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8
Chapter.1 오, 해피데이! (7)
***
그렇게 두 시간가량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절뚝거리며 걸었다.
잘 정리되지 않은 숲길은 돌부리나 나무뿌리가 많아서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저거에 걸려 넘어지면 팔이나 다리 한 짝이 더 부러질 텐데, 그때부턴 기어 다니는 수밖에 없거든.
가뜩이나 살살 걸어야 하는 몸인데 부상까지 입으니 짧은 거리를 가는데도 체력이 많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얼모드는 게임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애초에 게임의 본질은 즐기는 게 아닌가? 더워 죽겠는데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몸상태는 최악이고, 두통과 짜증은 갈수록 심해지는 게 다른 생각을 못 할 정도였으며, 이 상황의 어디에서도 ‘즐겁다’ 라는 단어와 일치하는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염병, 옛날 생각나네!”
7년 전. 3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아버지와 함께 징병당했을 때 첫 행군이 딱 이랬는데.
숲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한 다음, 나무 그루터기에 잠시 앉아 쉬면서 상태창이나 좀 정리하기로 했다.
“이름…. 내 이름은….. 그냥 교수로 하자.”
띠링-!
[정보 업데이트 / 이름 : 교수 / 성 : 불명]이름을 밝힘과 동시에 상태창에 ???로 표시되어있던 이름 부분에 교수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어디보자….. 쪼개진 부채모양 활엽수면 데플랜 나무 맞지? 월드 3에 이 나무 자라는 지역이 어디였더라?”
– 스피드 웨건 : 로드릭 북부 전역 / 아플랜 계곡 상층부 일부 / 블루 라인 서쪽 전부 다.
– Jokass : 거 발밑에 있는 거 월동초 아님? 블루 라인 서쪽은 용맥 때문에 월동초 같은 거 못 자람.
– 간장게이바 : 딱 봐도 고원은 아니니까 아플랜 계곡은 아니겠네.
“오케이, 땡큐. 일단 스타팅은 로드릭 북부네.”
띠링-!
[정보 업데이트 : 지역 / 로드릭 북부 /]GG는 11년이나 된 올드 게임이고, 솔로 플레이 게임이다. 플레이어의 작은 행동에도 급변하는 세계인지라 완벽한 공략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대충 어디에 가면 뭐가 있다, 어떤 이벤트가 벌어진다, 정도는 이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된 지 오래다.
나는 월드2 플레이어라 월드3에 대한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우리 시청자님들은 또 다르거든? 세미 고인물 수십 명이랑 같이 게임하는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지.
우선 시청자들의 힘을 빌려서 대략적인 지역 정보는 얻었고. 이 이상은 마을에서 지도라도 구해봐야 한다.
다음, 손에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수직으로 세우고, 해가 떠있는 방향과, 막대기의 그림자가 향한 방향을 계산했다.
“으음….. 얼추…. 17시 정도 됐나?”
띠링-!
[정보 업데이트 – 시간 : Pm 5시(추정)]“오, 이건 월드3에서도 먹히네?”
월드 2에서 시간 확인할때 자주 쓰던 방법인데, 다행히 월드 3에서도 먹히는 모양.
이러면 시간도 해결. 이런 간이 해시계로는 정확한 시간까지는 알 수 없다. 천문학 Lv.3 라도 있으면 또 모를까.
“휴우. 성벽은 아까부터 보였는데, 왜 이렇게 도착하기가 힘드냐. 얼추 거의다 온 것 같기는 한데…. 검은 독수리에 방패문양 깃발….. 로드릭 북부에있는 도시중에 저런 가문 인장을 쓰는 도시가….. 투란? 투란 맞나?”
– 스피드 웨건 : 정답. 애초에 있는 지역 근처에는 투란, 몰루딕 캐슬, 펠라스 밖에 없음.
“몰루딕….뭐? 이거 월드 2 이후로 70년 정도 지난 세계관 아냐? 내 기억에 투란, 펠라스는 기디온 옆에 위치한 도시였는데? 70년 만에 도시가 사라질 수도 있나?”
– Jokass : 이름이 바뀔수는 있지. 기디온은 사회주의 운동인가 뭔가 하다가 로드릭 3세한테 떡이되도록 밟히고 왕국령으로 격하당했거든. 원래 기디온이 있던 자리가 몰루딕 캐슬이야. 왕국령으로 바뀌면서 영주도 바뀌고 이름도 바뀌었지.
“아아, 그거. 내 그놈들 그럴줄 알았지. 월드 2에서부터 빨간 맛이 솔솔 난다 싶었다니까.”
뚜둑, 우득!
상태창을 보니 신기할 만큼 손목이 많이 나아있었다. 살짝 손목을 돌려보니 조금 이물감이 있지만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다.
‘최대 내구도가 낮으니, 회복해야할 절대량도 낮은 건가?’
일단 다행이군. 뭐만 하면 톡톡 부러지는 수수깡 바디가 회복마저 오래 걸린다면 활동할 수 있는 시간보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을테니까.
화악-!
지끈!
