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76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11)
***
게임에 접속하고 눈을 뜨니, 로그아웃할 때 마지막으로 봤던 그 순간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노툼과 그 곁에 이야기를 들으러 모인 리드플로우 학파 마법사들과 늑대 수인. 그리고 탁자 밑의 그늘에서 그림자 같은걸 쪼물락 거리고 있는 흑마법사 노인.
[알았지? 가자마자 으슥한 데로 가서 그 새끼 쏴버려.]흑마법사하니, 밖에서 이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으음. 흑마법사. 흑마법사라···. 확인해볼 필요는 있겠는데. 만약 정말로 뮤트쪽 놈들과 연결고리가 있다면 정보가 줄줄 새어 나갈 테니까.’
교수는 책상 밑의 그림자 속에 웅크리고 있는 노인을 흘깃 보았다. 수계 마법사들은 대부분 평민 출신에, 오트만 마법사도 워낙 선한 사람이라 그런지 늑대인간 과 트롤을 상대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격의 없이 쉽게 다가가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직업도, 인종도, 잡혀온 이유도 다르잖아? 공감대가 형성될 구석이 없다고.
멀리서 보면 그 거리감이 한눈에 보였다. 저들끼리 뭉쳐있는 수계 마법사들 한 덩어리, 노툼과 보르카가 한 덩어리, 그리고 외따로 떨어져 있는 흑마법사가 한 덩어리. 이래서는 곤란하다. 같이 뭔가 일을 하려면 최소한 만나서 인사 정도는 할 정도로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으음.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친해지게 만드는데 딱 좋은게 있긴 한데. 근처에 교단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해야겠지?’
짝짝짝!
생각을 마친 교수는 박수를 쳐 사람들의 주의를 끈 다음 흑마법사가 숨어있는 테이블 앞에 의자를 끌어당겼다.
“자아, 주목! 다들 이쪽으로 모여주시겠습니까!”
.
.
.
.
부스럭, 부스럭.
어슬렁 어슬렁.
조금 주저하긴 하지만 대부분 두말없이 따라주는 모습. 이건 딱히 교수가 리더쉽이 있다거나 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사람들도 다 똑같이 잡혀 온 처지니까. 교단에서 별 말없이 가둬놓은 것 같은데, 아무 정보도 없이 갇혀있으니 불안하고 답답하겠지. 이럴 때 앞에서 나서서 뭔가 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무슨 소리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모이게 되어있거든.’
교수는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지금부터, 여기 있는 모든 인원에게 조금 충격을 줄 생각이다.
“그워-. 의자 다섯, 여섯 개. 노툼 앉는다.”
“응? 아, 아냐. 넌 그냥 바닥에 앉아도 돼.”
“그워.”
노툼이 그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데 한몫 했다. 같은 수계 마법사라고 교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리드플로우 학파 마법사들이 그 뒤를 따랐고, 어쩔 수 없이 늑대인간 보르카도 테이블에 앉았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여전히 테이블 밑에 알몸으로 숨어있던 흑마법사가 그런 경우였다.
“흥! 난 네놈의 말을 들을 이유가….”
“영감님은 됐습니다. 본인이 밝은데가 불편하다는데 뭐 어쩌겠어. 일부러 댁은 거기서 들으라고 여기 모은 거니까 그냥 거기 앉아계십쇼. 아참, 좀 가릴 거라도 드릴까?”
교수는 인벤토리를 뒤적여, 예전에 가방 대신 쓰던 커튼 보자기를 꺼냈다.
[item : 지저분한 만달리우스 백작가의 커튼 : 백작가의 커튼. 질기고 튼튼하다. 먼지와 피가 엉겨 붙어 매우 더럽다.]‘음,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씻어둘걸. 되레 화내는 거 아닌가 몰라?’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더러운 보자기를 내밀자,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노인은 화색이 되어 보자기를 낚아챈 다음 그대로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냄새가 심한 보자기를 뒤집어썼음에도 노인의 입에서는 불평 대신 만족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음. 한결 낫군. 고맙네 젊은이.”
