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19
119
변호인 강태훈 119화
34장 따뜻한 어른들
“여기 뭐 묻었어요.”
재희가 효성의 입가에 묻은 꼼장어 양념을 티슈 한 장을 꺼내 닦아주었다. 효성은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효성은 태훈의 눈치가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재희는 태훈을 좋아했던 여자이니까.
그렇지만 잠깐의 당혹이 지나가고 태훈은 의미 모를 부드러운 미소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술을 함께 마시는 자리는 조금 서먹했다.
그렇지만 포장마차에서 나올 때는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며 태훈은 웃었다.
“잘 어울리네.”
“그래?”
빙긋 웃는 태훈의 말에 효성은 기분이 좋아졌다. 다행히도 태훈은 자신들 두 사람을 껄끄럽게 보거나 기피하지 않는 것 같았다.
태훈도 재희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줄 사람을 만난 것에 기분이 좋았다.
효성은 분명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전에는 티격태격도 했었지만 지금 본 그는 남자인 자신이 봐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단, 나이 차이 빼고.
“도둑…….”
“하하하. 닥쳐.”
“네.”
태훈이 장난스레 눈을 가늘게 뜨며 운을 떼자 효성이 멋쩍게 웃더니 노려봤다.
태훈의 대리운전기사가 먼저 도착했다.
그가 차에 올랐다.
“가라. 태훈아.”
“다음에 검사님하고 해서 넷이서 봐요.”
“그래, 안효성 변호사님. 조심히 들어 가십쇼. 재희도 잘 들어가고.”
재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태훈이 차량에 올랐다. 곧 차는 출발했고 태훈은 픽 웃었다.
왠지 모를 씁쓸함도 있었고, 차라리 잘 되었다는 기분도 들었다. 싱숭생숭하다.
* * *
건우의 경우 전의 사건에서 3호와 4호 처분을 받았었다.
그 당시 그가 절도한 것은 이번처럼 스마트 폰이 아니라 오토바이였고 다행히도 되팔기 전에 덜미가 잡혔기에 피해자 측에서 나이도 어려서 적은 금액에 합의를 해줘서 낮은 형량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절도죄가 두 번째였다. 더군다나. 이번에 그들이 찜질방에서 훔쳤던 스마트 폰 세 대의 경우 다시 원래 주인을 찾아갔다지만 그 전에 훔쳤던 스마트 폰 세 대의 경우는 판매된 상황이었다.
즉, 그 스마트 폰에 대한 피해가 피해자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합의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합의하자고 태훈은 아이들을 설득했다.
그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못 받을 줄 알았던 금액 250만 원이 생겼고, 또 정말 건우가 소년원이라도 들어가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합의를 위해서 건우와 태훈. 이렇게 두 사람이 움직이기로 했다.
카페로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대학생 여성이었다.
부드러운 어조로 태훈은 말을 이끌어갔다.
“아직 어린 학생이고 또 잘못하면 소년원에 갈지도 몰라요. 한 번 너그럽게 봐주셔서 합의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 기곗값만큼은 받아야겠어요.”
합의금은 당연히 기존의 기곗값만큼은 준다. 사실 여학생에게는 구미가 당긴 거다. 며칠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못해 불편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휴대폰을 장만할 수 있으니까.
“10만 원 더쳐서 드리겠습니다.”
여학생은 쉽게 수긍했다.
두 번째 피해자는 중년 여성이었다.
딱 건우만한 아들을 키우고 있었기에 그녀 역시도 쉽게 합의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합의자를 확인하고 태훈은 한숨을 쉬었다.
얼굴에 ‘나 뿔남.’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과거에는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결국 그 사법고시라는 벽을 뚫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외관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그는 역시나였다. 합의라는 말에 손을 휘휘 저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싸가지가 없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말이야. 에헤이? 이 사람 보소? 나 합의 안 본다니까 글쎄.”
태훈이 조심스레 ‘이번 한 번만…….’ 하면서 팔을 잡자 그는 그 손을 걷어내면서 단호한 표정이었다.
