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34
134
변호인 강태훈 134화
함윤지의 조사가 끝이 났다. 그녀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여기서 피해가려고 애를 써도 도혜가 마음을 돌리지 않는 이상 그녀가 피해갈 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차라리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하는 것이 집행유예로 갈 수 있는 더욱 곧은길이었다.
함윤지가 나서면서 수사관과 계장, 도혜도 함께 검사실을 나왔다.
함윤지는 워낙 얼굴이 크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구속수사의 필요성은 없었다.
때마침 감찰부도 유원호의 조사를 끝낸 것인지 밖으로 나와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유원호와 도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곧 윤지와 그의 시선도 마주쳤다.
“원호 씨…….”
유원호는 함윤지를 못 본 척 시선을 틀었다. 막 원호가 그녀를 지나쳐 가려 할 때 그녀가 손을 뻗었다.
유원호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참나, 내가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너 때문이야. 알아?”
유원호의 본색이 드러났다. 물론 함윤지도 부장검사가 될 유원호와 잘되는 게 좋은 것이었지만 그를 사랑하긴 했었다.
반면 유원호는 순전히 그녀의 배경을 사랑한 것이다. 함윤지 같은 말괄량이 정신 나간 여자.
관심도 없었다.
“그게 무슨 말…….”
“아가리 닥쳐. 난 더 이상 너 같은 년 모르니까.”
그는 그 입을 찢고 싶다는 듯이 노려보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너나 닥쳐. 이 새끼야.”
도혜의 비틀어진 입술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녀의 말에 유원호도 함윤지도 눈을 크게 떴다.
“너, 너. 지금 그게 무슨…….”
“너 이제 내 상관 아니야. 부장검사? 너 이제 검사 아니잖아. 왜 한 대 치게? 아, 쳐봐! 쳐보라고!”
그녀는 유원호의 가슴팍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었다. 계장도, 수사관도 당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검사복을 벗게 될 거라고 할지라도 그는 유원호 검사였다. 그러나 도혜는 너무나도 대담했다.
“어디서 남의 친구한테 욕질이야. 확 패 버릴까 보다. 어휴.”
그녀가 뱉은 말에서 함윤지는 도혜를 보며 눈을 떨었다. 흘끗 그녀를 본 도혜는 ‘뭘 쳐다봐?’라는 표정이었다.
“어디서 별것도 아닌 게.”
도혜는 거칠게 몸을 돌렸다. 유원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이봐, 안 검사……!”
“봤죠?”
그녀는 수사관과 계장을 돌아보면서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팔을 잡아채 앞으로 매쳤다.
쿠웅!
“끄윽!”
“어디서 대한민국 여 검사 몸에 손을 대.”
그녀는 등을 꺾으며 신음을 흘리는 유원호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앞장서 걸어갔다.
계장과 수사관은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역시 안도혜 검사라는 모습이었다.
앞서가는 도혜의 뒷모습을 보며 함윤지는 지난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만약 우리 둘이 정말 좋은 친구였다면 난 변할 수 있었을 거야. 그렇지, 도혜야…….’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업보였다. 유원호도 프로포폴 혐의도, 그리고 자신의 대인관계도 모두 자신이 만든 것들이었다.
만약 그렇게 못되게 굴지 않았더라면, 세상을 누르는 것이 아닌 베풀려고 살았다면 안도혜와 자신이 친구였다면 도혜에 의해 자신도 변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 * *
함윤지는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유원호는 집행유예 2년에 6월을 선고 받았다. 또한, 성형외과 원장은 징역 7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연하게도 유원호는 검사복을 벗게 되었다. 그 나이에 검사복을 벗었으니 앞으로의 생계가 참으로 막막할 것이다.
성형외과 원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태훈은 곧바로 배상명령 신청을 통해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냈다.
태훈은 도혜를 따라 서울남부교도소에 방문했다. 곧 죄수복을 입고 전에 보았을 때와는 많이 다르게 수척해진 함윤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함윤지는 도혜가 면회를 오자 꽤나 놀랐다. 도혜는 그녀가 진심으로 참회하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살면서 무시하고 괴롭혔던 모든 이들에 대한 참회를 그 안에서 했으면 한다.
“지낼 만은 해?”
“그냥저냥…….”
“너 입맛 까다로운데, 큰일이다. 밥은 잘 나오나.”
“그렇지.”
두 사람 사이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도혜는 멋쩍게 웃었고, 함윤지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함윤지도 구치소에 수감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었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다.
의외로 그녀는 모범적인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식 넣었어. 맛있게 먹고.”
“고마워.”
그녀의 그 고마워라는 의미는 무얼까. 도혜는 그저 사식이 고맙다고 느꼈지만, 함윤지의 그 고맙다는 말은 그 뜻이 아니었다.
자신을 감옥에 넣어줘서 자신이 진짜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그리고 그토록 도혜를 미워하고 질시하고 괴롭히려고만 했던 자신인데 그녀가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참 청첩장 나왔다. 이것 좀.”
교도관에게 청첩장을 건네자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혜도 신분이 신분이었기에 곧 청첩장이 윤지에게 전달되었다.
“나한테 청첩장도 주고. 마음만 갈게. 나 바쁘거든.”
도도하게 말하는 함윤지는 웃었다. 태훈과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도혜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의 결혼할 사람한테 뭘 집적대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몸을 일으켜 태훈에게 손짓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태훈은 웃음이 지어졌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면회시간이 지나갔다. 나서기 전 도혜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도혜가 손을 흔들자 그녀도 머뭇거리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밖에 나오면.
정말 정신 제대로 차리면
그때 술이나 한잔하자. 친구야.
도혜와 태훈이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곧 향한 곳은 오유리가 있는 곳이었다.
