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98
Chapter.7 가면 무도회(13)
***
교수는 상자 안에 들어있던 작은 신발 한 짝을 꺼내 들었다.
파랗고 하얀 운동화. 로봇 그림부터, 작은 얼룩, 닳아서 지워진 부분까지 완벽하게 기억 속의 남자아이가 신고 있던 운동화 그대로였다.
“엄청 잘 만들었네요.”
“돔의 안마당에 풀어놓은 괴물을 상대할 마지막 보루니까. 놈의 마지막 기억을 본 대원들을 GG에 접속시킨 다음, 기억을 투영하는 마법 스크롤을 사용해서 올드 픽처가 전달한 기억을 영상으로 뽑았지. 나름 전략 병기로 취급되는 놈의 열쇠이니 제대로 만드는 게 당연하지.”
[꺼어어어…. 어어…. 아아아…..]각양각색의 신발로 둘러싸인 몸체가 흘러내리고, 그 안에 숨어있던 올드 픽처의 본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억 속 마지막 모습 그대로의, 끔찍한 화상을 입은 성인 남성의 모습.
“오랜만에 보는군. 지난번 연극 이후로 처음인가, 놈의 본체를 보는 건.”
“이것도 본체라고 보긴 좀 그렇죠. 어떻게 보면 놈의 세 가지 형태가 다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놈의 형체니까.”
평상시 인형을 들고 다니는 신발 더미. 폭주했을 때의 반신 거인. 그리고 지금 모습을 드러낸, 흉측하게 녹아내리는 김도진의 마지막 모습. 3형 변종은 능력에 따라 형태를 변환하는 녀석도 많지만, 저렇게 극적으로 모습을 바꾸진 않는다. 숙주의 마지막 기억, 죽음의 순간 자신을 바라본 형태가 저렇게 다양할 수는 없으니까.
올드 픽처가 저렇게 형상이 고정되지 않은, 불안정한 모습의 3형 변종이 된 이유는 하나였다.
“충격으로 인한 자폐증…이라고 해야 하나. 김도진 씨의 기억은, 마지막 순간에 조각나버렸으니까.”
명확하게 눈으로 확인한 사실. 아들과 아내의 죽음.
충격으로 깨져버린 김도진의 정신은 현실을 부정하고 배척하는 자아와, 현실에서 도피하고 망상 속에 살기를 원하는 자아, 그리고 그날, 아들의 잘린 손목과 발을 들고 울부짖던 그 순간에 멈추어 버린 자아. 셋으로 나뉘어버린 것이다.
하나의 순간에 공존하는 세 가지 기억. 올드 픽처가 저렇게 불안정한 형태를 가지게 된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하는 이유는, 분열된 자아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목표로 하는 것, 가슴 깊이 원하는 것은 한치의 틀림도 없이 같았기 때문이다.
칙, 치익-
후우우-
씁쓸한 침묵 속에서 이안의 라이터 소리만 담담하게 울려 퍼졌다.
“이래서 내가 옛날얘기를 싫어하는 거라고. 황무지에서 듣는 옛날얘기는 십중팔구는 슬픈 얘기거나, 잔인한 얘기지.”
이안은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콘크리트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올드 픽처의 세 번째 모습, 김도진을 보며 말했다.
“괴물인 줄 알았더니, 그냥 정신 나간 아버지였어. 피난민촌에서 흔히 보던 거랑 같은.”
“그렇지. 놈이 이곳에 자리 잡고 같은 정신파를 몇 년째 뿜어낸 것도 그거니까.”
[아아, 아아아…. 우이아….아드…. 아으으으…. 모오아아아어….]약해질 대로 약해져서도 흐릿하게 머릿속을 파고드는 기억. 아버지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작은 남자아이와, 지직거리는 노이즈 속에서 줌을 당기듯 강조되는 아이의 신발.