“내가 받은 정신적, 물리적 피해가 얼마인데? 응? 내가 휴대폰 없어서 일을 못 나갔어, 일을! 내가 그 피해를 다 감수하라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켜며 불을 켰다. 확실히 휴대폰의 경우는 누군가가 다른 큰일을 볼 때 피해가 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 기곗값 비례. 그 가격이 더 높게 측정될 수도 있는 게 휴대전화였다.
“야 임마,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본 줄 알아? 애새끼가 젊으면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어디 콩밥 한 번 배 터지게 먹어봐. 이놈아.”
물론 그렇다고 남성도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합의를 안 해주진 않을 거다. 그도 금전적인 보상은 분명히 받아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생각보다 많은 금액을 원하고 있었다.
조금 부족했다.
그는 재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인 건우를 노려보고는 밖으로 휙 나섰다.
“여기 좀 있어.”
태훈은 후다닥 그를 쫓아나갔다.
건우의 눈으로 밖으로 그를 쫓아나가 사정사정하는 태훈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 때문에 굽실거리는 태훈을 보자 그는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어렸지만 그 정도는 안다.
태훈이 자신 때문에 괜한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사실을.
“진정 좀 하시고요. 제발 부탁 좀 드립니다. 네?”
태훈은 무조건적으로 합의를 봐야 했다. 그래야 건우에게 좋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신적으로의 성장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남성은 밖에까지 쫓아와 팔을 잡고 사정사정하는 그를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이거 왜 이래. 진짜? 그럼 내가 말한 돈을 주던가.”
“선생님.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어허. 당신 변호사 아냐? 딱 보니까 국선 변호사 같은데. 형씨. 변호사면 변호사답게 굴어. 당신이 무슨 쟤 피붙이야?”
남성은 태훈이 왜 이렇게까지 붙나 싶었다. 자신도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만큼 법조인들의 그 잘난 콧대가 얼마나 솟은 줄 안다.
물론 공부한 만큼의 대가라고 그들은 생각하지만, 그들은 쉽게 고개를 숙일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태훈은 마치 피 한 방울이라도 섞인 것처럼 쩔쩔매면서 부탁하고 있었다.
자신이 기존에 아는 변호사와는 조금 달랐다. 때문에 작은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남성은 짜증 난다는 듯 담배를 꺼냈다. 태훈의 라이터가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치이익-
“후우.”
“선생님. 저 친구요. 이번에 집행유예 못 받고 실형 선고받으면 큰일 나요.”
태훈은 건우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서 호소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혼신을 다해서 말했다.
남성의 눈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래에……?”
“선생님! 저 어린 친구가 벌써부터 그런 일을 겪고 있습니다. 자기 자식 밥 먹이겠다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고아라는 이유로 무시 받고 천대받으면서 그렇게 살았던 아이들이란 말입니다. 만약 아이가 잘못 되서 소년원에라도 들어가면 여자아이하고 아이는 어떻게 합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쇼. 부탁드립니다.”
남성은 투명 유리 사이로 암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건우를 보았다.
자신도 사실 아들이 하나 있었다. 낳은 지 이제 3년이 된 아이였는데, 분윳값, 기저귓값, 가지각색으로 들어가는 돈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다.
그런데 어린 싹수없다는 녀석이 그렇게라도 자기 아이는 키우겠다는 모습은 대견했다.
“요즘 아이들 버리는 사람들도 태반입니다. 그런데 저 어린 나이에 자기 자식이라고 키우겠다고 뭐라도 했던 그것 하나는 봐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끄응…….”
남성은 얕은 신음을 흘렸다. 태훈은 거의 넘어왔다고 판단했다.
남성도 정말 변호사의 말이 그렇다면. 무조건 내치기만 해도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담배 두 개가 타들어 갈 동안 설득하자 남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변호사분이 말했던 그 금액으로 합의 봅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태훈은 고개를 꾸벅거렸다. 남성은 실소를 머금었다.
“근데 어린 애들을 가지고 돈 뜯어먹고 성희롱하고 그 새끼들은 진짜 나쁜 새끼들이네.”
“그렇지요?”
