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16
116
변호인 강태훈 116화
태훈의 차량이 경찰서로 향하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이혜원. 남자아이의 이름은 유건우였다.
태훈은 룸미러로 흘끗 뒤를 보았다. 혜원은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고 아기는 잠에 빠져 있었다.
경찰서로 향하던 중 혜원이 슬금슬금 도혜의 눈치를 봤다.
“저 언니.”
“응?”
도혜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죄송한데 분유 한 통만 사주시면 안 돼요?”
“하……?”
도혜의 입으로 절로 헛바람이 나왔다. 뻔뻔하구나, 뻔뻔해! 그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그렇지만 품에서 자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자 차마 그 말은 내뱉지 못했다.
태훈의 차가 자연스럽게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도혜가 째려봤다.
“흠.”
태훈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렇지만 도혜도 내심 속마음은 그러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멈춘 것이다.
세 사람이 함께 차에서 내렸다.
“사.”
“감사합니다.”
혜원이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바구니를 휙 들더니 분유를 두 통 샀다. 한 통도 아닌 두 통을 사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저귀까지 샀다. 편의점은 일반 마트와 달리, 기저귀, 분윳값이 훨씬 더 비싼 편이었다.
그녀는 혀를 내밀며 그것을 계산대 위에 냈다.
“너…….”
“우루루, 내 새끼 검사 언니가 기저귀랑 분유 사주니까 기분 좋아요?”
“꺄아아.”
도혜가 뭐라 말하려는 순간 그녀는 능청스럽게 품에 안은 어린 딸아이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아기는 배시시 웃으며 몸을 꼬았다.
모녀지간에 쿵짝이 잘 맞는구나.
한숨을 쉰 그녀가 카드를 꺼내려는데 뒤에서 태훈의 손이 불쑥 나타났다. 카드가 들려 있었다.
도혜가 손을 찰싹 쳐냈다.
“됐어.”
그녀가 지갑을 꺼내 카드로 계산했다. 분유 두 통에 기저귀까지 묵직하게 산 혜원은 군소리 없이 태훈의 차량에 올랐다.
차는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 오자 남자아이는 이미 조사가 끝난 상황이었고, 경찰이 시켜준 해장국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조사를 한 경찰이 다가왔다.
“보호관찰 중이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또 절도죄를 지었으니 안 좋으면 9호 처분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호관찰은 소년 보호 재판에 의해서 내려지는 처분이었다. 아직 보호관찰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또 같은 범죄를 저질러졌다는 것은 9호로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대게 소년 보호 재판의 경우 형량이 낮은 편인데, 9호의 처분이 내려진다면 소년원에서 6개월간 있어야 한다.
“검사님 식사시켜 드릴까요?”
어느덧 시간은 6시가 되어 있었다.
“네.”
일이 이렇게 된 거 잠시 지켜보다가 이곳에서 곧장 출근해야 할 것 같았다. 찜질방에서 달콤한 데이트 좀 해보나 했더니 이렇게 망쳤다.
“저도 한 그릇.”
조사를 받던 혜원이 말하자 경찰이 어이없어했다.
조사가 끝이 나고 도혜와 태훈, 혜원이 해장국을 먹었다. 혜원은 며칠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떠먹고 있었다.
도혜는 무심한 척하면서도 반찬을 슬쩍 그녀의 앞으로 옮겨주고 있었다.
태훈과 도혜는 그녀보다 먼저 숟가락을 놓았다.
“제가 이 뼈다귀 먹어도 돼요?”
“여자애가 여자애다워야지.”
“헤…….”
순박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혀를 쯧 찬 도혜가 몸을 일으켰다. 도혜의 해장국의 뼈다귀는 손도 대지 않아져 있었다.
그녀가 일부러 남긴 것이다.
두 사람은 출근 때문에 돌아가야 해서 밖으로 나섰다.
경찰 한 사람이 자연스레 뒤따라 나왔다.