[이어어어…. 이어어어아…. 으…. ㅅ…. 시이이이이….ㄴ…. 브아아아…..]진물과 고름이 가득한 몸으로 일행의 앞으로 기어와, 보물처럼 품에 안고 있던 신발을 들어 보이는 올드 픽쳐.
“햅번. 설마 저거….”
“그래. 그거야. ‘우리 아들 좀 찾아주세요. 이렇게 생겼고, 키는 요만하고, 제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파란 신발을 신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폐가 타버린 김도진 씨의 마지막 기억. 부정에 부정을 거듭해도 자신이 죽은 그 자리, 임계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살아나 행복한 꿈에서 그를 현실로 내팽개치는 기억이지.”
몇 년 동안 47구역에 울려 퍼진 괴물의 정신파는 적의도, 호의도 없이 그저 목소리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아들을 찾는 외침일 뿐이었다.
“형님. 올드 픽처 계획은 처음부터 그런 거였죠? 놈을 진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거리가 아니라….”
“….그래. 놈의 망상, 신발을 찾으러 다니는 괴물 쪽 기억을 현실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거였지. 모형 정원을 만들기 전에 올드 픽처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인 쪽 모습으로 돌아다녔으니까. 원래 집행부에서는 당연히 놈을 죽여 없애는 것을 가정하고 달려들었는데, 전투 중 놈의 기억을 보고 당시 작전에 참여하신, 지금은 총장님이 된 분이 생각을 달리하신 모양이야. 명확하게 나타난 놈의 목표. 가끔 보여주는, 헌 신발을 줍고 다니는 놈의 특이한 행동, 그리고 그 위력과는 별개로 공격성이 적은 놈의 모습을 보며 올드 픽처를 제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셨다더군.”
“역시. 그럼 그냥 내버려 뒀으면 녀석은….”
“어느 순간 알아서 한쪽 기억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았을까? 처음 그 상태라면, 아마 아들이 죽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하지만 현실의 트라우마에 기반한 커다란 녀석 쪽은 컨트롤이 안 되니, 돔에서는 망상 쪽 기억을 강화해주기로 한 거고. 뭐, 결과는 지금까지의 평화로운 47구역이 증명하지. 거리를 만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다니는 구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세 가족이 거리를 걷는 모습을 원하는 녀석에게 정말 사람처럼 생긴 마네킹도 쥐여주고. 뭐야. 표정들이 왜 그래?”
“몽부장님, 그건…. 좀 쓰레기 같은데요?”
“그러게. 못돼 쳐먹어가지고. ‘우리 아들 어딨어요?’ 하는 불쌍한 애 아빠한테 현실을 말해주진 못할망정 ‘잘 찾아보면 이 근방에 있을 겁니다~’ 한 거 아냐. 누가 돔 새끼들 아니랄까 봐.”
지금 상황에 감화되어서 그런지 약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에젤과 이안. 하지만 교수는 그들과는 달리 감찰부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별수 있나. 내가 돔을 싫어하긴 하지만, 솔직히 그때 올드 픽처를 속인 판단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봐. 이미 죽어 괴물이 된 남자 한 명과 47구역 치안율 상승. 위정자의 눈으로 봤을 때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지.”
이른바, ‘대의’라는 것, 더 큰 선을 위한 희생이라는 것이다. 분명 지금 같은 현실에 맞는, 훌륭한 선택이었지만….
‘참 좆같이도 훌륭한 선택이지.’
교수는 예전부터 그런 식의 궤변이 싫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독극물을 주사한 놈들도 그런 식의 변명을 입에 담았을 테니까.
‘저놈이 돔에게 목줄 채여서 더 많은 적을 죽이면, 그만큼 돔의 평화에 이바지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니 이것은 옳은 행위다……’
이게 뭔 개소리야. 안 그래도 선, 악 구분이 복잡한 세상에 그렇게 한 바퀴 돌려치면 세상에 선의가 아닌 게 어딨냐고.