오유리는 현재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쉽지마는 않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병원 원장을 감옥에 넣게 한 여자였다. 그것이 그녀의 잘못이겠느냐마는.
다른 병원에서 선뜻 받아주기에는 그런 게 분명히 존재했다.
“고향 쪽 병원 알아보려고요. 그쪽에는 이야기가 안 들어갔겠죠.”
그녀의 말에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유리는 정말 순탄하게 일이 진행될까 싶었다.
상대가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은 정말 순조롭게 풀렸다.
함윤지도 징역을 살게 되었고 유원호도 별다를 바 없었다. 감옥은 안 갔지만, 술이나 퍼마시는 폐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원장은 7년 이상을 선고받았다.
그뿐 아니라 태훈이 그녀가 받은 피해 또한 확실하게 보상받아 주었다. 믿음직한 변호사다 정말.
“참 함윤지 양하고 트러블 있었다면서요?”
태훈의 물음에 오유리는 그때 뺨을 맞았던 일을 떠올렸다. 아직도 화가 난다.
“함윤지 양이 말 좀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싶다고.”
“함윤지가요?”
오유리뿐만 아니라 도혜도 눈을 동그랗게 크게 떴다. 그 천하의 자존심 강하고 고집불통 함유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다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만큼 그녀도 변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음에도 법적으로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희 비상 법무법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요. 꼭이죠. 비상 법무법인.”
오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계속 하나둘씩 비상 법무법인은 인지도를 쌓아 가면 된다.
그렇게 비상 법무법인은 그 이름처럼 더 커질 것이다.
오유리와 헤어지고 태훈과 도혜가 식사를 하기 위해 인근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까 윤지가 뭐래?”
“음, 글쎄 우리 둘만의 비밀인데.”
“아이씨. 빨리 말 안 해?”
“왜 그래. 남자친구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라고.”
태훈이 퉁명스레 답하자 도혜는 화가 나지만 그것을 억누르려는 기색이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태훈아. 너의 여자 친구인 내가 너무나도 궁금해서 그래. 말 좀 해주면 안 되겠니?”
“음…….”
그녀가 한 글자 또박또박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태훈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되겠어.”
“하……! 결혼만 해봐. 아침저녁마다 라면을 끓여주지.”
“그것만은…….”
“두고 보라고 한 번.”
도혜는 더 이상 캐묻진 않았다. 그녀와의 대화는 순전히 도혜의 이야기밖에 없었다.
‘좋은 여자예요. 도혜 울지 않게 해주세요.’
‘학창시절에도 인기가 많았어요. 그래도 남자 한 번 사귀지 않더라고요. 누굴 만나려나 했더니 강태훈 변호사님이었나 봐요.’
‘강해 보여도 약하기도 한 아이예요.’
‘두 분 잘 어울려요. 행복하세요.’
두 사람이 친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는데, 마치 몇십 년 지기 친구처럼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태훈은 윤지가 말한 것처럼 정말 멋지고 좋은 여자를 물게 된 것이다.
* * *
태훈과 도혜가 결혼식을 올렸다. 무수히 많은 하객이 왔다. 한마음 법무법인의 박문수 대표 외 다른 사람들, 국선 변호사들.
그리고 각막이식 수술을 받음으로써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김지혜.
출판사 대표이자 이범현의 여자 친구인 이현지. 여자로서의 새 삶을 살아가는 이종혜. 자신과 마찰이 있었지만, 결혼식에는 참석해 준 한기태.
한때는 자신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지금은 안효성의 여자가 되어 자신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준 한재희.
사채업자였지만 지금은 번듯한 직장을 가진 강무혁. 억울한 수감 생활에서 다시 빛을 찾아 고깃집 사장님이 된 이지성…… 등등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하여 주었다.
예정되었던 사람보다 훨씬 많이 왔기에 식권이 부족할 정도였다.
주례는 박문수 대표가 서주었다. 듣기로는 김한기 변호사와 주례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편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했다고 한다.
이제 태훈과 도혜는 정식으로 부부가 된 것이다.
신혼여행은 일본으로 다녀왔다. 너무나도 바쁜 두 사람이 유일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쉴 수 있는 때였다.
일본 라멘도 먹어보고 살살 녹는 회도 먹어보고 3박 4일이라는 일정이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두 사람이 집에 들어왔다.
이제 태훈만 혼자 거주했던 이 집에 도혜까지. 아니, 어쩌면 추후 세 식구, 네 식구가 될 것이다.
하루빨리 아이를 갖고 싶었다.
참,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다. 미래를 전혀 알 수 없다. 특히나 태훈으로서는 알았겠는가.
천하의 안도혜 검사와 자신이 부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을 바닥에 내려놓는데, 도혜가 유혹적인 눈빛으로 보았다.
“우리 첫째를…….”
“또!?”
신혼여행 동안 그녀와 뜨거운 사랑만 한 열 번은 넘게 나눈 것 같았다.
가장 뜨거울 때라지만 너무 뜨거워 태훈은 힘이 들었다.
태훈이 기겁을 하자 그녀가 태훈의 멱살을 끌어당겼다.
거친 키스를 하며 두 사람이 침실로 갔다.
다음 날.
마치 혼이 빨린 것처럼 홀쭉해진 태훈을 보면서 이백호와 이범현 변호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슨 일 있었어?”
“뭐라도 잘못 먹은 거야?”
“무슨 일은…… 잘못 먹기는요. 신혼이 다 그렇죠.”
“아…….”
이백호는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여자들이 그렇지. 남자들보다 때로는 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태훈은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신혼이 되어보지 못한 이범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도혜한테 맞았어?”
정말 순진한 소리 하고 있다.
결혼해보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