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36
136
변호인 강태훈 136화
그러고 보니 앞에 성씨가 같았다.
강태산, 강대환.
미심쩍은 냄새가 나다 못해 차고 넘쳐흘렀다. 빈부 격차 사이에서 발생한 미성년자 폭행사건이라.
흥미롭기도 했고 뭔가 있을 것 같았다.
“검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곧 사건 담당 검사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고 그녀에게서 검사실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나왔다.
“알아서 잘 수사한다고 했다고요?”
“네.”
“혹시, 어머님 형석 군이 대환이라는 학생한테 맞은 다음 어머님께 이전에 말한 사실이 없나요?”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식은 부모에게 그 사실을 밝히기 부끄러워하기 마련이었고 걱정을 끼치기 싫어하니까.
역시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요, 변호사님. 국선 변호사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 절 잘 도와줄까요? 국선 변호사들은 너무 대충대충 한다고…….”
태훈한테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흘끗흘끗 눈치를 살폈다. 그는 짐작했다.
국선 변호는 무료고.
태훈은 사선 변호사였다.
태훈은 싱긋 웃었다.
프로보노 사건.
가능할 것이다. 비상 법무법인의 대표인 범현은 변호사 개인의 직권으로 프로보노라고 판단되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셋 중 누군가가 자신의 지인이라는 이유 같은 걸로 프로보노 사건을 만들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태훈은 이 사건이 프로보노 사건이라고 판단되었다. 물론, 그에 관련한 서류를 받을 것이다.
건강보험료 납입 영수증이라던가, 기초수급자 증명서라던가.
그녀에게 프로보노에 대해서 설명하자 화색이 생겼다. 사선 변호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공짜로 변론해준다는데 싫다는 사람 어디 있겠는가.
또한, 태훈이 행하는 것이 괜한 오지랖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프로보노를 대형 로펌에서 시행하는 이유는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였다.
프로보노 사건 하나 성사시키면 신문에 ‘대한 법무법인 프로보노 변호사를 통해 승소…… 의뢰인의 마음까지 살피는 법무법인…….’
식으로 기사가 나고 그만큼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연예인들이 기부하는 이유는 기부한 만큼의 이미지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부천사 누구누구, 그런 것과 같았다.
비상 법무법인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작은 법무법인에서 일구어지는 프로보노 사건이 승소를 잘 따낸다면 홍보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그럼 내일 영석 군한테 저희 비상 법무법인 사무실로 와달라고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이야기를 마치고 두 사람은 일어나려고 했는데, 때마침 아까 전 식사를 하겠다고 도망치듯 나갔던 검사와 수사관, 계장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계장님은 아메리카노죠. 수사관님은 평소처럼 카페라떼일 테고, 난 에스프레소.”
박 검사는 지갑을 꺼내 종업원에게 카드를 건네며 호기롭게 웃었다. 수사관과 계장은 이렇듯 헤프게 돈 잘 내주는 검사 박문탁이 참 마음에 드는 기색이었다.
“저기…….”
“아, 저 검사님인가요?”
태훈은 그녀의 시선이 젊은 남성과 그 뒤의 건장한 남성과 중년 남성에게 향해 있자 직감했다.
“이만 들어가세요. 제가 몇 마디 좀 나눠보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수사 제대로 해달라는 그런 부탁은 해야죠.”
“아,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카페를 나서고 태훈은 옷매무새를 추슬렀다. 눈물 콧물 질질 짜던 그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검찰청에 고등어를 품에 안고 갔다는 사실에 별의별 생각이 스쳤다.
물론 그 상황을 자신이 본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대충 짐작은 갔다.
“아놔, 아까 그 아줌마 때문에 팔에 냄새 뱄네. 고등어 비린내. 으휴!”
마침 걸음을 향하던 중 박 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훈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비린내라.
분명 고등어는 비린내가 난다. 그리고 냄새가 날 것을 알면서도 가져온 것은 그녀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잖아?
꼭 돈을 줘야 성의인 세상인가?
참 세상 뭣 같군.
그들은 자리에 앉아 웃고 떠들고 있었다.
“아까 전에 검사님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면서 살살 빌 때는 깜짝 놀랐다니까요. 아니, 그럼 자식새끼를 잘 키우던가요.”