“고마울 것까지야. 일단 나도 마법사라 그쪽이 어떤 상태인지 대충 감이 왔거든.”
하급 마법 물품이 썩어나는 토브룬이고, 그 교세만큼이나 돈이 많은 광명 교단이다. 해가 저문 지 몇 시간이나 지났지만 곳곳에 빈틈없이 박혀있는 마법등으로 인해 실내는 밝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엄청나게 밝은 환경. 본인 입으로 어둠의 마나가 어쩌고 하던 흑마법사,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
‘수계 마법사를 바싹 마른 사막 위에 던져놓으면 저것과 비슷한 반응을 하겠지. 마법사들은 해당 원소와 자신의 신체를 동일시 여기는 문화가 있으니까. 교단의 법복은 광명 교단의 성력이 약간 섞여 있어서 자체적으로 빛이 좀 나거든? 저 영감님도 버티다 못해 벗어던진 거지. 그리고 그나마 빛이 좀 덜한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 간 거고.
그런 면에서 질기고 두툼한 원단으로 만들어진 커튼은 그에게 최고의 도피처가 되어준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자기를 뒤집어쓴 흑마법사는, 의자에 앉는 대신 비어있던 의자 하나를 슥 밀어 빼는 것으로 참여 의사를 나타냈다.
좋아. 일단 전원 대화할 분위기는 만들어졌군.
다들 자리에 앉자, 교수는 반대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자자, 대충 다들 모였으니, 슬슬 설명을 시작해주도록 할까? 우선 통성명부터 시작하지. 내 이름은 교수다. 너희들과 똑같이 교단에 목줄 매여서 끌려온 처지고, 너희들과는 다르게 이 수감자 무리에 대한 지휘권을 인정받았지.”
교수는 그를 주시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지금까지 반존대를 섞어오던 말을 곧바로 놔버렸다. 다분히 의도적인 분위기 전환. 그가 말을 꺼내자마자, 호기심이 대부분이었던 분위기에 불편함이 스며드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우선 현실을 파악하게 해야지.’
밖에서부터 계속 생각해왔던 것. 병종의 불균형함이나, 보급 문제나, 전부 일단 이 사람들이 임무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너나 나나 다들 잡혀온 처지에 죽음의 위기를 직면하게 되면?
‘무조건 탈주지. 아니, 굳이 위기 상황까지 갈 필요도 없이 토브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지기만 해도 그동안 즐거웠다, 하면서 각자 갈 길 가게 될걸?’
목표 의식의 부제. 가장 큰 문제였고,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마음 같아선 한 명씩 붙들고 차근차근 설득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으니.’
“크흠! 지휘권이라니. 그렇다면 자네가…. 우리에게 명령이라도 내릴 거란 말인가?”
교수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오트만의 말에 긍정해주었다.
“그렇지. 정확히는, ‘교단에 대한 이적행위 의심분자’ 로 잡혀온 당신들의 행동을 평가해, 임무에 충실하지 않다 판단되면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처, 처분이라면….”
“우리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가는 것을 말하지. 지금 우리가 있는 밝고 산뜻한 지상의 숙소가 아니라, 뇌가 곤죽이 될 때까지 로-하람의 은총을 때려 박아주는 지하감옥 말이야.”
스아아악-
‘워메 썰렁한 거.’
다소 불편하던 분위기가, 이제는 아예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당연하지. 갑자기 듣도보도 못한 놈이 굴러들어와서는 ‘내 명령을 들어라, 싫으면 처형하겠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데 화기애애하면 그게 더 문제가 있는 거거든.
