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92
Chapter.7 가면 무도회(7)
***
타닥, 타다닥, 타닥.
“저기…. 부장님?”
“….”
호로로록-
“…이익! 몽부장님!”
호록!
“으악 뜨거! 커피 좀 마시자 이놈아! 또 뭐! 5분, 아니 3분이라도 좀 입을 다물고 있어 주면 안 되겠냐? 에젤!!”
감찰부장, 랄프 몽클라르는 비상대기 중에 조용히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다른 대원들과 달리, 보고서를 정리하면서도 끝없이 조잘거리는 새파란 부하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겠어! 이미 결정이 끝난 사항이라니까! 총장님이 도장 찍었다고! 저 올드 픽처 길들이긴가 뭔가 하는 작전은 집행부 관할이야! 그것도 100%! 우리가 끼어들 껀덕지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 감찰부에서 생목숨 버려가며 봉인하고, 지난 몇 년간 감찰부에서 관리하던 놈을 왜 갑자기 집행부에서 건드리냐고요!
에젤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 멍청한 새끼들은 왜 하필 이 시기에 중앙구역으로 기어들어 갔으며, 그 45구역의 지옥에서 갤갤거리며 주머니 불룩하게 채워올 정도로 요령 좋은 놈들이 올드 픽처는 어쩌다 건드렸단 말인가!
호로로록-
에젤의 물음에 말없이 커피만 홀짝이던 몽클라르는 다소 불편한 듯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모자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어딘가 항상 삐딱한 녀석. 그래서 그런지 에젤 이녀석은 자기처럼 모난 부분을 항상 잘 찾아내는 것 같았다.
“지금이 돔에 있어서, 우리 감찰부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건 너도 잘 알 거다, 에젤.”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내가 말을 하면 네놈이 입을 다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이번 일에 자세한 내막은 나한테도 거의 내려온 게 없어.”
“몽부장님 한테도 말입니까? 부장급까지 정보가 통제됐다고요?”
“그래. 그만큼 중요하고, 또 음습한 정보겠지. 나름대로 알아본 바로는 언더돔쪽 이권을 거의 절반 가까이 내주면서 작전 개요까지 모조리 까서 보여줬다고 하더군. 총장님은 놈들의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신 모양이야. 어차피 총장님이 시장이 되시면 그 이권은 우리 쪽으로 넘어오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스무스하게 넘겨받는 쪽이 훨씬 좋으니까. 알잖아. 거기 어떤지. 범죄자들, 약으로 세뇌해서 조종하는 놈들, 그거 일일이 찾아가면서 거미줄처럼 연결된 루트를 다 찾아내려면 사람이 몇 이나 상할지 모르는데 곱게 넘겨받는게 좋겠지. 저 이상한 프로젝트가 성공한다고해서 딱히 표결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그 계획이 실패하니까 문제 아니에요? 재작년에 제대로 한번 터졌을 때 배우는 물론 관계자 전원이 사망했잖아요! 그거 진정시키는데 감찰부에서도 사상자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
“응? 너 그때 감찰부에 없지 않았냐? 왜 그렇게 잘 알아?”
“원래 해당 집단의 역사는 공시생이 제일 잘 알거든요. 감찰 공무원 예상 문제집에 감찰부의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던데요.”
“그런가. 뭐 어쨌든, 그렇게 걱정할 만한 일은 없을 거야. 비록 집행부가 우리랑 경쟁하는 사이긴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감찰부랑 비빌 정도로 놈들도 에이스라는 뜻이니까. 올드 픽처의 난동을 겪어보기도 한 놈들이니 놈이 본체까지 드러내면서 폭주할 일은 없을 거야. 기껏해야 단말기, 마네킹 신발덩어리 상태에서 미쳐 날뛰는 정도겠지. 근처에 있던 사람이 정신 폭풍으로 후유증을 좀 겪을 순 있겠지만, 몇 달 푹 쉬면 그것도 괜찮아 질거고.”
툭툭.
