 그거. 나도 그거 잘 알지. 불면증 있어 봤으니까.”
“우라질. 밤에 잠이 안 오면 낮에 대충 산 거지. 나는 35년 평생 잠을 제대로 못 자본 적이 거의 없다.”
“너 어디 나가서 그딴 소리 하지마라. 황무지에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한테 총 맞기 싫으면.”
“크흐흐흐. 올 테면 오라고 해. 눈감고 숨 쉬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머저리들은 한 트럭을 대려와도 안 무서우니까.”
그래도 이 녀석들이랑 이렇게 실없는 소리를 좀 하고 있으니 머리 아픈 게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피곤하면 자면 되는 거지만, 이렇게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침대에 눕는 건 황무지 사람으로서 실격이잖아. 뭐라도 좀 하다 보면 좀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지면 바로 다시 들어가자고. 시간제한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교수는 약간 이물감이 생긴 엄지를 까딱거리며 생각했다. 엄지부터 약지까지. 새끼손가락 빼고 나머지 손가락이 전부 하이드쪽으로 넘어갔으니, 사실상 손 하나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다. 예전 같았으면 소리를 지르며 발광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협적인 상황인데, 전혀 위험하다거나 조급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이드 녀석이 너무 협조적으로 굴어서 그런가.
‘의도한거냐?’
[그으을쎄에에?]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숨죽여 웃는 녀석. 역시 음흉하기 짝이 없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컸는지.
[거울 보고 욕하는 거 재밌어?]‘꺼져, 하이드. 어딜 나처럼 선량한 사람이랑 비교를.’
그 말에 왼손이 꿈틀거리더니, 가운데 손가락이 비죽 올라왔다. 이렇게 녀석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내 상태가 확실히 위험하다는 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조급할 필요는 없지만, 여유로워지지도 말자고. 팔 하나 정도 넘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말 하이드 녀석과 협상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고. 키득키득]교수는 하이드의 의미심장한 말을 무시하며, 어느새 코듀로가 테이블 위에 놓아둔 따끈따끈한 칼로리 바에 손을 뻗었다. 달달하면서 살짝 섬유질이 씹히는 맛. 오늘은 고구마랑…. 당근이 메인인가? 신경 좀 썼는데?
보아하니 벡스는 나름 입맛에 맞는 모양인데, 이안은 딱 봐도 칼로리 바가 입맛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한 입에 털어 넣고 꾸역꾸역 씹고있는데, 턱이 위 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표정이 한층 더 구겨졌다.
“빌어먹을. 난 못 먹겠다 이거.”
“왜? 맛있는데 난? 이거?”
“뱉기만 해봐. 감히 그 칼로리 바를 만드는데 들어간 재료를 직접 키워온 이 몸 앞에서 맛이 없니 어쩌니 하다니. 씹어. 그리고 삼켜.”
“그러니까요. 주인님과 제가 애지중지 키워온 작물들을 폄하하다니. 새 주인님은 농부의 노고에 대한 직접적인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파지직- 파직!
“끄윽- 교수, 아무리 생각해도 너네 AI좀 이상한 것 같아.”
소형 용접기를 꺼내 스파크를 튀기는 코듀로의 드론과 눈짓으로 이안과 비료통을 번갈아 가리키는 교수의 협박에 결국 이안은 그의 몫으로 제공된 칼로리 바를 다 먹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으으으. 하루 중 제일 중요한 점심을 풀만 처먹다니. 토끼 같은 새끼들.”
“그러는 너는 그동안 뭐 먹고 살았는데?”
“나? 렙터 전투식량이나, 장사하러 가서 노획한 거로 먹고살았지. 감자 정도는 나도 먹으니까.”
“[장사] 하러가서 [노획]이라…. 그걸 자연스럽게 말하는 시점부터 이미 에러 아니냐.”
꿀꺽, 꿀꺽,
캬아아.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이제 돈 많은데. 고기사다 먹이면 되지 뭐.
“코듀로, 물 두 잔만 더 주라.”
“넵!”
그래도 배도 채우고, 입가심으로 물도 좀 마시고 하니 바짝 곤두서있던 신경이 좀 가라앉으며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실쪽에 평소에는 없던 그늘이 좀 져 있는 게, 이 녀석들이 밖에서 뭘 하다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쉘터 부품이 벌써 왔어?”
