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77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12)
***
보르카는 제 입으로 이미 늦었다고 말했지만,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자포자기한 사람치고는 처음에는 조용히 나가려고 했단 말이지? 처음, 그러니까 나한테 한 대 얻어맞기 전에는 변신도 안 하고, 적당히 제압만 하고 도망치려는 게 눈에 보였어. 분명히 이곳 주변을 어슬렁거릴 교단 사람들을 의식한 행동이다.’
단순히 살고 싶어서? 그랬다면 교단의 성기사들에게 잡힌 순간 지금처럼 날뛰었겠지. 소문대로라면 끌려가면 죽는 거니까. 하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교단 별채에 있었던 것을 보면 녀석이 저항하지 않고 끌려왔다는 뜻이다. 가족을 찾아 도시로 나온 늑대인간이, 늑대인간을 잡아들이는 교단 사람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지막으로, 교단의 지하 감옥을 확인하고 싶었던 거지? 네가 이렇게 잡혀왔으니, 혹여 도시로 끌려온 가족들이 너처럼 교단에 끌려온 것은 아닌가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목숨을 걸고 교단에 들어올 정도라니….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 아니면-”
“3년. 3년이다. 고향을 떠나 이 증오로 가득한 도시를 떠돌기를, 3년!”
보르카는 교수의 말을 끊으며, 그 용광로 같은 분노가 담긴 숨을 내뱉었다.
“선량한 상인들이라, 그리 믿었다. 마을 여자들에게 유리 세공품을 선물하고, 아이들에게는 간식을 나눠주는, 푸근한 미소가 어울리는 상인들이었지!”
슈팍!
보르카는 말을 하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가까스로 허리를 젖혀 피해낸 손톱은 단단한 화강암 벽을 매끈하게 베어낼 정도로 예리했다.
“오해였구나, 휴먼중에도 괜찮은 자가 있구나! 그리 여겼다! 그래서 그들을 환대하고! 마을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감사의 의미로 그들이 베푼 만찬에 독을 탄 것도 모르고 말이다!”
샤아악!
“치잇! 더럽게 빠르네! 그래서! 놈들이 동족을 죽이고 애들을 납치했다는 거 아냐!”
“너는 모른다! 그건 죽음이라는 짧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이다!”
파앙!
점점 더 빨라지는 공격. 교수는 방 한가운데 있는 굵은 건물기둥을 끼고, 보르카의 손톱이 기둥을 스치며 약간 느려진 틈을 타 다시 한번 그의 팔을 붙든 다음 재빨리 집어던졌다. 아까처럼 붙들고 내려찍기에는 잡힌 보르카의 팔에서 느껴지는 저항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이었던 그의 털은 어느새 은빛으로 물들어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나, 아니 영기(靈氣)인가? 이 자식, 변신하기 전이랑 완전히 딴판이잖아?’
교수에게 던져져 포탄처럼 날아가던 보르카는 그대로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사뿐하게 착지한 뒤, 늑대처럼 네발로 웅크리며 그대로 벽을 박차고 교수를 향해 뛰어들었다.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늑대와 같은, 하지만 그보다 수십배는 더 강맹하고 빠른 공격.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저걸 붙잡으려고 했다가는 양 팔이 통째로 썰려나가게 될 것이다.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오른팔에 온 힘을 집중했다.
“에이씨. 보는 눈도 있고 해서 좀 멋있게 이기려고 했는데.”
[그런 거 따질만한 수준이 아닌데? 갈수록 세지는 게, 그냥 두면 질 수도 있겠다. 그냥 맘 편하게 두들겨 패버려.]“누군 그러고 싶지 않겠냐. 여긴 뮤트의 피도 없고…. 흐으으읍!”
뚜두드득-!
순식간에 세 배가 넘게 부풀어 오른 팔이 크게 뒤로 젖혀지고, 투창처럼 바람을 가르며 달려든 보르카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교수의 목덜미를 향했다.
“휴먼! 너희를 증오한다!!!”
“에라 모르겠다! 맞고 죽지 마라 보르카!”
슈아악!
은빛 털을 휘날리며 보르카가 교수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기 직전, 장전된 탄환처럼 그를 대기하고 있던 거대한 오른팔이 휘둘러지며 가죽 부대 터지는 소리가 장렬하게 울렸다.
뻐어억!
.
.
.
찰나의 정적. 그리고,
쿠아아아아아아앙!!!!!
전력을 다한 교수의 라이트 훅에 정확히 얻어맞은 보르카는, 그대로 미사일처럼 건물의 벽을 뚫고 날아가 버렸다.
콰아앙!
콰앙!
쿠우웅.
쿠웅-
.
.
.
.
저 멀리 아직도 뭔가를 부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으며, 교수는 터져서 박살이 나버린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쩝. 죽었겠다.”