몽클라르는, 잔뜩 불안한 얼굴을 한 에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BDSM친구들이랑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걱정 마라. 별일 없을 거야. 집행부가 병신이 아닌 이상 올드 픽처를 한계까지 몰아붙일 리가-”
[끄어어어어어-오오아아아아아아!!!!!!]순간, 멀리서부터 시작돼 47구역 전체에 울려 퍼지는 비통한 울음소리와,
찌이이잉-!
뇌리에 스치는, 비극의 순간들.
“부, 부장님? 이건….!”
“그…. 그 집행부 저능아 병신새끼들이 뭔 개지랄을 떤거야아아!!!”
나태한 곰처럼 안락의자에 모로 누워있던 몽클라르는 기억을 헤집는 익숙한 장면을 견뎌내며 사자처럼 노호성을 토했다.
“감찰부! 전 위력부대 출동 준비! 무장은 고밀도 편향성 실드! 선더 클랩! 나머지는 알아서 때려 박아! 제일 빨리 준비되는 거로!”
“도핑은 어떻게 합니까! 긴급상황이라 허가 나오는 데 좀 걸릴 것 같은-”
“내가 책임진다! 강심제! 신경 안정제! 지금 심하게 어지러운 놈들은 웨일 라이저(Whale riser)까지 꼽고 나와!”
몽클라르는 속사포처럼 명령을 내리며 자신의 엑소슈트에 몸을 실었다. 지급으로 준비한다고는 해도 놈을 제압하는데 필요한 무장을 장비하는데 최소 10분. 만약 올드 픽처가 돔에 접근하여, 도시 실드 안쪽에서 비명을 지르는데 한 번만 성공해도 도시 인구의 20%가 우울증에 걸릴 것이다. 그냥 우울증이 아니라, 다이렉트로 자살에 이르는 심각한 우울증이. 시간도, 정보도 부족한 상황.
각오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무장 없이 바디만 끌고 나가서 시간이라도 끌어야겠-’
“부장님! 빨리 안 나오고 뭐하십니까! 다리가 오그라들어서 못 움직이겠으면 저 혼자 갑니다!”
몽클라르가 사망보험 같은걸 생각하고 있던 그 순간, 벌써 엑소슈트에 탑승한 채 격납고 문을 열어젖힌 에젤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뭔…. 벌써 다했어?”
“사실 몰래 튀어 나가려고 미리 준비해뒀죠!”
“너 그거 명령 불복종이야 임마!”
“명령에 불복할 만큼 전투준비 태세가 철저한 대원! 표창감 아닙니까!”
기잉- 철컥! 기이잉- 철컥!
빈 몸의 엑소슈트를 끌고 앞으로 나와보니, 벌써 도핑도 끝마쳤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에젤의 모습이 보였다.
24시간 쉬지 않는 주둥이.
그 어떤 갈굼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
우울증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 다른 대원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벌써 준비를 마치고 농담을 까고 있는 슈퍼 마이페이스.
“준비된 적임자가 따로없군….”
“예?! 안 들립니다!”
“너 상 줄 거라고 임마! 출발해! 본체를 드러낸 올드 픽처는 초동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둘이 먼저 가서 놈을 저지한다!”
“잠깐만! 보디캠 방금 켰는데 한 번만 더 말해줘요! 나 상 준다고!”
“닥치고 출력 올려! 전력으로 이동한다! 목표는 47구역 중앙, 모형 정원! 배터리 신경 쓰지 말고 제일 밀도 높은 거로 켜놔! 정신파도 파장이라 제법 막아주니까!”
“이따 갔다 와서 마저 얘기하는 겁니다! 분명히 내 귀로 들었-”
“상을 받든 상을 치르든 둘 중 하나는 하게 해줄 테니까 가라고!”
철컹- 철컹- 철컹-!
그렇게 돔의 외부와 연결된 격납고에서, 푸르스름한 실드에 둘러쌓인 엑소슈트 두 기가 뛰쳐나와 혼란의 중심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한편 중앙구역, 모형 정원에서 충격에 대비하고 있던 이안은, 놈의 정신파를 직격으로 얻어맞고 달려나가려던 자세 그대로 땅에 고꾸라지고 있었다.
“끄으으윽! 으아아아악!”
끔찍할 정도로 강압적인 기억의 파도였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세포를 백지화시키고 그 안에 자신의 삶을 성토하는, 괴물의 무자비한 하소연.