“음? 아, 저거? 맞아. 너 일하러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달이 왔거든. 여기서 이렇게 떠들썩하게 지내는 것도 재밌지만, 아무래도 우리 셋이 살기에는 좀 좁은 감이 있으니까. 너네 집 소파, 내가 자기에는 좀 작아. 허리가 아파서 못 자겠더라고.”
“아직 세운 건 아니고, 벽만 하나 대충 세워놓고 어디 지을지 위치 좀 잡고 있었어. 햅번, 저쯤에 지으면 되겠지?”
“어어…. 글쎄. 계산을 좀 해봐야겠는데. 방어용 터렛의 능동 방어 범위도 계산해야되고.”
“당연히 우리쪽에도 터렛 하나 사서 박을 건데?”
“그러니까 그 터렛 방어 범위가 겹치면 손해잖아. 아예 제대로 킬존을 만드는게 아니면 범위를 넓히는 쪽이 당연히 이득이지.”
그렇게 쉘터 위치 가지고 실랑이가 또 한 시간. 혼자 살 때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누구 하나 잡아 죽이려는 것처럼 시간이 안 갔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는 걸 보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의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음. 의지하는 김에 한 번 물어볼까?’
“벡스.”
“응? 왜?”
“너 3공 출신이라고 했지.”
“그렇지? 3 공수부대 출신.”
“이안, 너도 보나 마나 군인 출신일 거고.”
“아, 내가 얘기 안 했나? 난 용병이었어. 전쟁의 시발점이 북한이었으니, 가장 격전지인 한국으로 오게 된 거고. 왜, 얘기해줘?”
“음…. 다음에. 지금은 남의 사정까지 머릿속에 담기에는 내가 너무 복잡해서 말이야. 아무튼, 다들 군 경험이 있으니 부대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군. 전쟁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으면 못해도 소대장 정도는 달았을 거 아니야.”
“음음. 그렇지. 나만해도-”
“난 연대장급 까지는 해봤는데. 전쟁 때 한 건 아니지만.”
.
.
.
.
왓? 연대장? 저 폭탄마 턱돌이가?
“에엑?”
“이, 이안. 너 별이었어? 아니, 연대장이면 별은 아닌가?”
“크흐흐흐, 어때, 이제 이 몸이 좀 달라 보이냐? 이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쏘가리 자식들아. 뭐하냐, 경례 안 하고?”
“하, 하지마라 지랄! 나이 빨이다!”
“그, 그래! 원래 대전쟁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윗선이 갈려 나갔으니까! 자리 채울 사람이 없어서 집어넣은 거겠지! 그리고 난 특작대라 그런 계급같은거 안 중요했어!”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멋들어진 군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있는 이안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검은 선글라스에 시가를 한 대 입에 물고는 ‘크흐흐흐’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크고 빨간 버튼을 누르는 이안. 제기랄. 너무 잘 어울리잖아. 그러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아무튼 잘됐다. 연대장이면 나보다 훨씬 잘 알겠네.
“좋아. 그럼 나 좀 도와주라.”
“음? 갑자기 뭘?”
“게임 얘기야 게임. 내가 저 게임 안에서 일종의…. 특수부대를 운영하게 됐는데, 이게 좀 문제가 있어서 말이지.”
게임 이야기라는 것에 김빠진 얼굴을 했던 이안은, 특수부대라는 말에 다시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수부대라. 인원, 병종, 목표는?”
“아직 출발 안 했으니까 추가 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인원은 열 명 정도.”
“열 명 플러스 알파라···. 그럼 소대급이군. 목표는?”
“적 총 사령관 암살.”
.
.
.
.
“응?”
그래.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한 이안의 반응에, 교수는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충족되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 내가 하는 일의 고됨을 남들이 알아주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거든.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고. 게임이잖아, 게임. 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용사님들이란 말이지.”
“어어, 음….그래. 그렇지. 10명의 소대원이 전원 중대급 화력을 뿜어내는 초인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병종은 어떻게 되지?”
“전방에서 적들의 시선을 끌고 전선 구축이 가능한 보병 비스무리한 게 셋. 마법사, 그러니까 대규모 화력 투사가 가능한 포병이 여섯.”
보병 이라는 소리에 잔뜩 인상을 쓰고있던 이안은 나머지가 전부 포병이라는 말에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나쁘지 않은데? 전면전이면 몰라도, 요인 암살이라며. 앞에 보병 셋을 투입해서 요인의 이동을 유인한 다음, 관측지에서 대기하던 포병이 예측경로를 뒤집어놓으면 되잖아? 다른 건 몰라도 포병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나는 합격인데? 포병은 신이야! 전장의 신!”
