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14
114
변호인 강태훈 114화
“1년. 1년 정도만 더.”
앞으로 1년 정도를 더 채우고 싶었다. 아직 태훈은 변호사라는 나이로 보았을 때는 젊은 축에 속했고, 그가 인권 변호사가 되어보고 국선 변호사가 되어본 이유는.
다양한 방면으로 경험을 쌓아보고 싶어서였다. 최종적으로 자신의 법무법인을 일으켜 성공시키겠다는 목적이 가장 강했던 편이다.
물론 범현의 제안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함께 하자라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 법무법인을 키우는 데 있어서 누가 대표냐는 별로 중요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단지,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힘으로 그 법무법인을 크게 키우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1년 정도라면 뭐.”
범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1년을 채우고 나면 태훈은 국선 변호사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안효성 변호사였다.
아마도 태훈이 친구의 법무법인으로 넘어간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적잖이 충격을 받고 태훈에게 뾰로통 심술이 날 것이다.
태훈은 어쩌면 조금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효성이 경험을 쌓고 좋은 법무법인으로 넘어가는 게 국선 변호인들의 희망 사항이다. 라고 말했을 때 자신은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으니까.
물론 경험을 쌓고 자신이 좋은 법무법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갈망하던 것을 이루기 위해 넘어간다는 것은 조금 다르기는 했다.
그렇지만 벌써 효성이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태훈의 귓가에 퍼지는 듯했다.
“현지 씨하고 몇 번 만나면 잘될 것 같다.”
면을 전부 먹은 후 뜨뜻한 국물을 식도로 넘기는 범현은 실실 웃었다.
자신이 주선한 두 사람이 잘 맞는 것 같자 태훈은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 * *
안효성은 버릇처럼 계속해서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덧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미 한 송이와 조각 케이크가 담아져 있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정말이지 안효성은 무대포에 무식하고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한재희의 집 인근이었다. 그녀가 집 안에 있는지, 아니면 바깥에 나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는 저번에 태훈과 함께 데려다주었던 그녀의 집을 기억해내고 온 것이다.
그리고 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안효성은 한재희를 보자마자 말 그대로 첫눈에 반했다. 그때 머릿속에서도 노랫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는가.
‘별빛이 내린다. 샤라라랄 라라~’
효성과 재희 나이 차이는 자그마치 열두 살이나 차이가 났다. 효성은 완전히 도둑놈 심보였다.
그렇지만 재희의 술에 취해 울다가 웃는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사실 태훈은 모르겠지만 효성은 재희가 태훈을 좋아하고 있었고, 태훈이 재희를 뻥 걷어찬 것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재희가 썩 좋은 기분이 아닐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용기를 내어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려 보는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이현지 대표와 식사를 하고 집 인근에 다다른 재희는 입이 뾰로통해져서 조막만 한 돌멩이를 발로 뻥 찼다.
이현지 대표님이 조금 변했다.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재희는 여자의 촉으로 알아차렸다.
휴대폰을 보면서 실실거리지를 않나, 광속의 손가락질로 카톡을 보내지를 않나.
그러고 보면 소현이도 연애를 시작했다.
하긴, 자신의 나이를 따져보면 한참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이별하고를 반복해야 할 때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자신은 지금까지 모태솔로.
갑자기 강태훈의 얼굴이 떠올렸다.
‘잊자, 완전히 잊자.’
친구 소현한테는 아무렇지 않은 내색 했지만,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첫사랑이었다. 아무리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지만 하늘이 무심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그녀는 자신의 집 인근에 서 있는 남성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은 연신 자신의 집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복장을 보아서 범죄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요즘 세상이 좀처럼 흉흉하니 경계한다. 그녀가 천천히 집 쪽으로 다가가자 남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접근했다.
그녀가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꺅! 치한!”
“응? 재희 씨. 저 치한 아니에요.”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찔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미안한 기색으로 서 있는 남성이 있었다.
얼굴이 눈에 익었다.
그녀는 ‘아-’했다. 태훈과 같은 사무실의 동료라는 안효성 변호사였다.
그를 기억했다. 물론 딱 한 번 봤지만 말이다. 괜히 가슴이 답답했다. 태훈과 아는 지인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효성의 미안한 기색에 꾸벅 고개를 90도로 인사했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연장자이니까.
“아, 네.”
효성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거 받으시죠.”
효성은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로 장미꽃 한 송이와 케이크를 건넸다.
“제가 이런 건 잘 모르는데. 드라마에서 보면 대게 여성분들은 장미꽃을 좋아하더라고요. 또 케이크는 여성분이시니까.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조각 케이크예요. 고구마.”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재희는 케이크와 꽃을 번갈아 보다가 작게 입이 벌어졌다.
이런 것을 주는 남성의 뜻은 대충 짐작이 간다. 재희는 태훈과 다르게 눈치는 있는 여성이었으니까.
더군다나 한 번 뵈었던 인연인데 이곳까지 찾아와 장미와 케이크를 주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 꽤 깊은 마음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일 다녀오셨나 봐요.”
“네.”
“작가님이시라고 아는데. 일은 주로 어디서……?”
“저희 작가들이 지정된 장소에서 일하나요. 카페도 가고 출판사 안에 마련된 작가 작업실도 사용하고, 집에서도 쓰고 해요.”
“아, 그러시구나.”
효성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아, 재희 씨 피곤하실 텐데. 어서 들어가 봐요.”
“아, 네. 이거 잘 먹을게요. 꽃도 고마워요.”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딱히 기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설레지도 않았다.