[파울. 위로 쳤어야지.]“일부러 옆으로 친 거야 임마. 홈런이었으면 교단 담넘어갔어.”
교수는 가늘게 눈을 뜨고 거의 한쪽 벽면이 통째로 날아간 교단 숙소 너머를 살폈다.
“아니, 살아있나? 저 멀리 작게 꿈틀거리는 게 보이는 것 같기도….”
– 남바쓰리 : 그거 사후경직입니다 형님.
– 스피드 웨건 : 갓 도축한 소고기도 잘라보면 막 펄떡거리잖음.
– 간장게이바 : 죽지 마라!(풀 파워)
– Jokass : 치는 순간 눈알 희번뜩 거리는거 봤냐? 이야, 저게 살인자의 눈인가, 싶더라.
– takealook : 상대의 원한을 끌어낼 대로 끌어낸 다음 쳐 죽여버린다. 일종의 성불 의식 같은 건가. 그래도 교단의 용사라고 나름 제의 치러준거라고 보면….
“아니, 진짜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나랑 이렇게 비비는 것만 봐도 보통 쓸만한 놈이 아닌데 죽으면 아깝잖아. 그냥…. 내 생각보다 내가 훨씬 셌던 것뿐이야.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우리 몸은 지금도 성장중이니까. 보르카랑 푸닥거리 안 했으면 오늘도 감염인자 막는다고 온몸의 근육이 끊어질때까지 운동했어야 하잖아. 리스크는 확실하지만, 그만큼 보상도 확실한 몸이지. 그보다 근처 교단 건물 몇 개는 더 부순 것 같은데, 휘말린 사람은 없을까?]“….뭐, 괜찮겠지. 요즘 시국이 시국이라 교단 사람들 죄다 새벽 기도 나갔을 거야. 괜찮을걸? 아마?”
그렇게 교수는 왼손으로 괜히 있지도 않은 어깨를 주무르며, 보르카를 찾기 위해 무너진 벽을 넘어 발걸음을 옮겼다.
덜덜덜, 덜덜덜덜!
“괴, 괴물이야…. 교단놈들이 우리를 괴물의 손에 팔아넘긴거였어….”
그리고 그런 교수의 모습, 한쪽 팔이 날아간 채로 실실 웃으며 혼잣말을 하는 교수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머지 결사대 동료들은, 그 엄청난 광경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
철컥! 철컥!
“정지! 신원을 밝혀라! 이곳은 지금 광명 성기사단의 통제하에….”
“아이고야. 하긴. 그 난리를 피웠는데 성기사들이 안 움직이면 직무유기지.”
결사대 숙소에 난 커다란 구멍에서 쭈욱 일직선으로 이어진 파괴의 흔적을 따라온 교수는 마침내 보르카를 찾을 수 있었다. 날아오던 자세 그래도 벽에 박혀있는 그의 주변으로 성기사들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둘러싸고 있었다.
[오, 안 죽었어.]“아니, 안 죽은 것뿐만 아니라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스르르륵- 투욱!
그 순간, 보르카의 변신이 풀리면서 몸이 줄어들어 벽에 끼어있던 그의 몸이 떨어졌다.
교수는 말리는 성기사들 사이로 파고들어, 떨어지는 보르카의 몸을 한 손으로 요령 있게 받아내었다.
“읏차!”
촤앙!
“멈춰라! 그 짐승은 신성한 교단의 영역 안에서 소란을 피웠으니, 그 죄를 엄중히 다스려야할-”
화아아악-!
성기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교수가 목에서 꺼낸 목걸이가, 어둑한 주변을 신성한 빛으로 환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나, 교단 용사.”
“아, 아니, 교단의 성물이, 왜, 그건….”
“결사대 내부 문제로 교육하던 중이었음. 뭐 문제라도?”
성기사는 뭔가 할 말이 잔뜩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눈앞에서 휘황한 광채를 뿜어내며 흔들리는 성물 앞에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로 하람의 종들이 기거하는 곳입니다. 자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만약 그 이단자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면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효과적인 방법을 많이 알고있습니다.”
“어, 그래. 수고하고.”
교수는 대충 성기사의 말을 무시하고 닭쫒던 개 꼴이 된 성기사들을 내버려 둔 채 보르카를 어깨에 들쳐메고 돌아섰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쿨럭! 크으으으….”
“이야. 진짜 깨어 있었네. 이거 나보다 튼튼한 거 아냐?”
성기사들 사이에서 나와 결사대 숙소로 향하는데, 어깨에 들쳐멘 보르카가 부르르 떨며 신음하더니 입을 열었다.
“….죽여라.”
“싫어. 너 나랑 같이 여왕 잡으러 갈 거야. 무조건 살아야 해.”
“퉤!”
