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08
108
변호인 강태훈 108화
“이범현을요?”
“전 저대로 높은 구형을 받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강문헌은 분명히 납치범에 살해죄이니까요.”
그 말에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그에게 희생된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것이 가장 그 감정을 법정에서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혹시 범현이가 먼저…….”
“예. 이 검사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도 생각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를 모두 태운 그는 재떨이에 비벼 껐다. 가슴이 더욱 복잡해졌다.
“공평하게 싸워 봅시다.”
차 검사가 손을 내밀었다. 태훈의 손이 그 손을 맞잡아주었다.
* * *
방청석에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 이범현이었다. 태훈은 흘끗 그를 보았지만, 그는 태훈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태훈의 옆에 앉은 강문헌에게 향해있었다.
재판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전부 몸을 일으켰다가 착석한다.
“검사 측은 공소장을 낭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예.”
형식적인 절차가 지나가고 차 검사가 몸을 일으켰다.
“피고인 강문헌은 피해자 우원도와 30년 지기 친구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죽마고우입니다. 피고인과 피해자 두 사람은. 언론에 공개된 것과 같이 20년 전 ‘판사 자녀 납치사건’의 가해자입니다. 두 사람은 7월 11일경. 피해자 우원도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피고인 강문헌은 계속해서 또 한 번의 납치를 모의하자는 말에 그것을 거부하다. 끝내 싸움으로 불거져 맥주병으로 수차례 우원도를 내려쳐 살해한 혐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형법 제24장 250조 1항. 살인의 죄로 기소하는 바입니다. 또한.”
차 검사는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방청석과 판사를 둘러보았다.
“20년 전 판사 자녀 납치사건의 경우 현재 실체법상 형벌권이 소멸되었으므로 검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자리를 통해 그때 당시의 죄 역시 밝혀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이상입니다.”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그에 대한 죗값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 안의 방청석의 이들도 모두 마찬가지였고 국민도 다 똑같은 마음이었다.
“피고인. 피고인은 본 기소 사실을 인정합니까?”
강문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묵비권.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변호사인 태훈에게로 넘어간다.
“변호인. 본 기소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판사의 목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태훈은 숨이 턱 막혀왔다. 그는 잠시 범현을 보았다.
범현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그 주먹은 움켜쥐고 있었다.
혹시라도 태훈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있었다.
‘미안하다. 범현아.’
태훈은 곧 다시 재판장을 보았다.
“혐의를 일부 부인하는 바입니다.”
그의 말과 함께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범현의 주먹이 더욱 꽈악 쥐어졌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그렇군요. 그렇다면 변호인 측은 모두 진술해 주시겠습니까?”
“예.”
태훈은 앞으로 나섰다. 작은 심호흡을 쉰다.
“피고인은 분명히 7월 11일경. 30년 지기인 죽마고우 피해자 우원도를 살해한 혐의를 가지고 있으며 20년 전 ‘판사 자녀 납치사건’의 가해자였습니다. 위의 사실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잔인무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피고인 강문헌은 우원도에게 수차례의 협박과 강요를 받아왔습니다. 그 협박과 강요는 피해자 우원도가 20년 전 납치사건처럼 또 한 번의 범행을 함께 모의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20년 전 함께 벌였던 일들을 만천하에 모두 드러내겠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판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눈살을 찌푸렸다. 20년 전 사건을 빌미로 협박을 당했다? 물론 협박을 당하기는 충분했다.
‘내가 너의 주위 사람들에게 다 말하겠어!’
그러나 그것이 과연 기소요지를 부정할 만큼의 발언이 가능한가?
“그 술자리에서도 역시 우원도는 새로운 범행을 모의하자며 강요와 협박을 하였고 그에 참지 못했던 피고인 강문헌이 그를 살해한 것입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차 검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황당하단 웃음을 흘렸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잔인무도하지 않은 사람이며 피해자 우원도에게 협박과 강요를 받았고 그에 살해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년 전 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잔인무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당시 피해자는 극심한 우울증 및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습니다.”
자살이라는 말과 함께 이범현의 몸이 흠칫하고 떨렸다. 차 검사는 그를 불안한 표정으로 한 번 보더니 다시 태훈을 보았다.
“그런 사람이 잔인하지 않다고요?”
“그때 역시 협박과 강요에 이기지 못하고 그 당시 피고인의 환경을 고려해서는 그에게는 최후의 선택일지도 몰랐었습니다.”
“최후의 선택이요? 납치가 최후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있을까요?”
태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현재 이 자리는 누가 옳고 그르냐를 가리는 자리가 아님을 두 분이 더 잘 아실 겁니다. 다음 공판에서 그 사실을 가리도록 하죠.”
판사의 제지에 두 사람이 수긍했다.
“이번 살해사건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가 없던 계획적이 아닌 우발적인 범행이었고 지속적인 피해자 우원도의 강요와 협박에 의해 심신이 미약해진 피고인이 벌인 범행이므로 이에 정상참작 하여 징역 11년을 선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태훈이 자리에 앉았다.
판사의 입에서 본 사건의 쟁점이 읽히기 시작했다. 이후 검사 측과 피고인 측의 증인 및 증거제출 시간이 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보내온 수사 자료를 증거물로 제시하며 20년 전의 ‘판사 자녀 납치사건’을 담당하였던 강력계 반장 이판수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또한, 20년 전 그 사건의 피해자 이유지 씨의 친동생인 이범현 씨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차 검사의 말처럼 이범현이 증인으로 신청되었다. 태훈은 가슴이 허해졌다. 그러나, 자신은 현재 피고인의 변호사라는 입장에서만 생각하기로 한다.
