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88
Chapter.7 가면 무도회(3)
***
“돔의 그 돈 귀신들이 머리를 잘 썼지.”
교수는 중앙구역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굳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대충이라도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설명해주기로 했다.
“3형 변종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어?”
“어디보자…. 매우 강한 변종이고, 1, 2형과 달리 특별한 공통점이 없다는 거랑, 이상한 재주가 많다 정도?”
“음. 하나도 모르는군.”
중앙의 모형 정원 입구까지 이제 10분 남짓 남았으니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고. 이걸 어떻게 잘 설명해줄까···.
잠시 고민을 하던 교수는, 다 먹은 피자 상자 안에서 미리 골라서 빼 두었던 파인애플 조각들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이게 뭐게?”
“윽, 햅번.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거 아냐. 파인애플 안 먹을 거면 나줘.”
“먹을 거야. 피자랑 같이 먹는 게 싫어서 따로 빼둔 거지. 아무튼, 이 파인애플 조각이 2형 변종, 그러니까 갓 죽은 사람의 몸에서 발현한 변종 바이러스라고 하자고. 신선하고, 안에 즙도 많이 들었고, 살아있는 사람이 도핑한 것처럼 날렵하고 힘도 세지. 하지만 결국 시체는 시체. 그렇게 날뛰면서 몇 대 얻어맞기도 하고, 더운 날씨에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하면….”
교수는 손에 들고 있던 파인애플 조각을 눌러 으깨버렸다.
“요렇게, 흐물흐물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1형 변종으로 변하게 되지. 여기까진 다들 알고 있지?”
“그 정도는 나나 벡스나 다 알고 있지. 매일같이 보는 놈들이니까.”
“좋아, 그럼 여기서부터 어려운 얘기로 들어가니까, 잘 들으라고. 아, 이안 너는 운전 중이니까 듣기만 해.”
“하! 이렇게 잘 포장된 길에서는 눈 감고 발로 운전해도 될걸? 사고 내면 내 턱에 용접기로 ‘초보운전’이라고 새기게 해주지. 아무튼, 파인애플이랑 3형 변종이 무슨 상관이 있는데?”
이안의 물음에, 교수는 손에 들고 있던 반쯤 으깨진 파인애플 조각을, 마치 신성한 물건을 대하듯 한 손으로 떠받쳐 올렸다.
“처음에 벡스는 이 노란 조각을 보고 파인애플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만약 이 파인애플에게 자아가 있고 의지가 있다면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을까?”
“엥?”
“으응? 파인애플이…. 생각을 해?”
“1형, 2형은 기본적으로 시체에 발현한 바이러스지만, 3형은 생체 상태에서 발현하는 데 성공한 바이러스니까. 근본적으로 원리가 다르거든. 파인애플로 치자면 1,2 형은 형태만 다른 파인애플 조각이지만, 3형은 씨앗을 품은 과육이라고 볼 수 있지.”
여기까지 말하고 곁눈질로 슬쩍 살피니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벡스와 담배 마렵다는 표정으로 운전에 집중하는 이안이 보였다. 이해하기 힘들겠지. 나도 이거 이해하려고 돔에서 커뮤니티에 올려둔 30장 짜리 논문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으니까.
교수는 일단 큼직한 틀만 이해시키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우선, 변종 바이러스는 숙주의 정신상태에 상당히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있어. 지금까지 봐왔던 변종을 생각해보자고. 으어어- 하면서 좀비처럼 돌아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보면 눈에 띄는 녀석들도 있었잖아?”
두 사람의 눈이 이체를 띄는 것을 보니 뭔가 떠오르긴 한 모양. 교수도 눈문에 인용된 사례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총을 쏠 줄은 모르지만, 휘두를 줄은 아는 변종이라거나. 편안함을 느낄 신경이 다 썩어 문드러졌지만 지붕이 있는 건물에 머무는 것을 선호하고, 맨바닥과 깔개가 있는 자리를 두면 깔개가 있는 곳으로 몰린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심장이 멈춘 시체들의 행동으로 보기엔 묘한 느낌이 있는 행동을 하는 변종들.
“돔의 연구에 따르면 변종 바이러스는 의식이 끊어진 숙주의 뇌에 저장된 기억 같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모양이야. 영향을 받는다곤 해도, 이미 산소 공급이 끊어져 대부분 사멸하고 남은 찌꺼기에 불과하지만. 맨바닥과 매트리스가 있으면 별다른 생각 없이 매트리스 위에 눕는 것처럼, 몸에 익숙해진 기억 같은 것에는 영향을 받는 거지. 돔의 연구원들은 3형 변종의 특이점이 이 변종 바이러스의 ‘기억 선호 현상’에서 발생하는 거라고 추측하고 있더군.”
