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15
115
변호인 강태훈 115화
33장 모난 어른들
재희는 현관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흘끗 쳐다보았다. 오늘은 오지 않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차를 인근에 받치고 헐레벌떡 이곳으로 뛰어오는 안효성 변호사가 보였다.
그는 헥헥 거리며 뛰어오더니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넸다.
“허억 허억, 혹시 저 기다린 거예요?”
효성은 일이 끝나고 항상 여섯 시 반부터 와서 그녀를 기다렸지만, 오늘은 업무 때문에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었다.
그 때문에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다.
벌써 안효성이 재희의 집 앞에 오기 시작한 지 한 달이었다.
한 달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같은 시각에,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어김없이 그녀의 집 앞에 왔다.
그녀가 밤늦게 들어올 때도, 일찍 들어올 때도 안 나가고 집에 있었을 때도 그는 항상 현관문 앞에 있었다.
그런 그가 오늘은 오지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재희는 자신도 모르게 나와 있었던 것이다.
재희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효성의 얼굴에 웃음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랑 내일 식사하실래요?’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쉽사리 그것을 내뱉지 못했다.
그는 과격한 다혈질적인 성격이었지만 여자 앞에서는 누구보다 숙맥인 성격이었다.
“내일 또 올게요.”
효성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재희는 그를 보며 손을 뻗었다.
왠지 미안하기도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매일같이 집 앞에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은 차 한 잔 대접한 적이 없었지.
물론 효성이 자신을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기에 그가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한 달간 지켜보자 재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작은 마음이 생긴 것 같았다.
“저기요.”
효성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주말에 뭐 하세요?”
“주말에요? 집에 있겠죠?”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재희가 시선은 바닥에 둔 채 머뭇거리며 민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주말에 보여주시면 안 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만개 같은 웃음이 효성의 얼굴로 맺혔다.
“아이, 그럼요! 그럼요! 영화 한 편이고 두 편이고 봐야죠!”
“그럼 휴대폰 번호 좀…….”
슈웅!
효성은 바람처럼 날아와 순식간에 재희의 앞에 섰다. 재희가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였다.
효성이 그녀에게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었다.
“연락할게요.”
“넵.”
효성은 입을 꽉 물고는 답했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재희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효성이 자신의 차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빼꼼 재희의 얼굴이 현관문에서 나왔다.
“아싸라비요!”
기쁨에 찬 효성의 목소리가 늦은 밤 밝게 흐르는 별빛과 함께 퍼졌다.
* * *
탁
“윽!”
태훈의 머리 위로 삶은 계란이 내리쳐졌다.
쩌적-
균열이 생긴 삶은 계란을 도혜는 야무지게 까서 한입 베어 물었다.
태훈도 삶은 계란 하나를 집어 들어 그녀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와, 어떻게 여자 친구한테 흉기를 휘두르려고 하냐.”
“휴, 흉기?”
“그게 흉기 아니면 뭐야?”
“하, 하하. 그래. 흉기 맞지.”
태훈은 계란을 들고 있던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타악 내리쳤다. 여자 친구인 도혜가 흉기라면 흉기다.
두 사람은 양머리 수건을 쓰고는 찜질복을 입고 있었다.
찜질방에 왔다. 땀 한 번 진득하게 빼고 나서 매점 앞에 앉아 식혜와 계란을 까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여느 커플들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자고 내일 아침 곧바로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범현이는 결국 현지 씨하고 사귀는 거야?”
“그렇다나 봐. 이제 범현이 큰일 났지. 현지 씨 한 성깔 할 텐데. 잡혀 살 거야.”
“호호호! 천하의 이범현이 여자에게 잡혀 살다니. 좋구나.”
도혜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태훈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천하의 강태훈도 여자에게 잡혀 산다.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냐.”
그는 싸움으로 불거질까 대답을 회피했다. 간식을 먹은 후 곧장 잠을 자기 위해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매트를 깐 후에 베개를 머리맡에 대고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웠다.