뭔가를 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을 줬다면 그건 나쁜 짓이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진 않을지언정 스스로가 하는 일이 나쁜 짓이다, 하는 자각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게 교수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어쨌든 올드 픽처에게 돔이 행한 일은 대단히 나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그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지만….
“이제 풀어줍시다. 이 녀석, 그동안 밤낮없이 47구역을 위해 고생해왔잖아요.”
그래도 가끔 근처를 지나칠 때마다 좀 불편하긴 했으니까.
흘러내리는 남자의 손에, 그가 쥐고 있는 것과 똑 닮은, 반대쪽 신발이 올려졌다.
[…..]환호성도, 울부짖음도. 그 어떠한 소리도 없었다. 그저 끝없이 흘러나오던 신음을 멈추고, 세상을 처음 본 맹인의 그것과 같은 눈으로 이제 한 쌍이 된, 파란 운동화 한 켤레를 바라보고 있을 뿐.
올드 픽처, 김도진은 그렇게 오랫동안 갈구하던 아들의 신발을 소중히 품에 안은 채, 느릿하지만 분명한 발걸음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마네킹들을 향해 걸어갔다.
기억 속 아들의 신장과 모습에 맞추어 제작된 마네킹의 발에, 오랫동안 품어왔던 운동화와 새 운동화가 신겨지고.
마침내 지난 수년간 염원하던 단 하나의 모습. 신발을 되찾은 아들의 손과, 아내의 손을 잡은 자신의 모습을 완성한 올드 픽처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손만 붙잡았을 뿐인 아내와, 아들의 마네킹이 힘없이 쓰러진다. 흘러내리는 살점에게도 표정이 있다면 슬픈 듯, 후련한 듯 애잔한 표정을 짓던 올드 픽처도. 힘없이 허물어져 내린다.
달칵!
덜그럭!
철퍽!
약속이라도 한 듯,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고 쓰러지는 세 개의 인형(人形).
바람에 재가 흩날리듯 녹아내린 올드 픽처의 몸이 잘게 부서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품에 끌어안은 아들과, 아내의 마네킹과 함께.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일행은 그 장엄하고 허무한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38구역에 사는 해피 블라인드, 그 종교쟁이들은 3형 변종을 변종이라 부르지 않더라고.”
“크흠, 흠! 그럼 뭐라고 부르지?”
“원귀(寃鬼).”
“그거, 딱 어울리는 이름이군 그래.”
마네킹을 끌어안은 김도진의 몸도, 현실의 기억에 울부짖던 거인도, 망상 속을 거닐던 수많은 신발에 연결된 살점들도 모두 재가되어 사라져갔다.
한차례 바람이 불고 지나간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남겨진 신발들과 그동안 김도진의 역할을 하던, 성인 남성 크기의 마네킹뿐.
“3형 변종은 기억의 완성, 숙주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바라던 장면의 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생물이니까. 올드 픽처, 김도진이 그 삶의 끝에서 그렇게나 간절히 바라던 장면이 완성된 순간, 그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허물어져 사라진 게 아닐까.”
“이 녀석이 좀 특이해서 그럴 거다. 다른 3형 변종들은 완성된 기억을 토대로 몸을 만들었으니까. 행정부 연구원들이 말하길, 올드 픽처의 경우 불안정한 기억을 토대로 몸을 만들었으니 저런 식으로 기억이, 목표가 완성되는 순간 목표를 잃은 바이러스가 새 숙주를 찾아 떠날 거라고 하더군. 올드 픽처는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몸을 만들었을 뿐, 의식까지 만들진 못했으니까. 그래서 저렇게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싶은데.”
“에이, 형님.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 저기 가잖아.”
“음? 뭐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돔에서 나온 부장님은, 안 살아서 착하게, 안 보이나 보지. 나도 보이는데? 저어기. 셋이 손잡고 돌아가는 거.”
“크흠! 흥! 제기랄, 빌어먹을! 재가, 재가 눈에 들어갔나 봐. 눈이 매워서, 그래서…. 크흥!”
