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80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15)
***
대충 상대하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손 놓고 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괜히 실력 테스트한다고 설치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멍청한 짓이지.`
좀비나 구울 같은 놈들은 자체적으로 시독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 살짝 긁힌 상처만 입어도 쉽게 덧나며 질병을 유발하기 일쑤였다.
“적당히 상대하라니, 진짜 그냥 다 흘려보내라는 말이오?”
“음…. 보르카, 당신 용병이나 투기장에서 활동한 적 있지?”
보르카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대놓고 그쪽에서 배운 티를 내는데 그걸 모를리가. 나도 전사 캐릭터 플레이할때 돈 떨어지면 투기장을 많이 가다 보니 움직임이 눈에 익었다.
아무튼 그쪽에서 활동했다면 설명하기가 쉬웠다.
“우리 쪽이 방패, 마법사들이 그물!”
“….투기장에서 활동하셨소?”
“전생에!”
교수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하는 보르카였지만,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방패와 그물. 투기장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의 몬스터, 고블린이나 놀 같은 것을 상대로 싸울 때 흔히 쓰는 전법으로, 짧은 검에 방패를 든 인원은 전위에서 달려드는 공격을 쳐내는 데 집중하면, 뒤에 있는 긴 창과 그물을 들고 있는 인원이 흐트러진 적을 끝장내는 방식이다.
`어차피 안으로 들어갈수록 다수의 적을 상대해야 될 테니 앞으로 일어날 전투에 대한 예행연습이 되겠지.`
카아아악!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구울로, 시체가 쌓인 구덩이에서 자주 출몰하는 몬스터다. 비슷한 종류의 언데드인 좀비에 비해 힘이 세고 날렵하며 날카로운 손톱에서는 진득한 시독이 흘러나오는, 일반 병사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몬스터.
우드득!
교수는 달려드는 구울의 팔을 가볍게 잡아챈 다음, 대충 언데드들의 한가운데로 던져버렸다.
퍼어억!
“크아아악!”
“궈어억!”
“가아아아아아!”
게걸스럽게 달려들던 언데드들은 포탄처럼 날아온 구울에 부딪혀 볼링핀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봤지? 이런 식으로 진형만 무너트려 주면서 마법사들이 처리하게 하면 되는 거야.”
“크흠, 뜻은 이해했소만….”
던지는 힘이 지나쳤는지, 교수의 손에는 뜯겨져 나간 구울의 팔이 들려있었다. 보르카의 눈에는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흔들어대며 설명하는 교수도 저 앞에 달려드는 언데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스아악-
그때, 마법사들의 영창이 끝났는지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두 명의 3위계 마법사를 필두로, 그들이 축조한 수인을 중심으로 하여 펼쳐지는 마법사들의 연계 마법.
“””그 앞길에 흐를지어다.”””
“[도르만 발다니스의, 콜링 워터 폴]”
“[리버스]”
다섯 마법사의 마나가 한데 모이더니, 수인의 뼈대로 구축된 심상의 형상으로 축조되며 주변으로 확장되어나갔다. 첫 번째 수인의 형상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형상을. 두번째 수인은, 역위.
-퐁!
첫 시작은 교수의 발밑에 조그마하게 땅을 뚫고 나온 작은 물줄기였다.
-퐁! 퐁! 퐁!
그 작은 물줄기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일직선으로 작은 물줄기가 여러 개로 늘어나더니,
쿠드드득, 콰아아아!!!
순식간에 땅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솟구쳐 물의 장벽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수집한 물을 마력으로 확장시켜 물의 벽을 만들어내는 워터폴 주문을 비틀어 땅에서 위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워터 월은 3위계 마법이니 2위계 마법사들이 주문에 참여할 수 있게 구성한 것이겠지. 저렇게 펼치면 지하수를 이용할 수 있으니 주문의 시전도 더 빨라질 것이고 말이야.`
교수가 자신의 생각보다 빠른 마법사들의 대응에 흐뭇해하고 있는 동안, 연이어 수인을 맺던 오트만이 앞으로 나섰다. 주문에 사용된 마나를 다시 끌어들여, 다음에 이어질 마법에 사용하는 순환식. 5위계 마법사의 거대한 마력이 실체화되며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따각.
명령과 지정을 의미하는 검지. 방향을 위해 한마디.
뚝.
권위, 계약, 굴종의 중지,약지, 새끼를 모두 접어 경외를.
뚜둑-
곧게 편 엄지는 굳은 자아를, 그리고 두 손을 맞대는 것으로 순환을.
흘러든 거대한 마나가 오트만의 두 손에서 형태를 갖추며 거대한 마력 식으로 전환되었다.
“우자는 산맥을 가벼운 흙으로, 별을 작은 빛줄기로, 하늘을 한 줄기 바람으로 보니. 그 거대한 힘을 경외할지어다.”
