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26
126
변호인 강태훈 126화
36장 트레이너 의뢰인
창가 앞에 선 강태산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커피 한 모금으로 지친 심신을 달랜다.
대표실에서 내려다보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 탁 트인 전망이 어지러운 머릿속을 달래주었다.
“비상 법무법인이라…….”
얼마 전 새로운 법무법인이 하나 설립되었다. 이범현과 강태훈, 이백호 세 사람이 있는 법무법인이었다.
그 규모는 무척 작았다. 고작 세 사람이 인원을 맞춰서 만든 법무법인이었다.
오십여 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뛰고 있는 대한 법무법인에 비하면 그 크기조차도 견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범현, 강태훈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들을 대한 법무법인으로 데려오고 싶었던 마음이다. 그렇지만 그게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시도하지 않았다.
현재 대한 법무법인에서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한성호가 이곳을 스스로 걸어나간 이후. 잠시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곧 안정될 것이다.
한기태는 분명히 실력이 좋았고 욕망도, 욕심도 대성을 이루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한성호의 예상처럼 대한 법무법인은 그의 손이 아닌 강태산의 아들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온 이는 한기태였다. 정중히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인 한기태는 그가 소파를 권하자 자리에 앉았다.
투블럭 댄디컷으로 깔끔하게 머리를 자른 한기태를 보자 그가 처음 왔을 때가 떠올랐다.
처음의 그는 어리숙하지만 배우려는 열정이 가득 찼었지.
지금의 그의 모습은 많이 차분해졌고 눈빛도 날카로워져 있었다.
몸에서는 기품이 흘렀고 대한 법무법인의 간판 변호사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번에 아들 녀석이 공익 법무관을 마쳤는데 한 번 우리 법무법인에서 일을 시켜볼까 해.”
그의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한기태의 얼굴이 굳어졌다. 소문이 무성한 그 양아치 같다던 아들놈.
일개 법무법인의 대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한 법무법인은 화산 법무법인과 함께 대한민국의 중심에 선 법무법인이었다.
그만큼 가진 자금력도 어마어마했으며 인맥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강태산 대표의 아들놈은 양아치 녀석이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사법고시에 붙고 연수원을 수료 후 공익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물론 사법고시를 자신의 힘 스스로 해냈는지는 조금 미지수다. 찰나의 기태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그런가요?”
“그래, 아직 많이 모자라고 부족한 게 많은 녀석이야. 자네가 녀석 좀 세상일이 얼마나 힘든지 가르쳐 주었으면 해.”
강태산은 그의 어깨를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두들겨주었다.
“자네라면 그 철부지 놈 단단히 정신 차리게 할 수 있겠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기태는 빙긋 웃었다.
“참, 어머니 이번에 모셨다고?”
“네. 계속 고향에 살고 싶다고는 하셨는데,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요. 이제 여유도 되었고요.”
기태는 빙긋 웃었다. 사실 대한 법무법인에 있으면서 제대로 웃어본 것이 언제인지 기태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어머니에게 자신은 누구보다 떳떳한 아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왔고 어머니는 현재 52평짜리 아파트에서 자신과 함께 살고 계셨다.
이제 어머니에게는 차도 해드렸고 명품 옷, 명품 가방. 해드릴 수 있는 건 다 해드렸다.
전부 싫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해드리는 게 그에게 마음이 편했다.
다행히도 한기태가 돈맛을 보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집에 어머니 드시라고 홍삼 좀 보냈네.”
“감사합니다.”
기태는 빙긋 웃으며 또 한 번 묵례를 취했다.
“자네 같은 친구가 내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게 자랑스럽구만.”
“저도 강태산 대표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기태는 빙긋 웃었다. 이내 나서기 위해 다시 묵례를 취하고 몸을 돌렸다.
“참 이번에 자네 친구 둘이 법무법인을 하나 차렸던데.”
“알고 있습니다.”
“시간 내서 한 번 가봐야지 않나?”
“시간이 난다면 한 번 가봐야지요.”
기태는 싱긋 웃었지만 속은 그러지 않았다. 가보고 싶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태훈에게 그런 말을 했던 자신이다.
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 알겠네.”
강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온 기태는 곧 자신의 업무실로 들어갔다.
법무법인 간판이라는 이름답게 다른 변호사들과는 다르게 기태에게는 개인 집무실이 주어졌다.
과거 한성호가 사용했던 집무실이다.
자리에 앉은 기태는 한숨을 쉬었다.