“으어흐어어으어어어엉! 잘 가, 잘 가! 애아빠! 고생 많았….어!”
교수 일행과 에젤, 랄프는 잠깐의 묵념으로 올드 픽처가 무사히 갈 길을 찾아가길 기원했다. 황무지에 사는 사람으로서, 비극 속에 무너져내린 저 남자의 모습이 언제 자신의 모습이 될지 모르는 거니까. 남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
“….자! 마무리 끝! 바로 이동합시다!”
“그래. 감상적으로 있을 시간은 없겠지. 애초에 후방에 위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올드 픽처를 해방했는데, 전투에 늦으면 본말이 전도된 거니까.”
슬픈 건 슬픈 거고, 바쁜 건 바쁜 거지. 지금 훌쩍거리다 한발 늦으면, 앞으로 슬퍼할 일이 더 생길 거거든.
“흐어어엉, 누구, 누구 휴지 있는 사람 없어?”
“그냥 손에 풀어서 대충 털어내고 닦아. 시간 끌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패애애앵!
“박교수, 이 박정한 자식….”
“네가 감수성이 지나치게 풍부한 거다, 에젤.”
교수는 그의 오랜 인터넷 친구의 뒤통수를 철썩! 때려준 다음 나머지 일행을 향해 눈을 돌렸다.
“누가 물 좀 줘봐, 물. 나, 눈에 들어간 게 안 빠져나왔 -크흥!- 는지 자꾸 눈물이….”
어이구. 여긴 더 심하군. 아주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좔좔 쏟아내는데?
“이안 너도 이자식아. 생긴 거랑 다르게 눈물이 많아서는···. 갱년기냐?”
“이익, 너도 결혼해서 애 낳아봐 이자식아! 자식 있었던 사람은 저런 거 보고 눈물이 안 날 수가 없다고! 남 일 같지 않단 말이다!”
군복 소매로 눈물을 벅벅 닦으며 소리치는 이안. 그냥 흘려듣기엔 의미 있는 그 말에 교수가 멈칫하던 그 순간,
“있었….던? 죠, 너 혹시….”
“야, 벡스!”
“….아차!”
벡스 녀석이 눈치 없이 이안에게 되묻고 말았다.
다행히 별 감흥이 없는 건지, 잘 정리한 건지 이안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냐, 됐어. 지난 일인데 뭐. 딸도 있고, 마누라도 있었지. 지금은 다 죽었지만.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둘 다 이거나 받아둬.”
휘익-
타악!
“이건….”
“Ak-47. 트럭 터지면서 날아온 것 중에 몇 안 되는 멀쩡한 놈이야. 딱 한탄 창 장전되어있으니까, 급한 대로 쓰고 가서 노획해서 쓰자고.”
이안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며, 교수와 벡스에게 그을린 자국이 있는 총을 던져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감찰부장, 랄프 몽클라르는 황당한 표정으로 일행에게 반문했다.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렙터와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건가? 거의 반파된 거나 다름없는 소총 한 자루만 들고?”
“뭘 당연한 걸 새삼스럽게. 몽형, 그럼 우리 여기 놓고 가게?”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렇지. 올드 픽처는 정리됐고, 도시의 방어시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네스트가 통째로 이동해서 이곳을 덮치지 않는 한 우리끼리도 충분히 방어하는 게 가능하니까. BDSM은 정말 충분히 잘 해줬다고. 굳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돔에서 섭섭지 않게 대우해줄···.”
“아이고, 개똥 같은 소리 그만하시고 빨리 가자구요. 섭섭지 않기는 무슨, 벌써 섭섭해지려고 하는데. 돔이야 별일 없으면 렙터 군단이 한 다스가 몰려와도 막을 수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닙니까. 물론 스웜 알파급 왕대가리가 친위대를 끌고 오면-”
“쿨럭! 케핵!”
“-또 모르겠지만, 그런 놈들은 이런 기습작전에 끼어들기엔 너무 덩치가 크거든. 이안, 또 왜 그래?”