아무리 귀를 막았다고 해도 놈의 정신파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을까. 바닥에 엎드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안의 한쪽 눈은 몸을 일으키는 거인의 모습을 담고 있었지만, 반대쪽 눈은 인간 김도진의 과거를 헤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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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장이었다. 그저 평범한, 월급에 목매고 퇴근후 맥주 한캔과 야구시청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곤히 자는 아들의 얼굴로 내일을 다짐하는. 그런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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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 그 남자의 얼굴이. 약간 수척하고, 피곤에 찌들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평온한 하루를 지켜냈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득 품은 아버지의 얼굴을 한 남자가.
올드 픽처의 기억이 흐르는 강물처럼 하나, 하나 뇌리에 스친다.
폭등하는 유가.
연일 위험한 상황에 대해 방송하는 뉴스.
사재기로 라면과 쌀 등 생필품이 바닥난 마트.
밖에 나가지 못해 칭얼거리는 아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아내의 우울증.
끼이이잉-!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이안을 이어지는 기억이 다시 무릎 꿇린다.
아들을 바라보는 도진의 따듯한 눈빛이 날카롭게 이안의 심장을 파고든다.
“빌어….처먹을…. 이래서 옛날얘기 같은 건 듣는 게 아닌데….”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기억은 한번 표면으로 떠오르자 억눌려있던 그 세월만큼 더 사납게, 아련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아이. 그에게도 지켜야 할 아이가,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으니.
‘딸아. 내 딸아. 네가 두 발로 걷는 것을 본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너를 위해 살겠다, 누군가에게 아비의 이름을 말할 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다짐했거늘. 여전히 내 손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구나.’
퍼어억!
퍼버어억!
저 뒤에서 수박 깨지는 소리가 작지만 선명하게 들렸다. 옥상에 있던 저격수 중 누군가가 떨어진 것이다. 충격에 발을 헛디뎠다? 글쎄. 한두명이면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수를 세는데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가 되면 그건 사고라고 부를 수 없지 않을까.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비극을 품지 않은 이 하나 없으니. 저들은 괴물의 정신파 속에서, 그 비극을 끝내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부럽다.’
이안의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이다. 만나고 싶다. 사무치는 그리움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눈물이 되어 흘러넘친다. 가까스로 입에 물고 있는 연초가 타들어 가며, 두텁게 쌓인 회한이 그의 폐부에서 흘러나온다.
그의 손에 쥔 총. 애석하게도 실탄이 들어있지 않은. 공포탄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총구를 눈알에 박아넣고 방아쇠를 당기면 그 충격이 뇌까지 도달하지 않을까? 마침내 가족들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끔찍한 상상이 그의 의식을 붙잡아 천천히 총구를 위로 향하던 순간, 저 멀리, 그가 처음부터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허물어지는 게 보였다. 벌레처럼 웅크려 부르르 떨던 몸이, 축 늘어진다.
박교수. professor, 햅번. 불리는 이름도 가지각색인 그의 벗. 나이 차이가 열 살이 넘게 나는 어린 친구였지만, 이안은 내심 그를 동경하고 있었다. 스물 넷. 멸망 전이었으면 한창 대학을 다니거나, 막 사회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딛을 나이. 아니, 전쟁에 참여했을 때는 고등학생에 불과했을 터.
하지만 녀석은 그 아귀다툼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냥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황무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견뎌내기 위해 가장 먼저 내다 버렸던 한없이 가벼운 무언가. 가끔 달이 밝은 날이면 그 텅 빈 자리에 찬 바람이 몰아치며 씁쓸하게 만드는 무언가. 녀석은 그것을 품에 안고 홀로 이 정신 나간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생각이 빠른만큼, 생각이 많은 녀석이야.’
그의 눈에는 보였다. 인간의 마음에서 벗어나, 냉혹한 살인자가 되어 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의 마지막을 눈에 담았던 그의 눈에는, 박교수라는 사람이 방아쇠를 당길때마다 스쳐가는 갈등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한때 그의 마음속에도 머무른 적이 있었던 감정이니까.
