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96
Chapter.7 가면 무도회(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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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좀 어지럽지만 그럭저럭. 전쟁 때 참호에서 꼬박 이틀 밤을 뜬눈으로 새웠을 때랑 비슷한 정도.
몸. 배고파. 생각해보니까 아침만 대충 때우고 점심도 안 먹고 이 지랄이 났으니까. 허기도 지고, 체력도 좀 딸리고. 온몸에 크고 작은 멍도 들었네.
팔. 드럽게 아픔. 뭐, 달리는 차에 매달려서 빠루로 박격포탄이 든 상자를 낚아챘다고? 관절이 안 빠진 게 이상할 정도다. 운이 좋았어.
그 외에는 뭐. 사소한 찰과상만 약간 있을 뿐 크게 문제 되는 곳은 없군. 전반적으로 작전 수행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좀 의왼데? 정말 곱게 쓰고 곱게 돌려줬네? 난 네가 죽어도 못 비킨다고 땡깡부릴줄 알았는데?’
[흐아아암. 나도 정말 그러고 싶었지만…. 사실 한참 전부터 졸려서 쓰러지기 직전이었거든. 생각보다 훨씬 피곤하네.]‘피곤하다라…. 뭐, 그럴만도 하군. ’
녀석의 기억을 대충 훑어보니 금방 납득할 수 있었다. 무의식에 기억된 정보를 죄다 훑어보다니. 우리 뇌가 알아서 필터링해주는 쓸모없는 정보들, 길가에 표지판이 휘어진 정도라거나, 도로의 중앙선에 하얀 페인트가 살짝 지워진 모양이라거나 하는 정보를 모조리 받아들인 거나 마찬가지다. 그 쓰레기 같은 정보의 바다에서 필요한 지식을 찾아내는 작업을 했으니, 정신적으로 지칠 만도 하지.
[미안. 네 계획을 보긴 봤는데···. 못 참겠더라고. 난 그렇게 태어났나 봐.]‘어쩔 수 없지. 솔직히 100% 따라와 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그거 보고 상황 파악이나 좀 했으면 하는 심정이었지.’
내가 세운 계획이라고 해봐야 올드 픽처가 폭주하기 전,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유추한 것으로만 짠 계획이다. 올드 픽처와 렙터, 돔, 그 외 수많은 변수가 얽혀있는 상황에서 그런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만든 계획은 반만 들어맞아도 말도 안 되는 행운이지.
‘현장에서의 계획이라는 건 항상 유동적이어야 하는데, 셋 중에 유일하게 머리 좀 쓰는 사람인 내가 기절할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가장 수동적이고 안전한 방향으로 짠 거였거든.’
아마 내가 깨어있었다면 그것보다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움직였을 테니, 어떻게 보면 하이드가 내 생각보다 훨씬 잘 움직여 준 것이 되겠다.
[잘했어? 정말? 너 밖에 나오면 엄청 욕먹을 줄 알았는데!]‘가서 잠이나 자 임마. 내 생각보다 잘했다는 거지, 막 그렇게 칭찬받을 수준은 아니니까.’
결국 하이드는 내가 아니니. 현 상황을 이용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위협을 제거하는 데서 그쳤단 말이지.
‘저 정도로 맛탱이가 간 올드 픽처라면 제법 멀리까지 도망갔어도 따라왔을 테니까. 한창 렙터 녀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유도했으면 쏠쏠했을걸?’
개인적으로 생각한 100점짜리 정답지는…. 올드 픽처를 돔과 렙터가 싸우는 전장 한 가운데로 끌고 가는 것.
올드 픽처의 육체적 능력은 그냥 커다란 2형 변종 수준이고, 위험한 건 정신파 한가지니까. 자체적으로 실드를 생산할 기술을 갖춰 엑소슈트부터 군용 차량까지 실드로 도배한 돔의 병력과 주로 21세기 초에 사용하던 구형 병기가 주를 이루는 렙터의 병력. 올드 픽처의 영향을 누가 더 많이 받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이게 얇은 실드라도 한 장 있으면 효과가 꽤 많이 줄거든.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정도지. 하이드가 한 것 치고는.”