어느덧 찜질방의 불은 소등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찜질방에 켜져 있던 유일한 등이 소등되었다. 깜깜한 그곳에서 코 고는 소리만 유독 크게 퍼지고 있었다.
스르륵-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자는 듯싶었던 남녀가 몸을 일으켰다.
“쉿. 조용히.”
그들은 도둑고양이처럼 앞발을 세우고는 주위를 돌아다녔다. 곧 남자는 코 고는 중년 남성 앞에 다가왔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손을 더듬거렸다. 곧 그가 원하는 묵직한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그는 빙긋 웃고는 그것을 챙겼다.
그건 다름 아닌 스마트 폰이었다.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수면실 같은 어두운 곳을 돌아다니며 챙길 것을 챙겼다.
곧 여자는 태훈과 도혜가 있는 곳으로 왔다. 손을 더듬거린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간혹 찜질방에서 스마트 폰뿐만이 아니라, 라커룸 키도 스마트 폰 옆에 놓은 채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태훈이 딱 그러한 경우였다.
여성은 스마트 폰과 키를 챙기고는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흡연실로 나왔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10대 아이들이었다.
“몇 개나 챙겼어?”
“하나.”
“난 두 개. 그리고 이것도.”
여자아이는 호기롭게 웃으며 파란색의 라커룸 키를 흔들더니 그것을 남자아이에게 건넸다.
오늘은 실적이 좋았다. 스마트 폰 세 개에. 라커룸 키라니. 더불어 이중 두 개의 폰은 최신 스마트 폰이었다.
업자에게 판매해도 20만 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바로 나와. 또 저번처럼 화장하다 늦으면 안 된다.”
“응.”
남자아이가 걱정 어린 말을 하자 여자아이는 손을 흔들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남자아이도 탈의실로 들어왔다. 새벽 3시. 카운터를 보는 주인은 탕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해 남자아이는 미소를 짓고는 ‘154’번 라커룸을 찾아가 열었다.
“얼마나 있으려나.”
그는 내심 기대가 된다는 듯 서둘러 더듬거렸다. 지갑을 꺼내고 돈을 확인했다. 10만 원 남짓이 들어 있었다. 흡족한 그는 지갑을 품에 집어놓고는 자신의 라커룸으로 걸음을 옮기다 멈춰 섰다.
앞에 태훈이 하품을 쩌억 하며 엉덩이를 긁적거리며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넌 뭐냐.”
태훈을 깨운 것은 도혜였다. 역시 검사의 촉이란 남달랐다. 낌새를 느낀 그녀가 태훈을 깨워 남탕으로 보냈고 도혜는 여탕으로 가서 지금쯤 여자아이를 잡았을 것이다.
“그게요…… 에잇!”
잔뜩 겁을 먹은 것처럼 연기를 하던 남자아이는 그대로 태훈을 밀치려 했다.
몸을 휙 틀어 피해낸 태훈이 뒷덜미를 잡아채고는 가슴을 누르며 바닥에 눕혔다.
그러고는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스마트 폰과 지갑을 빼앗았다.
“윽!”
태훈은 양머리 수건을 촤악 펼쳐 아이의 다리를 묶었다.
그리고 타올을 세 개를 가져와 팔을 등 뒤로 하게 한 후 단단히 구속시켰다.
“뭐예요?”
탕 안을 청소하던 이가 소란에 밖으로 나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수건과 타올에 구속된 아이가 욕을 내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도범입니다.”
태훈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말하면서 흘끗 소년을 보았다.
끽해야 열아홉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태훈은 빙긋 웃었다.
여자 친구인 도혜가 검사였다. 그녀의 관할 지역이 아니긴 하지만 아마도 이미 경찰들을 불렀을 것이다.