“아무쪼록 검사님 덕분에 골칫거리 하나 잡았습니다.”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녀의 물음은 앞으로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묻는 것이었다.
“여자아이의 경우 다행히도 초범입니다. 깨끗해요. 아마 기소유예가 나오거나 보호 재판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1호나 3호 처분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소리였다. 만약 여자아이도 보호관찰 중에 범죄를 저질렀다면 꽤나 복잡한 사건으로 이어질 뻔했다.
“아기는 자기들 아기래요?”
“정확하게 말을 안 해주네요. 좀 더 조사를 해봐야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찰은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경찰서에 있다는 것은 사실 검사보다도 숱한 사람들을 만나봤다는 이야기였다.
사실적으로 범죄자와 마주하는 이들은 검사보다는 경찰들이었으니까.
“아주 가끔 저런 아이들이 있어요. 가출을 해서 부모님이 없다고 잡아떼거나, 고아원 출신이어서 그 사실을 말하지 않거나. 물론 이 역시 조사해 봐야지요.”
“네.”
“말했지만 여자아이는 기소 안 가고 끝날 수 있는데, 남자아이는 아니에요. 스마트 폰도 이제까지 절도한 것도 업자한테 다 팔았다고 하니…… 처벌받지 않을까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 검사님이랑 형사님께서 잘 해주시겠죠. 뭐.”
도혜는 빙긋 웃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자신이 들을 필요가 뭐 있냐는 것이다.
그들의 사연이 안타깝든 뭐든, 자신의 직권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이곳에는 담당 경찰이 있고 검사가 있으니까.
태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차로 가면서 도혜는 흘끗 경찰서를 돌아보았다.
“걱정돼?”
“뭐가 걱정돼. 절도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싹수가 노래서는 어린 것들이. 아기가 걱정되는 거지. 애가 무슨 죄야.”
태훈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태훈도 내심 아기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역시나 자신들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굳게 마음을 굳히고 차에 올랐다.
* * *
참 인연이라는 게 그렇다. 어떻게 이 어린 남녀가 이곳 사무실로 왔을까. 운명이라는 것을 태훈은 의심한다.
그의 앞에는 얼마 전 자신들이 체포해서 경찰서에 데려갔었던 이혜원과 유건우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역시나 이혜원의 등 뒤에는 그들의 딸이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끄응.”
태훈은 피곤한지 머리를 짚었다.
“도와주세요.”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아마도 경찰들이 태훈을 소개해 준 것 같았다. 물론 태훈도 싫지는 않았다.
아이들의 일이었고 자신도 안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세한 정황은 일단 알지 못하지만, 두 아이는 일단 ‘절도범’이었다.
스마트 폰을 훔쳐서 그것을 업자에게 팔아넘겨 이득을 챙기는 악질적인 수법을 가진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미성년자인 것을 감안하여서 불구속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래, 도와줘야지. 암.”
자신의 휴대폰과 라커룸 키를 훔친 아이들을 도와준다는 것. 운명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보다 너희 절도는 왜 한 거야?”
사실 그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이 아이들. 그렇게 나쁜 아이들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즘 아이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태훈은 분명 두 아이에게서 책임감을 보았다.
두 사람 나이 정도에 애를 낳는 미성년자들이 분명 있었다. 아니, 많았다.
그것은 요즘 부쩍 증가하는 추세였다.
아직 미성년자의 몸으로 아이를 낳으면 상당히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가장 큰 난관이 바로 신분과 경제적. 또 가족들의 반대이다. 그 때문에 부모들은 이 사실을 알면 대게 불법 낙태라도 진행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었다.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요.”
태훈의 물음에 혜원이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답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저번에 경찰서에서는 부모님에 대해서는 아직 두 사람이 입을 열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어쩌면 지금은 이미 경찰에 사실을 털어놨을 수도 있다.
“부모님은 없어요.”