단지, 뭔가를 받았구나 싶었다.
그녀가 집 문 앞에 섰다.
“내일도 오겠습니다. 재희 씨! 하하!”
등 뒤에서 효성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고개를 돌린 재희는 신이 난 듯 뛰어가는 효성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철푸덕!
그러더니 다시 벌떡 일어나 몇 발자국 뛰어가더니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 나이는 내일모레 마흔인 것으로 아는데, 하는 짓은 천방지축 청년 같았다.
“풋…….”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아차 싶었다.
“내가 내일 언제 들어올지 알고…….”
그녀는 말했듯, 언제 들어올지 정해놓고 다니지는 않는다. 글이 잘 써져 빨리 썼을 때도 있고, 못 써져 온종일 죽치고 글만 쓸 때도 있다.
일단 전화번호도 모르니 그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미 효성은 멀리 사라진 뒤였다.
장미꽃과 조각 케이크를 품에 안은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흐흐흐.”
온종일 싱글벙글한 안효성을 보고 태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시간이 다섯 시였다. 업무가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어제만 해도 난처한 사건을 맡아 기분이 몹시 안 좋아 보였던 효성이 웃고 다니자 국선 변호사 사무실의 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태영 변호사가 효성을 보다가 다시 태훈과 눈이 마주치자 옆 통수에 검지를 가져가며 빙글빙글 돌렸다.
‘정신 나갔나 보다.’
태훈은 작은 실소를 흘렸다.
그는 슬쩍 김한기 변호사를 보았다. 일단은 김한기 변호사에게 1년 정도만 더 하고 그만둘 것을 미리 말해야 했다.
불쑥 1년 지나고 ‘오늘부로 관둡니다!’ 하는 건 미친 짓이다.
사실 일을 그만둔다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그 말을 하는 것조차도 조금 망설여졌다.
6시가 땡 되는 순간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펄럭-
그리고 옆을 돌아본 태훈은 순식간에 사라진 안효성 변호사 때문에 흠칫 놀랐다.
“어디 갔지?”
정말 광속으로 그는 나섰다. 재희의 집 앞으로 그녀를 기다리러 간 거라는 사실을 태훈은 당연히 모른다.
“퇴근들 하지.”
한기가 외투를 챙겨 입으며 말하다가 효성이 자리에 없자 눈살을 찌푸렸다.
‘하긴, 요즘 맡은 사건이 힘든 사건이니까.’
그는 이번은 넘어가자고 여겼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가방에 챙길 것을 챙기고 몸을 일으켰다.
태훈도 일으켰다.
그는 슬쩍 김한기 변호사에게 다가갔다.
“변호사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래?”
한기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곱창전골에 소주나 할 텐가. 물론 자네가 사야지. 난 가족이 있는 몸이니까. 하하.”
한기는 유머러스하게 웃었다. 태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두 사람이 함께 인근의 곱창 전골집으로 향했다.
태훈이 조심스럽게 1년 동안 국선 변호사로서 더 일한 후 그만둔다고 말을 하자 한기는 가슴이 싸해졌다.
문수가 예전에 인권 변호사였던 태훈을 국선 변호사로서 넘겨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이해가 되었다.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그런 모호한 기분이었다.
“그럼 그 이범현이라는 친구하고 같이 법무법인을 시작한다고?”
“네.”
또 태훈은 국선 변호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선 변호사보다 좋은 자리를 권하는 법무법인이 있어서 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을 위하는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싶어요.”
한 번은 돈을 위한 법무법인을 운영해 봤다. 그리고 자살까지 가는 극도의 길도 걸어봤다.
이번에는 돈보단 사람을 중요시하는 법무법인을 꿈꾸고 있었다.
내심 기대가 되었다.
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잡고 싶지만, 자신의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존재. 문수의 했던 말도 마음도 백번 이해가 되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는 거지.”
“죄송합니다.”
“사실 조금 섭섭하기도 해. 그렇지만 난 자네 덕에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해.”
한기는 지금의 사무실과 과거의 사무실을 번갈아 떠올려보면 아찔했다.
그때의 사무실로 돌아가 보라고 하면 그러지 못하겠다. 그만큼 사무실의 인원들이 성실해졌다는 의미였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이것을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건 한기에게 주어진 숙명이었지 태훈에게 주어진 숙명은 아니었다.
태훈이 이 사무실 내의 분위기만 바꿔준 것만으로도 무척 고마웠다.
“많은 것이요?”
“알잖아, 그게 무엇인지. 난 자네가 이곳에 오는 것을 ‘신의 한 수’라고 불렀어. 그리고 그건 정말 큰 한 수가 되었지.”
한기는 빙긋 웃으며 태훈의 잔에 소주를 따라줬다. 태훈도 그의 잔을 채워줬다.
탱-
두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뜨거운 액체가 걸걸한 식도를 타고 넘어가 싸르르 하게 뱃속에서 퍼졌다.
“그리고 아직 1년이나 남았지 않나. 그 1년 동안 자네의 뽕을 제대로 빼먹을 생각이야.”
“하하, 이거 무서운데요.”
“집에 들어갈 생각 하지 말게.”
물론 한기의 말이 농담인 것을 알기에 태훈의 얼굴로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자신이 법무법인으로 넘어가는 것을 받아주어서 무척 고마웠다.
“뭐든 열심히만 하면 사람은 성공하게 되어 있네. 한 번 열심히 자네의 뜻을 펼쳐보게.”
“넵.”
다시 서로의 잔에 술이 채워지고 들이켰다.
두 사람의 눈에는 서로에 대한 끈끈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