강태산 대표가 왜 친구 녀석들 이야기를 꺼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현재 비상 법무법인은 수많은 법무법인, 법조인들의 관심이 향해 있었다.
이범현이 법률사무소를 차렸을 때만 해도 대박이 날 거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확실히 대박이 났다.
그리고 형사사건에서 이범현은 능사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번에 강태훈과 이백호가 합류했다.
이백호는 한성호보다는 낮은 직급이었지만 실력은 꽤나 있던 변호사였다. 그리고 그는 연륜이 그중 가장 깊었고 민사소송에서만큼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변호사였다.
그리고 강태훈.
수많은 난처한 사건.
인권 변호사일 때도 국선 변호인 때도 많은 난관을 헤치고 온 변호사였다.
비록 셋뿐이었지만. 그 셋은, 법조인들이 주목하기에 충분했다.
과연 비상 법무법인이 그 이름처럼 날아오를지. 아니면 날아오르지 못하고 추락할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강태산이 그 말을 꺼냈을 것이다.
기태는 실소를 머금었다.
만약 이백호가 있던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름 웃을 일이 많지 않았을까 한다.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젓는다.
* * *
한바탕 의뢰인들이 사무실을 흩고 지나갔다. 이범현 법률 상담소에서 비상 법무법인으로 이름을 바꾸고 손님은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승소율이 높고 인지도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어 한다.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 좋은 변호사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마음일 것이었다.
또한, 비상 법무법인의 강세를 말하자면 그들은 대한 법무법인이나 화산 법무법인처럼 국내 최고의 법무법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도와 높은 승소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한 법무법인이나 화산 법무법인은 비교적 비쌌고 그래도 믿을만한 변호사를 찾고 싶으니 서민들의 상당수가 비상 법무법인에 방문했다.
물론 가끔은 상위층 공기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이범현과 강태훈의 이름을 듣고 방문하기도 하고 있었다.
의뢰인이 물밀 듯이 오는 만큼, 몸이 쉬지를 못할 정도로 바빴다.
그렇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었다. 비상 법무법인의 수임료는 다른 곳과 비슷한 편이었다.
단, 3인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프로보노(pro bono)를 실행한다.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의 줄임말인 프로보노는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미국의 공익 변호사들을 바로 이 ‘프로보노’라고 뜻한다. 이는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하여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대개 우리나라의 대한 법무법인이나 화산 법무법인 같은 법무법인의 경우 3~5명 정도 프로보노를 전담으로 맡을 변호사들을 두고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삼인 체제에서 프로보노는 분명 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프로보노를 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 의뢰인은 없었다.
법무법인 사무실의 불은 밤이 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각자가 맡은 사건의 자료를 검토하고 조사하는 데에만 해도 적지 않은 힘이 들어갔다.
오죽했으면 이백호가 말하기를.
“대한 법무법인에서 일할 때보다 일을 두 배로 하는 것 같아!”
라고 말을 할 정도였다.
“왜 이렇게 손님들이 많은 거야. 이거 사원들 좀 더 뽑아야겠어.”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일단은 개업 초기이니까 지켜보고 계속 이 정도 의뢰인이라면 한두 명 정도 뽑으면 될 것 같습니다.”
이백호는 그 말에 만족한 듯 웃었다.
똑똑 똑-
“응?”
밤중에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일제히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곧 문이 열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우재석 협회장이었다.
한국 변호사 협회 회장. 우재석의 등장에 모두 바짝 긴장했다.
“안녕하세요. 협회장님.”
“오다가다 한 번 들려봤네.”
말 그대로 지나가다가 한 번 들린 것이었다. 물론 그곳에 악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리지 않고 침을 뱉고는 걸어갔으리라.
한국변호사 협회장 우재석 역시도 비상 법무법인에 관심이 가는 것이 있었다.
과연 비상 법무법인이 국내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그저 작은 불씨로 사라질지, 아니면 더욱 커질지.
그것은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밤이 늦었는데, 퇴근들 안 하고.”
연륜이 가장 있는 이백호가 앉을 것을 권했고 태훈은 후다닥 커피 한 잔 타기 위해 걸음 했다. 실상 검사에서 변호사로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범현은 이백호의 뒤에 쭈뼛하게 서 있었다.
“앉지.”
“네.”
이범현도 자리에 앉았다.
안으로 조심스레 우재석 협회장의 여비서가 들어와 그의 등 뒤를 지켰다.
그는 몇 마디의 조언을 주었다.
자만하지 말라.
선을 넘지 말라.
의뢰인 그 이상의 것은 보지 마라.