“아윽! 아오, 이거 진짜 돌겠네!”
몸의 문제는 그래도 두시간 정도 움직여보니 적응이 조금 됐다. 엄청나게 비싸고 얇은 옷을 입고 다닌다는 느낌으로 움직이면 되는거니까. 게임을 좀 하다보니 유리 몸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간게야….. 너, 나한테 뭔 폭탄을 심어놓은거냐?”
– 간장게이바 : ㅋㅋㅋㅋㅋ뭐긴 뭐야. 랭킹 2위가 한달동안 키운 캐릭터도 30분만에 캐삭하게 만드는 SSS급 특성이지!
교수는 채팅으로 웃어대는 놈의 말에 욱 하는 화를 씹어 삼키듯 목구멍으로 넘겼다. 참자, 참아야 한다. 안 참으면 더 심해진다….
지끈!
“썅!”
폭탄의 정체는, 마지막에 간장게이바가 추가한 특성, 정신쇠약이었다.
[ 정신쇠약 ] : 겁이 많은 당신은 항상 주변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당신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이 부정적으로 느껴져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모른다.예민함 +1, 위기 감지 +1, 집중력 -3
두 시간가량 몸으로 직접 겪었더니 스킬 설명이 좀 늘었다. 뒤에 붙은 설명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거니까 그렇다 치고….. 스텟이 붙었네?
‘그냥 정보 업데이트면 몰라도 스텟까지 표기될 정도로 스킬 설명이 정확해졌다는 건….. 해당 특성의 효과를 받고 있다는 소리야. 뭐, 정신쇠약이니까 생각을 많이 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그렇다 치고, 예민함? 위기 감지? 이건 왜 표시된 거지?’
GG의 상태창은 내가 알고있는, 또는 겪은 사실만 표시해준다. 반대로 말하면, 상태창에 표시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내가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소리. 그런데 예민함과 위기 감지가 동시에 떴다?
오싹-!
등골이 서늘해졌다. 머리를 찌르는 두통은 이제 단순히 아픈 것을 떠나서 특정한 방향에서 송곳으로 안을 후벼파는 것처럼…..
‘뒤!’
파박!
콰지직!
순간 머릿속으로 파고든 위기감에 생각보다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불편한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몸을 던짐과 동시에, 내가 앉아 있던 그루터기가 뭔가에 맞아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내 키만한 바위가 떨어져 있었다.
쿵! 쿵!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육중한 발소리.
“사람…. 작은 사람…. 작은? 큰? 아니, 큰 건 노툼. 작은 건 사람. 어어…. 작은 큰 사람?”
3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키에 어눌한 말투. 나를 깔아뭉갤뻔한 바위의 주인은 평원 트롤이었다.
‘제기랄, 다리가 멀쩡해도 도망칠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인데….’
평원트롤은 살과 근육이 덕지덕지 붙은 다른 트롤종에 비해 좀 마른 편이다. 그만큼 근력은 떨어지지만 뛰는 속도가 배는 빠른 편. 지금 내 상태로는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
– 하이웨이나초맨 : 초장부터 확실하네.
– 간장게이바 : 이게 게드로이츠 겜성이지.
그러고보니 내 기억속 로드릭 북부는 대부분 평원으로 이루어져 대규모 회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런 로드릭 북부에서 작게나마 숲이 있던 곳 이라면…..
‘퀘스트 지역! 제기랄! 시작하자마자 떨어진 자리가 수렵 퀘스트 지역이라니!’
아마 도시 근처니까 [통행을 방해하는 트롤을 잡아라] 같은 느낌의 경비대 퀘스트지역이 아닐까?
“윽! 젠장, 진짜 물풍선도 아니고 뭔놈의 피가 어디 닿았다 하면 줄줄 새냐….”
옷이 축축해서 보니 또 피가 흥건하게 배어있었다. 아마 방금 피할 때 앞으로 엎어지면서 어딘가 다친 모양.
“크르르륵….그륵…..! 스으읍! 그우우….노툼…. 못참는다….”
뚝, 뚝,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피 냄새를 맡은 트롤이 흥분했는지 눈이 시뻘겋게 변하며 침을 뚝뚝 흘리는 게 보였다.
‘답이없네. 끝이다!’
교수는 최후를 예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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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아무리 기다려도, 예상하고 있던 끔찍한 고통은 찾아오지 않자, 교수는 조심스럽게 감았던 눈을 떠 보았다.
“흥흥흥! 크흥”
“우아아악!”
언제 다가왔는지 놈의 커다란 얼굴이 내 눈앞에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저 거구로 움직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한 움직임.
“크후, 노툼. 배고프다. 배고파. 너무너무 배고프다.”
‘그건 그냥 봐도 알아 임마!’
시뻘겋게 충혈된 눈. 끊임없이 벌름거리며 피 냄새를 맡는 코. 그와 동시에 폭포수처럼 침을 흘려대는 입.
