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03
103
변호인 강태훈 103화
“당신이 어떻게 이유지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이유지. 범현이 그토록 그리워하였던 그의 누나의 이름이었다. 일단은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이미 20년 전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난 아직도 그 아이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냔 말입니다!”
자신에게 어째서 이유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어떻게 앞의 강문헌이 이유지를 알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눈물이란 단어는 무엇이란 말인가.
“20년 전 ‘판사 자녀 납치사건’의 가해자가 나일세.”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그는 뱉어낸 말이었다.
태훈의 머리가 둔탁한 무언가에 맞은 것처럼 새하얘졌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만히 두지 못한 몸을 왔다 갔다 움직였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범현이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사람이다.
오로지 누나의 복수를 위해 찾아 헤맸던 사람이다. 얼마나 범현이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했는지 친구인 태훈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태훈의 손이 왈칵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저한테 그 사실을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굳이 그 사실을 왜 자신에게 말하는 것일까. 그가 입을 다문다면 영원히 수면 밑으로 사라지게 될 일일지도 몰랐다.
물론 범현은 더욱 괴로워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범인이 발견되면 범현은 어떤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20년을 복수만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범현이다.
정의를 위한 검사가 되었다고는 하나. 그 사건의 가해자 앞에서 그가 정의를 운운하는 검사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에겐 매일 같이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이제 그만 나도 좀 편해지고 싶어…….”
“당신 편하자고!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태훈은 현재 강문헌의 국선 변호인 자격으로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누나를 죽음까지 몰고 간 장본인이었다.
자신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도 이제 그만 용서받고 싶거든. 자네가, 자네가 날 용서받게 해주면 안 되겠나? 응? 내가 죽였네. 이 사건의 모든 원흉인 우원도를 내가 죽였어! 그러니 내가 이제 그만 편해지게 도와주게.”
“우원도…….”
태훈은 우원도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강문헌의 30년 지기 죽마고우였다.
그 우원도가 원흉이라고 강문헌은 주장하고 있었다.
강문헌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 * *
문헌은 머리가 하얘졌다. 원도의 말처럼 이게 옳은 것일까. 자신의 딸을 살리겠다고 다른 이의 소중한 딸을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툭!
“야 이 새끼야! 무슨 생각하는 거야 도대체! 응?”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옆에서 불렀던 우원도는 갑갑했던지 그의 어깨를 팍하고 쳤다.
두 사람은 봉고차에 타고 있었다.
“너 아직도 망설이는 거냐? 그럼 지윤이는 어떻게 할래, 그대로 치료 한 번 못 받고 죽게 둘 거야? 응?”
“지윤이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강문헌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우원도는 헛웃음을 흘렸다.
“병상에서 무서워하고 있을 네 딸을 생각해. 문헌아. 내 말 잘 들어. 우린 아무 짓도 안 할 거잖아. 돈 만 받고 보내주면 돼. 그 사람들은 그냥 기부하는 거라고. 불쌍한 너랑 나한테 기부하는 거라고, 임마.”
우원도는 말도 안 되는 말로 강문헌의 복잡한 머리를 흔들어놓고 있었다.
“알잖아.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 연 수익이 족히 1억은 넘을걸? 우리가 요구할 5천은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강문헌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렇다. 지금 자신들이 쫓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어머니는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였다.
아버지는 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 그런 사람들한테 5천 따위야…….’
“정말 아무 짓도 안 하고 보내주자. 돈만 받으면 보내주는 거야.”
“그래. 자식아. 이제야 정신 차렸네.”
우원도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강문헌은 자신의 딸 지윤이만 생각하기로 했다.
문헌이 뒷좌석으로 옮겨 탔다.
천천히 목표인 여성과 근접해지고 있었다.
차창이 내려갔다.
“학생, 여기 한옥마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옥마을이요? 이쪽에서 쭉 가셔서 좌회전하셔서 객사 쪽으로…….”
“객사? 객사는 또 어떻게 가는데.”
이유지라는 여자아이는 순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아이였다. 난처하게 길을 설명해 주는 그녀였다.
‘나도 모르겠다! 한 번만 도와줘라! 제발!’
강문헌이 뒷좌석의 문을 열어 재끼며 박차고 나섰다. 마취제를 묻힌 손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우우웁!”
발버둥 쳤지만, 곧 잠잠해졌다. 뒷좌석에 양팔로 들어 올려 실었다.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어때, 생각보다 쉽지? 빨리 묶어.”
“으응…….”
강문헌은 한없이 작고 가녀린 잠에 빠져든 이유지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곧 마음을 굳게 먹고는 준비한 청테이프로 팔을 등 뒤로 해서 양손을 묶고 다리도 묶고 입을 막았다.
차는 그녀를 숨겨둘 야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2주일이 지났다.
첫 일주일. 이유지는 무척 불안해했다. 그리고 자신들도 전화로 5천의 금전을 요구하며 경찰에 신고할 시 즉시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접선하기로 한 어제. 일이 틀어졌다.
이범훈 판사가 경찰에 신고했다.
이범훈은 엄연히 사법부의 최고 권력자라고 불리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였다.
검찰, 경찰이 혈안이 되어 어떻게든 자신들을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었다.
여기에서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추적할 것이다.
“뭐라도 좀 먹어야지.”
강문헌은 죽을 떠서 온몸이 의자에 속박된 유지에게 내밀었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두려워했던 그녀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침착해지고 냉정해지고 있었다.
