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79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14)
***
다그닥, 다그닥.
덜컹. 덜컹.
“난리는 난리로구나.”
“으으음… 내가 알기론, 성하 마을이 이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우우. 죽은 인간 많다. 죽기 직전인 인간도 많다.”
“그야 그렇지. 방금 지나온 곳은 성하 마을이라기보단, 피난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판자촌이니까.”
토브룬의 성문에서 교수를 보고는 탈주범이라며 날뛰는 경비대를 상대하기를 잠시, 성물을 꺼내 보이며 오히려 역으로 말과 마차를 징발해버린 교수는 그대로 얼이 빠진 경비대를 뒤로하고 성문을 나섰다.
도시 밖으로 나오자마자 완전히 바뀌는 분위기.
성문 안쪽은 그래도 물 난리 때문에 좀 어수선한 것을 빼면 평소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성문 밖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돈이 많은 도시답게 치안 유지 병력의 숫자도 많고 질도 높으니까. 아예 피난민들의 출입을 금지해버렸군.’
교수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처럼 생각하는 뮤트가 마탑을 통째로 날려버렸으니까. 또 언제 어디서든 말하는 뮤트가 침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런 조치를 취한 것이겠지.
빠르고 정확한 조치. 군사적으로는 옳은 대처다.
덕분에 외부의 혼란이 토브룬 내부까지 번지는 것은 막았지만, 문제는 토브룬을 거쳐 수도로 가려던 사람들까지 전부 이곳에 머물게 된것.
그리하여 토브룬 인근에 지금 보는 것 처럼 빼곡하게 판자촌이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단 말인가?”
“도시 3개와 그 주변 마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거의 전부가 저거인 겁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거라고요.”
뮤트와의 전쟁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겪어온 일반적인 전쟁과 달랐다.
놈들의 목적은 지배가 아니고, 놈들의 군사적 목표에는 민간인의 사살 및 수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놈들에게는 더 많은 병력 생산을 위한 재료가 필요하니까.
그래서 뮤트는 도시를 점령하는게 아니라 그대로 쓸어버린 뒤 도시에서 뛰쳐나온 피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사냥, 그 결과 로드릭의 10%에 달하는 영토에서 쏟아져나온 난민이 겨우 도시 하나의 판자촌을 가득 채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참혹하구먼….”
“전쟁이잖습니까. 그렇게 남의 얘기처럼 할 것도 아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을 저렇게 몰아넣은 놈들을 만나러 갈꺼니까.”
교수는 토브룬의 영역을 나온 뒤, 보르카와 함께 마부석에 앉아 앞을 살피고 있었다. 근처에 말이 지나간 흔적이 제법 보이는 게 아직까지는 토브룬의 병력이 정찰하는 영역 안쪽이었지만, 머지않아 완전히 적들이 지배하고 있는 구역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나저나, 교수라고 했나? 내가 듣기로는 우리 목표가 뮤트 여왕을 암습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말에 마차까지 끌고 길로 다녀도 되는건가?”
“지금은 괜찮습니다. 사실 오트만의 말대로 도보로,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게 좋겠지만, 그렇게 했다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체력이 약한 마법사님들이 죄다 퍼져버릴 테니까요.”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나. 오트만 마법사 당신처럼 말이라도 탈 줄 알면 몰라.
오트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말도 탈 줄 몰라서 결국 일부러 경비대한테 몇 대 맞아준 다음에 교단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말과 마차를 빼앗아 왔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저들 전부를 여왕이 있는 영구동토의 땅으로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극한의 환경에서 버틸 체력도 안 되고, 2,3위계 정도는 거기까지 가면 큰 도움이 안될 테니까.
교수는 사실 거기까지 가는 것도 회의적이었다.
‘교단 놈들이 임무라고 던져줘 놓고 보내긴 했지만, 꼭 완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 결국 나도, 결사대 동료들도 필요한 것은 교단의 인정이니까.’
굳이 여왕의 목숨을 취하는 게 아니라도 교단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성과를 가져오면 우리 목표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죽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니까.
‘마침 용사라는 직업도 얻었겠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연호할 만한 위업을 쌓으면 교단에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겠지. 적진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직 확인할 수 없으니, 가면서 확인하고 계획을 세워보자고.’
그렇게 결사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한적하게 마차를 타고 여행하기를 한나절, 교수가 어포를 씹으며 몰려오는 잠을 쫓아내려 애쓰고 있던 도중, 소리 없이 옆으로 다가온 보르카가 교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대장, 멈춰야 할 것 같소.”
“으음? 뭔가 찾았나?”
“피 냄새요. 제법 신선한 것과 오래된 것이 섞인. 뭔가 있소.”
