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07
107
변호인 강태훈 107화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에 도착한 이범훈은 바로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검사들이 그 급을 가리지 않고 범훈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범훈은 인자하게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곧 범훈은 범현의 검사실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오자 범현은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검사실에 찾아오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꼈다. 이범훈은 작은 헛기침을 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식사들 하고 오시지요.”
“네.”
범현의 말에 계장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40분 정도 남았지만, 그들도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계장이 일행을 이끌고 나섰다.
범훈이 소파에 앉았고, 범현은 믹스커피를 타서 그의 앞에 놓았다.
“원두커피 좋아하시는데. 기계가 없어서요.”
“믹스커피라도 아들이 타준 거라면 맛있지.”
범훈은 쓰게 웃었다. 범현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얼마 전 강문헌과 만났다고.”
“……네.”
범현의 눈이 작게 떨렸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그곳에서 피운 난동 역시 아버지는 알고 계실 것이었다.
“범현아.”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그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다.”
그 말에 범현은 가슴이 아파 왔다. 아버지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시는 말씀인 것은 알았다.
“관여하지 말거라. 절대.”
아버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억울하지 않으세요?”
범현은 웃었다. 그러나 눈만은 울고 있었다.
“만약 누나가 그 일 당하지 않았으면 지금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교도 갔을 거고 연애도 했을 거라고요. 또 아버지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전화도 했겠지요.”
범훈은 들리지 않을 신음을 흘렸다.
자신도, 아내도 항상 그의 말처럼 생각해 보곤 했다.
유지가 만약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가끔 보고 싶다는 자신들 말에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찾아올 것이고 가끔은 손자 녀석들 손을 잡고 올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일 한 번에 모든 것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이미 지난 일이야. 그리고 법이 전부…….”
“그놈의 법!”
범현은 참을 수 없었던 듯 몸을 일으켰다.
“전 아버지를 항상 존경해왔어요. 아버지는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그런 분이셨고 저도 아버지 같은 법조인이 되어야겠다. 항상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아버지.”
“아니, 이게 맞는 일이야. 법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야. 죄가 크다면 높은 형을 받을 거고, 그렇지 않다면 낮은 형을 받겠지. 그건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란 말이야. 네가 관여하려 든다면. 나 역시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범훈은 몸을 일으켰다. 범현은 얼굴을 감쌌다.
그는 잠시 초라해 보이는 아들 범현을 보았다.
“하늘에 있는 너희 누나도 원치 않아.”
그 말을 끝으로 범훈은 나섰다. 몸을 일으킨 이범현의 주먹이 벽을 강하게 쳤다.
퍽!
지끈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을 느낄 새조차도 없었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태훈도, 아버지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냥 두고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 * *
이범훈이 국선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 김한기의 얼굴로 화색이 띠었다. 이범훈은 한기의 연수원 한 기수 후배였다.
“어쩐 일이야.”
“태훈이한테 볼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한기는 말문이 막혔다. 태훈도 범훈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다가섰다.
“미안하게 됐네.”
“선배님이 미안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범훈은 고개를 저었다. 한기가 진작 그 사실을 알았다면 국선 변호인을 다른 이로 선정하게 힘을 썼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배정이 된 상황에서 강문헌이 발언한 것이었고 무르기 쉽지 않은 상황까지 와버렸다.
한기도 범훈이 찾아온 이유를 짐작했다.
“이 친구하고 같이 식사를 해도 될는지요. 선배님.”
“그럼. 되고말고.”
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범훈은 태훈에게 작게 웃고는 그와 함께 나섰다.
작은 가게에 왔다.
이범훈은 말없이 국물을 떠먹고 뜨뜻한 밥을 국에 말았다.
그러고는 떠먹었다.
계속 떠먹던 그는 물을 한 컵 마셨다.
“자네는 자네의 자리를 지키면 되는 거야.”
“네.”
그 말이 끝이었다. 이범훈은 작게 웃을 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뜻이 무엇인지 태훈은 잘 알았다.
자신은 변호사였다.
그 직위를 벗어나지 말라는 의미였다. 태훈은 범훈의 그 위로와 같은 말에 더욱더 힘이 실리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범훈이 자연스럽게 계산을 했다.
“이곳까지 오셨는데. 제가 사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판사가 그리 많이 받진 않아도 밥 한 끼 살 돈 정돈 있거든.”
그는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태훈의 얼굴을 보고는 들리지 않을 한숨을 쉬었다.
범현이 그런 것 정도야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는 작게 주물러주었다.
그 손에서 태훈과 범현의 사이를 생각하며 깊은 고뇌에 빠진 범훈의 마음이 타고 넘어올 정도였다.
“다음에 한 번 범현이하고 같이 해서 밥이나 한 끼 하지.”
“네.”
태훈은 빙긋 웃었다. 범훈이 몸을 돌려 차로 향했다. 오늘따라 이범훈. 그의 등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태훈은 업무를 끝냈다.
업무를 끝내고 그는 평소처럼 도혜를 데려다주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범현이었다.
