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94
Chapter.7 가면 무도회(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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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계획이 있긴 한데, 설명하기 조금 복잡하네.”
“왜? 너 교수의 기억을 다 읽었다면서?”
“ ‘다’ 읽었으니까 복잡하지.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A`라는 항목을 찾으면 검색하는 것처럼 그것만 딱 올라오는 게 아니라서. 특히나 껍데기 이 녀석은 뭔 생각이 그리 많은지 보고 있으면 정말 온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이라고. 무슨 포도 넝쿨 같다니까.
‘사실 교수가 정리해놓은 계획을 찾긴 했지만, 그걸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기억을 읽는 게 복잡하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누군가 ‘사과’를 떠올리면 무의식적으로 단맛, 빨간색, 과일 같은 키워드가 따라오고, 그것에서 또 파생된 기억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그가 누군가. 태생부터가 남의 의식 속에서 태어난 기형적인 생명체가 아닌가?
하이드는 이미 교수의 복잡다난한 기억 속에서 ‘이안과 벡스를 위해 쉽게 풀이한 올드 픽처 상대법’을 찾아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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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을 끈다. 폭주 시 일으키는 강력한 정신파. 지난번 폭주 때도 47구역 전역에 울렸으니 이번에도 47구역 안에서 듣지 못한 사람이 없을 것은 분명하다. 돔에서도 당연히 들었을 테니 조금만 시간을 끌면 감찰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것이다. 전문가들이니 나머지는 맡기면 되겠지.
2. 집행부의 인력이 얼마나 이쪽에 투입되었을지 모르지만, 렙터의 습격을 위해 내부에서 동조할 인원은 남겨두었을 터. 도시의 총 전력을 관장하는 코어와 도시 방어용 터렛 제어소, 두 곳에는 무조건 테러가 일어날 것이다. 감찰부가 자리를 비웠으니 이런 도시 방어 기관마저 당하면 돔은 무주공산이 된다. 반드시 개입해서 막을 것. 자체 관리인력도 민간인은 아니니 살짝 경계만 시켜줘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 렙터의 기습이 막히고, 올드 픽처를 해결한 감찰부의 엑소슈트 부대가 복귀하면서 렙터 병력의 뒤를 치면 상황은 종료. 남은 잔당만 해결하면 이번 일은 끝난다.
결론 : 차타고 시간끌고, 애들 오면 돔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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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 듯 깔끔하게 정리된, 마치 누구 보라고 일부러 반복해서 숙지한 기억. 만약 자신이 의식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 하이드에게 보내는 메시지였겠지. 이런 식으로 움직이면 될 거라고.
분명 좋은 계획이다. 일행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되어있는, 그래서 상황에 끼어들어서 어느 정도 얼쩡거리다 빠져나와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는, 그런 계획.
하이드는 그게 불만이었다.
‘처음 이쪽 세상에 나왔는데. 저렇게 큰 괴물도 있고! 평생의 원수라 다짐한 놈들도 있고! 믿음직한 동료에 저 화물칸에는 끝내주는 무기도 잔뜩 쌓여있는데 곁다리로 쓱 지나가고, 끝이라니! 절대 그럴 수 없지. 암! 그럴 수 없고말고!’
안전은 중요하다. 껍데기, 교수의 몸이 죽으면 그 자신도 죽으니까.
껍데기가 정한 룰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밖에 나왔다고 마음대로 사람도 잡아먹고, 지금 상황은 나몰라라~ 하고 내팽개치고 놀러 나가버리면 그때부터는 완전히 경계의 대상이되어, 껍데기가 두 번 다시는 하이드가 밖으로 나올 상황을 상정하고 계획을 짜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든 그의 마음에들 정도로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브룬에서의 타워재킹? 재미있었지. 한 도시를 쥐고 흔드는 마탑을 파괴하고, 6위계의 마법사와 전력으로 붙을 수 있었으니까.
악마화 리치 흑마법사와 대결? 말할 것도 없지! 목숨의 경계를 오가며 느껴지는 아드레날린! 흥분! 쾌감! 불러주지 않았으면 화가 날 정도였으니까!
‘즐겁다. 즐겁고 싶어! 기쁨도, 슬픔도! 희망과 절망, 행복, 불행까지도! 어떤 자극도 너무 소중해! 아아, 즐거워! 껍데기의 위태로운 삶이, 너무나도 즐거워!!!’