“기억 선호 현상이라…. 그럼 3형은 살아있는 육체에 발현된 변종 바이러스이니, 생전의 기억을 온전히 이용한다는 뜻인가?”
“정확히는, 생전에 가장 강하게 남은 자아의 형상을 따라간다고 하더군.”
다시 파인애플 쪽으로 돌아와보자고.
교수는 손에 들고 있던, 눌려 쪼개진 파인애플의 가닥을 들어 파인애플이 손을 흔들 듯 휘저어 보였다.
“만약 파인애플의 씨앗에게 의지가 있다면, 갓 태어난 그것에게 ‘파인애플’이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뭐라고 답할까? 어떤 녀석은 거대한 노란 세상에 갇힌 작은 방을 떠올리겠지. 어떤 녀석은 둥글고 까슬까슬한 몸에 녹색 건강한 잎이 달린 모습을, 어떤 녀석은 땅에서 자라난 파인애플 관목을 떠올릴 수도 있고 말이야. 변종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숙주의 육체를 수복하여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습관을 지니고 있어. 사람을 공격하고 잡아먹는 것도 같은 원료를 숙주의 내부에 투입해 어떻게든 숙주가 살아있는 시간을 연장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지. 3형 변종은, 그렇게 숙주의 죽어버린 자의식이 생각하고 있던 ‘그 자신’의 모습으로 숙주의 육체를 되돌리려는 변종 바이러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괴물이야.”
학대받고 구타당해 침대 밑에 숨어있던 아이는, 죽기 직전 자신이 껍데기 속의 소라게 같다고 생각했다.
얼마 뒤 32구역에는 본체에서 뿜어져 나온 촉수로 거대한 집을 통째로 짊어지고 다니는 3형 변종이 나타났다.
거대한 화재가 일어난 쉘터에서 타고 남은 재 같은 것이 수십 구의 소사체(燒死體)를 짊어지고 걸어 나왔다는 목격담도 있다.
죽은 이가 마지막 순간, 그 생존본능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그려낸 자아를 숙주의 원래 형태로 착각하고 그 모습으로 육체를 ‘복구’시키며 만들어지는 괴물.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3형 변종의 정체였다.
부아아앙-
설명이 끝나고,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세 사람.
“….어디까지 이해했니?”
“어…. 3형 변종은 죽은 사람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장갑차 같은 걸 떠올린 놈이 있으면 보통 일이 아니겠다, 정도?”
“한 명이라도 잘 이해해서 다행이군.”
그래도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개념 정도는 이해한 모양.
“너희들이 마주한 ‘올드 픽처’는, 그런 3형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녀석이야.”
“어떤 식으로 독특한데?”
“자기가 죽은걸 모르는 자의식에서 태어난 녀석이거든.”
평범한 가장에게 일어난 평범하지 않은 비극에서 태어난 괴물.
올드 픽처의 자의식은 스스로의 육체에만 국한되어있지 않았다.
놈은, 과거의 평범한 거리에 있는 자신을 그리는 괴물이었다.
***
올드 픽처의 구역에 들어섰다는 것은 따로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변 풍경이 누군가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낡고 반파된 건물이 즐비한 황토색 거리에서 깔끔하고 세련된 구시대의 거리로 바뀌었으니까.
“그럼…. 놈이 이렇게 만든 거라고? 거리를?”
“아니, 아무리 3형이 온갖 특수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건 힘들지. 이 모형 정원은 돔에서 만들어준 거야. 아, 저기 보이네.”
사고가 일어난 지점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깔끔한 거리 한가운데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반파된 건물과 그 잔해가 길을 막아서고 있었고, 그 위에 사람들이 모여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7~8명 정도되는 황무지 사람 특유의 복장을 한 사람들과, 그들 한 가운데에서 이질적일 정도로 깔끔한 양복을 입은 남자.
“돔에서 나온 사람도 있는 모양이군.”
“너무 늦게 온 거 아닐까? 그래도 우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최소한 먼저 와있기라도 했어야···.”
“아, 아니야. 우리 안 늦었어. 저 공무원 주변 사람들. 저들은 정보상이니까.”
“정보상? 커뮤니티에 비밀글 올려놓고 입금하면 비밀번호 주는 그놈들?”
이안의 말에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무지 사람들이 아무리 부지런하다고 해도, 일단 이건 남의 일이잖아.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제대로 확인하기 전에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지. 저거 봐. 올드 픽처랑 얽힌 일인데 구시대 복장도 갖춰 입지 않고 왔잖아? 일을 도와주러온 게 아니라는 뜻이지. 원래 이런 일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모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보상이라고 보면 돼.”
