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54
154
변호인 강태훈 154화
김민석은 이영호를 통해 안도혜 검사가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낭패였다. 구속영장이 발부가 된다면 자신은 검거될 것이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여유 있게 도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구속영장을 바로 발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이미 자수를 한 임만기는 잡혀 있었고, 또한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하기에는 고려해 봐야 할 것이 많았기에 구속영장 발부가 늦춰질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는 이제 서둘러 이 대한민국 땅을 떠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때 공항으로 가려던 그는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출국금지 명령이 떨어졌으며, 구속영장이 발부가 되었다는 문자 메시지였다.
그는 다소 놀랐다. 이렇게 빠르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예상밖이었다.
그러나 공항 말고도 해외로 빠져나갈 방법은 많았다. 불법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그에게는 쉽다고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돈이 많으니까.
그는 일단 몸을 숨기고 바로 다음날 출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민욱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 지긋지긋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겠군. 또 자신이 튀면 강태훈과 안도혜가 얼마나 원통해할지도 눈앞에 훤히 보이자 실소가 터져 나왔다.
– 확실하게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나?
“원래 사람 사는데 변수가 많은 법이지.”
– 출국금지가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어쩌려고?
“날 걱정해 주는 거야?”
김민석은 피식 웃었다.
꼴에 형이랍시고 안 하던 걱정을 하는 건가?
“밀항해야지. 내일.”
– 그래, 다신 이 땅에 발 들이지 마라. 끊는다.
그것이 끝이었다. 김민욱과의 통화는.
그는 휴대폰의 배터리를 분리한 후에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그리고 다른 전화를 이용해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김민석의 위치는 쉽사리 파악이 되지 않고 있었다. 역시나 생각했던 것처럼 그가 빠르게 몸을 숨긴 것이다. 또한 그가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려고 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 그가 마지막 통화를 두 시간 전쯤에 했다는 것과 그 위치가 공항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문제는 그의 행방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수사관 여럿이 그의 행방을 추적했고, 경찰 병력도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는 것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가 밀항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했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었다. 만약 이대로 해외로 도주해 버리면 정말 잡을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
그때 안도혜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 내일 목포항 9시. 김민석.
문자를 확인하고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문자에는 그가 밀항하려는 장소와 시간이 찍혀 있었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날아온 번호도 ‘1234’라는 번호일 뿐이었다.
하지만 김민석의 주변의 누군가가 이 정보를 자신에게 알려준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와 반대로 김민석이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 다른 루트를 통해 밀항하려는 속셈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깊게 생각을 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안도혜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드디어 잡았다. 김민석.”
* * *
도혜의 옆에는 태훈이 함께하고 있었다. 또 그녀의 뒤쪽에는 정말 믿을만한 수사관 세 사람이 있었다.
혹여 수사관이나 경찰 중에도 첩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목포항과 관련해서 문자가 온 사실은 밝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훈은 흥분된 얼굴이었다.
드디어 그 새끼한테 무서움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자신들을 그렇게 궁지까지 몰았던 빌어먹을 놈이다.
오늘, 승자가 되어 한껏 웃어줄 생각이었다.
차는 목포항에 무난하게 도착했다.
조용한 항구로 등대의 불빛만 언뜻언뜻 비춰지고 있었고, 간혹 어선이 항구로 들어오는 것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넓게 포위망을 형성하고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다.
태훈과 도혜는 함께였다.
태훈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작게 웃으며 볼에 입을 맞춤으로써 화답해 주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8시 57분.
그때 멀리서 라이트 불빛이 비추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점점 가까워졌다.
곧 검은색 차량에서 김민석과 체격이 건장한 한 남성이 내렸다. 남성은 저번에 태훈이 보았던 그 사내였다.
곧 어선 하나가 그들 가까운 곳으로 들어왔다.