이 자식. 구 한국 지역에서 뛰었다고 하더니 양놈 주제에 포방부 물이 들어서는. 그래, 나도 거기까진 생각해봤지.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포병이 쓸모있는 녀석들이긴 한데, 하자가 좀 있어.”
“하자? 뭔데, 숙련병이 아니야?”
“음…. 일단, 보급에 문제가 있어. 이놈들, 편식이 졸라 심해. 일단 이 자식들을 그 총사령관이 있는 곳까지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끌고가기가 힘들어.”
교수의 말에 이안은 피식 하고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에이, 난 또 뭐라고. 그거 굶기면 다 해결돼. 쫄쫄 굶고 행군한 다음 밥 줘봐라. 남기기는커녕 싹싹 핥아먹지.”
“아니야. 내가 눈앞에서 봤는데, 굶어 죽어도 지들 먹는 거 아니면 안 먹어. 무조건 생선, 아니면 해조류, 물에서 나오는 음식만 먹어.”
“….죽어도?”
“죽어도. 심지어 건조한 데서는 성능도 떨어짐.”
“그건 뭔 폐급이냐?”
그래. 마법사들이 포함된 침투작전을 구상하는 동안 나도 그 생각 했다고.
‘이 자식들을 데리고 적들이 점령한 도시 세 개를 지나가야 하는데, 매 끼니마다 날생선에 해조류를 챙겨줘야 하나?’
침투작전은 은밀함과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건빵 씹으면서 최속으로 뚫고 지나가도 모자랄 판에 밥때 됐다고 물가를 찾아가서 낚시나 하고 앉아있어야 한다? 근처에 물 없으면 굶어야겠네? 그럼 침투 경로도 제한되겠네?
마법사들과 함께 이동하게 되는 순간 아군의 행동에 온갖 제약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마법사는 이런 동적인 작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지.
“문제가 더 있음.”
“이미 글러 먹은 것 같은데 뭐가 더 있어?”
“응. 그 포병(마법사)중 한 명이 우리 적측 지휘관임. 흑마법사.”
“어…. 지휘관이라고 하면…. 전향한 건가? 아니면 포로로 잡혀와서 강제로 편성됐다던가?”
어디 보자. 기본적으로 광명 교단에 잡힌 흑마법사면 문답 무용으로 교수형인데, 죽이는 게 아니라 개도하려고 한 것을 보니 죄를 지은 녀석 같지는 않고. 그냥 흑마법사라서 잡혀 온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흑마법을 혼자 배웠을 리는 없잖아? 뮤테이션 블러드에 협력하는 쪽이랑 커넥션이 있으려나?
교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은 확인이 안 됐지만 아예 적군으로 잡혀 온 것은 아니야. 적측의 스파이일 가능성이 있는 거지.”
“위쪽에서 너한테도 정보를 안 줬다는 거구만. 그거는 그 포로에 대한 대우에서 추측할 수 있어. 막 그 포로 녀석 옆에 금은보화가 쌓여있고 옆구리에 미녀를 세 명은 끼고 앉아서 주지육림을 즐기고 있었어?”
“음….아니? 정신을 뜯어고친다고 강제로 옷을 벗기고 머리를 밀었다던데?”
“아이고 하느님 맙소사.”
이안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향한 포로를 영웅 취급해주면서 돈으로 파묻어주는 이유가 뭔데. 녀석이 확실히 이쪽에 속했다고 느끼게 해야 안심하고 협력할 거 아니야. 그런데 뭐? 옷을 벗기고 머리를 밀었어? 그런 취급을 당하면 눈까리가 뒤집혀서 당장에 배신하겠다. 야, 작전 시작하자마자 으슥한데로 가서 그놈 쏴버려. MIA 처리 해버리라고. 심지어 포병이라니. 그대로 두면 주둔지를 나불나불 불어댄 다음 화약고에 불 지르고 튄다.”
“으음…. 역시 흑마법사를 안고 가는 건 너무 위험한가….”
일단 보류. 들어가서 그 녀석과도 얘기를 좀 해봐야겠군.
“그럼 다음 문제.”
“또?”
“나머지는 그렇게 큰 거는 아니고. 소대원 대부분이 로드릭 출신인데, 여기 인종차별이 졸라 심한 나라거든. 그런데 소대원 중 두 명이 차별받는 인종이야.”