한눈에 봐도 눈앞의 이 노툼이라는 트롤은 매우, 매우 식욕이 동해있었다. 놀라운 점은, 그 상태에서 피를 흘리는 부상당한 인간을 눈앞에 두고도, 아직 손도 안 댔다는 것. 뭔가 있다. 뭔가…. 내가 아직 살아날 구석이 있어!
그게 뭔지는 몰라도, 아마 이 트롤이 지금 하는 말과 관련이 있을 터.
교수는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보기로 했다.
“배…. 배고파?”
“그우우. 배고프다. 인간. 늦었다. 하나, 둘, 셋, 넷 늦었다.”
‘확실해. 대화가 된다. 이 녀석, 지능이 높은 편이야!’
트롤은 몬스터이면서 아인종으로 분류되는 특이한 종이다. 대부분의 경우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아 몬스터취급 받지만, 남부 대수림 근처에 가면 자기들 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인간과 교역을 하는 트롤 부족도 있다고 한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그냥 똑똑한 게 아니라, 트롤치고는 말도 안 되게 똑똑하잖아? 사람 말을 하다니!’
죽는다는 생각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트롤은 원래 사람 말을 못 한다. 기껏해야 우워억-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두어마디 지껄이는게 고작인 정도.
그런데 이 녀석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고, 저렇게 충혈이 될 정도로 굶주렸으면서도 나를 잡아먹지 않고 참고 있으며, 심지어 노툼이라는 이름도 있다. 이 트롤이 사람의 손을 탄 적이 있고,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교육을 받은 적도 있다는 뜻이다.
“어어… 그허어, 모, 못 참는다. 인간, 작은 큰 인간!”
“어…어?”
“말해줘라. 너, 쇠인간이 보낸 사람?”
“응?”
“아니라고 해라. 노툼, 배고프다. 못 참는다. 아니? 아니 맞나?”
본능이 한계에 달했는지 노툼의 손이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뭐라도 말해서 녀석을 멈춰야 한다. 정말 죽기 직전이라는 생각이 들자, 생존 본능이 뇌를 마구 휘저으며 생각이 얽히기 시작했다.
‘생각해라…. 생각해! 트롤에게 번식욕 보다 강한 것이 식욕이야. 노툼은 그런 식욕마자 참아가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 누구지? 쇠인간. 나를 작은 큰 인간이라고 불렀으니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지는 못해. 외형이나 구분하는 정도. 쇠인간. 갑옷을 입은 인간. 기사? 기사를 만났어? 기사를 만났는데 살아남았다? 그쪽에서 풀어서 키우는 놈이라고 보는게 맞겠지. 하나, 둘, 셋, 넷 늦었다. 이건 4일을 기다렸다는 소리군. 배가 고픈데 기다렸다. 이건 기다리면 배를 채울 수 있다는걸 알고있었다는거야.
결론. 기사들이 노툼에게 주기적으로 먹이를 제공했고, 4일전 그 공급이 끊긴 노툼은 자신의 영역으로 사람이 들어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먹이를 기대하며.
“자, 잠까아아안!!!”
“그우?”
“쇠, 쇠인간! 쇠인간이 보내서 왔다아아아!!!”
그렇다면 여기서 살기위해 해야할 행동은 하나. 노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예의 그 ‘쇠인간’ 이 보낸 사람인척 한다!
“우, 그우우, 어으으으….”
뗏국물과 머릿기름으로 범벅이된 커다란 손이, 천천히 물러간다. 시큼한 악취가 멀어지며 맑은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게 순간 ‘살았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절로 들었다.
‘쇠인간이 아니라고 해라, 라고 말한건 더 이상 못참겠으니 기사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겠지. 식인 습관을 못버렸어. 완전히 사람손에 길러진 놈이 아니야.’
쿠웅!
노툼은 잠시 갈등하는 듯 하더니,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대단히 언짢고 불만족스러운 표정. 하지만 저건 잡아먹을 의사가 없다는 분명한 표현이다.
내가 ‘쇠인간’이 보낸 사람이라고 완전히 믿었는지, 자리에 앉은 노툼은 화를내며 말했다.
“노툼, 약속했다. 여기, 산다. 사람, 안먹는다. 쇠인간 찾아오면 주는 말, 먹는다.”
“그, 그랬…..나?”
쿠웅!
“그랬다! 후욱! 그런데! 노툼 배, 비었다! 말 하나, 둘, 셋, 넷, 뱃속에 못넣었다!”
역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쇠인간’ 이라는 기사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군.
생각보다 사이즈가 좀 되는 퀘스트의 일부분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는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해서 도착해야하는 퀘스트 지역의 한가운데 뚝 떨어진거고. GG는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세계가 구축되는게 아니라 완성된 세계에 플레이어가 떨어지는 것에 가깝다. 그 말은 퀘스트를 받건, 안받건 우연찮게 사건의 중심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 내게 벌어진 일이 바로 그거고. 썅.
처억!
말을 마친 노툼은, 당당한 기세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말! 줘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뗏국물이 줄줄 흐르는 노툼의 근육질 팔뚝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자, 여기서 말을 잘해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 밀린 식사를 기대하는 배고픈 트롤 앞에서 살아나갈 수 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