교수의 말에 보르카는 다시 한번 신음하더니, 고개를 돌려 교수의 얼굴을 향해 피가 섞인 가래를 뱉었다.
“우쭐대지….마라. 비록 네놈들이 내 몸은 구속할 수 있을지언정, 내 영혼은….”
“쯧, 답답하고, 멍청한데다 더럽기까지 한 녀석이라니. -1점.”
교수의 말에, 어께에 걸쳐있던 보르카가 버럭 성을 냈다.
“크으윽- 네놈, 나를 모욕할 생각이라면…!”
“아니, 모욕이 아니라 팩트라고. 너, 3년 동안 납치당한 애들 못 찾았지? 아직도 찾으러 다니는 것을 보면 시체도 확인 못했을거 아니야? 그래서 교단에 잡혔을 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혹시나 교단에 있을까, 확인해보겠다고 잡혀 들어온거 아냐?”
한번 손을 섞어보니 추측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신전에 상주하는 고위 성기사도 아니고, 흩어져서 임무를 수행하는 일반 성기사들은 전력을 다하는 보르카를 상대할 수 없다. 녀석은 끌려오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잡혀 온 것이다. 혹시나 있을 마지막 희망을 기대하며.
보르카는, 침묵으로 그의 추측에 긍정하고 있었다.
“뻔하지 뭐. 숲에서 나온 늑대인간에, 휴먼 빼고는 죄다 짐승취급하는 로드릭이라. 3년 내내 쓰레기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면서 닳아버렸겠지. 희망이라는 건 원래 휘발성이라 계속 품고 있다 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말거든.”
아이들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고, 누구 하나 받아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에서 3년. 희망이 다 닳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 절망이 들어앉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멍청아. 로드릭에서 대수림까지, 그런 엄청난 거리의 장거리 밀매를 하는 놈들이라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찾을 수 있겠냐.”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다는거냐. 나는 내가 알고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필사적으로 찾았다. 그렇게 했는데 못 찾았으니, 숲으로 돌아가야 했다는거냐?”
“네가 ‘알고있는’ 방법이라….그게 잘못 됐다는 거야.”
저벅, 저벅.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잔디를 밟는 소리만이 오고 갔다.
교수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황무지의 깜깜하기만 밤하늘과 달리 보석을 뿌려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그런 풍경. 그래서 그런가, 쓸데없는 말이 섞여나왔다.
“네가 조금 더 인간 세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면 그 삼 년 동안 그들을 찾을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 어떤 경우에는, 무지도 죄가 될 수 있어.”
“궤변이다. 말은 쉽게하는-”
“내가 울 엄마를 그렇게 잃었거든.”
저벅, 저벅, 저벅.
어느새 결사단 숙소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온 교수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낮에 여기 주교랑 얘기를 좀 해봤어. 나름 조용히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광명 교단은 내가 어디서 뭘 했는지 다 알고 있더라고.”
“…..”
“교단의 신자들을 이용한 정보망이 있데. 이 로드릭은 물론, 온 세상에 없는 곳이 없다는 로-하람의 신자들로 이루어진 정보망이 말이야. 만약 네가 이렇게 짐승 취급 받는 게 아니라, 교단의 결사대로서, 절대로 저들이 무시할 수 없는 공을 세워 그들의 영웅이 된다면…. 그 정보망을 이용해 3년 전 대수림에서 늑대 수인을 잔뜩 데려온 상단에 대한 정보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그 정보를 가지고 있을수도 있고 말이야.”
저벅, 저벅, 뚜벅.
벽에 난 구멍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온 교수는, 보르카를 한쪽 구석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잘 생각해보라고. 수인족은 그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쉽게 죽지 않으니. 네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아직 희망은 있는 거야.”
교수는 아까부터 말이 없어진 보르카를 그대로 두고, 완전히 겁에 질려 테이블에 붙여놓은 것처럼 얼어있는 나머지 동료들을 향해 다가갔다.
“자, 조금 시끌벅적했지만, 저 친구의 의문은 어떻게 해결이 된 것 같은데. 혹시 또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 사람?”
당연하지만, 얼굴이 빵 반죽처럼 팅팅 불어서 구석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보르카를 보고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음, 좋아! 분위기가 아주 괜찮아졌어!’
[껍데기, 너는 정말 이게 괜찮은 분위기라고 생각해? 다들 네가 쳐다볼 때마다 방광이 저릿한 표정을 짓는데?]‘괜찮아, 괜찮아! 원래 리더는 어느 정도 무서운 구석이 있어야 하거든.’
사실 교수가 말하는 분위기는 단순히 지금 사람들 사이에 조성된 공포감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바탕 제대로 실력행사를 했으니까.’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은 강한 리더를 선호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명령을 한다면 최소한 그보다는 나은 사람이어야 따르는 데 불만이 안 생길 테니까. 왜, 유명한 말도 있잖아.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같은 거.