여기서부터는 정말 섬세하게 감정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 교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싸늘해진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상하다 생각 안 들어? 다른 건 몰라도 이단, 혹은 흑마법사와 관련된 것에는 사형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교단이 붉은 뮤트의 손아귀에 붙잡혔다가 멀쩡하게 살아나온 마법사와, 인간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늑대인간과 트롤과, 심지어 대놓고 어둠의 마나를 뿌려대는 흑마법사마저 살려서 가둬두기만 하다니. 말이 안 되잖아. 지금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당신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거 아니야. 얘들이 왜 이러지, 왜 내가 사지 멀쩡하게 여기서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지, 소문이랑 너무 다른데, 하고.”
교수의 말에, 한층 더 무거운 침묵이 장내를 휘감았다. 그들을 계속 불안하게 하고 있던 사실, ‘왜 일어나야 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라는 그들의 의문을 내가 날것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렸으니까.
자아, 의심과 불안이 마구 뒤섞어 한 상 잘 차려두었으니, 이제 현실이라는 이름의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여줄 일만 남았다.
달칵.
교수는 목에 걸고 있던 교단의 성물, [넬피아의 빛]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신성과 신비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신성한 빛이 속이 빈 타원형 장식물에서 환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교수는 그 광채에 압도당한 사람들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투란의 F급 용병이며, 리드플로우 학파의 1위계 마법사이며, 광명 교단의 이름으로 축복받은 용사, 교수다. 내 의지가 교단의 뜻과 다르지 않음을 이 성물이 증명하니, 교단의 임무에 순응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교단의 이름으로 처형할 권리가 있다, 이 말이다.”
좌중들 사이로 축축하고 음습한 절망과, 끈적한 분노가 번지는 것을 지켜보며 교수는 그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 살고 싶다면 내 말에 복종해야 할 거야, ‘이적행위 의심분자’ 친구들.”
***
전통과 신뢰를 자랑하는 만능 설득법, 당근과 채찍. 지금까지는 아주 모질게 채찍을 휘둘러 그들이 마주하게 된 현실을 까발리고, 공포와 협박을 이용하여 임무에 대한 강제성을 부여했다.
‘이쯤 했으니 채찍은 내려놓고, 슬슬 당근을 던져줘볼까?’
그렇게 교수가 잔뜩 얼어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부드럽게 다가가려던 순간,
“퉤! 더러운 휴먼 놈들. 불러 모아놓고 한다는 소리가, 죽고 싶지 않으면 복종해라, 이건가? 그래 좋다. 네놈의 말 대로 지금부터 명령에 불복종하고, 다소 반항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해 보이지. 어디 한번 그 잘난 입을 놀린 대로 나를 처형해보실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늑대인간, 보르카가 도전적인 어조로 말하며, 교수의 앞에 섰다.
‘음….. 당근은 잠시 집어넣어야 겠군.’
교수는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노려보는 늑대인간을 보며, 마음속으로 주섬주섬 집어넣었던 채찍을 슬그머니 다시 꺼내들었다.
***
“….보르카, 달룬.”
늑대인간은 교수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교수가 천천히, 위협적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사나운 웃음으로 교수의 부름에 답했다.
“내 설명이 부족했나?”
그런 교수의 차분한 말에, 보르카는 히죽 웃으며 도발적으로 답했다.
“아니, 들을 필요도 없었다. 오래된 숲의 영에 맹세코, 나는 휴먼족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다짐했으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보르카가 교수에게 달려들었다.
후우웅!
공격 시작과 동시에 끝을 보겠다는 듯 보르카의 오른손이 교수의 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가운데 손가락 마디가 튀어나오도록 올려 쥔 것이, 죽이지는 않아도 눈알 하나 정도 터지는 것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망설임 없는 기습 선제공격에, 흥분해서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히 내 움직임에 반응하듯 반쯤 늘어트린 왼손. 이거, 싸움에 엄청 익숙한 녀석이군.’
[도와줘?]‘도와주긴. 지켜보기나 해.’
[키득키득. 필요하면 말만 하라구. 저런 늑대인간쯤, 한 손가락으로도 이길 수 있으니까.]교수는 하이드의 속삭임을 무시하며, 야수처럼 달려드는 보르카의 주먹을 맞받아쳤다.