옷을 전부 챙겨 입은 태훈은 남자아이의 다리를 묶고 있는 수건을 풀어준 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 도혜도 여자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언니는 뭔데, 이러는 거냐고요.”
여자아이는 앙칼지게 도혜에게 외쳤다. 카운터의 여성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눈을 떴다.
“나? 대한민국 검사.”
“거, 검사요?”
여자아이가 깜짝 놀라 그녀를 흩어보았다. 검사라고 하기에는 도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난 대한민국 검사의 남자친구.”
‘뭐야, 이 미친놈은…….’
태훈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남자아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순찰차가 도착했다.
경찰들이 차에서 내리며 경례를 취했다.
‘진짜 검사였어?’
어린 여자아이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도혜를 보았다.
“스마트 폰 절도라고요?”
“네, 아마도 상습범 같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저희 쪽 지역 인근에서 스마트 폰 절도가 자주 발생하고 있거든요. 일단 조회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검사님은…….”
“데이트 중이었죠.”
“아.”
경찰은 빙긋 웃었다. 슬쩍 태훈을 보았다. 그가 작게 묵례를 취했다. 경찰은 태훈을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보았다.
그의 관할 구역을 담당하는 검사는 아니었지만 도혜는 경찰들 사이에서도 미모의 여인으로 손꼽혔다.
물론 성격이 지랄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그런 도혜의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일까 싶었는데, 확실히 남자친구도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
경찰 한 사람이 뒷좌석 문을 열었다. 경찰차에 반항하는 남자아이를 구겨 넣고 여자아이도 넣으려고 했다.
“자, 잠깐만요. 어, 언니 검사 언니!”
그녀가 경찰의 손을 뿌리치더니 도혜의 앞으로 다가와 팔을 잡았다.
“저 이따가 가면 안 돼요? 잠깐 어디 좀 갔다 오고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니?”
도혜는 콧방귀를 끼며 양 팔짱을 꼈다. 남자아이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도혜를 보고 있었다.
“저희 아기. 아기 혼자 모텔에 있단 말이에요!”
“응?”
여자아이의 애처로운 외침에 태훈과 도혜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아기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도혜는 경찰에게 눈짓을 줬다. 여자아이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경찰이 일단 남자아이만 태운 채 뒷좌석 문을 닫았다.
도혜의 표정은 다소 심각했다. 이제 끽해야 남자아이는 열아홉, 여자아이는 열여덟 정도 되어 보였다.
“일단 남자아이는 데려가서 조사해 주시고요. 여자아이는 제가 이따가 데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검사인 도혜의 말이었기에 경찰들은 순순히 따랐다. 태훈의 차량에 도혜와 여자아이가 함께 뒷좌석에 타고 태훈이 운전석에 탔다.
“어디로 가면 돼?”
“하나바 모텔이요.”
태훈은 여자아이의 안내대로 모텔로 향했다.
모텔로 도착해 방 호실대로 올라갔다.
204호 방 안으로 들어간 도혜의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 도주를 위해 시간을 끌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방에는 이제 겨우 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아기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가 깬 듯 보였다.
어린 아기는 낯선 사람을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아이는 그런 아기를 안아 들고 능숙하게 어르고 달랬다.
“아니야, 나쁜 사람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여기 왔잖아.”
아기를 껴안고 흔들거리면서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태훈과 도혜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아기의 울음이 진정이 되고 도혜는 여자아이를 쏘아보았다.
“네 아이니?”
“……네.”
“아이를 모텔 방에 혼자 둬? 네가 미쳤구나.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참.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도혜의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싶었다. 여자아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럼 어떻게! 애 굶겨 죽여!?”
“뭐?”
그녀는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독기 품은 그녀가 실소를 흘렸다.
“어른들은 결국 다 똑같아. 결국,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그리고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응에에에!”
아기도 힘차게 울음을 토해냈다. 여자아이는 울면서도 아이가 울지 않게 달래주기 위해 애썼다.
그 모습에 태훈과 도혜는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