“사, 사레들렸어.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이상하기는. 아무튼, 지금 타이어에 불나도록 달려오는 랩터 친구들은 다 잡은 먹이나 마찬가지라, 이 말입니다.”
“흐음. 그러니까 박교수 네 녀석 말은…. 다 잡은 고기이니 전리품 분배에 끼워달라, 이 말인가?”
“저희 BDSM의 성과 정도면 충분히 끼어들 만하지 않습니까? 우리 아니었으면 지금쯤 감찰부 사람들 목숨 걸고 올드 픽처랑 싸우고 있었고, 우리 아니었으면 이게 집행부와 렙터의 음모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신명 나게 두들겨 맞고 다 죽었을 텐데. 논공행상에야 당연히 끼워주는 거고, 전투 중에 노획물에 대한 권리도 인정해달라, 이겁니다.”
위우웅- 철컥!
다섯 명의 일행을 나눠서 태운 엑소슈트가 몸을 일으킨다.
“교수 네 녀석…. 옛날에 그 우울한 다재다능 살인귀는 어디로 가고, 장사꾼이 다 됐군.”
“형님은 정치인이 다 되셨고요. 어딜 슬쩍 빼놓고 가려고.”
“그런 거 아니야 이자식아! 진짜 네 쪽 사람들 다칠까 봐 그런 거라고! 너희 정도 되는 녀석들이 합류해주면 우리 쪽에게선 오히려 땡큐지 이자식아!”
기이이이잉-!
엑소슈트의 배터리가 전력을 공급하며, 푸르스름한 실드와 함께 기계 외장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좋다고! 트럭 한 대로 3형 변종을 잡은 놈들을 걱정하다니, 내가 병신이지. 집행부 병기창 열어줄 테니 필요한 거 챙겨서 전장으로 나와. 끼워줄 테니까.”
“오오오! 몽형! 약속한 겁니다! 거기서 ‘뭘’ 챙기든 다 우리꺼야!”
“….상식적인 선에서 부탁한다. 나 올드 픽처 하나만 해도 시말서로 만리장성을 쌓을 지경이니까.”
교수의 귀가 다른 말은 대충 흘려들었다. 허가받았다. 에젤 같은 하급 공무원이 아닌, 무려 감찰부 부장님으로부터 ‘대(對) 렙터 소사이어티 전투 간 노획 허용’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그래! 목숨 걸고 3형 변종 잡아주고, 도시를 통째로 구해준 거나 마찬가진데 이 정도는 받아야지!
“흐흐흐흐. 야, 이안. 들었냐? 이제 우리 공식적으로 돔 앞에 떨어진 랩터 애들 차량 노획 가능하단다.”
“크흐흐흐. 들었지. 이 두 귀로 똑똑히 듣고말고. 돔의 병기창에, 렙터의 차량이라…. 그래. 내 재산 1호를 투자했으니, 그 정도는 돼야 수지가 맞겠지.”
“키히히힛! 돔! 구시대 문명과 자산의 집대성! 모든 스캐빈저들이 한 번쯤 털어봤으면 하고 염원하는 곳이지! 전쟁이라…. 세상에 전쟁만큼 혼란스러운 상황도 없지…. 귀한 물건 한두 개 정도는 없어져도…. 키히힛!”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저…. 몽부장님? 진짜 괜찮은 것 맞아요?”
“뭐가?”
“아니 그게….”
에젤은 그의 뒤에 타서는 히죽거리는 교수와 그 일당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홀라당 털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리드플로우 마탑과 훔친 물건에 파묻혀 낄낄거리던 게임 속 교수. 어째서인지 에젤의 머릿속에 그 모습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상식…. 상식적인 선이라…. 그럼요 형님, 상식 좋지요…. 흐흐흐흐!”
‘아무래도 실수하신 것 같은데….’
트럭 한 대와 세 명의 인원으로 올드 픽처를 작살내는 사람들의 상식을 가늠해보며, 에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