“아이고, 인종차별까지? 목숨 걸고 같이 적진으로 들어가서 서로 등을 맡겨야 하는 놈들이?”
“그리고 그 둘 중 하나는 지능이 조금 모자라. 열심히 배우고는 있는데, 복잡한 작전에는 투입하기 어려울거야.”
“씨부럴! 안 해, 안 한다고 해! 때려쳐! 민병대도 그것보단 다루기 쉽겠다!”
늑대인간 보르카와 노툼에 대한 얘기까지 나오자, 이안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작전이 아니라고! 그런 작전을 받아들이다니, 제정신이야? 당장 때려치운다고 해!”
“못하면 죽인대.”
“편제가 저 개판이 났는데 그걸 못하면 죽인다했다고?”
“어휴. 햅번, 고생이 많네.”
칙,치익-
후우우-
벡스가 교수의 등을 토닥이는 동안, 이안은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 진짜 고생이 많다.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한데, 나는 진짜 답이 없다고 본다. 차라리 소대원들 대리고 그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건 어때? 그쪽은 희망이 보이는데.”
“그래 맞아. 제갈량이 살아돌아와도 저 개판을 보면 당장 촛불 끄고 드러눕겠다고 할걸.”
“푸핫! 그게 뭐야 임마.”
‘결국 이렇다 할 방법은 안나왔지만, 확실히 속은 좀 풀리는군.’
교수는 실실 웃으며 남아있는 물을 입에 털어넣고 말했다.
“사실 명확한 방법 같은 걸 원하고 물어본 게 아니라, 그냥 울화통이 터져서 한번 얘기해본 거야. 이런 거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같이 까면 기분이 좀 나아지거든.”
“그래서, 나아졌냐?”
“아니,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지구 끝까지 좆같아졌는데.”
“크흐흐흐. 세상이 그렇지 뭐. 처음부터 다 계획 세우고 딱딱 들어맞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이 어디 있냐. 하면서 맞춰나가야지. 알아서 해봐. 내 경험상, 그런 거지 같은 상황도 네가 손대면 어떻게 풀릴 것 같으니까.”
“그래. 이렇게 땅만 파고 있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지.”
교수는 투덜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밥도 먹었고, 어느 정도 머리도 좀 맑아졌고.
“다시 들어가게?”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이제 엄지손가락도 넘어갔어. 내꺼 아님.”
“….그래. 열심히 해라. 우리도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볼테니까. 장사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그쪽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오늘은. 저거 쉘터 세우는 것 말고 어디 나가냐?”
“어. 47구역 한 바퀴 둘러보고 오게.”
“43에서 하던 것처럼 막 돌아다니면 안 된다! 내가 써준 거 가지고 있지?”
교수의 외침에, 이안은 주머니에서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게 쓰여 있는 수첩을 꺼내 들었다.
“걱정마셔. 10분에 한 번씩 꺼내 볼게.”
“아니, 너 말고 벡스 보고 가지고 있으라고 해. 벡스, 말 안 해도 알지? 잘 관리해.”
“뭔 내가 바보도 아니고 수첩하나 잃어버린다고….”
“아니, 수첩 말고. 행동을 뇌가 아니라 척추 언저리에서 대부분 컨트롤하는 메탈죠씨를 잘 관리하라는 소리였어.”
“…이 자식들이?”
“크히힛. 최선은 다해볼게. 최선은.”
교수는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벡스의 손을 꼭 잡아준 다음, 접속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거 휴식하는 시간도 정해야겠군. 최소한 아침에 시작하면 해가 질 때까지는 해야겠어. 그래야 바깥 시간이랑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는 빡쳐서 종료하는 것도 좀 자제해야지. 잊지 말자고. 시간 없다, 박교수.
[흐흐흐. 좀 천천히 살아도 된다니까 그러네.]‘닥치렴.’
푸쉬이익- 덜컹.
교수는 접속기 안에 누운 뒤, 눈을 감았다.
‘우선 제한사항부터 다 파악한다. 지도를 한 장 구해서 경로부터 따고, 적들의 정보는…. 달 그림자에 있으려나?’
시작하기에 앞서 한숨부터 나온다. 이놈의 게임 정말. 스트레스 받는 만큼 재미있기는 해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화아악!
익숙한 접속음과 함께, 교수의 의식이 다시 저편으로 날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