“그아아아악! 죽인다! 내 차! 내 장사 수단! 다 죽여버린다! 구멍이란 구멍에 죄다 도폭선을 쑤셔 넣고 오븐에 넣어서 튀겨버릴거야아아아!!”
….사소한 피해가 있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예상보다 훨씬 일찍 올드 픽처를 제압했다는 거니까.
교수가 악을 쓰는 이안을 슬쩍 외면하는 동안, 뒤에서 주춤거리고 있던 작은 인영이 슬그머니 그의 뒤로 접근했다.
“저기….”
“아, 벡스! 하이드 녀석 맞춰주느라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어.”
“역시, 햅번 맞구나! 돌아왔어!”
“으윽, 야. 반가운 건 알겠는데, 피 좀 닦고 얘기하자. 너 무슨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처럼 보여.”
“키히히힛! 정말 햅번이 맞구나!”
온 몸에 피칠갑을 한 벡스는 그 불그죽죽한 얼굴로 해맑게도 웃었다.
“일단 하이드가 네 계획을 말해줘서 여기까진 어떻게 했어. 이제 괴물을 잡았는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
“어, 음, 내 계획…. 뭐, 그렇다 치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
“신경 쓸 거 없어. 아무튼, 올드 픽처가 제압되었으니 이제 감찰부 사람들이 도착하는 것만 기다리면 될 거야.”
“감찰부라…. 잠깐만. 제압? 죽은 게 아니라? 저렇게 머리가 날아갔는데도?”
“3형 변종은 기억을 기반으로 한 생물이라고 했잖아. 애초에 그 신발더미 형태에서 이런 상반신 거인으로 변한 것 보면 모르겠어? 육체의 형태에는 큰 의미가 없는 녀석이야. 지금은 육체의 30% 가까이를 잃어 충격을 받고 활동이 멈춘 것일 뿐, 시간을 주면 다시 재생해서 미쳐 날뛰게 되겠지.”
하이드 녀석이 내 기억에서 올드 픽처에 대해 조금만 더 공부했다면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굳이 머리를 날려버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놈을 제압하는데 필요한 건 특정 부위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면적에 피해를 누적시키는 거니까. 박격포탄 끌어모은 거 그냥 길목에 뿌려놓고 터트렸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라 이 말이다. 그랬으면 이안의 트럭도 무사했을걸?
“감찰부 사람들이 이런 거대한 변종 잡을 때 전기충격기 같은 걸 쓰는 것도 그런 이유지. 움직임을 멈추기도 쉽고, 지속적으로 지져서 면적 단위로 태워버리면 금방 제압되니까.”
“감찰부 사람들이…. 전기충격기를 써?”
“아, 너는 모르겠구나. 그 이상한 로봇 장갑 같은 걸 엑소슈트에 장착하는데….”
철컹, 철컹!
할 일도 없고 해서 벡스에게 엑소슈트에 대해서 좀 설명해주려는데, 올드픽처가 기어 올라온 오르막의 반대편에서 귀에 익은 기계음이 들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벌써 감찰부 위력부대가 도착한….
‘아니지. 소리가 하나뿐이니 누가 먼저 왔나 본데? 정찰인가? 정찰이라고는 해도 슈트 하나하나의 출력이 소중한 상황에 한 명을 따로 노출 시켜서 빨리 리타이어시키는 건 말이 안 되는….’
“”“교수야아아아아악!”“”
철컹철컹철컹철컹철컹!
기우웅-
콰드드득!
슈트에 내장된 스피커로 확대된 기계음과 함께 힘차게 언덕을 넘어 일행이 있는 전망대에 착지하는, 노란 장갑 같은 걸 낀 은빛 기계 외골격.