하이드가 태어난 뒤, 교수의 기억과 흐릿한 감각을 통해 겪은 기억이 아니라 하이드가 세상에 나가 실제로 겪은 것들은 모두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의 상황에서 강적과 대적하는 상황, 혹은 그에 준하는 위기의 강렬한 감정이 척추를 타고 흐르던 때였으니.
하이드의 영혼에는 그런 순간이 자신의 진짜 ‘삶’으로 자리잡아 버린 것이었다.
하이드, 그는 그런 강한 자극에 중독된지 오래였다.
“일단, 저 덩치랑 한판 붙어야지.”
하이드의 입에서 교수의 계획과 완전히 동떨어진 계획이 나온 것은 그런 이유였다.
일행을 살리는 것도, 47구역을 렙터의 손에서 지키고 생존을 도모하는 것은 교수의 뜻을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그의 방식과는 좀 다르리라.
“제기랄. 역시 그냥은 못 지나가는군….”
“그렇지. 저 놈 하는 짓을 보면 알겠지만, 육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에 더 치우친 생물 같으니까. 그런 녀석이 꼭지가 돌아버렸네? 그럼 녀석의 주의를 가장 많이 끄는 곳은 어디일까~요?”
“돔….이겠지?”
따악!
“정답! 아무래도 가장 많은 ‘의식’이 집중된 곳이니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기 과거를 남에게 투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일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렇다면 한 번의 울음으로 가장 많은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 장소는, 민간인이 많다 못해 흘러넘치는 돔의 담벼락 안쪽이 아닐까?”
‘어라? 대충 생각나는 데로 주워 삼켰는데, 말하고 보니 그럴 듯하잖아?’
올드 픽처가 저런 특이한 정신파를 지속적으로 뿜어내는데 이유가 있겠다, 까지는 교수의 생각을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이안과 벡스를 설득하기 위해 대충 마구 뱉어낸 말이었는데, 막상 말하고 나니 정말 일리가 있는 것이다.
‘이야…. 안에서 훔쳐볼 때랑은 비교가 안 되는걸? 성능 끝내주네!’
교수의 뇌를 직접 사용해본 하이드의 평이었다. 지금까지는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싸우기만 했지, 이렇게 복잡한 사고를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하나의 대상을 생각하면 그 생각이 순식간에 가지를 치며 뻗어나가는 게, 사고가 따라가기 벅찰 지경이었다.
하이드는, 밖에 있는 것이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조, 좋아. 이유는 뭐야? 돔을 습격하는, 올드 픽처를 막아야 할? 우리가?”
“살고싶으니까?”
벡스의 물음에 하이드는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자, 봐. 렙터 소사이어티. 기동력, 화력, 철저한 군기로 유명함. 반대로 돔. 시가전, 기계화 보병, 수성전…아니, 거점 방어전으로 유명함. 두 집단의 군사적 특징을 대충 요약한 거야. 돔은 자기 영역에서, 특히 도시 방어전에서 절대 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 그 이유는 너희들도 알지?”
“모를 리가. 화약 병기를 신봉하는 나이지만, 돔의 그 압도적인 구 문명 방어 화기에는…. 정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지. 입이 떡 벌어지는 게 턱이 한 번 더 떨어질 지경이었어.”
엄청나게 밀집된 인구에게 주어진, 하루에 최소 3시간의 인력 발전이라는 의무. 그것을 통해 엄청나게 축적된 전력과 그 전력을 이용해 가동되는 구 문명의 도시 방어 시설.
돔은 도시 방어전에 있어서는 구문명의 전성기에 가까운 화력을 자랑한다.
“그래. 구 문명 방어 화기. 칸달 급 거치형 레일건, 플라즈마 월, 편향성 초강력 전자석 등…. 돔의 명성이 전 세계에 떨칠 수 있었던 이유지.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시설인 만큼 매우 복잡한 단계를 걸쳐 가동되게 되어있어. 만약 올드 픽처가 저 커다란 덩치로 밀고 들어가서, 딱 한방만 빡쎄게 [끄어어어어엉~] 해주면 어떻게 될까?”
“….도시가 마비되겠군.”
“그렇지! 민간인이고, 병력이고, 관리인력이고 죄다 머리를 부여잡고 ‘으에엥! 나는 쥐며느리같은 놈이야! 죽어버릴래!’ 하고 훌쩍거리겠지. 집행부 친구들은 아마 100%를 위해 저런 연극을 준비했다지만, 굳이 연극이 없어도 올드 픽처를 제대로 자극만 해줬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도시를 공격했을 거라는 말씀. 그렇게 도시가 마비되면, 도시의 구문명 방어시설을 가동시킬 관리인력이 없어지고, 개쩌는 방어시설이 다운된 도시로 그 검은 파충류 친구들이 달려들게되면….”
