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53
153
변호인 강태훈 153화
구속영장을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허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도혜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담당 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게 김민석 씨를 구속할 만한 확실한 증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대체 그럼 어떤 증거가 있어야 합니까! 앞뒤가 너무 맞아 떨어집니다. 페라리를 타고 있던 김민석이 거리에서 걷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어느새 찌그러진 벤츠 차량을 타고 내렸죠. 이보다 더 확실한 정황이 어디 있습니까.”
– 그래도 이미 언론에는 비서라는 사람이……. 이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도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판사는 너무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 대상이 인성기업의 둘째였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아니, 어쩌면 판사에게까지 민석의 손이 뻗어 있을지도 몰랐다.
도혜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만약 판사에게까지 손이 뻗어 있다면 하루 빨리 구속영장을 받아 내야 했다. 그래야 한다. 혹시나 민석에 대한 물증이 모두 수집되었음이 그의 귀에 들어간다면, 민석은 분명 해외로 도주할 것이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정보는 민석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증거가 있어도 범인을 잡지 못한다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는가!
불안한 듯 그녀는 손톱을 오독오독 깨물었다.
그녀는 아차 싶었다.
어쩔 수 없다. 이제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도와준다면 판사도 어쩔 수 없이 구속영장을 발부해 줄 것이다.
“평검사 회의 지금 즉시 소집해!”
“회의요?”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곧 수사관은 수화기를 들어 각 호실의 검사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두 시간 후 회의실로 평검사들이 모였다. 계속해서 그녀를 물어뜯던 그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회의를 연 이유가 무엇인가.
게다가 그녀의 이번 행동은 예의에 어긋난 것이다. 이 자리에는 그녀보다 훨씬 기수가 높은 선배들도 분명 있었으니까.
“이번 순대 뺑소니 사건의 진범이 잡혔습니다.”
“진범?”
“확실한 이야기인가? 안 검사?”
“진범이라니, 그게 도대체 누군데?”
“진범은 인성기업의 둘째 아들, 김민석입니다.”
그녀는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스크린에 김민석의 얼굴을 띄웠다.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이었으나 휴학을 하고 하버드 로스쿨을 수료한 남성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언론에는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인성기업의 둘째 아들입니다.”
“증거가 있는 거야?”
인성기업의 둘째. 그런 그를 진범이라고 말하는 그녀. 평검사들은 덜컥 겁부터 났다. 인성기업은 국내 최고의 기업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발언은 위험하게 들렸다.
“있습니다.”
그녀는 슬라이드를 넘겼다. 그녀가 하나하나 상세하게 그 자료들을 토대로 근거를 제시하자, 평검사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은 하나하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긴가민가했지만, 도혜의 주장처럼 김민석이 진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찌그러진 벤츠 차량. 그 앞에서 사색이 된 얼굴로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김민석의 사진을 띄었다.
“통화기록 내용으로는 임만기와 김민석이 통화를 했었다는 것을 아까 보여드렸습니다. 사진 속 시간대의 김민석은 임만기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만기가 대신 그의 죄를 떠안게 된 것이죠. 일종의 대가를 받기로 하고요.”
평검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검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 그럼 잘됐네. 안 검사, 그렇게 혈안이 되어 뛰어 다니더니 정말 다른 진범이 있었던 거네? 그럼 알아서 잡을 일이지, 왜 바쁜 우리를 소집한 거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
도움이라는 말에 그들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천하의 안도혜가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현재 구속영장을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발부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법원에서 몸을 사리는 거죠.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인성기업의 자녀라면 우리 검찰뿐 아니라 경찰 쪽에도 첩자가 있다는 겁니다. 이제 곧 그에게 그 정보가 전해질 것이고, 해외로 도주할 염려가 있는 거죠.”
“아, 그러니까 우리들한테 구속영장이 발부될 수 있도록 압박을 해달라?”
이두열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 피해를 우리가 왜 감수해야 하지? 상대는 인성기업이야. 또, 그건 담당 검사인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바쁜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두열은 그저 이 상황이 못마땅했고 도와주기 싫은 것이다. 그러자 몇몇 검사가 그에게 동조했다.
자기 사건에 왜 바쁜 우리들까지 끌어들여! 하는 표정들이었다.
도혜는 방금 전 그 말을 내뱉은 이들 중 어떤 이는 분명 인성기업의 첩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도 동조하는 듯 보였지만 그건 얼떨결에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무리 검찰이 썩었다 한들, 아무리 이들이 초심을 잃었다고 한들, 이들은 검사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무서워한다고?
쿵!
도혜의 주먹이 탁상을 내려쳤다.
“언제까지 겁쟁이처럼 그렇게 숨어서 남들 꽁무니나 쫓아다닐 겁니까!”
“무슨…….”
“뭐?”
“꽁무니?”
평검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 검사가 되셨습니까? 처음에 왜 검사가 되겠다고 했습니까. 남들에게 우러러 보이려고요? 아니면, 이 비리가 판을 치는 세상. 나 하나만큼은 정의롭게 살고 싶어서 그런 겁니까! 딱 10년 전, 딱 15년 전을 돌아보십시오.”