[오트만 보들레르의, 웨이브]언데드의 앞을 가로막던 역위의 폭포가 요동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며, 강물 하나 없는 숲속에 나타난 거대한 폭포가 기울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콰아아아아!!
숲속에 몰아치는 성난 파도에 언데드들은 별다른 저항조차 못 하고 휩쓸려 나갔다.
콰아아아아!
그렇게 달려들던 모든 언데드가 파도에 떠밀려 표류하게 된 순간,
“””수력구”””
꽈드득!
워터폴 이후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3위계 마법사가 파도를 거대한 수압의 구체로 뭉치며 마무리했다. 위력이 부족했는지 아이작이 시전했던 수력구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으스러트리지는 못했지만, 팔다리가 모두 부러져 공처럼 뭉쳐진 언데드들을 보니 굳이 더 손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 Jokass : 쩐다….
– 스피드 웨건 : 수계 마법은 물이라는 구체화된 매개를 써서 사용한 주문에 잔존하는 마나가 많음. 그래서 물만 있으면 썼던 마나를 재사용하면서 저렇게 주문을 굴리는 게 가능함.
– 하이웨이나초맨 : ㅅㅂ 이건 마법뽕이 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잖아.
– 간장게이바 : 교수 봐라.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네.
“헤에에….”
교수는 그 장엄한 광경에 생각하는 것을 멈춰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1위계였지만, 수계 마법사였으니까. 사람들이 보는 것 이상으로 이 연계 마법이 얼마나 치밀하고 아름다운지 볼 수 있었고, 그 광경에 취해버린 것이다.
“후우우. 어때, 이 정도면 우리도 제법 쓸만하지 않는가?”
오트만은 약간 지친 듯 숨을 몰아쉬며 교수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동안 눈치가 좀 많이 보이긴 했지. 우리 때문에 마차도 구해오고, 일부러 강에 가까운 길로 돌아오고, 마른 생선뿐이지만 마법사로서 충분히 대우받도록 해줬으니까. 다들 저렇게 무리하는 것을 보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일세. 이 정도면 합격이지?”
“10점…..10점이요….”
교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이 없는 곳에서, 특별한 준비도 없이 시전한 마법이 이 정도다. 만약 이 사람들을 호수 같은 곳에 던져놓고, 며칠 정도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어떻게 될까?
`농담처럼 생각했는데, 진짜 도시 단위 폭격급 마법도 가능하겠는데?`
테스트 결과 : 매우 희망적임.
“끼아아악! 까아악!”
몰려오던 언데드들이 단숨에 정리되고, 가까스로 마법으로 이루어진 해일의 범위에서 벗어난 벤시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목책 너머로 날아갔다.
“이런. 조금 더 신경 쓸걸 그랬군.”
“아닙니다. 벤시는 어차피 물리적인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휩쓸렸어도 딱히-”
“잊었나? 나는 `정화`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네. 신성력 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효과가 있었을걸세.”
“오….”
그러고 보니, 공처럼 뭉친 언데드들이 움직임을 멈춘 지 오래였다. 이 영감님, 진짜 쓸만한데?
그렇게 흐뭇한 눈으로 마법사들을 둘러보던 교수의 눈에 뒤에서 뒷짐 지고 멀뚱하게 있는 흑마법사가 눈에 들어왔다.
“알드리치. 댁은 뭐 보여줄 것 없습니까?”
“뭐하러? 이미 앞에 있는 저 퍼런 물 성애자들이 깔끔하게 정리했는데.”
알드리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작은 어둠을 손 위에 그러모았다.
“애초에 영혼술사 중에서도 나같이 순수하게 흑마법 자체를 파고든 이들은 낮에 힘을 잘 쓰지 못하거든.”
“낮에 힘을 못 써요? 무슨 벰파이어입니까?”
“그렇다기보단···. 기분 차이라고 해야 하나? 대낮에 유령이 나오면 이상하지 않은가.”
“아.”
말도 안 되는 이유지만, 단박에 이해해버렸다. 마법사의 입에서 나오는 기분이 이상하다는 소리는, 그쪽으로 심상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큰 도움은 줄 수 없지만…. 그래. 이 정도는 가능하겠군.”
알드리치가 어느 정도 그림자가 모여든 손을 들어 올리자,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언데드들의 시체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령술에 사용된 영혼들을 회수했네. 흑마법사가 자리 잡은 곳이니, 아마 이 지역 자체를 타락시켜 뒀겠지. 이런 지역에서는 신성력으로 의식에 사용된 영혼을 승천시키거나, 이렇게 회수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땅에서 마력을 흡수한 시체들이 다시 일어나거든.”
그렇게 말하며 알드리치가 손에 모여든 그림자를 풀어주자, 그 안에 모여든 영혼들이 교수의 목에 걸린 항아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으윽, 기분나빠.”
