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31
331. 달 밝은 밤 (4)
보통 시력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미세한 차이.
하지만 지율이는 캐치했다.
퀸의 머리카락은 문어발과 같지만, 일단은 모발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도 현미경으로 확대하고 또 확대하면 결이라는 게 있다.
퀸의 문어발 머리와 등껍질이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한 것 같았지만, 문어발 머리의 결이 약간 손상되면서 살짝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다. 아주 작은 큐티클과 같은 부분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확대해서 보니 보이네요!”
고래 새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오늘 시합의 결과는…!”
용왕과 아기거북의 얼굴에 실망감이 역력했다.
“무승부입니다!”
퀸이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퀸을 바라봤다.
“이건 무승부로 해야 돼요.”
퀸은 지율이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율이가 애를 써준 부분은 너무 고맙지만, 사실 지율이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승패를 가려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무승부입니다.”
용왕이 기다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억지로 그렇게 할…….”
퀸이 말허리를 잘랐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확실히 차이를 보여줘야 되는데 말이죠.”
다시 몸집이 사람만큼 커진 퀸이 말을 이었다.
“다음에는 제대로 시합해서 격차를 느끼게 해주겠어요.”
이내 용왕은 퀸의 호의를 더 이상 저버리지 않았다. 대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며 껄껄 웃었다.
“한 번 요행이 좀 일어났다고, 뛰어난 응원군 덕에 선전했다고 자신만만하구먼!”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듯해도 분명히 웃음이 있었다.
“자, 그럼 시합은 무승부로 마무리하고.”
내가 말했다.
“이제 다시 결혼식 파티를 이어나가죠!”
그러자 맘모스가 나팔을 가지고 와서 불었다.
고래 새댁과 지율이는 하프를 연주했고, 다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환한 달빛 아래서 결혼식 파티는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 * *
우리의 헤어짐에는 아쉬움이 없다.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고, 그 약속이 반드시 이뤄질 거라 생각하니까.
휴도로 돌아왔을 때는 다시 식구들만이 함께 자리에 있었다.
여전히 달은 밝았다.
“실컷 먹고 실컷 놀았네.”
나는 몸을 틀며 말했다.
“자, 들어가서 씻고 자자.”
그때 모두의 시선이 하늘을 향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늘혹등고래떼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부오오오오오오오오옹…….
밝은 달 앞을 가로지르는 하늘혹등고래떼가 노래했다.
하늘에는 형형색색의 오로라가 커튼처럼 내려와 하늘을 밝혔다.
아름답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예쁘다.”
지율이가 조용히 말했다.
“예쁘네.”
나는 지율이에게로 고개를 홱 돌리고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율이만큼은 아니지만.”
“아하하핫! 아니야!”
“아니야?”
“응! 나 예쁜 거랑 오로라 예쁜 거는 다른 예쁨이야.”
그 와중에 자기가 예쁘다는 말은 사실이란다.
“그런가?”
“응! 그렇지! 나랑 오로라는 다르지.”
“지율이 말이 맞네.”
정신없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 *
“진짜 괜찮겠습니까?”
고성우가 고민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헌터 협회장인 전노희는 옆에 서 있는 악어인간을 슥 쳐다보며 대답했다.
“괜찮다고 보입니다. 처음에 드러낸 목적은 저희 입장에서 조금 곤란하긴 했지만, 사상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으니까요.”
고성우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저는 조금 다쳤었거든요.”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악어인간이 나지막이 말했다.
“엄살이 심하군.”
“시끄러워. 널 핸드백으로 못 만든 게 내 한이다.”
“예의를 갖춰라. 여기 식으로 내 이름은 크로커 정도가 좋겠더군.”
고성우는 질렸다는 얼굴을 하며 크로커를 가리켰다.
전노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이쪽 세상에 적응이 빠르다는 얘기니 좋은 소식이겠죠? 호의적이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하고요.”
“호의적이지가 않다니까요?”
전노희는 크로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크로커는 악어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눈에 구분이 될 만큼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노희는 다시 고성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호의적인 거 같은데요?”
“하아아아.”
고성우는 크로커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로커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고성우를 보며 말했다.
“한 번 적대시했다고 영원히 적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난 널 믿기 힘들어.”
“어째서지? 나는 합리적으로 행동할 줄 안다. 지금 이곳에서 홀로 있는 내가 수십억인 너희들을 적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게 문제라는 거야.”
고성우는 크로커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은 너 혼자니까 꼬리를 내린 것뿐이잖아. 만약에 다시 너희 쪽 차원과 이쪽 차원이 이어진다면? 그때는? 다시 이곳을 지배하려 들 거 아니야?”
“아니다.”
크로커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에 고성우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그걸 어떻게 믿어?”
“진실이니까.”
“진실인지는 어떻게 믿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믿냐는 거지.”
크로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항상 그렇더군. 좀처럼 믿지를 않아. 지레짐작하여 멋대로 배신을 하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할 필요성을 딱히 못 느낀다.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종족 그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차원문이 다시 열려서 네 종족이 전부 넘어올 수 있게 되면? 넌 어떻게 할 건데? 인간의 편을 들 건가?”
“중재에 나서겠다. 내가 징검다리가 될 수 있겠지.”
“지금 그걸 믿으라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진실만을 말한다.”