‘눈에 훤히 보이는 경로로 요란하게 달려드는 오른손은 미끼. 진짜 공격은 내가 방어하면 이어질 틈을 노릴, 저 날카로운 손톱이 번뜩이는 왼손이겠지.’
맨손 격투보다는 한 손 방패와 단검을 쓰는 투기장 대전사에 가까운 모습. 움직임이 물 흐르듯 부드러운 것으로 보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비슷한 방식의 싸움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정석적인 방법은 그만큼 쉽게 파훼할 수 있는 법이거든.’
콰악!
“윽, 이익!”
교수는 견제 삼아 그의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오른손의 팔뚝을, 그의 커다란 손아귀로 콱 틀어쥐었다.
“움직임도 좋고. 전투 센스도 훌륭하고, 숙련돼있군. 너, 싸움 좀 하는구나?”
“크윽, 놔라!”
보르카는 안간힘을 써도 그의 팔이 빠지지 않자, 왼손의 날카로운 손톱을 교수의 훤히 드러난 복부를 향해 번개처럼 찔러넣었다.
푸욱!
면도날 같은 손톱이 근육으로 뒤덮인 복부를 가르고, 손가락 끝까지 안으로 파고들었다.
뚝. 뚝.
“크르르륵, 방심했구나 인-그아아악!”
잠시 끝났다고 생각한 보르카는, 이내 자신의 팔을 쥐어짜듯 조여오는 교수의 손아귀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크아아악!”
“늑대인간 답지 않게 상당히 벨런스가 잡힌 전투방식을 고수하는군. 음, 좋아. 갈수록 마음에 들어. 훈련된 늑대인간이라니. 나를 놀라게 해준 보답으로 나도 좋은거 하나 가르쳐주지.”
우드드득-
“크아아악! 놔! 놔라!”
보르카는 바이스처럼 그의 팔뚝을 옥죄는 교수의 왼손을 뜯어내려 안간힘을 쓰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복부가, 그의 손에 의해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던 교수의 뱃가죽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아물고 있었다.
“괴, 괴물….!”
“그래, 괴물이 맞아. 네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녀석들이지. 그리고 괴물들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그런 정석적인 방식은-!”
콰앙!
한 손으로 보르카의 팔을 붙잡고 들어 올린 교수는, 그대로 보르카를 크게 휘둘러 땅에 내리꽂아 버렸다.
“보다 더 큰 힘을 만나면 덧없이 박살 나버리는 법이지.”
“끄으윽, 으으으어….”
“오, 튼튼한데? 기초가 아주 훌륭하구만. +1 점. 기교를 조금 더 갈고 닦으라고.”
교수는 단단한 석재 바닥을 산산조각 내며 기절한 보르카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
“아, 상쾌하다!”
오랜만에 몸을 써서 그런가. 묵은 체증이 확 날아가는 느낌이다.
“커어어억, 으으으….”
잠시 정신을 잃었던 보르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흔들며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교수는 환하게 웃음지었다.
“늑대인간! 역시 터프하군! 자아, 어때. 아직 전력을 다 한 거 아니지? 2차전 해볼래?”
“크으으, 그르르륵! 죽어도, 죽는한이 있어도 휴먼의 노예는 되지 않겠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는 보르카의 얼굴에 거친 털이 돋아나고, 입이 길쭉하게 자라나며 날카로운 이빨이 톱날처럼 그 입안을 가득 채웠다.
“우우-우우우우!!!!”
어느덧 교수와 비슷해진 신장에, 한층 더 탄탄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 그리고 손끝에 자라난, 거의 식칼만한 크기의 면도날처럼 예리한 발톱.
[우와. 저게 손가락 안에 들어있었다고? 그냥 봐도 손가락보다 큰데?]‘손가락에서 튀어나온 게 아니라 변신 능력의 일부로 자라난 거야. 수납 안 될걸?’
챠각!