김민석은 조잡하고 냄새가 날 것 같은 그 어선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쩌다가 자신이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일단 중국으로 간 후에 또 다른 방법으로 미국이나 러시아 쪽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수배가 내려졌다고는 해도 돈은 충분했고, 다른 사람의 계좌로 돈을 받아서 신분을 바꾸고 살아갈 수도 있었다.
한편으론 차라리 후련했다.
어쩌면 더 이상 인성기업의 자녀라는 그 무거운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담배 하나를 입에 문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대한민국과 안녕이다.
지퍼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어선으로 막 발을 올리려고 했다.
“김민석.”
그때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늘었지만 힘 있고 묵직한 목소리였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총을 들고 있었고, 그의 옆에는 강태훈이 있었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나둘, 흩어졌던 수사관들도 모습을 드러내며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어선을 이끌고 온 중국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서둘러 김민석에게 배에 올라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강태훈. ×발, 넌 끝까지 마음에 안 들어.”
“지랄 삽질하는 소리하고 앉았네.”
태훈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 말을 끝으로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침묵이 끝나는 순간, 수사관들과 태훈이 내달렸다.
민석의 옆에 있던 사내가 앞을 막아섰고, 민석은 어선 위로 오르려고 했다.
수사관들도 엄연히 경찰이었다. 그만큼 호신술에 능통하고 각종 무술을 익힌 자들이다.
하나, 앞을 막아선 사내에게 얻어맞고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한 수사관이 막 그의 주먹에 맞아 바닥을 구르는 순간이었다. 태훈의 육중한 발차기가 그의 턱을 노리고 쏘아져 들어갔다.
빠아악!
들어 올린 팔이 쇠파이프로 맞은 것처럼 지끈거렸다.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나하고 끝내야 할 일이 있지, 아마?”
태훈은 목을 우두둑 풀었다.
자신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그때 자신이 침착하기만 했다면 그와 해볼 만했다. 게다가 이젠 수사관 몇이 함께 있지 않은가.
그때 어선 쪽을 향해 첫 공포탄이 발포되었다.
탕!
그리고 이어 실탄이 날아가 어선과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탕!
“모두 움직이지 마!”
그녀가 정말 실탄을 발포하자 중국인들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김민석도 우뚝 멈춰 섰다.
끝났다. 그것을 그도 직감했다.
단지 강태훈 저 빌어먹을 자식과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붙잡힌다는 것이 원통할 뿐이었다.
가슴을 발로 얻어맞은 태훈은 뒤로 물러났다가 명치를 부여잡으며 쓰러지듯 무릎 꿇었다.
수사관 한 사람이 다시 사내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태훈도 상대의 하단을 노리고 돌진했다. 그리고 그의 다리를 잡아채 바닥에 눕혀버렸다.
서둘러 그의 목을 팔로 감고 졸랐다.
퍽퍽퍽!
사내의 성난 주먹질이 태훈의 얼굴과 어깨를 계속해서 가격했지만 태훈은 결코 놔주질 않았다.
이를 악문 채 태훈은 사내에게 말했다.
“너도 나처럼 기절 한 번 해야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것.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 태훈이었다.
곧 사내는 을 축 늘어뜨리며 기절했다.
어느덧 안도혜는 가만히 서 있는 김민석에게 다가갔다. 그는 양손을 들어 올린 채 등을 보이고 있었다.
“개새끼. 비싼 밥 처먹다가 콩밥 먹어야 되는데, 어쩌냐?”
“콩밥도 맛있지.”
여전히 김민석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품속에 총을 집어넣은 도혜가 막 수갑을 꺼내 그의 팔을 끌어오려 할 때였다.
김민석이 어선 한편으로 몸을 날렸다.
거기에는 녹슨 칼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근데 이렇게는 못 끝내겠어!”
김민석이 칼을 집어 들고 도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보고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맺혔다.
“미치겠네. 진짜. 검사 살인미수죄 추가요.”