거짓말이라는 개념이 모든 종족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득 고성우의 머릿속에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스쳤다.
이미 인간사회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적지 않은 드래곤들.
드래곤들 중 거짓을 말하는 이들은 없다.
언제나 듣기 불편할 정도로 속내를 그대로 말하는 게 드래곤이었다.
크로커도 드래곤처럼 거짓말을 모르는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성우가 물었다.
“중재가 실패한다면?”
크로커는 고민 없이 곧장 대답했다.
“끝까지 중재할 것이다.”
“그래도 실패한다면?”
“그 가운데서 중재를 위한 싸움을 할 것이다.”
“……진심인 거 같네.”
“물론이다.”
전노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이제 좀 믿음이 가나요?”
고성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믿지 않으면 뭐 어쩌겠어요. 믿어야죠.”
“걱정하실 건 없어요. 일단 강척 드래곤 연구소로 갈 거니까요.”
“거기는 왜요?”
“크로커 씨는 그쪽에서 지내실 겁니다.”
“대체 이유가…?”
“한국에서 최대 전력이 언제나 한 군데 모여 있는 곳은 그곳이니까요.”
레오, 현백, 오팔, 오순.
강력한 드래곤 넷이 상주하다시피 하는 곳이었다.
구정석과 같은 각성자들도 다수 근무했고.
만에 하나라도 크로커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도 강척 드래곤 연구소라면 걱정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죠.”
구정석의 말에 전노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그래도 못 미더워서 그런가요?”
“아니요? 강척에 볼일이 좀 있어서 데려다달라는 건데요?”
“제가 택신 줄 아세요?”
“당연히 아니죠. 그래도 신세는 좀 질 수 있잖아요.”
전노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 다들 가만히 있어요.”
공간이동이 시작되자 크로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능력도 있는가…….”
그렇게 세 사람은 순식간에 강척 드래곤 연구소로 향했다.
* * *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었다.
“저건 대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한 여자.
천재라 불리는 헌터였다.
일명 일렉트릭.
채소희.
“어…….”
채소희는 하늘혹등고래떼의 유영과 울음소리 그리고 오로라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게 대체…….”
일반적인 헌터들은 감지하지 못할 변화.
하지만 채소희는 강척에서 독특한 마력의 흐름을 감지하고는 날아온 것이었다.
현재 채소희가 떠 있는 곳은 휴도의 투명장막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
“예쁘다.”
하늘혹등고래떼에게서 위화감보다는 그저 아름다움에 젖어든 채소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이상현상을 목격하면 당장 협회와 정부에 알리는 것이 우선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훨씬 유연한 사고를 가지게 되고, 당장 눈앞의 현상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사람도 있으니까.’
김토일과의 만남 덕분이었다.
‘잘 지내시려나?’
지율이도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 조카 있으면 좋을 텐데.’
채소희는 멀리서 유영하는 하늘혹등고래 떼의 유영에 맞추듯 천천히 허공을 떠다니며 오로라를 감상했다.
* * *
반신욕을 마치고 나와서도 하늘에는 하늘혹등고래의 오로라가 드리워 있었다.
“멋지네.”
어렸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놀이공원에 가면 밤마다 레이저쇼를 한다고.
대체 레이저쇼는 어떤 모습일지 당시의 내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다녀온 적이 있다는 녀석이 허공에 손을 휙휙 그어대며 슝슝 소리를 냈는데, 그보다 추상적인 묘사도 흔치 않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하늘혹등고래떼의 오로라는 놀이공원의 레이저쇼 따위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도 보지 못한 레이저쇼를 훨씬 더 큰 보상으로 돌려받는 기분이다.
“되게 예뻐. 그치 아빠?”
지율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때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는 싹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는. 왜 그러는데?”
“투명장막 근처에 감지되는 인간이 있다.”
지율이가 고개를 돌렸다.
“앗! 예쁜 언니네?”
“응?”
당연히 휴도에서 투명장막이 있는 곳까지 무언가가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지율이는 맨눈으로 본다.
“예쁜 언니가 오로라 보고 있어.”
지율이가 반갑다는 반응을 보이자 싹이가 미간을 좁혔다.
“아는 인간인가?”
“응!”
“위험하지 않은가?”
“응!”
“그럼 너무 경계할 필요까지는 없겠군.”
투명장막의 범위 자체가 굉장히 크기에 누군가가 휴도까지 닿을 일은 없었다.
초대를 하지 않는 한 그랬다.
“언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고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내가 나무라자 지율이가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그렇게 갑자기 소리지르면 안 돼. 특히 밤에는 더.”
“응!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그때 싹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쪽으로 온다.”
“뭐라고?”
“투명장막을 넘어섰어.”
방금 지율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멀리까지 닿을 리는 없었다.
심지어 투명장막은 시야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가린다.
* * *
아무것도 들릴 리가 없는 망망대해.
언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그 가운데서 채소희는 지율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
자신의 착각이겠거니.
하지만 채소희는 왠지 모를 호기심에 몸을 틀었다.
채소희가 바다 위를 가로즈리며 비행하기 시작했고, 투명장막을 지나 휴도 쪽으로 향했다.
* * *
“오고 있다!”
싹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뭐? 누가 와?”
나의 물음에 싹이가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다.
“인간 하나가 빠른 속도로 오고 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3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