범현은 태훈을 보고는 그냥 지나쳐갔다.
“범…….”
그를 부르려던 태훈은 그 손을 내렸다. 속 좁은 녀석 같으니! 라고 말하면서 그의 뒤통수를 힘껏 때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잠시 이 사건이 끝날 때까지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얼마 후 도혜가 나왔다.
“방금 범현이 나갔는데 마주쳤어?”
“……응.”
태훈은 멋쩍게 웃었다. 도혜도 지금 어떠한 상황이 구축되고 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태훈은 대수롭지 않게 차에 탔다.
도혜도 조수석에 탔다.
“내일부턴 내 차 끌고 다닐게. 나 사실 차 고장 안 났어.”
“알아.”
도혜는 다소 놀란 듯 그를 보았다.
“너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일부러 데리러 온 건데, 내일부터 다시 차 끌고 다니게?”
태훈은 그녀가 민망할까 봐 먼저 선수 처 말했다. 도혜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태훈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터졌던 입술은 피로 굳어 있었고 얼굴의 상처도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아야…… 따끔하다.”
“남자가 참을성도 없어서는.”
그녀는 말과 다르게 걱정이 크게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다.
“평소처럼 그럴 거지? 자기는 항상 그랬으니까.”
그녀의 목소리에 태훈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도혜가 본 태훈은 의뢰인을 위해 헌신하는 변호사였다. 그 상대가 미성년자 살인범이었을 때도 나이 든 노인 절도범이었을 때도, 연쇄살인범일 때도 다르진 않았다.
그런 태훈이 친구라고 범현을 위하는 ‘흑이 백’이라고 말하는 변호는 하지 않을 것을 도혜도 안다.
“그게 더 내 남자친구 강태훈다워.”
“나 옳은 선택한 게 맞아 보여?”
“그럼. ‘법에는 질서’가 있잖아.”
질서를 말하면서 도혜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웃었다. 태훈도 싱긋 웃었다.
도혜의 그 말이 더 힘이 되었다.
이범훈도 도혜도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자신의 줏대대로.
그렇게 시작한다.
* * *
태훈은 강문헌의 앞으로 형을 감면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따님 김지윤 양의 의료기록은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의료기록의 경우 보통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환자명부는 5년 진료기록부 10년 수술기록 등이나 검사소견기록은 5년입니다. 기록은 전부 삭제되었습니다. 대신, 강문헌 씨께서 말씀하셨던 20년 전 김지윤 양을 돌봐주었던 병원의 담당 의사님을 수소문 끝에 찾았습니다. 또 강문헌 씨께서 김지윤 양의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계시니 그 부분은 입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20년 전의 것이었지만 분명히 사망진단서에는 병원에서 내린 사망 사인이 적혀 있을 것이었다.
아직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의 딸이 병으로 큰 고생을 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 가능했다.
“또한, 강문헌 씨께서 납치에 대한 모의를 제시하며 피해자 우원도 씨께서 협박하였다는 그 자료 역시 녹음을 하셨다고 하니 이 부분도 충분히 감면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따져서 보면 최소 10년 많게는 15년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여론입니다.”
태훈은 한숨을 쉬며 생수병을 집어 마른 목을 축였다.
“아시겠지만 여론이 무척 좋지 않습니다. 물론 법정은 국내의 현행법에 의해 그 판결 결과가 나오긴 하지만. 여론의 영향을 아예 안 받는 건 아니거든요. 거기에 납치였을 뿐이지만 이유지 양이 자살한 케이스라…… 신이 저희 편이 아니라면 무기징역을 생각해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강문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단순한 살인죄였다면 6-10년 정도를 받아낼 수도 있었다.
일단 그는 기록상 초범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과거의 범행이 드러난 사실이었기에 15~20년 사이가 측정될 수 있고 심하면 무기징역이다.
그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네는 괜찮나? 내가 자네가 생각하는 가장 낮은 형을 받아도.”
“일단은 당신의 변호사니까요.”
달갑지는 않았지만, 자신으로써는 해야 할 일이었다. 태훈은 이미 단념한 상황이었다.
“표정이 한결 좋아졌군. 자네 친구는…….”
“범현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태훈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서류가방에 챙길 것을 넣은 그는 작게 묵례를 취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차성진 검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접견은 잘 하셨나요?”
“네.”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함께 걸었다.
“커피 한잔하죠.”
태훈은 고개만 끄덕였다. 밀크 커피 두 잔이 뽑히고 두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섰다.
두 사람의 손가락 끝에서 담배가 타들어 갔다.
“강태훈 변호사님이 이 사건을 맡은 게 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복잡해졌을 것 같아요.”
차 검사도 범현이 원하는 대로 태훈이 움직여주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의로운 이범현 검사가 저지르려는 ‘비리’를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태훈이 이 변호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오히려 나았다. 그래야 차성진 검사. 자신도 최선을 다할 수 있을 테니까.
“전 제 직무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게 맞는 거지요.”
태훈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곧 이어진 차성진 검사의 말에 그는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증인으로 이범현 검사를 신청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