“편견일세. 애초에 흑마법은 사악한 술수가 아니라, 고대의 매장 사제로부터 시작된 학문이니까. 먼 길을 가는 영혼을 배웅하고, 더러는 인세에 미련이 남은 혼령을 달래는 일이 흑마법의 시초였지. 영혼술사는 그런 혼령들 중 강인한 혼령과 계약을 해서 그 미련을 풀어주는 대신 힘을 사역하는 자들을 말하는 걸세. 흑마법사라고 다 사악한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지!”
“그 얘기를 왜 저한테 하십니까.”
“그건…..”
쿠구구구-
알드리치가 이어서 말하려던 순간, 일행들의 앞에 있던 목책의 출입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있었다.
“이따 얘기하죠. 보아하니, 집주인 분이 우릴 초대하는 것 같은데.”
“으으음.”
문이 열리며 드러난 마을 안쪽은 전형적인 흑마법사의 영역 그 자체였다. 사방에 넘쳐나는 핏자국 하며, 일부러 흩뿌려놓은 듯한 조각난 시체에서는 손가락만 한 구더기가 들끓으며 끔찍한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알드리치. 흑마법사 기준으로 몇 점짜리 영역입니까?”
“3점 주지. 이건 마학의 영역에서 꾸며놓은 게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으로 보이는군. 정말 단순한 장식이야. 시체를 통해 의식을 구성하지도 않았고, 저렇게 조각내놨으니 언데드로 활용하는 것도 힘들어. 그나마 쓸모가 있다면, 침입자한테서 생성된 공포를 조금 이용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교수와 알드리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교수야 밖에서 이것보다 더 심한 것도 자주 봤고, 알드리치는 외면보다 내면이 더 눈에 담기는 영혼술사였으니까.
보르카와 노툼은 약간 질린 표정이었다. 특히 노툼은 음식물 쓰레기를 통째로 뒤집어 쓴 듯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우웨에엑!”
한바탕 마법을 선보이고 상기되어있던 마법사들은 그 끔찍한 광경에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교수는 속을 다 게워내고도 헛구역질을 하는 마법사들을 보다가 노툼에게 말했다.
“노툼, 이 사람들 좀 지켜줄 수 있겠어?”
“그워어. 내가 말했다. 약하고, 곧 죽을 인간들이라고. 이제 병 걸렸다. 죽는다.”
“아냐 안 죽어. 그냥 여기서 다가오는 시체들이나 좀 치우고 있어 봐. 금방 갔다 올게.”
“그워. 오래 걸리나? 인간 죽으면 땅 파고 묻는다. 노툼 땅 잘 판다.”
“안 죽는다니까.“
“그워.”
“오트만 마법사님, 같이 갈 수 있죠?”
“으으음. 그러지.”
교수는 마법사 넷과 노툼을 뒤에 남겨놓은 다음, 나머지 일행을 이끌고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흑마법사가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 멀리, 마을 중앙으로 보이는 곳에 검은 잿가루 같은 것을 흩날리는 거대한 탑이 보였으니까.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악의가 비명처럼 느껴졌다.
“으음….6점 정도로 바꾸지. 자기 방은 잘 꾸며놓은 것 같군.”
“알드리치, 저 정도면 몇 위계쯤 되는 흑마법사입니까?”
“모르겠군. 사령술과 영혼술은 이름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갈라져있는 학문이라. 그래도 대충 4 위계쯤 되지 않을까 싶네. 주변 풍경을 보아하니 마을 인구를 다 갈아 넣어 영역을 구축한 것 같고.”
“마을 인구를 다?”
“그래. 저 탑. 멀리서도 진득한 시기(屍氣)가 느껴지는게, 정말 아낌없이 시체를 들이부었군.”
‘….좀 이상한데?’
흑마법사가 시체를 사용하는 거야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낭비할 일도 없었다. 지금 뮤트는 엄청난 자원 부족에 허덕이고 있으니까. 딱 필요한 만큼만 쓰고, 뮤트에게 넘기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텐데.
‘그러고 보니 4위계면 충분히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고위 흑마법사다. 사령술사이니 그 효과는 더욱 커지겠지. 그런데 지금 뮤트 본대와 로드릭 군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서부전선에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한적한 동부에서 혼자 길목이나 지키고 있는 거지?’
흑마법사에게 대규모 전장은 꿈의 무대 같은 것이다. 평소에는 보기도 힘든 고위기사의 시체가 즐비하고, 눈 한번 깜박하는 동안 수십, 수백의 원혼이 흘러나오는 전장. 흑마법사가 마력을 키우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따로 부르지 않아도 자진해서 가야만 할 장소에 가지 않고 이렇게 떨어져 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나?”
“음…. 아무래도 이 흑마법사에게 물어볼 게 많을 것 같아서요.”
교수는 저 멀리 보이는 검은 탑을 보며 어깨를 풀었다.
“일단 잡아놓고 생각합시다. 보아하니,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닐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