“그럼 돔에서 나온 사람은 왜 저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있는데?”
“언론 통제나…. 뭐 그런 일이 아닐까? 괜히 정보상들이 이상한 추측으로 날뛰어서 47구역이 소란스러워지면 고생하는 건 그 치들이니까. 멋대로 추측하기 전에 가공된 정보를 풀어주는 거지.”
“복잡하구만?”
“평화의 대가라고 하자고.”
털털털털- 끼이익!
그렇게 세 사람을 태운 차량이 왁자지껄한 사람들 앞에 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모여들었다.
‘마침 잘됐군. 숫자를 보아하니 47구역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정보상도 찾아온 모양인데,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확실하게 사과하고 책임지고 보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빅드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야겠어.’
차에서 내려 그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교수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쉰 뒤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술렁술렁
교수가 본격적으로 그들 사이로 나서자, 저들끼리 속삭이기 시작하는 정보상들.
“누구지?”
“검은색… 무장트럭, 3인조라면….”
“하하하, 벌써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군요! 저희로 말할 것 같으면, 부끄럽지만 이번 사건의 원흉이며 새로 개업한 캐러밴….”
“BDSM이다.”
“렙터제 검은 무장트럭, 3인조 캐러밴! 틀림없어! BDSM이다!”
“변태들이다!”
빠직!
“….빅드림! 빅드림 입니다!”
교수의 간절한 외침에 정보상들이 잠시 수군거렸다.
“공식적인 이름과 별개의 이름을 사용하고 싶은 건가?”“47구역 대화방에서 그런 느낌의 대화를 한 적이 있다고는 하더군.”“그런데 이미 BDSM으로 알려졌잖아? 나도 그 이름으로 정보를 팔았다고.”“지금와서 바꾼다고 하면….”
“우리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겠지.”
잠깐 사이에 의견을 교환한 정보상들은, 교수와 마찬가지로 환하게 웃으며 일행을 반겼다.
“47구역의 떠오르는 샛별, [BDSM]을 만나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 근처에서 소식을 전하며 먹고사는 사람들이니 캐러밴을 운영하시면 자주 뵙게 될 수도 있겠네요. 하하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빠지직!
정보상의 대답에 교수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짧은 인사말 속에서 ‘우리 이름 좀 빅드림으로 바꿔서 퍼트려줘.’ / ‘어림없지. BDSM으로 그냥 가자.’ 라는 의미를 주고받은 교수와 정보상들.
교수의 입꼬리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본 이안이 뒤에서 교수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포기해라.”
“니미럴….”
“내가 47구역 사람은 아니지만 황무지에 사는 사람치고 이권이 걸린 일에서 물러나는 놈 못 봤다.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에젤…. 에젤 레이든…. 죽여버릴거야….”
“담배 한 대 줄까?”
“치워….”
그렇게 지금이라도 캐러밴의 이름을 바꿔보려던 교수의 시도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그런 일그러진 교수의 얼굴을 스케치하고있던 정보 상들의 사이에서 남색의 양복을 갖춰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질적인 복장이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서류가방에 하얀색으로 선명하게 새겨진 돔의 표식.
“실례합니다, 방금 듣기로 이번 사건의 원흉이라 하셨는데,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돔에서 나온 사람. 확실하게 구시대 사람처럼 꾸미고 온 것을 보니 이쪽은 올드 픽처와 관련된 일로 나온 게 맞는 것 같았다.
‘하이드?’
[삐이이-! 일치하는 얼굴 없음. 네 옛날 일이랑 관련 없는 사람이야.]얼굴을 살펴보고, 하이드에게 교차검증까지 마친 다음에서야 교수는 눈앞의 공무원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다.
“BDSM…..의 리더, ‘professor`입니다. 교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47구역 돔 집행부 소속, 잭이라고 합니다.”
각각 플레이어 아이디와 누가 봐도 가명으로 보이는 이름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눈 뒤, 본격적으로 일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저희가 알기로는 ‘professor`님이 아니라 저 뒤에 계신 두 분이 사건의 주동자라고 하던데, 혹시 여기서 잘못된게 있습니까?”
“아, 그건 아니고. 저놈들이 올드 픽처를 자극하고, 모형 정원을 부순 게 맞습니다. 저는 동행인으로서 책임을 같이하려고 왔구요.”