“렙터가…. 47구역을 먹게 되겠지.”
짝짝짝짝!
하이드는 과장된 몸짓으로 박수를 치며, 결론에 도달한 이안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렇-지! 이제야 그 돌덩이 같은 머리가 좀 굴러가는군! HIV전원은 렙터의 수배자. 더는 교수의 그 쉘터에서 살 수 없게 되고, 이 인근을 지배하게 된 렙터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상당히 어렵겠지. 여기서 도망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힐 거야. 그거 알지? 렙터 애들이 생포한 인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메탈죠, 너 렙터 출신이라며? 잘 알 거 아니야?”
“….바이오 디젤. 생각하면 토할 것 같으니 그 얘기는 그만하지.”
츄르릅!
하이드는 저도 모르게 입에 고이는 군침을 닦았다. 렙터 친구들, 이름부터 식인 공룡이라 그런지 그와 제법 취향이 비슷한 것 같았다. 쓸모가 다한 인간을 ‘짜서’ 기름을 뽑아낸다니. 기름을 워낙 많이 쓰는 렙터 소사이어티다보니 여러모로 휘발유의 대용품을 찾다가 ‘바이오 디젤’ 이라는 기가 막힌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무튼, 저놈이 돔으로 가면 우린 다 죽어. 그렇다고 그냥 어정쩡하게 막아서면, 예의 그 [끄아아아앙!] 맞고 뇌가 곤죽이 돼서 죽고. 기왕 놈의 주의를 끌 거라면, 아주 강력한 한 방을 먹일 필요가 있다, 이 말이지. 최소한 놈이 소리를 못 지를 정도로 끝내주는 한방이.”
“화력이라…. 차에 어느 정도 싣고 오기는 했는데, 이거 써도 되는 건가? 교수가 뭐 계획이 있어서 가져오라고 한 건데.”
“아아, 그건 걱정 마. 그땐 그냥 평소대로의 연극인 줄 알고 준비한 거잖아. 연극이 무사히 끝나면, 47구역 사람들한테 사과할 겸, BDSM 이미지 관리할 겸 공짜로 선물하려고 가져왔으니까. 판촉용 B품이라도 어디까지나 메탈죠 너 같은 총 부자한테나 적용되는 기준이지, 일반 생존자들한테는 끝내주는 고급품이니까. 하루 날려 먹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는 차고 넘치겠지.”
뭐, 일이 이렇게 돼서 결론적으로는 지는 쪽의 잘못으로 덮어씌워지겠지만 말이야.
끼이익-!
하이드의 이어지는 말에 이안은 차를 세우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왜? 뭐?”
“….쯧. 네놈의 말투가 갈수록 교수랑 비슷해져 가는 것 같아서.”
“오! 그래서? 좀 친밀감이 생겼어?”
“아니. 더 혐오스러워졌다. 내려! 결국 저 괴물을 크게 두들겨 패야 된다는 소리이니, 무장은 해야지.”
“오! 무장! 총 보여줘 총! 총 한번 쏴보고싶- 으아악!”
이안은 문을 열고 호들갑을 떠는 하이드를 발로 밀어서 떨어트린 뒤, 트럭에서 내려 화물칸을 열었다.
드르륵- 덜컹!
“맘에 드는 걸로 골라잡아. 특히 짜리몽땅, 네가 작고 강력한 걸 선호하는 건 알지만, 이번에는 사람 멱따는 게 아니라 괴물을 잡는 거니까. 네껀 내가 골라주도록 할-”
“우와아아아아아아앙!!!”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르는 벡스에게 무장을 추천해주려던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환호성에 이안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총이다! GUN! 무기! 화약! 실물이다! 기억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총이야!”
그곳에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나무상자 속으로 뛰어들며 빠루로 뚜껑을 마구 열어젖히는 하이드가 있었다.
찰칵! 철컥철컥!
“베라타 92! 이탈리아 베레타 사에서 제작한 자동권총! 한 시대를 책임지던 녀석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으음~ 쇠냄새! 그 오랜 사용기간만큼 피를 많이 먹은 모델이라 그런가, 꼭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덜컥!
“FN P90! 일명 피구공! 이거 교수가 되게 싫어하는 거야! 특작대 시절에 죽은 줄 알았던 놈이 쓰러진 상태로 이거 드르륵 긁어서 교수 본인도 다리에 한 방 맞고, 부대원 중 한 명이 죽기도 했거든! 와, 그 기억 수십 번도 넘게 봤는데. 이걸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굉장히 전문적이고 광적인 반응.