그녀는 오히려 기뻤다. 단순 뺑소니 혐의와 다른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운 걸로 넣기에는 왠지 심심한 놈이었다. 더 강한 죄목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자신을 도와준다.
게다가 한 번 신나게 패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도 만들어주다니. 이거야 원, 고마워서 어쩌지?
도혜는 부드럽게 몸을 돌려 칼을 피해내고는 그의 손목을 꺾었다.
우둑!
탱그랑!
“크윽!”
도혜의 말아 쥔 주먹이 뒤로 젖혀졌다.
“이건 내가 너 때문에 죽을 뻔한 대가!”
퍼억!
굳게 쥐어진 주먹이 허리의 힘까지 실려 김민석의 안면을 가격했다. 순식간에 코에서 피가 터졌다.
“그리고 이건 내 남편 강태훈 힘들게 한 대가!”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그녀는 힘껏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때 등 뒤에서 태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건, 그냥 네가 재수 없어서.”
바닥으로 풀썩 쓰러지려는 김민석의 안면을 태훈의 발이 거칠게 걷어찼다. 다소 과격한 제압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그가 벌인 일에 비하면 이건 새발의 피였다.
수사관들이 서둘러 중국인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김민석 역시 수갑이 채워진 채 포박되었다.
김민석.
그 끈질기고 지독했던 악연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 * *
[순대 뺑소니 사건의 가해자가 임모 씨가 아닌 인성기업의 차남인 서른일곱 살 김 씨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김 씨는 자신이 타고 가던 페라리 차량이 열을 내며 멈춰 서자, 임 씨를 불러내 그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 씨는 그 대가로 임 씨에게 30억을…….]김민욱의 사무실.
뉴스에서 기자의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민석이 검거된 지 삼 일.
아직도 언론은 뜨거웠고, 이 보도는 일주일은 갈 것이다.
인성기업의 부도덕성을 두고 성토하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인성기업은 이번에 김 씨가 벌인 일과 관련해서 전혀 무관하고, 알지 못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김민석이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흰 머리에 둥그런 안경을 쓴 그는 김민욱에게 살짝 묵례를 했다.
오랫동안 김민석을 보좌했던 사람이었다. 국내에서도, 또 그가 해외에 있었을 때도.
그래선지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감히 김민욱의 앞이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꼭 이렇게까지 하셨어야 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사직서였다.
김민욱은 작은 웃음을 지었다.
“수십 년 동안 우리 기업을 위해 헌신한 것을 압니다. 그만큼 노후가 불편하지 않게 해드리죠. 그리고 이렇게까지 했어야만 합니다.”
김민석의 위치를 제보한 사람? 그건 바로 김민욱이었다.
“만약 해외로 도피했다면, 과연 인성기업에 경찰과 검찰이 압박을 넣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비판적 여론이 이 정도로 끝나지 않고 우리 기업에 적대적으로 돌아설 거라는 생각은 못 하시나요?”
“그래도 김민석 씨는 이사님의 동생이지 않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저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고, 회사가 더욱 비상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 때문에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는 건 결코 원치 않아요. 아무쪼록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김민욱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무색해진 남자는 마지막 묵례를 하고는 돌아섰다.
창가 앞에 선 김민욱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깊게 빨아 넘긴 후 뱉어내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져 있었다.
“후련하구나.”
김민석은 결국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렇게 김민석은 이 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고, 죽은 신동관의 아내에게 매서운 질타와 욕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인성기업은 그 위로의 명목으로 그녀에게 상당한 위로금을 지급해 주었다.
이번 일로 김민석은 법정에 서면 중형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임만기 역시 거짓 자수를 한 그 죗값을 받게 될 것이다.
비밀리에 뒷돈을 받고 김민석을 뒤에서 도왔던 경찰, 검사, 사법부의 판사들은 김민석이 그렇게 되자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이 피해보지 않기 위해.
결국 김민석은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