그는 그들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내가 나가면 ‘잔소리가 많아. 노인네가’ 하면서 떠들겠지.”
협회장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백호가 고개를 저었다.
“어후, 잔소리는요. 따뜻한 말씀, 가슴 깊이 새겨들었습니다.”
“그런가?”
우재석은 빙긋 웃었다. 그는 나서기 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에 넣었다.
강태훈, 이범현, 이백호.
알아서들 잘 들 할 것이다.
적어도 철부지 변호사들은 아니었으니까.
이내 그가 밖으로 나서고 모두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백호가 몸을 돌려 픽 웃었다.
“잔소리가 많아. 노인네가 말이야.”
방금 우재석의 농담처럼 말하자 모두가 웃어 재꼈다. 물론 그도 장난으로 하는 말이었다.
“어휴, 너무 불편한 자리였어.”
그 말에 동조한다는 듯 태훈과 범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퇴근을 하기 위해 그들이 몸을 일으켰다.
* * *
얼마 전에 태훈이 다니던 헬스클럽이 문을 닫았다. 태훈의 경우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기구는 낡았지만 작은 사람들이어도 소소한 인사가 오가고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었던 헬스클럽을 다녔었지만, 문을 닫았기에 새로운 헬스클럽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곳은 법무법인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는 헬스클럽이었다. 태훈의 집 근처에 꽤나 아늑한 헬스클럽이 하나 있긴 했는데, 이백호 변호사가 함께 운동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두툼하게 겹이 낀 배를 내보였다.
“살 빼야 해. 안 그러면 임산부처럼 보일지도 몰라.”
태훈은 청소년일 때부터 이종격투기를 했었고 커서도 이종격투기 및 웨이트에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트레이너 못지않았다.
그만큼 운동을 할 시의 자극점을 알고 초보자에게 운동방법을 권장할 수 있는 수준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이백호 변호사가 태훈과 함께 다니고 싶어 하는 것이다.
태훈은 흔쾌히 수긍했고 그와 일주일간을 함께 헬스클럽을 다녔다.
오늘도 어김없이 헬스클럽에 왔다.
태훈은 이백호와 러닝머신 30분 정도를 뛰고 곧바로 웨이트에 들어갔다.
양쪽에 50㎏의 벤치프레스 무게를 단 태훈은 거뜬히 들어 올렸다.
“후웁! 하아, 후웁! 하아!”
호흡을 고르게 하며 벤치 프레스를 드는 태훈은 능숙했다. 이백호가 감탄을 했고 주위의 여성들이 흘끗거렸다.
여성들이 흘끗거린다.
보통 헬스클럽에서 흘끗거리는 사람들은 남자들이다. 여자들은 보통 헬스클럽에서 타이트한 옷을 입고 운동을 하기 마련이다.
그녀들이 스트레칭한 번만 해도 남자들은 입이 ‘헤-’ 하고 벌어진다.
그러나 태훈의 경우는 우락부락하게 무식하게 근육만 만든. 딱 여자들이 싫어하는 체격도 아니었고 적당한 근육에 군더더기가 없으며 키도 컸고 얼굴도 잘생겼으니 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태훈은 그런 여자들에게 관심이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었다.
벤치 프레스에서 몸을 일으킨 태훈은 양쪽에서 30㎏씩 뺐다.
봉 무게와 바벨 무게를 합치면 60㎏다.
이백호가 기세등등하게 누웠다.
“나도 드디어 프리 웨이트를 하는구나. 이 정도쯤이야……!”
사실 태훈은 약 2개월간은 런닝과 스트레칭 및 웨이트 머신 위주의 운동을 추천했다. 그렇지만 이백호가 떼를 써서 프리 웨이트인 벤치프레스를 하겠다고 자처한 것이다.
도합 무게 60㎏. 그렇게 무거운 무게는 아니었다.
태훈은 만약을 대비해 언제라도 봉을 잡을 수 있게 이백호의 머리 쪽 앞에 섰다.
“강태훈 변호사 민망하다. 이 정도쯤은 껌이라니까?”
고개를 들면 바로 태훈의 중요 부위가 보였기에 이백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호기롭게 말했다.
그렇지만 태훈은 영 불안했다.
“자, 내려올 때 마시고 올릴 때 후! 하고 뱉어내는 겁니다. 허리는 주먹 하나 들어갈 수 있게 굽혀주시고. 가슴을 쭉 내밀고요.”
태훈은 직접 자세를 잡아줬다. 이백호가 자신만만하게 봉을 잡고는 힘껏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