“이의 있습니다. 검사 측은 계속해서 20년 전 그 사건을 들먹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때의 사건이 아니라 얼마 전 일어난 살해사건을 가리는 자리이지 않나 싶습니다.”
‘강태훈…….’
태훈의 말을 들은 범현의 눈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했다.
마치 자신에게는 관계없는 것처럼 말하지 않기를 바랐다.
범현의 가슴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솟았다.
“또한, 증인으로 검사 측이 신청한 이범현 씨는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타당하지 않다고요? 현재 변호인이 맡은 피고인에 의해 희생된 사람의 가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부동의 합니다. 본사건을 감정적으로 이끌어갈 요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적. 그렇다. 감정적으로 재판이 이끌어질 요지가 충분했다. 판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좌우배석 판사들과 몇 마디를 나눴다.
“변호인 측 이의를 기각합니다. 본 재판은 물론 이번에 일어난 살해사건을 밝히는 자리가 맞습니다. 하나. 20년 전 사건의 실체 역시 밝혀야 한다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됩니다.”
태훈은 들리지 않을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결국, 피해갈 수 있는 건 없었다. 태훈도 증거와 증인을 신청했다.
“퇴정하셔도 좋습니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판사들이 가장 먼저 나섰다. 방청석의 이들도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피고인인 강문헌은 법정 경위가 이끌었다.
태훈은 자신의 자료들을 서류가방에 챙기고는 몸을 돌렸다.
방청석의 모든 이들은 빠져 있었고 그곳에는 범현만이 앉아서 태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태훈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그는 힘겹게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옆을 막 지나치려는 찰나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 감정적…… 태훈아. 이건 아니었어.”
범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태훈은 그를 돌아보며 힘겹게, 아주 힘겹게 웃었다.
“난 변호사로서의 일을 했을 뿐이야.”
“……우리가 친구가 맞나?”
범현은 몸을 일으켜 말했다. 차 검사도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가 친구가 맞아!?”
범현의 목소리는 법정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는 태훈의 양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밖에 있던 법정 경위 한 사람이 놀라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차 검사가 손을 들어 경위를 제지했다.
“친구이니까. 이러는 거야. 정신 차려 이범현. 너를 보지 말고. 법을 봐. 너의 시선이 아닌 법의 시선으로 보라고! 넌 검사 이범현이야!”
“그 전에 이유지의 동생이기도 해.”
“진짜 친구이기 때문에 이러는 거야. 범현아. 정신 차려. 네가 그런다고 너의 누나가 살아 돌아오진 않아.”
태훈의 말에 범현은 둔탁한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듯했다. 팔의 힘이 풀리며 손이 어깨에서 툭 떨어졌다. 그는 실소를 흘렸다.
그는 몸을 돌렸다.
범현은 가슴이 아렸다. 자신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분명 태훈이 저러는 이유를 자신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태훈은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주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뒷모습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그러나 입은 다른 말을 내뱉는다.
“난 갑자기 의심스러워. 너와 내가 친구일까?”
태훈의 걸음이 멈췄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는 다시 걸어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서고 차 검사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이범현을 쏘아보았다.
“너 정말 미쳤구나. 강태훈 변호사가 왜 저러는 줄 몰라? 너 이 새끼 미친 짓 막으려고 저러는 거잖아! 왜 너만 인정을 안 해. 너희 누나는 죽었어. 네가 이런다고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고.”
“……다……쳐…….”
“너희 아버지도 법으로 해결하시기를 원해. 하늘에 있는 너희 누나도 법으로 해결되기를 원할걸? 동생인 네가 이러는 모습 너희 누나가 보면…….”
“닥쳐!”
범현의 손이 차 검사의 멱살을 움켜쥐며 밀었다. 그의 몸이 의자에 막혔다.
“검사님……?”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경위가 진압봉에 손을 뻗으며 차 검사를 보았다. 차 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범현은 울고 있었다.
멱살을 잡은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고개를 숙인 그는 하염없이 운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제발 좀 닥쳐.”
차 검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쓱한 손이 범현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 * *
화장실에 들어온 태훈은 막아놨던 숨이 턱 하니 터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실소를 흘렸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범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다.
“힘들다…… X발…….”
처음으로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변호사의 길에서 후회라는 것을 해본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을 정도였다.
세면대의 물을 틀어 얼굴을 한껏 적셨다. 휴지로 얼굴을 닦은 후 그는 밖으로 나섰다.
마치 이럴 상황을 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도혜가 법정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태훈의 얼굴을 보고는 말을 잃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주차장으로 걸음 했다.
“힘들면 기대. 괜찮아. 난 네 여자 친구인걸.”
“그래도 되려나. 나 남자인데.”
도혜는 몸을 돌려 태훈과 마주 보며 그의 옷깃을 살며시 잡았다. 태훈의 눈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혜의 양팔이 그의 허리에 둘렸다. 태훈의 몸의 떨림이 그에게 전해졌다.
“크흐흑, 힘들다. 나 너무 힘들다. 도혜야.”
결국, 태훈은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그는 울음을 참기 위해 애썼지만, 쉽사리 되지 않았다.
도혜는 그런 태훈의 품에서 그를 지켜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