그녀의 말이 맞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검사 중, ‘난 권력을 가지고 싶어!’ 그러면서 검사가 된 이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처음의 그들은 누구보다 정의롭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닌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초임 검사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검사가 된 이유.
그건 비리 없는 세상을 한 번 만들어보자. 그게 아니었던가.
어느덧 자신들은 안도혜의 말처럼 누구의 꽁무니나 쫓아다니며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리며 그렇게 비겁하게 살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지키고 싶은 건, 가족 아닙니까? 나는 검사로서 남아야 한다. 나는 검사가 되어 높게, 더 높게 승진할 거다! 가족을 위해.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지금 그 아내와 뱃속의 아이는, 앞으로 남편과 아버지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겁니다.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진범도 잡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그게 말이나 됩니까!?”
도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그 시선을 회피했다. 그들이 더러워도 검사를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가족을 위해서다. 꽁무니를 쫓는 이유? 그건 아이들이 더 좋은 대학을 가게 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썩은 검사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왜 우리가 있습니까! 인성기업이라는 이 넉자가 뭐가 그리 무섭습니까! 결국 그들은 일개 기업일 뿐입니다. 그 기업이 만들어진 건,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위에 기업은 없는 법입니다. 피해자의 아내가 억울하지 않게 도와주십쇼. 부탁드립니다.”
도혜는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누구보다 콧대 높았던 검사가 바로 안도혜다. 선배들에게는 예의가 쥐뿔도 없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골칫거리. 문제아. 미친년.
그녀가 바로 안도혜다. 그런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순간 평검사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누군가 깼다.
“오재욱 판사님이십니까? 저 이태현 검사입니다. 순대 뺑소니 사건. 왜 진범이 확실한데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는 겁니까? 계속 이러실 겁니까?”
도혜가 고개를 들었다.
이태현 검사. 그는 여기 모인 평검사 중 부장검사로 승진이 가장 유력한 이였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저희 검찰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휴대폰을 거칠게 끊었다.
또 다른 누군가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오재욱 판사님. 저 길인두 검사입니다. 지금 당장 구속영장 발부해 주십시오. 뭐라고요? 증거가 확실한데, 영장이 발부가 안 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전화가 끊어졌다.
그때부터 검사들은 하나둘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순서대로 한 사람씩.
누군가는 몸을 일으켰다.
“직접 뵙고 오지.”
“나도.”
“다녀오지.”
몇몇 검사가 함께 나섰다.
도혜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썩었다 한들,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위해 살아가는 검사들이었다.
이태현 검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라면 두 시간 내면 아마 발부될 거야. 미치지 않고서야 발부하지 않을 리가 없지.”
검사들은 모두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계속 휴대폰을 누르고 있었다.
서울지검의 검사들.
그들은 전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검사들이다. 평검사라고 할지라도 그들 개개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두열은 이를 질끈 깨물었다.
검사들이 안도혜의 말에 넘어갔다. 평소에는 자기 실속만 챙기기에 바쁜 것들이!
그때서야 도혜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생겨났다.
“임우연 검사님. 지금 사건…….”
“아, 기다려. 나 뭐 좀 확인하고 가려고.”
그때 수사관 몇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와 담당 검사를 찾았다. 하지만 검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손을 저으며 자기 소속의 수사관들을 내보냈고 안도혜와 함께 기다려주었다.
한편으론 법원으로 출발했던 검사들이 오재욱 판사를 만났다는 전화도 걸려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안도혜의 휴대폰이 울렸다.
– 나 오재욱 판사일세. 지금 바로 구속영장 발부하도록 하지.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당혹한 듯 보였다. 서울중앙지검의 검사들이 단체로 전화를 걸어대니, 그도 몸을 사리고 싶어도 더는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검사들과 판사들은 암묵적인 협약관계였다.
검사들이 똘똘 뭉쳐 그렇게 강하게 나온다면. 자신이 추후 그들에게 핀잔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구속 영장을 발부한다고 합니다.”
도혜의 말에 검사들이 씨익 웃었다. 몇몇 검사는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이제 영장은 발부될 것이다.
이태현 검사가 능글맞게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언제 인성기업이 무섭다고 했나? 안 검사, 자네가 미워서 그랬던 거지.”
그 말에 도혜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저 고마웠다. 이렇게 힘을 모아줘서.
“이제 가야지? 김민석인가, 그 뭐시기 잡으러. 참, 우리 사무실 수사관이 지금 놀고 있거든. 갈 때 함께 데려가게.”
“우리 사무실 수사관도.”
“우리 쪽도.”
“감사합니다.”
도혜가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다른 검사들도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도혜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성기업의 둘째를 잡으러 간다.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지 않은가. 또한 자신들까지 이렇게 응원하며 움직일 정도이니, 말 다한 것이다.
오늘은 검찰이 썩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그런 날이기도 하다.
사무실로 향하는 도혜의 걸음은 빨랐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김민석 위치 파악하고, 출국금지 명령 내리도록 조치 취하세요.”
“구속영장이 떨어졌습니까?”
“네! 어서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입니다!”
수사관과 계장의 얼굴도 밝아졌다. 결국 안도혜가 해낸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다른 사무실에서 지원 나온 수사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혜는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빌어먹을 김민석을 잡아들여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똑똑히 가르쳐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