벡스는 저도 모르게 이안을 쳐다봤다. 둘이 살 때, 새 화기가 들어오면 저거랑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녀석이었으니까.
“어, 으음…. 굉장히 잘…. 알고있군?”
“당연하지! 교수의 기억, 그중에서도 총기에 얽힌 기억은 수백 번도 넘게 반복해서 읽었거든! 여기 있는건, 교수가 오프라인 마켓에 처음 갔을 때 입구의 총포상이 팔고 있던 것과 같은 모델이야. 너무너무 가지고 싶었는데 더럽게 비싸서 껍데기가 침만 질질 흘렸던 놈이지. 이건 타렐 그라운드 방어전에서 녀석의 목숨을 구해준 녀석이고, 다 말해주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철컥!
하이드는 어지럽게 쌓여있는 중고 화기중 유독 커다란 리볼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녀석. S&W M500은 나한테 있어 정말 특별한 녀석이지. 교수가 저쪽 세계에서 마법을 쓸 때, 이걸 상상하면서 그 피로 만들어진 탄환을 쐈거든.”
이안은 하이드가 보물처럼 소중히 꺼내든 총을 보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S&W M500. 매력적인 녀석이다.
기다란 총열에 리볼버형 5발들이 약실.
이름처럼 500 S&W매그넘 탄을 사용하며, 이는 대구경 권총의 슈퍼스타, 데저트 이글의 50AE탄의 2배에 가까운 운동에너지를 낸다.
그 멋진 남자다움에 비해 무게, 장탄수, 실용성 등에서 완전 꽝이라 크게 선호되지 않는 녀석이기도 하고, 이안 그 자신이 권총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판촉용으로 분류해놓은 녀석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그리 나쁜 녀석은 아닐지도 모르겠는걸?’
흉악한 권총을 마치 아이돌을 직관하는 팬처럼 바라보는 하이드를 보자, 이안의 눈빛이 어느새 따뜻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크흠! 기생…. 하이드. 생각보다 양식이 있는 녀석이었군.”
“헤헤헤. 나 이거 가져도 돼? 쏘는 법은 껍데기가 알고 있어서 충분히 쓸 수 있어!”
“크흠! 뭐, 좋을대로. 탄은 저 구석에 있으니까 가져가고.”
“고마워! 정말 고마워 메탈죠! 이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써봐야겠-”
덜컥!
“우와오오오!!! 수류탄! M67! 동글동글한 모습 때문에 별명은 애플!”
두근.
“터지는 거! 폭탄이다아아!!”
두근 두근! 쿵덕! 쿵덕!
디즈니랜드에 처음 온 아이처럼 신나하는 모습의 하이드.
교수의 얼굴을 하고 눈앞에 화기들이 인생 최고의 보물이라는 듯 바라보는 하이드를 보며, 이안의 심장이 저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다.
교수와 벡스. 좋은 친구들이지만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것.
이안은 오랫동안 꿈꿔왔다. 멋진 무기가 앞에 있다면, 그처럼 사흘 밤을 세워가며 무기에 관해 토론할 수 있는 그와 같은 취향의 동료를.
비록 교수의 몸속에 들어있는 기생충이었지만, 놈의 영혼은 교수의 것과는 다른, 방아쇠와 도화선이 달린 영혼이었다. 그의 것과 같이, 화약과 탄환에 미쳐있는.
히주우욱!
결국 이안은, 그의 주책스러운 입꼬리를 제어하는데 실패했다.
[분명 내 목숨을 위협하는 놈이긴 한데…. 어쩐지 미워할 수가 없더라고.]‘아아, 박교수. 네놈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건만.’
“어이, 하이드.”
“왜? 설마···. 이건 못 줘?”
“못 주긴. 갖고 싶은 거 다 가져라. 하지만 애플은 화력도 대인용이고, 근력에 의지한 그 사거리 때문에 지금 상황에 쓰기에는 애매하지. 차라리 이쪽 유탄 발사기를 사용해보는 건 어때?”
“오오오! 유탄발사기! 끝내준다!”
크흐흐흐!
키득키득!
어느덧 죽이 맞아 급박한 상황도 잊어버리고 웨폰-토크에 빠져버린 이안과 하이드.
한쪽 구석에서 RPG 발사관을 만지작거리던 벡스는, 더욱 불안해진 눈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잘 들어라, 멍청아. 지원군이 오기까지 약 15분. 그동안 올드 픽처를 우리 둘이 저지해야 한다.”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올드 픽처의 거인 같은 본체를 보며, 랄프 몽클라르는 그와 같이 나온 신입 감찰부 대원에게 말했다.