“”“다들 뒤로 물러서! 놈은 내가, 내가….아?”“”
언덕을 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살덩어리에 비장하게 외치며 출력을 올리던 에젤은, 뭔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닌 전망대의 분위기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있는 교수와 그 키 작은 늙은이. 저번에 만날 때도 묶여있더니, 이번에도 묶여있는, 이빨로 벨트를 물어뜯는 중인 커다란 남자, 이안.
그리고, 미동도 없이 전망대 앞에 매달려있을 뿐인, 어딘가 요철이 하나 부족해 보이는….
“오, 에젤! 맞다. 너 감찰부였지? 빨리 왔네?”
“”“어 그래 오랜만…. 이 아니라! 그 괴물! 저기 있는 거 올드 픽처 맞지? 저놈 머리통 어디 갔어?”“”
“아, 저거? 어쩌다 보니 정리했다. 그나저나 빨리 왔네? 나머지는?”
“”“아니, 나는 너희들을 구하려고….”“”
에젤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상황에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지? 놈은 왜 폭주했고, 책임져야 할 집행부는 다 어디로 가고, 아니, 다 떠나서 저 걸어 다니는 재앙 같은 놈이 왜 듀라한 같은 꼬라지가 되어있는 거야? 근처에 아무도 없는데? 설마…. 진짜 얘들 셋이서 저렇게 만들었다고?
HIV 싸움 잘하는 거야 집행부나, 감찰부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하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정보로는 어디까지나 생존 능력. 위기 회피와 게릴라전에 특화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생물 병기인 3형 변종을, 폭주한 올드 픽처를 셋이 처리했다고 말하는 건가? 연극을 하러 나왔는데 ‘아, 폭주했네. 그건 곤란하지.’ 하고 그냥 잡아 족쳤다고?
저벅 저벅 저벅.
손목을 툭툭 털며 자신의 엑소슈트로 다가오는 교수. 에젤의 머릿속에서는 HIV의 위험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쪽으로 마구 연타하고 있었다.
“읏-차. 에젤, 거기 통신라인, 열려있지?”
“어? 그, 어, 그….렇지?”
“됐다 그럼. 딱 필요한 시점에 잘 와줬네. 고맙다. 참 잘 와줬어. 거기, 통신 좀 잠깐 열어봐. 현 상황에 대해서 할 말이 있으니까.”
“어, 그, 그래.”
티끌 한 점 없이 웃고 있지만, 어딘가 묘하게 박력 넘치는 모습에 에젤은 [돔의 첨단병기에 절대 외부인의 손이 닿지 않게 할 것]같은 규율은 깡그리 잊어버린 채, 교수의 손에 통신기를 넘겨주고 있었다.
칙, 치익-
[부, 부장님! 통신 연결됐습니다!] [뭐? 야, 에젤. 들리냐? 들리면 대답해 이 새끼야!] [답이 없는데요? 역시 아까 그 폭발은….] [델마르 이 새끼야! 넌 재수 없는 소리 할 시간 있으면 빨리 집결지까지 쳐 오기나 해! 야! 에젤! 대답해라! 아무 말이나, 신음소리라도 좋으니까 살아있다는 신호만 보내라고!]통신이 연결되자마자, 순식간에 왁왁 울려대는 감찰부 사람들의 목소리들.
“너 혹시…. 탈영했냐?”
“탈영은 아니고. 부장님이랑 나랑만 부대원들보다 좀 일찍 도착했는데, 너네들이 올드 픽처 끌고 다니는 거 보고 부장님이 기다리자고 하더라고. 나는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그래서. 통신 채널도 닫아버리고 단신으로 오셨다? 지휘관을 혼자 내버려 두고?”
“헤헤헤… 나는 혹시나 너희들이 위험할까봐….”