“으음, 과연. 아무래도 캐러밴 구성원이 적은만큼, 인원 교체가 그리 쉽지는 않겠네요. 이 위험한 일에 스스로 자원하신 것을 보면.”
“…..”
‘쯧.’
아무래도 이 잭이라는 놈은 평소 내가 상상하던 그 재수 없는 돔의 공무원인 모양이다. 인원 교체라는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을 보니, 나는 빠지고 이안과 벡스만 던져줘도 알아서 처리해주겠다는 뜻이겠지. 딴에는 배려라고 꺼낸 말이겠지만, 덕분에 한층 기분이 더러워지고 말았다.
팔락, 팔락,
“어디보자…. `professor`님…. 47구역 외곽에 거주중이고…. 어라? 몇 년 전에 같은 일로 얽힌 적이 있으시네요?”
“….운이 좀 나쁜 편인지라.”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원래 같은 일로 또 문제가 된 인원에게는 좀 더 강력한 제재, 혹은 추방조치가 내려지지만….”
팔락-!
잭은 가방에서 꺼낸 서류 중 한 장을 꺼내 교수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이번에는 저희 돔 측에서 귀 사(社)가 저지른 일에 대한 배상을 전면 책임져 주기로 결정됐으니까요. 운이 좋으신 편이군요.”
“돔에서? 그러면 벌금부터 거리 복구 비용, 이번 ‘연극’에 동원되는 인원들에 대한 일당까지 전부 지급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지역 주민들에 대한 사과는 별도로 하셔야겠지만, 그 외 공식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돔, 그중에서도 저희 [집행부]에서 전면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교수의 얼굴에 ‘왜?’ 라는 표정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온 잭이 교수에게 작게 속삭였다.
“별것 아닙니다. 그저, [감찰부]에 친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희 [집행부]쪽에서도 HIV여러분을 대단히 높이 사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으니까요. 혹시 돔에 방문하실 일이 있다면 집행부에 한번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장님께서 식사를 한번 대접하고 싶다 하시더군요.”
“….거 밝히지도 않은 이름을 남에 입으로 들으니 참 기분이 그렇습니다만, 일단 호의가 있다는 것만 들어두지요.”
“하하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집행부는 귀가 많은 집단이라 듣기 싫어도 알게 되는 정보가 많으니까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교수는 능글능글한 잭의 대답에 속으로 침을 뱉었다.
‘돔에, 영입 제의에, 정치적으로 얽힌 놈이라니. 내 과거를 알고 보낸 것처럼 재수 없는 놈이군. ‘연극‘ 쪽 일이 잘못돼서 뒤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교수 일행의 잘못 때문에 이렇게 모였으니, 이런 기분을 겉으로 표출해서는 안되겠지.
잭도 주변 정보 상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내밀한 얘기를 끝내고 본론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럼 주연 배우는 앞에 계신 ‘professor` 님과….”
“메탈죠라고 부르쇼.”
“….벡스.”
“메탈죠, 벡스님 세분이 맡아주시겠습니다. 복장은 벌써 준비해오셨군요. 혹시 따로 생각해둔 시나리오가 있으십니까?”
“음…. 일단 셋다 대학생이라는 설정으로 밀고 나갈까 하는데….”
“나쁘지 않은 컨셉이지만, 이번 ‘연극’은 지난번과 달리 조금 더 소란스럽게 진행될 예정이라 조금 더 디테일하게 준비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쪽에서 의상과 소품을 준비해뒀으니, 그쪽으로 갈아입는걸 추천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밖에서 얘기할 게 아니라, 무대에서 직접 상황을 확인하면서 말씀드리는 게 좋겠군요. 따라오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무너진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가는 잭.
잭의 뒤를 따라가며, 교수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조금 더 소란스럽다? ‘연극’은 인부들이 거리에 가림막치고 공사하는 동안 놈의 주의만 끌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시끄러운 대학생 무리 정도면 놈의 환상을 깨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주의를 끌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만, 사실 매년 이런 일이 몇 번씩은 일어나잖습니까. 밖에서 온 인원이 실수로 놈을 자극하거나, 새로 생겨난 사이코 갱이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놈을 건드리거나…. 집행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그런 반복되는 소요를 좀 줄여볼까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덜컹!
부서진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나오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수십 명의 사람들.
“이게 대체….”
“이번 연극의 주제가 주제다 보니, 배우가 좀 많이 필요해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낸 잭은, 상자를 교수의 앞에 내려놓은 다음 손수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주며 말했다.
“살아있는 생물이고, 상황을 인식하는 게 가능하며,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면···. 놈을 교육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교수와 이안, 벡스는 열린 상자 속 내용물을 보고는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그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3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