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01
101
변호인 강태훈 101화
“확인해 보니까 윤재중 씨 빚진 것도 많으시던데, 당장 법무법인도 경매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고, 재산을 노려 독극물을 마시게 유도한 것 아닙니까?”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람이군요. 이 검사님.”
윤재중은 범현을 보면서 짙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화가 난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았다.
“지금 검사님은 제가 빚을 갚기 위해 아내를 죽인 파렴치한 용의자로 모는 거지요? 그렇다면 증거를 가져오십시오!”
그는 탁! 하고는 책상 위를 손으로 쳐냈다.
“검사님이 주장하시는 그 심증 말고, 물증 말입니다. 물증!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시면서 왜 그렇게 사람을 몰고 갑니까?”
“크흠.”
범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오로지 믿는 것은 범현 스스로의 감뿐이었고 증명된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확실히 윤재중은 아무런 죄 값도 받지 않는다.
물론 그가 정말 무죄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유죄라면?
만약 정말 그가 아내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한 살인미수죄를 가진 남성이라면?
혹시나 모를 것도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했다.
만약 범현이 추측하는 것에서 1%의 가능성이라도 있고 그것이 맞다면 윤재중은 분명히 처벌 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허음, 소파가 너무 불편하네.”
태훈은 스리슬쩍 눈치를 보는 척 하다가 범현의 등 뒤의 창가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창문을 열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범현과 윤재중은 태훈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서로가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 * *
결국 범현은 아무것도 건진 게 없이 윤재중을 보내주어야만 했다. 태훈은 나서는 그를 보며 한숨을 턱 쉬었다.
자신과 그는 오랜 시간의 파트너였던 만큼, 윤재중의 취약점을 태훈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윤재중은 이번 사건의 살인미수가 맞는 것 같았다.
물론 범현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윤재중은 당혹하거나 혹은 거짓말을 할 때 눈의 깜빡임이 많아지는 편이었다.
그 깜빡임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눈에 확연히 그것이 들어왔다. 태훈만 캐치한 것은 아니었다.
눈이 건조한 사람의 경우 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하는 편이었고 윤재중도 자신이 당혹하면 눈을 자주 깜빡이는 것을 알고 인공눈물을 가지고 다녔는데, 방금도 범현의 앞에서 눈이 뻑뻑하다며 인공눈물을 뿌렸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범현에게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가 난관이었다.
분명 태훈이 보았을 때는 범현의 감이 맞았다.
“밥 먹으러 가자.”
피곤한 듯 얼굴을 한껏 비빈 범현은 외투를 입었다. 태훈이 그를 따라나섰다.
* * *
함께 밥을 먹으면서 기회를 엿보던 태훈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범현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 어째서?”
범현은 화색을 띠우는 반면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한 것이 아니면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태훈이었다.
“아까 보니까. 그 사람 되게 눈의 깜빡임이 심하더라고. 마치 거짓말 하면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눈이 건조하다잖아.”
범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윤재중은 수시로 눈을 껌뻑거렸다. 그에 인공눈물을 꺼내 보이며 ‘제 눈이 건조해서요’라고 이야기했었다.
그 나이 때쯤 되면 안구건조증이 찾아오는 사람이 꽤나 되었기에 특별하게 자신은 생각하진 않은 부분이다.
“만약 내가 말한 것처럼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할수록 눈을 깜빡인다면 너한테는 좋은 수가 생기는 거 아닐까?”
“그렇긴 하겠네.”
범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눈의 깜빡임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생각을 읽는 것과 매한가지다.
범현이 말을 하는 것에서 그가 눈을 깜빡인다면 그것은 즉 거짓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태훈의 그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 아니냐?”
“그렇긴 하지. 한 번 해보긴 해야겠다. 근데 너 오늘 정말 이상하다?”
범현이 수저를 놓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평소의 태훈과 달랐다.
태훈으로서는 윤재중의 그런 부분을 알려야 했으니 범현에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 * *
범현은 이번에는 직접 병원으로 찾아갔다. 형사들의 말에 의하면 윤재중은 밤낮 가리지 않고 아내의 옆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병실 근처를 지키고 있던 강력반 반장이 거수경례를 취하고 범현은 빠르게 받아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재중이 나왔다.
범현을 본 순간 그의 눈이 세차게 깜빡이다가 수그러들었다.
그 얼굴은 짜증으로 변했다.
“왜 또 오셨습니까.”
그는 아내가 이렇게 병원에 있는데 그가 찾아온 것이, 그리고 범현이 형사들을 병실 근처에 배치시킨 것이 못마땅하다는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범현에게 고마웠다.
어차피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병실 근처에 있는 형사들은 윤재중. 자신을 아내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간호하는 그런 남자로 볼 것이니까.
“이야기할게 조금 남았는데, 나가시죠.”
“후우,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음하고 강력반 반장과 강력반 팀원이 나서는 범현을 보며 혀를 찼다.
“며칠 동안 보니까. 참 좋은 사람 같드만. 이 검사 저 자식은 정말 감정도 없나.”
“그러게요. 어떻게 저런 사람을 범인으로 생각하는지.”
윤재중의 예상처럼 강력반 형사들은 범현을 죽일 놈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범현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윤재중도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저도 하나 피겠습니다.”
“그러시죠.”
범현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왔다. 일단 윤재중은 CCTV 영상이 확보된 상황.
즉 알리바이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아내가 독극물을 마시게 할 수 있는 방법.
유언장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쉬운 식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것이 실패하면 자신은 완전히 이 사건에서 손을 놔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윤재중도 변호사였다. 그런 이를 만약 자신이 헛다리 짚어 몰아간다면 자신도 분명 타격을 받게 된다.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어떤 게 말씀입니까?”