“어휴. 잘 했다, 임마. 아주 가슴이 뜨뜻미지근하네.”
절박한 목소리를 들어보니 걱정을 많이 하긴 한 모양이다. 하긴, 갑자기 부하 직원이 빌딩만 한 괴물을 향해 뛰쳐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크게 터지는 소리가 났으니까. 나 같아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저 녀석, 당했잖아! 역시 말렸어야 해!’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자책하고 있었을 거다.
“….그렇다는데? 빨리 뭐라도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
“좆됐다…. 몽부장님 저렇게까지 흥분하신 거 처음 보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에젤은 딱 그런 상태였다. 머리에 피가 몰렸을 때는 귀 막고, 뇌 뽑고 생각 없이 달려들었다가 슬슬 제정신이 돌아오자 감당하지 못할 후폭풍에 덜덜 떨고 있는 상태.
“쯧. 할 말 없으면 내가 정리한다?”
“난 기절한 거다. 제발! 늬들이랑 같이 올드 픽처와 장엄한 전투를 치르고, 기절한 거로 해줘!”
쓰고 있던 모자까지 벗어가며 간절하게 비는 에젤의 모습에, 교수는 피식 웃으며 통신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안 되겠다. 나 지금 출발하니까, 알아서들 뒤따라와라!] [안 됩니다 부장님! 이미 에젤이 죽은 사지에 부장님까지 따라 들어가시면-] [1분! 1분만 기다려주십-!]치이익, 치익-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잘 들리십니까-]통신기에 대고 말을 하자 그 옆에 작은 디스플레이에 에젤을 나타내는 ‘EZ-07`에 녹색불이 들어오고, 순식간에 감찰부 통신라인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당황스러운 침묵 속에서, 깜박거리며 녹색불이 켜지는, ‘LM-01`
[에젤…. 인가? 목소리는 다르지만, 묘하게 재수 없는 게….] [01이면 부장님이로군요. 저는…. 잠깐만. 목소리가 좀 익숙한데. LM…. 에젤녀석이 몽부장이라고 했으니까, 혹시 랄프? 랄프 몽클라르? 당신 부장 달았어?] [에젤은 아니군…. 누군진 모르겠지만, 에젤을 제압했다거나, 보호하고 있다면 그대로 곱게 데리고 있는 게 좋을 거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 줄도 알겠지….]걱정 가득한 동네 아저씨에서 순식간에 냉정한 감찰부로 돌변하여 위협하는 랄프의 목소리에, 교수는 킬킬 거리며 통신을 이어나갔다.
[아이고, 그럼, 잘 알지요. 몇 년 전에 몽랄 났다, 몽랄도 풍년이다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또라이 아니었습니까, 랄프씨.] [랄프 씨? 너 설마….?]세상에. 내가 아주 황무지에 혼자 살고있었는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군. 이렇게 여기 저기서 옛 인연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교수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와 돔에 함께 살던 시절, 자신을 많이 도와주었던 반 대머리 삼촌뻘 형님을 떠올리며 말했다.
[흠흠.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BDSM의 수장이자, 대부분 아시겠지만 HIV로 불리는 무리의 H, 햅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47구역에 거주 중인 박, 교, 수 라고 합니다.] [박교수…. 박교수…? 잠깐만. 설마 6년 전에 그, 집행부 빡고수?] [흐흐흐. 랄프형님, 간만입니다.] [너너너…. 너 분명 죽었다고….!]‘돔에는 그렇게 알려졌겠지. 내부고발에 의해 집행부의 치부가 드러나 새로 들어온 대원 한 명이 도주한 상황보다는, 그 대원이 임무 중 죽은 것으로 알려지는 게 집행부 입장에서는 훨씬 깔끔할 테니까. 어디 가서 내가 박교수라고 떠들고 다닐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대화방에서, 혹은 여기저기서 나를 교수라고들 불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아이디인 `professor`의 뜻으로 부른 것일 뿐, 내 본명이 박교수인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일과 연관된 집행부 사람, 이안, 벡스, 그리고 우진 영감님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지. 집행부가 거하게 헛발질을 해서 약점을 드러내고, 돔이라는 무적의 방패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으니. 내가 내 이름을 밝히면 안 될 이유가 이제 하나도 없거든.’