“슈트의 실드가 놈의 정신파를 어느 정도 막아준다고는 해도, 저 상태에서의 정신파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 기껏해야 2~3번 정도면 우리도 정신을 잃게 되겠지. 그러니 그 전에 놈의 주의를 완전히 우리 쪽으로 돌리고, 전력으로 벗어나야 해.”
“저 커다란 덩치의 주의를 끈다…. 딱총으론 어림도 없겠는데요? 눈앞에서 춤이라도 춰야 하나?”
‘어쩌면 이 멍청이는 멀쩡할지도 모르겠군. 우울증이 발이 달렸다면 이녀석은 반드시 피해갈 것 같은 놈이니까.’
몽클라르는 나름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그와 달리, 시종일관 가벼워 보이는 그의 부하, 에젤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서 우울증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을 꼽으라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 삐딱한 부하를 뽑으리라.
“그래서 그거 들고 왔잖냐. 썬더 클랩.”
사실 이런 자살 임무에 다른 대원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두고 가기엔 에젤녀석이 엑소슈트에 미리 달아놓은 저 무장이 너무 필요해서 놓고 갈 수가 없었다. 선더클랩. 처음으로 올드픽처를 상대할 때 주먹구구식으로 겨우 놈을 제압하며 무수한 사상자를 발생시킨 이후, 대형 변종 등을 상대하기 위해 특별히 개발된 무기.
선더 클랩은 압축 배터리와 거기 연결된 장갑, 두 파츠로 이루어진 무기였다. 엑소슈트 양손에 장착된 장갑 파츠를 통해 짧은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전력을 방출하는 무기로, 작동하는 순간의 모습과 짜자자작, 하는 전기 튀는 소리가 마치 박수를 치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선더 클랩을 장착한 엑소슈트 여덟 기, 아니 일곱 기만 더 같이 왔으면 아예 제압을 노리고 움직일 수 있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그래도 주의 정도는 충분히 끌 수 있겠지.’
단점은, 초근접전을 전재로 하는 것과 전력을 순식간에 소모해 실드나 기타 보조장치의 사용에 제한이 생긴다는 점. 올드 픽처를 상대로 생각하면 놈의 코앞에서 얇아진 실드로 놈의 정신파를 직격으로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미안하다. 괜히 감찰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너를 사지로 끌고 들어와서.”
“하이고, 참. 어차피 같이 안 왔으면 혼자 나왔을 거라니까요? 같이 와줘서 고맙습니다, 몽부장님!”
“웃기는 녀석. 넌 살아남으면 크게 될 거다, 멍청아!”
철컹! 철컹!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중앙구역에 도착한 두기의 엑소슈트. 바로 달려들 준비를 하던 둘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뭐지? 뭔가…. 놈에게 쫓기고 있는데요?”
“나쁜 소식은 아니군. 우리보다 먼저 누군가가 시선을 끌고 있다는 소리이니···. 잘하면 본대가 올 때까지 놈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겠어. 검은 도색의 대형 트럭이라…. 렙터인가? 형태를 봐선 렙터의 무장 트럭인데 놈들의 마크가 없으니 애매하군. 혹시 저게 누군지 알아보겠나? 총성이 들리는 걸 보니 확실하게 놈을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글…쎄요? 망원 기관은 장착하지 않아서 좀 애매한….!!!!”
순간, 에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전에 교수네 쉘터에 갔을 때 봤던, 렙터 마크가 없는 검은색 무장트럭. 그리고 집행부에 의해 연극에 참여하게 된, 교수 일행.
두 상황을 연결하면 저 앞에 트럭에 타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맙소사···. 쟤들은 왜 맨날 뭔 일만 나면 그 중심에 있어가지고···.”
“왜. 뭣 좀 알겠….어어어, 어디가!”
철컹, 철컹!
“야! 기다려! 이제 굳이 우리가 먼저가서 주의를 끌 필요가 없어졌다고! 멍청아! 야 임ㅁ-”
랄프는 갑자기 홀린 듯 앞으로 움직이는 그의 부하를 말렸지만,
“사정이 있어서 먼저 갑니다, 부장님!”
“너 이새끼 당장 거기서! 야, 야!!!”
철컹철컹철컹철컹!
이미 에젤은 무장트럭과 그 뒤를 무섭게 따라오는 올드 픽처를 향해 달려가는중 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