교수는 늑대인간의 참모습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댔으니 동네 사람 다 깨겠군. 광명 교단 사제들이 밤늦게까지 기도하는 건 알고 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기사들이 널 잡아 죽이겠다고 우르르 몰려들 거다.”
“크르르르, 상관….없다. 이미 잡힌 순간부터 죽은 거나 다름없었으니. 기왕 죽게 된다면, 휴먼 족의 희망이라 불리는 용사의 멱을 따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음. 말하는 걸 보니 진짜 목숨을 포기했나 본데.’
어떡하지. 얘가 여기서 좀 주춤 해줘야 파고들 틈이 나오는데.
“아아, 달리아, 투샨, 마르카….. 기다려라. 곧, 만나러갈테니….”
번뜩!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머리를 굴리던 교수의 귓가에, 보르카의 유언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달리아, 투샨, 마르카? 남부에서 쓰는 이름이잖아? 죽음을 앞두고 만나러 간다고?’
스팟-
파앙!
“우왓!”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보르카가 달려들었다. 좀전의 인간 형태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 가까스로 고개를 틀어 손톱을 피해낸 교수는, 면도날 같은 손톱에 잘려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우선 급한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마구 지껄였다.
“복수!”
촤아악!
대답 대신 손톱이 날아왔다.
‘제기랄! 복수 아냐? 그럼….’
“이, 일족의 숙원! 로드릭에 라이칸스로프의 성물이 있다거나….!”
“죽는 순간까지 입을 다물지 않는 것을 보니, 그 혀를 잘라야 입을 다물겠구나!”
촤악-
서걱!
‘으아악! 썅! 내 손! 어, 어떡하지? 그냥 팰까? 여기서 그냥 힘으로 조져버리면 얘랑은 영원히 바이바이일텐데! 으으으으…. 소대 유일의 멀쩡한 인원을 이대로 잃을수는…. 잃을수는….!’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어가며 보르카의 공격을 피해 나가던 교수의 머릿속에, 갑자기 오래된 클리셰가 번뜩였다.
“나, 납치!”
움찔!
교수가 비명처럼 내뱉은 단어에, 잠깐이지만 보르카의 공격이 멈췄다.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교수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당첨이다! 이거였어! 제기랄,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자기 영역에서 잘 살다가 갑자기 도시로 나온 아인종! 심지어 그렇게 나와서 도착한 곳이 인종차별의 메카인 로드릭이라면, 당연히 노예상인과 얽힌 스토리잖아!’
마침내 파고들 틈을 찾은 교수는, 악당처럼 웃으며 잠깐 흔들린 그의 마음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래, 납치로군. 일족의 아이, 혹은 가족이 노예상인 같은 놈들에게 납치된거야. 그들을 찾아 나왔나? 그렇게 도시를 전전하다 교단의 눈에 밉보인 것인가?”
“…..이미 늦어버렸다. 나는 실패했고, 이제 곧 그들의 곁으로 갈테니….”
“그럼, 정말 이렇게 포기할건가? 전부 놔버리고, 혼자만 홀가분하게 고향의 위대한 영의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럼 납치당해 노예로 살아갈 아이들은 앞으로 죽는 순간까지 노예로 남게 될 텐데?”
“크으으으…. 감히, 휴먼의 입으로 감히 그따위 말을 지껄이다니!!”
교수는 분노하다 못해 눈에서 샛노란 안광을 뿜어내는 늑대인간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그거야! 더 분노하고! 더 날뛰면서 떠올려! 네놈이 그대로 죽어버리면 납치당한 그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고! 너는 네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 이말이다! 보르카!’
꺼져가는 의지에 분노의 불꽃을 붙이고, 책임감의 목줄을 채워 포기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네 녀석이 도망을 가기는커녕, 제발 교단의 임무를 하게 해달라고 빌게 만들어주마!’
교수는 피부가 짜릿해질 정도의 분노와 함께 다가오는 보르카를 보며, 한층 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