“그래도 다행히도 변호사는 진국을 만났구만.”
남성은 태훈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이런 법조인 만나는 거 거의 하늘의 별 따기였다. 누구보다 우위라고 믿는 법조인이 태반이었으니까.
사실 아이들도 딱했지만, 태훈의 말솜씨도 그의 마음을 돌리는데 한몫했다.
그가 곧 다시 카페로 돌아와 합의서를 작성했고 지장을 꾹 찍었다.
“자식아. 착하게 살아. 나중에 네 자식 보기 안 부끄러우려면. 그리고 일할 곳 없으면 나한테 연락해. 일자리 하나 줄 테니까. 변호사분. 나가요.”
그는 태훈에게 손을 흔들고는 밖으로 나섰다.
“후우.”
태훈은 힘이 부친 듯 한숨을 뱉어냈다. 그래도 세 사람 다 합의를 했다. 참 다행이었다.
“죄송해요.”
“뭐가.”
건우의 주눅 든 목소리에 태훈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얘는 또 왜이래?
“저 때문에.”
그 말뜻을 이해한 태훈이 씁쓸하게 웃으며 큼지막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으이구, 으이구! 뭘 그런 걸로 죄송하다고 하냐.”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뢰인을 위해 숙이는 고개?
그쯤이야. 숙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진짜 태훈이 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훈은 남성에게 고개를 숙였다고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합의를 봤다는 것에 즐거울 뿐이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언제나 그렇듯 건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해준다.
* * *
태훈은 건우가 반성문을 쓰게 했고 탄원서와 함께 법원에 제출했다.
공판일이 잡혔다.
이런 소년 보호 재판의 경우 단독 판사가 진행하기 마련이었다.
이번 재판의 판사는 여성이었다.
고예인 판사였는데, 꽤나 난처한 사람이었다. 고예인 판사는 젊은 축에 속했다. 태훈과 동갑이었다.
외모도 준수한 편이었는데, 그녀는 그런 외모와는 다르게 까칠하고 학교 폭력이나 소년, 소녀 범죄에 엄한 사람이었다.
법정으로는 건우뿐만이 아니라 이혜원과 아이도 함께였다.
자판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던 그녀는 태훈이 두 아이와 함께 들어오자 살짝 묵례를 취했다.
태훈이 그녀가 난처한 상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도 유건우라는 아이에게 난처한 변호사가 붙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한 강태훈 변호사는, 그나마 지금 세상의 변호사 중에는 헌신적인 사람이었으니까.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사사로운 절차가 이어졌다.
범죄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 역시 물었다.
유건우는 수긍했다.
그녀는 제출된 탄원서와 반성문을 흩어보았다.
반성문에는 유건우가 썼다 지웠다, 썼다가 지웠다 한 지우개 자국이 역력했다.
엉성한 글솜씨로 용서받겠다고 쓴 글 모습이 꽤나 반성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들 한 둘인가?
세상에는 법정에 서고서야 자신의 범죄사실을 깨닫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고예인 판사에게 씨알도 안 먹혔다.
“변호인. 변론해 주시겠습니까?”
“네.”
태훈은 앞으로 나섰다. 소년 보호 재판의 경우는 검찰이나 경찰서장 등이 법원에 송치할 수 있다.
즉, 법원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것이었고 수사 역시도 판사인 고예인에 의해서 조사관이 파견되어 수사가 진행되고 심리적, 혹은 가정환경, 범죄사실 여부 등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수사관이 건우와 혜원이 겪었던 그런 일들까지도 조사할까?
아니었다.
조사관이 올린 자료는 기껏 해봐야. 건우와 혜원이는 어린 나이에 낳은 자식이 하나 있으며 고아원 출신이고 건우는 절도 전과가 있으며 4호 처분이 내려진 상태에서 보호관찰에 관련한 출두도 잘 하지 않았다.
식의 보고만 올라왔을 것이다.
판사와 조사관은 알지 못하는 그 이야기를 고예인에게 해주어 1호-5호 사이를 받아내는 것이 가장 최선의 일이었다.
태훈이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