‘일단 적어도 전투력 면에서는 내가 이들에게 명령할 자격이 된다는 것은 충분히 어필이 된거지.’
교수가 노려볼 때마다 움찔거리며 슬슬 피하는 사람들을 보니, 조금 어필이 과하게 된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지만.
‘그거야 뭐 차차 해결해나가면 되는 거고.’
아무튼 보르카는 잘 구슬려놨으니, 이제 나머지 사람들을 설득할 차례다.
다행히 마법사들 쪽은 설득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오트만 영감님?”
“흐이이익! 따, 따르겠네! 무조건 따르겠어!”
“어, 일단 감사한데, 그래도 제 말을 좀….”
“으아아아! 따르겠습니다! 무조건! 무조건 따르겠으니 제발 목숨만은….!”
“아익, 진짜! 일단 들어보라니까!”
오히려 설득하는 시간보다 진정시키는 시간이 더 들었다.
“….그러니까, 리드 플로우 학파는 어차피 광명 교단에 찍혀서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제대로 활동을 하기가 힘들 거란 말입니다. 새로 마탑을 세울 돈도 없고. 시골은 오히려 교단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으니 그 지역 사제님이 불편하다, 한마디 하면 벌떼처럼 일어난 마을 주민들한테 쫓겨나게 될 거고. 기껏해야 연금술 길드 같은데 취직해서 정화수나 만들면서 살게 될 텐데, 마법사로서 그건 좀 그렇잖아요? 평생 물의 비의같은건 꿈도 못꾸게 될텐데?”
“으으음….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서 광명 교단 사람들에게 리드플로우 학파가 이단 취급받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이겁니다.”
“그렇군. 자네, 의외로 대단히 머리가 좋군? 하는 짓과 다르게….”
“예?”
“아,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 해서, 수계 마법사들도 자의적으로 합류.
“흑마법사님은, 말 안 해도 아시죠?”
“….어차피 나는 참여 안 하면 사형이겠지.”
“그것도 있지만, 중요한 건 교단의 명령에 따라 뮤트와,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흑마법사를 적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교단에 보여주는 겁니다. 광명교단 사람들은 흑마법사 하면 덮어놓고 증오하는데, 이렇게 저들과 노선을 달리하는 흑마법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흑마법사님 뿐만 아니라 그쪽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억울하게 탄압받는 흑마법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됐어. 더 말 안 해도 우리 처지야 자네보다 내가 더 잘 아니. 어차피 나는 교단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몸이야. 내 영혼 항아리를 그들이 가져갔거든.”
“아…. 그쪽이셨구나.”
월드 3의 주적 중 하나가 흑마법사인 만큼, 흑마법에 대해서는 커뮤니티에 제법 정보가 많이 퍼져있는 상태였다. 흑마법 지파마다 다르지만, 딱 봐도 중요해보이는 커다란 목걸이를 걸고있는 흑마법사는 무조건 그게 약점이다. 그게 깨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아마 이 흑마법사가 말하는 영혼 항아리가 그것으로 보였다.
“그럼, 임무에 최선을 다해주시겠네요?”
“어쩔 수 없으니. 그런데 아깐 반말하다가 이제는 왜 또 존댓말인가? 사람 헷갈리게.”
“필요할 때만 할 겁니다, 필요할 때만.”
명령할 때야 짧고 간결하게 해야 하니 말을 놓겠지만, 오트만이나 흑마법사같이 나이 지긋한 사람들한테 말 놓는 건 내가 그냥 불편하다고. 내 안의 유교 블러드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이 말이야.
아무튼 흑마법사도 임무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 확인됐고.
드디어, 이 개성 넘치는 동료들을 [교단의 임무 해결]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묶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짝짝짝!
다시 한번 박수를 쳐 주의를 끈 교수는 세상 행복한 사람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자아! 이제야 다들 진정한 의미로 동료가 됐네요. 그렇죠? 마음 같아선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지만, 이미 밤이 늦었기도 하고,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으니 우선 오늘은 자는 거로 합시다. 다들, 내일 보자구요!”
그렇게 말하며 교수는 재빨리 가장 구석에 있는 자리로 가 교단에서 준비해준 모포를 덮고 누웠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이렇게 억지로라도 정리해주지 않으면 다들 잠도 못 잘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일단 스타트라인에는 섰다는 점에서, 나름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교수는 잠이 들었다.
“으으, 으으으….”
“쉬잇! 소리내지마! 괴물이 깰거야!”
아쉽게도 그런 교수의 노력과 달리, 모포 밖으로 삐져나온 교수의 잘린 오른팔이 실시간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며 마법사들은 잠을 못 이루고 있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