“그렇지. 그렇지. 하여튼, 우리나라 가정환경은 이래서 문제야. 응? 자식들이 왜 엇나가는데. 부모들 탓이지. 보니까. 영석이라는 애는 아버지도 없더만. 애가 소홀히 키워지니까. 그렇게 애들 때리고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 그래놓고 다 그런 생각을 해요. 설마 우리 애가 그러겠어? 밝혀지고 후회하면 누가 책임져? 내가 눈물 짜면서 무릎 꿇고 빌면 ‘아, 어쩔 수 없네요.’ 초범이니까. 쉽게 약식기소로 갑시다. 해야 해?”
그 이야기를 뒤에서 듣는 태훈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고,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다.
적어도 태훈에게 지금 납득이 안 간다.
정확한 사건도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런 식으로 언급하는 건 큰 문제가 있다.
“법이 그렇게 가벼우면 우리 대한민국은 누가 지켜? 응?”
“검사님들이 지키시겠죠.”
“그렇지, 바로 우리 검사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 박문탁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 선 태훈을 발견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태훈은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영석 군, 변호를 맡게 될 강태훈 변호사입니다.”
태훈을 본 계장과 수사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반면, 박문탁은 아니었다.
그는 부임한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태훈의 이름이 귀에 익기는 했지만,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 아줌마한테 변호사가 있었어?’
그는 슬쩍 명함을 집어 확인했다.
국선 변호사가 아닌 사선 변호사였다.
비상 법무법인. 어디서 들어본 법무법인 같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떠올려보았지만 지금 당장은 생각나지 않았다.
“수사 좀 제대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공평하게 말입니다.”
부탁하는 듯한 투이긴 했지만, 강압적이기도 했다. 수사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엎어버리겠다는 어조였다.
검사만 법 아는 건 아니다.
변호사도 법을 알고 휘두를 수 있다.
만약 이 사건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으면 태훈은 정말 불도저처럼 밀어버릴 의사가 있었다.
그의 딱딱하고 불쾌한 어조에 박문탁은 눈살을 찌푸렸다.
“말하는 것하고 행동하는 게 딴…….”
“검사님…… 안도혜 검사님 남편입니다. 강태훈 변호사요……!”
수사관이 속삭이듯 그의 귀에 말했다. 강태훈 이름 석 자가 또렷하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안도혜 검사의 남편이라는 말은 강하게 뇌리를 파고들었다.
서울중앙지검에 발령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한 번 호되게 털린 적이 있었다. 박문탁도 나름 꽤 가진 집안의 사람이었고, 고개가 하늘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턴 게 바로 안도혜 검사였는데,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는 이유로 처음 만났을 당시에 그를 아주 탈탈 털었다.
그녀를 곱씹으며 다른 검사들에게 물으니, 그녀와는 절대 대립해선 안 된다고 들었다.
또한, 과거에 이범현이라는 검사가 서울중앙지방에 있었는데, 완전 개또라이 검사였다고 들었다.
그로 인해 검사복 벗은 검사도 몇 있었다고.
그런 이범현이 창립한 곳이 비상 법무법인.
그리고 그곳에 소속된 사람 중 강태훈 변호사.
이범현과 친한 친구이기도 하면서 안도혜의 남편이자 수많은 사건에서 두각을 드러낸 뛰어난 변호사.
인성 기업뿐 아니라 태일 기업까지 물 먹인 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째서 그런 변호사가. 박영석의 변호사라는 건가. 강태훈의 몸값은 비쌀 것이다. 그 아줌마가 그런 돈이 있다고?
물론 그런 것을 태훈이 대답해줄 리 없다.
따지듯이 하려던 박문탁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아까 전에 비린내 어쩌고 하시던데…….”
더욱 난감한 건 태훈이 뒷말하는 걸 들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성의를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듣는 제가 기분이 나쁘네요. 아직 정황이 정확하게 밝혀진 것도 아니고요. 그렇죠?”
박문탁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뒷말을 까고 있었고 그것을 상대방의 변호사가 들었다라…….
할 말은 없었다.
“앞으로 사건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그에 합당하게 저 역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태훈은 작게 묵례를 취했다. 그렇지만 지켜본다는 건. 너희 똑바로 안 하면 보자. 라는 어조였다.