윤재중이 고개를 갸웃했다.
“윤재중 씨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물증을 잡아냈습니다.”
“그게 무슨…….”
윤재중의 눈의 깜빡임이 심해졌다.
‘그냥 짚어보는 거 아냐?’
곧 그 깜빡임은 잠잠해졌다.
‘태훈이 말처럼 당황하면 눈을 깜빡이는구나.’
범현은 확신했다. 자신의 검사실에서 눈에 인공눈물을 넣던 것이 자신의 습관을 감추려는 것이었음을.
“또 다른 공범을 잡았거든요.”
범현은 호기롭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이미 자백도 다 받아낸 상황입니다.”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정말.”
그는 시치미를 뚝 뗐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것이다.
‘설마…….’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돈을 주고 사주하셨더라고요. 아내를 위협해 유언장을 쓰게 하고 독극물을 마시게 하라고.”
“그게 도대체…….”
그는 더 이상 말도 안 나온다는 듯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눈은 세차게 깜빡이고 있었다.
‘맞나 보네.’
범현은 자신이 머리로 그려놓은 시나리오대로 읊자 그의 눈의 깜빡임이 세차지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그가 누군가를 사주해 독극물을 마시게 한 사실이 맞는다는 것을.
“분명 아내가 유언장을 쓴 후에 죽게 되면 당장 윤재중 씨에게 40억 원 상당의 금액이 쥐어지게 됩니다. 그 40억 중 일부를 떼어주겠다고 했겠죠.”
윤재중은 태연하게 웃으며 담배를 피웠다.
“작가 하셔도 되겠습니다.”
역시 눈만은 세차게 깜빡인다.
“알리바이는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왜냐 윤재중 씨는 공범을 통해서 사건을 저질렀으니까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헛웃음을 흘렸다.
“그 공범하고 전화통화라도 해보시겠습니까?”
범현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의 얼굴로 자신감이 가득했다. 윤재중의 깜빡임이 극도로 심해졌다.
그렇지만 그는 범현을 분명히 의심하고 있었다.
짧은 찰나의 순간에 작은 신경전이 오갔다.
실제로 윤재중과 일을 모의한 공범은 존재했다. 그렇지만 범현이 그를 찾아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마치 미끼를 던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윤재중이 일반 사람이었다면 침착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변호사였다.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시죠.”
“알겠습니다.”
‘안 넘어오네, 이거 진짜 범인이 아닌 거 아냐? 강태훈 그 자식이 괜한 말을 해가지고.’
범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윤재중은 호기롭게 웃으며 공범이 있으면 한 번 통화를 시켜달라는 모습이었다.
그는 휴대폰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갔다.
번호를 누르는 척 하다 그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강력반 반장이었다.
“일단 이 전화 먼저 받죠.”
통화버튼을 누른 그는 강력반 반장의 이어지는 말들에 얼굴에서 짙은 웃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은 범현은 휴대폰을 품속에 집어넣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수갑을 꺼냈다.
“역시나. 당신을 고연두 씨 살인미수죄로 체포합니다.”
“그게 무슨…….”
자신의 양손에 범현이 수갑을 채우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금 강력반 반장님한테 전화가 왔는데요. 고연두 씨가 깨어나셨답니다. 그리고 당신과 공범에 대해서 진술했다는데요?”
“…….”
윤재중은 말을 잃었다. 슬쩍 범현의 눈치를 보더니 그를 밀치려 했다.
몸을 옆으로 틀자 윤재중이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전 일단 찍어봤거든요? 근데 딱 들어맞았네요. 공범이 있었고, 재산을 노렸던 것이고 유언장 조작. 크 역시 나의 감이란 멋지다니까.”
범현은 호기롭게 웃었다. 곧 병원에서 강력반 형사들이 뛰쳐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다음엔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러세요. 봤죠? 검사의 감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강력반 형사들이 서둘러서 윤재중을 압박하였다. 범현은 강력반 반장을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강력반 반장은 윤재중과 범현을 번갈아 보다가 그렇게 감쪽같이 연기를 벌인 윤재중에게 화가 난 것인지 그의 머리를 따악 때렸다.
“이 새끼! 남우주연상 노렸냐?”
“이거 아주 나쁜 놈인데요?”
그의 연기에 이제껏 속은 형사들은 울분이 솟는 모습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범현은 곧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차에 올랐다.
* * *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태훈은 범현이 전화를 걸자 받았다.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범현이 해주는 말들을 귀에 담은 태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기를 껐다.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역시나 윤재중이 그 사건의 범인이 맞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행히도 그의 아내가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문제는 잠시 정신을 차렸던 아내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윤재중은 단순 살인미수가 아니라 살인교사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살인교사죄는 즉, A가 B에게 살인을 시키고 B가 살인을 하면 A에게 살인교사죄가 성립하게 되며 B는 살인혐의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A는 실제로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B와 마찬가지로 살인을 한 형량을 받게 된다.
공범의 경우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의 변호사 중 한 사람이 저질렀다고 한다.
윤재중의 신변에 일이 생겨서 와달라고 한 후, 흉기로 협박하며 유언장을 작성하게 하고 독극물을 마시게 한 것이다.
물론 그 공범 역시도 현재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거 나만 개과천선했네.’
자신과 함께 과거 돈맛에 들려 있던 윤재중이 자신처럼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랐건만. 그게 말처럼 되지 않았다.
자신은 개과천선했지만, 그는 태훈이 겪었던 과거의 삶보다 더욱 안 좋은 길로 가게 되었다.
살인교사죄.
아마 범현이 10년 이상을 때릴 것이다.
그렇지만 태훈은 곧 훌훌 털어버렸다.
어차피 과거의 인연은 과거의 연이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윤재중이란 사람을 지워버린 태훈은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