보르카의 말에 교수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아악!
졸음을 털어내자마자 느껴지는 [극복된 정신쇠약]이 끌어온 정보들. 고통이 없어진 건 좋은데, 이런 경우에는 좀 디메리트인 것 같기도 했다.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알람이 무음 진동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더 깊게, 방향성 없이 마구잡이로 찍힌 말발굽 자국. 기마 전투로군. 토브룬에서 나온 정찰대가 이 근처에서 적대적인 누군가와 만났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새소리나 풀벌레 소리도 뚝 끊어졌다. 그리고 피냄새라…..’
교수가 뒤쪽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려는 찰나, 갑자기 공기가 건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차 안을 돌아보자 오트만 마법사가 그의 제자들을 깨우며 조용히 손에 물을 모으고 있었다.
“근처에 썩은 물이 있네.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제법 오래 살면서 이것저것 많이 봐왔거든. 근처에 수맥이 없으니 고인 물이 썩은 것은 아닐 테고, 필시 짐승이나 사람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물일 터. 미리 준비한다고 문제 될 것은 없겠지.”
“….든든하네요, 오트만.”
5위계쯤 되면 저런 것도 가능한가 보다. 노툼도 콧김을 씩씩거리며 뿜어내는 게 말은 안 해도 감으로 뭔가 느낀 모양이고, 흑마법사는…..
“….”
“안 드릴겁니다.”
“내가 내 입으로 얘기는 안 했지만, 나도 충분히 강하다네. 나도 내 몸 지킬 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자네가 그것만 내게 준다면….”
“주면 도망갈 거잖아요.”
“으음….”
내 목에, 성물 옆에 걸린 작은 소켓이 달린 목걸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교단을 나서기 전, 세나디스가 내게 건네준 흑마법사의 영혼항아리였다.
—–
“자, 이게 있으면 저자를 다루기 쉬울 겁니다.”
“이걸 왜…. 교단에서 보관하고 있는 편이 안전한 거 아닙니까?”
“잘은 모르지만, 흑마법사는 이 영혼항아리라는 물건이 근처에 없으면 마력을 쓸 수 없는 모양이에요. 저 흑마법사를 전력으로서 활용하고 싶다면 이 물건을 잘 간수하는 게 좋을 거예요.”
—–
그렇게 해서 받게 된 흑마법사의 영혼 항아리.
소켓의 안쪽은 마법으로 봉인되어 확인할 수 없었지만, 겉 부분에 ‘넬’라고 서툴게 각인된 이름이 있었다.
“으음…. 흑마법사 양반?”
“…..”
“영감님?”
“…..”
짤랑짤랑-
“넬-”
파밧!
등을 돌리고 관심 없는 척 하던 흑마법사는, 교수가 그의 영혼 항아리를 꺼내 들자마자 몸을 획 돌려 손을 뻗었다. 물론 늙은 마법사의 손놀림이 교수보다 빠를 수는 없었으니 허사로 돌아갔지만.
“남의 물건을…. 함부로 살피지 마라!”
“진즉에 이름이라도 알려줬으면 됐잖아요. 넬?”
“그건 내 이름이 아니야! 내 이름은 알드리치다! 넬은 원래 그 물건의 주인이었다고!”
“오. 그런 사연이.”
뭐, 흑마법사치고 사연 없는 사람이 없겠느냐마는.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교수는 다시 영혼 항아리를 제 목에 걸어둔 다음, 알드리치에게 보여주듯 톡톡 두들겼다.
“저도 나름대로 다 알고 왔습니다. 물론 본인이 가지고 있을 때 만큼은 못 하지만, 근처에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요? 마법 시전하는거.”
“…..”
“이 임무가 끝날 때 까지만 도와주십쇼. 분명히, 설령 교단이 말을 바꾼다고 해도 제가 돌려드리겠습니다.”
“…..빌어먹을 교단 놈들.”
그 말을 끝으로, 흑마법사 알드리치의 주변으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 나름대로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
결사대 전원이 전투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교수는 천천히 마차를 앞으로 몰았다.
다각. 다각. 다각. 다각.
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점점 울창해지는 숲. 그 그늘 사이로, 이제는 교수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진하게 사위를 감싸는 혈향.
[당글테르에 어서오세요!]피로 얼룩진 표지판은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려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둥지. 있다. 저 앞에.”
“그래. 나도 보여. 목책이 보이는 것을 보니, 앞에 마을이 있나봐. 저 앞에 안내인도 있는 것 같고 말이야.”
비척, 비척-
저 멀리 보이는 목책 앞으로, 경비대의 옷을 입은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대장은 저게 안내인으로 보이시오?”