“그래?”
태훈에게로 안타까운 기색이 스쳤다. 그것은 무척 찰나였다. 애들 앞에서 그런 눈빛 보이는 것이 얼마나 추태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저희 둘 다 같은 고아원 출신이에요.”
“그랬구나.”
태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릿속으로 한 번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같은 고아원 출신. 아마도 고아원에서는 아이를 밴 혜원이 상당히 난처한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고아원 측에서 불법적으로라도 애를 지우기 위해 알아봤겠지. 다른 방법으로는 입양을 권유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는 지금 뱃속이 아닌 이곳에 있었다.
즉, 두 사람은 미성년자였지만 책임감은 깊고 곧다는 것이다.
나이 서른, 마흔 살 먹고 아이들을 버리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학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도 있는 반면, ‘미성년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자신들이 낳은 아이는 자신들이 맡기 위해서 두 사람은 고아원에서 도망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처 없이 하루 이틀 떠돌다가 남자아이는 절도를 하기 시작했겠지.
그리고 요즘 스마트 폰의 가격이 상당한 편이었다. 절도는 쉬웠다.
스마트 폰 절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스마트 폰 절도범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10대들이었다.
스마트 폰은 그만큼 절도가 쉬웠고 돈을 마련하기 편했으니까.
“잘못하면 징역 받을 거 알지? 어쩌면 너 소년원 들어갈 수도 있어.”
아무리 책임감이 곧다고는 하나 분명 절도는 절도였다. 태훈의 말에 남자아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너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내가 이해를 하겠어.”
태훈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그렇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너희 아기 분윳값, 기저귓값, 너희들 생활비 밥값, 분명 너희한테는 벅찬 돈이 맞아.”
태훈은 어른으로서 또 다르게는 변호사로서 인생 선배로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두 사람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태훈은 손으로 탁! 하고 책상을 쳤다.
“정당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 밖에 나가봐. 너희 나이 또래 애들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신문 배달을 하는 세상이야. 응? 나중에 너희 아이가 커서 너희들 이런 모습을 보면 너희가 얼마나 부끄…….”
“씨이…….”
태훈의 잔소리에 혜원의 눈에 닭똥 같은 이슬이 그렁그렁 맺혔다. 유건우도 그 말을 묵묵히 듣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혜원이 앙칼지게 태훈을 쏘아보았다. 그가 절로 헛기침을 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요. 봐봐, 건우야. 어른들은 똑같아. 결국, 앞뒤 다 안 따지고 자기들 생각이 맞는 줄 안다니까?”
“말이 좀 심하구나.”
태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요?”
“혜원아.”
건우가 흥분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세상에! 어른들은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에요. 저희요. 이제까지 일하면서 정당하게 돈 받은 적이 없어요. 그 반절이라도 줬으면 다행이었지. 어리다고 무시하고. 부모 없다고 무시당하고. 신분이 확실하지 않다고 무시당하고. 집 주소 없다고 무시당하고! 나랑 한 번 잘래!? 돈 줄게! 제가 그런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알아요?!”
사무실에 이제까지 당했던 서러움이 맺힌 혜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무실 내의 인원들이 모두 멈춰 그녀를 보았다.
어린 소녀의 그 울분에 아기는 울기 시작했다.
“응애애! 응애애!”
태훈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변호사로서 이번에는 자신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싶었다.
자신도 안타까웠기에 목소리가 높아졌던 것이었다. 아이들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그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마치 그 정적을 깨듯.
우렁찬 소리가 혜원의 배에서 퍼졌다.
꼬르르륵!
“이씽……!”
자신은 화가 나 죽겠는데, 배는 배가 고파 죽겠다고 소리를 질러대니, 그녀는 민망해진 듯 얼굴이 붉어지며 자신의 배를 손으로 때렸다.
“일단 밥 먹으면서 이야기 좀 더 하자.”
태훈은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