‘너는 항상 생각을 하지. 그 움직임에 망설임을 담지 않지만, 상대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충분히 곱씹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살아남아야 해서 죽였다. 살아남기 위해 죽였으니, 그 무게만큼 더 가치있게 살아남으리라고.’
멍청하게 죄책감속에 파묻혀 질질 짜는게 아니었다. 녀석은 누구보다 강한 생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 선한 마음에서 비롯한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더 강하게 생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방아쇠 위에 용수철의 무게가 아닌 다른것의 무게를 올리는 녀석이 몇 명이나 될까.
교수에게는 그런 것이 있었다. 황무지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되돌아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눈부신 것이. 그를 겪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을 위해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그를 선하다 표현하진 않겠지만.
인간적이라 말할 순 있으리라. 교수는 인간적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누구보다도 더. 그것은 강렬한 선의로 무장해 세상을 밝히는 빛이라기보단, 한치앞도 보이지않는 어둠속을 헤메이는 이의 앞길을 밝혀줄 횃불같은 빛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꺼져가고 있었다.
후회한 점 없는 후련한 얼굴을 하고서.
안식을 찾아 헤메던 그의 마음속에 한 줄기 불안이 자리 잡는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진다.
이안은 그런 얼굴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곧 사라질 도시에 남겨져 미소 짓던 그의 아내.
환각처럼 아내의 음성이 들린다. 렙터의 개로 살던 시절, 항상 피범벅이 되어 입원한 그를 꾸짖던 그때 그 목소리로.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있는 거에요?’
.
.
.
.
허리에 손을 딱, 짚고, 렙터에서 가장 전투와 살인에 미쳐있다고 소문난 그를 꾸짖던 그 아내의 당찬 모습.
빈 총을 내려놓은 이안은, 그 손으로 입에 물고 있던 담배 꽁초를 잡았다.
트드드득-
“후우우-, 몰리. 죽음이 당신의 달콤한 숨결을 빼앗아 갔을지언정, 그대의 잔소리마저 빼앗아 가지는 못했구려, 내 사랑.”
탁,탁, 치이이익!
조용히 거의 다 피운 담배를 털어낸 다음, 목 아래, 가장 연한 살 부분에 빨갛게 타오르는 꽁초를 비벼 끈다.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화끈한 고통이 영원한 안식의 미련 속에서 그를 세상으로 끌어올렸다.
“몰리. 당신이랑 요하나…. 조금만 더 기다려줘야겠어. 머지않아 갈 것 같긴 한데, 조금 지켜보고 싶은 녀석이 있어서 말이야.”
팔다리가 저릿하고, 여전히 괴물의 비탄에 잠긴 기억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히지만 이안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저 괴물 딱지보다 내 삶이 조금 더 엿 같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되겠지.”
이안은, 불안하고 서글픈 현실에 조금 더 남아있기로 결심했다.
***
타닥!
몸에 힘이 돌아온 다음 이안은 곧바로 쓰러진 교수의 곁으로 달려갔다. 총성이 들리긴 하는데,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저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아래를 향해 울려 퍼지지 않고, 옆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스윽-
‘호흡이 있다. 아직 죽지 않았어. 살아있어!’
하지만 주르륵 흘러내리는 코피를 보니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던 그에게도 뇌가 곤죽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던 정신파였다. 교수는 그보다 훨씬 가까이, 거의 올드 픽처의 코앞에 있었으니 그 파장의 밀도가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남달랐으리라.
“….불알에 힘 빡주고 버텨라, 박교수! 너 때문에 저기 요단강 너머에서 처자식이 살랑살랑 손짓하는 것도 내팽개치고 빌어먹을 황무지로 돌아왔으니까!”
그의 말에 화답하듯, 등에 업힌 교수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며 이안은 사납게 미소 지었다.
“그래, 혼자 도망갈 생각 하지 말라고, mein Freund(나의 친우여.)”
군복 상의를 벗어 교수를 단단히 묶은 이안은 지체할 것 없이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골목을 향해 달렸다. 저 멀리, 피투성이가 된 채 뭉툭한 대검으로 바닥을 찍어가며 기어 나오는 벡스가 보였다.
조금 모자란 친구지만, 언제나 일 하나는 누구보다 깔끔하게 처리하는 녀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