강문헌과 우원도가 당혹할 정도였다.
이유지는 죽을 수저로 떠서 권해도 입을 열어 먹지 않았다.
“아오! 이 X년! 처먹기 싫으면 처먹지 마!”
안절부절못하던 우원도는 그녀가 문헌이 떠먹여 줘도 싫다고 고집을 피우자 문헌의 손에 들린 죽 그릇을 후려쳤다.
죽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원도의 손이 그녀의 턱을 잡았다.
“야 이 X년아 어떻게 할 거야? 응? 너희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그게 얘 잘못은 아니잖아.”
떨어진 죽 그릇을 집어 든 강문헌은 그가 잡은 손을 풀어냈다. 우원도는 황당하다는 듯이 번갈아서 두 사람을 보았다.
“어휴! 이 착해 빠진 새끼! 네 딸 죽고서도 그러나 보자!”
우원도는 거칠게 밖으로 나섰다. 딸의 이야기에 강문헌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허공으로 뿌연 연기가 흩어졌다.
“저 보내주세요. 제발요.”
이유지는 강문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듯싶었다. 그를 설득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무시했다.
“아저씨, 제발요.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뭐?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사람을 납치한 내가 그럼 좋은 사람이라도 되겠어?”
그는 옆에 놓인 쇠파이프를 집어 들어 위협했다. 그렇지만 유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강문헌이 당혹할 정도였다.
거칠게 쇠파이프를 던졌다.
“에이 X발!”
괜한 담배만 태워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 아빠 안 보고 싶냐?”
“보고 싶어요.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동생도.”
“동생? 아 남동생 하나 있지.”
강문헌은 우원도가 사건을 계획하기 전 확보한 가족관계를 떠올렸다.
그녀는 힘겹게 웃었다.
이 무서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었다.
“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이에요. 키도 체구도 다른 또래 애들보다 작거든요. 지금 아마 울고 있을 거예요. 엄청난 울보거든요.”
목이 멘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문헌의 말문이 턱 막혔다.
“미안하다. 근데 나도 어쩔 순 없다.”
“아저씨…… 제발 보내주세요.”
“곧 그 동생 볼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아니어도. 이 아저씨가 그거 하나만큼은 약속하마.”
문헌은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들이 잡히던지, 아니면 그냥 보내주든지 할 것이다.
애초에 살인은 계획에 없었으니까.
* * *
딸 지윤의 병원에 다녀온 강문헌은 야산을 올랐다. 그리고 낡고 초라한 폐가에 도착했을 때 그는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오는 우원도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지를 추스르는 그의 행동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낡은 낫을 집어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강문헌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뛰어들어 갔다.
안에는 울음을 터뜨리며 속옷을 서둘러 챙겨 입으며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몸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 노력하는 유지가 있었고 그녀를 향해 낫을 뒤로 젖히는 우원도가 있었다.
퍼억!
단숨에 강문헌이 몸을 날렸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쿵!
벽에 부딪힌 우원도는 팔을 문지르며 소름 돋게 웃었다.
“죽여야 해. 죽이기 전에 아까워서 한 번 했다. 문헌이 너도 할래?”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원도를 반쯤 정신을 놓게 만든 듯싶었다.
문헌의 시선이 부르르 몸을 떠는 유지에게 향했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죽이지는 않기로 했잖아.”
“문헌아 지금 상황이 달라졌어. 만약 저대로 돌아간다면 분명히 우리한테 해가 될 거라고. 차라리 죽이는 게 나아.”
“그래도 이건 아니야.”
“어차피 넌 이런 일 못 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할 테니까. 지켜보기나 해.”
침을 바닥에 뱉은 우원도는 히죽 웃었다. 낫을 꽉 쥔 우원도는 천천히 유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강문헌은 이대로 지켜볼 순 없었다.
그는 바닥의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그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
태엥!
“꺼억! 너, 너……!”
바닥에 고꾸라진 우원도를 수차례를 내리쳤다.
“끄으윽.”
얕은 신음을 흘리는 그를 두고 이유지에게 다가갔다.
“옷 입어. 빨리!”
“야…… 강문헌……!”
우원도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쉽사리 되지 않는 듯싶었다. 유지가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가자.”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나가야 했다. 최대한 그녀가 도망치게 도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원도의 손에 죽을 것이다.
막 문밖으로 그녀가 나서는데 그녀의 다리가 절뚝였다.
“다리가 왜…….”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아마도 우원도에게 당하면서 다리를 접질리고 힘이 풀린 것 같았다.
그는 힘껏 그녀를 안아 들었다.
“하아, 하아, 집에 가는 거야. 알았지. 가서 아빠 엄마랑 행복하게 살아. 응? 다른 애들보다 약하다던 동생이랑도 행복하게 살고. 그리고 내가 정말. 내가 미안하다.”
그녀를 안고 산에서 내려가는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그러나 등 뒤에서 어느새 정신을 차린 우원도가 쫓아오고 있었다.
문헌은 그녀를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정신을 차린 그에게 금세 따라잡힐 수밖에 없었다.
퍼억!
몸을 날린 우원도에 의해 그녀와 문헌이 바닥을 굴렀다.
“이 X년! 어딜 도망……!”
우원도가 낫을 들고 그녀에게 달려드려는 찰나. 강문헌의 손이 그의 바짓단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