“마을 안내인이 별거 있나. 어떤 마을인지, 뭐가 볼만하고 어디서 쉴 수 있는지 알려주면 그게 안내인이지.”
“어어어, 그어어어어….”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남자는 뭔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경비대 옷을 입은 것 치고는 무장도 없었고, 눈에 초점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텅 빈 복부에 내장이 하나도 없었다.
“딱 보면 보이잖아. 흑마법사에게 점령당한 마을이고, 앞으로 보게 될 것은 저 남자와 같은 시체나 흑마법 피조물 뿐이고, 쉴만한 곳은 없다는 것. 좀비 정도면 훌륭한 안내인이지.”
콰드드득!
“수력구.”
순간 뒤에서 주문을 영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 머리통만 한 물 덩어리가 날아가더니, 일행 앞으로 다가오던 좀비의 머리가 순식간에 꺾이며 그 여력으로 날아가 나무둥치에 처박혔다.
뒤를 바라보자, 손을 뻗은 오트만과 헛구역질을 하는 수계 마법사들이 보였다.
“으으음. 혹시 살려둘 필요가 있다면 미안하군. 내 제자들은 토브룬을, 아니 마탑을 떠나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서 말이야. 비위가 약해서 견디기 힘들어보이길래….”
“아니, 잘하셨습니다. 좀비는 시력이 약한 편이니 이 정도 거리에서 처리했으면 아직 저쪽에서 우리를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속을 게워내게 되면 체력손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나저나 상당히 깔끔하게 날렸군.’오트만은 흐름, 변화, 반발, 정화, 유동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보통 수력구의 공격성능을 올릴 때는 ‘중압’의 깨달음을 섞어서 닿는 물체를 압착하는 식으로 한다고 들었는데, 이건….’
“반발? 밀어내서 날려버린 겁니까?”
“으음? 오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수계 마법사라고 했지! 맞네. 수력구 안으로 대상이 들어오면, 급격한 반발로 안에 들어온 부분만 강한 힘으로 밀어버리는 거지.”
“오호라. 그런 식으로 어레인지가 가능하군요.”
“사실 중압이 있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주문을 짜 올릴 필요도 없었겠지만…. 나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물에서 중압감 따위는 느낄 수가 없지 뭔가.”
갑자기 이어지는 마법사-토크에 급격히 밝아지는 오트만. 그런 그들을 보며, 보르카는 이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하는 얼굴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어…. 대장? 지금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인가? 저게 적의 하수인이라면, 우리를 눈치챘을수도 있다.”
“그래그래. 시야에 들기 전에 처치했으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좀비가 죽었다는 것은 느꼈겠지. 그 대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몇 마리 더 이쪽으로 보낼 거고. 우리한테는 나쁜 얘기가 아니야. 제일 위험한 마법사는 자기 연구실에 틀어박힌 마법사니까. 상대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소모해서 사용하는 흑마법사라고. 저쪽에서 나와준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그으으으-”
“으어어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목책 근처를 떠돌던 좀비 수십 마리를 비롯하여 구울 같은 강화형 언데드가 길을따라 달려들었고, 하늘에는 벤시같은 유령형 몬스터도 몇 마리 보였다.
쿠웅, 쿠웅-
지축을 울리는 소리를 보니, 대형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한 언데드도 있는 모양.
“….대장 눈에는 저게 몇 마리로 보이시오?”
“어, 음. 조심성이 많은 놈이군. 아니면, 이 정도 숫자를 움직이는데 아무런 소모가 없을 정도로 강한 놈이거나.”
교수는 마차에서 내려, 힘차게 팔을 휘돌리며 몸을 풀었다.
“어이, 보르카.”
“음? 뭐요?”
“변신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상대해줘 봐.”
“그건…. 또 무슨…..”
“뭐긴. 딱 간 보기 좋을 만큼의 적이잖아. 너는 대충 확인했는데, 나머지 파티원들이 얼마나 싸울 수 있는지 확인이 안 됐단 말이야?”
5위계인 오트만은 검증할 필요도 없지만, 흑마법사를 비롯한 나머지 수계 마법사들은 제대로 싸울 줄이나 아는지 의문인 상황.
“테스트를 한번 해보자고.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아군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은 적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교수는 점차 달려오기 시작하는 언데드무리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대충 상대하는 척 하면서 뒤쪽으로 넘겨주자고.”
“으으으음, 하는짓만 괴물인줄 알았는데 이미 사람의 마음도 잃어버린건가….”
“무슨소리. 나 처럼 선량하고 휴머니즘 넘치는 사람이 또 어디있다고.”
보르카의 깊은 신음과 함께, 고민할 틈도 없이 언데드들이 그들에게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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