박문탁은 턱을 긁적였다.
사건이 난처하게 돌아간다.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던 사건인데, 강태훈이라는 변호사가 개입해서 파고든다면?
사건이 어찌 될지 모른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할지 아직 경험이 부족한 박문탁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 * *
비상 법무법인 사무실로 여덟 시가 되어서야 박영석이 왔다. 영석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순진하게 생긴 아이였다.
얼굴에 주근깨도 있었다. 이 아이가 사람을 그렇게 폭행했다는 사실이 조금 믿기지 않았다.
덩치는 좀 있어도 키는 작은 편이었는데, 끼고 있는 안경을 보면 지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여덟 시까지 태훈은 퇴근하지 않고 다른 업무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들어오고 오렌지 주스 한 잔 따라주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성화 고등학교. 그곳에서의 일들을 하나둘씩 푸는데, 태훈으로서도 믿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다.
현재 반 담임에게 예전에 한 번 대환이 자신을 때리고 괴롭히는 사실을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남자들끼리 그럴 수 있는 거지 뭘!’ 하면서 얼버무렸다는 것이고, 다른 교사들한테 그 사실을 말해도 대부분 똑같았다는 것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영석은 없는 집안 형편 아이였다. 반대로, 다른 아이들은 있는 집 애들이다.
당연히 교사들은 마찰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 터다.
전화해서 ‘저 대환이 아버님. 대환이가…….’
라고 운을 떼는 것이 치가 떨릴 것이다.
하물며 차별도 존재한다고 했다.
촌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촌지는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건네는 돈 봉투였는데, 이 촌지는 사실 전국적으로 있는 문화였다.
그리고 역시 가장 심한 것은 서울권이었다.
촌지는 거의 당연시한 문화가 되어 가고 있었고 교사들도 처음에는 꺼려 했지만 이제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사람들 태반이다.
촌지를 주는 아이와 주지 않는 아이.
얼마의 촌지를 받았냐의 차이.
이런 것에서 교사들은 구분선을 만들고 대우를 해준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옆집 누구누구 엄마는 담임에게 얼마를 촌지로 줬다. 자신은 더 적게 주면 자기 아이가 더 무시당할 것 같고 더 높은 금액의 촌지를 주기 마련이다.
특히나 정, 재계 아이들이라면? 그 촌지로 자랑까지 한다고 한다.
반에서 흔히, 우리 부모님이 교장한테 때려준 돈만 몇천이야. 골대를 누가 세웠게. 급식실 식판을 누가 바꿨게.
TV는? 에어컨은?
그 소리를 같은 학우 학생한테 영석도 숱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정, 재계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통해서 이뤄진 촌지에 대해서도 경쟁이 붙는 것이다.
당연히 교사들은 아무리 영석이 공부를 잘하고 뭐해도 다른 아이들보다 소홀히 대할 수밖에 없었다.
영석이의 부모는 힘이 없지만. 다른 부모들은 힘이 있었으니까.
“성화 고등학교에 간 게 너무 후회돼요. 교사들도, 애들도 전부 우리나라 사람 같지 않아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고요.”
그 하소연을 토해내는 영석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가정에 대한 비판도 있어보였다.
항상 비교당하고 살고 있으니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의 의심도 들 것이다.
이야기를 더 듣는데, 대환이 영석을 괴롭히던 수위는 생각보다 심했고 컸다.
이 정도면 거의 소년원 감이다,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관련해 역 소송을 걸어버린다면?
그쪽에선 아마 급히 합의를 보자고 덤비거나. 아니면 짓누를 것이다.
애초에 대환이 영석을 괴롭혔던 사실이 없었다는 것처럼.
그 조작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무수히 많은 재계 아이들. 그리고 그중 꼴랑 한 명 있는 가난한 형편의 아이.
아이들이라고 누구 편을 들 것 같은가.
대환이 편을 들겠지.
교사들은? 대환이 편.
교장은? 교감은? 이사장은.
모두 대환이 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폭행을 받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 사건이 꽤나 까다로워질 것 같았다.
“그보다 대환이는 왜 때린 거니?”
태훈의 물음에 머뭇거리던 그는 슬쩍 곁눈질로 그를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희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아셨죠?”
“그래.”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꽁꽁 숨겨두었던 영석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