5년. 길었다. 복수의 칼을 갈아 그 칼이 닳아 없어질 만큼 길었다고.
이제 그 복수의 순간이 눈앞으로 다가왔으니,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줄 필요가 있겠지.
교수는 박교수라는 이름을 곱씹다 입을 떡, 벌리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릅 뜬 에젤을 뒤로하고, 당황한 랄프의 통신에 답했다.
[그러게요. 그날 죽었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또 살아남았습니다. 랄프형님, 그리고 감찰부 대원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에 집중해 주시길.]아까와 같은, 그러나 전혀 다른 침묵.
[일단 에젤은 잘 살아있습니다.] [와아아아!!!] [하긴, 그 멍청이는 저승사자가 데려가다가도 시끄러워서 도로 떨굴 놈이지!] [어디, 어디 다친 데는 없나?]랄프의 말에 교수가 슥, 하고 뒤를 돌아보자, 에젤이 소리없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음…. 멀쩡합니다. 너무 멀쩡해서 돌아가서 혼날 걱정을 할 정도로요. 자기 기절한 거로 얘기해달라던데-]“야!!!”
[-요. 하하하하!]“박교수, 너….!”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지? 간게야?”
음, 후련해라. 한 1/100정도 갚았군.
[그, 그럼. 그 폭발음은? 엑소슈트가 터진 게 아니었다고?] [아, 그건 저희 BDSM영업용 차량이 터진 겁니다. 올드 픽처를 상대하다보니 부득이하게 그만. 이거 나중에 정산해 주셔야 합니다. 돔의 행사를 민간 기업인 BDSM이 처리해준 거니까.] [처리했다고? 죽였다는 말인가? 올드 픽처를?] [에이, 그 정도로 저놈 안 죽는 거 알면서 떠보시긴. 제압해놨습니다. 지금 한….]뽀그륵, 부그르륵!
[어…. 7분? 8분 정도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겠네요.] [그러니까, 정말로 아까 그 검은 트럭 한 대로 놈을 제압했다 이 말이군. 참…. 옛날부터 재주가 비상한 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고생했어. 놈이 제압됐다면 이번 일은 거의 다 끝났으니, 이제 우리에게 맡기고-] [에이, 형님도. 끝나긴 뭐가 끝났다는 겁니까. 이제 시작인데. 이럴 시간이 없어요. 비상이란 말입니다, 비상.] [비상? 올드 픽처 말고 다른 문제가 더 있나?] [어? 아무것도 모르십니까?]분위기를 보아하니 정보를 감추는 게 아니라 진짜 모르는 모양.
‘오호라. 아직 감찰부에서 감도 못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내부에서 테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뜻이렷다?’
역시, 올드 픽처를 먼저 잡아버린 덕분에 저쪽의 진행보다 한타임 앞서있게 됐다. 의도치 않은 행운. 이걸 이용하지 않으면 병신이지.
교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혼란에 빠진 감찰부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단 명료한 단어로 통신을 보냈다.
[집행부가 배신을 하고, 렙터와 손을 잡았으며, 우리가 이렇게 떠들고 있는 사이에도 돔에 남아있는 집행부 사람들이 테러를 감행하고 개떼처럼 몰려온 렙터가 돔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말입니다.] [뭐, 뭐라?!!!]“뭐라고오오오?!”
통신기와 귓가에서 서라운드로 울리는 경악을 들으며, 교수는 즐겁게 답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쎄빠지게 달려온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로 돌아가 주셔야겠습니다. 여긴 제가 정리했으니 빈집털이만 막으면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