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6
16
변호인 강태훈 016화
8장 장애인의 인권
스물두 살. 3학년 1학기가 되었다.
2학년 2학기.
결국, 김민석은 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취를 감췄다.
군대에 갔다느니 뭐니 하는 소문이 돌았다. 그에 대해 한기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가진 병명인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군대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울리기는 적합하지 않았기에 면제라고 그는 말했다.
기태와는 무척이나 친해졌다.
지내다 보니 녀석은 무척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점차 멀어졌던 친구들도 민석이 사라지자 그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태훈의 성적은 변함이 없었다. 계속해서 성적을 상위권을 유지하는 중이었으며 범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기태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세 사람이 함께 어울리면 교수님들은 ‘법과 인재 삼인방’이라고 불렀다.
“오빠, 안녕하삼-”
수강을 듣기 전 책과 필기도구 등을 세팅하던 태훈은 인사하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스토커라니까 스토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녕 못 하삼.”
그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러나 귀여운 목소리의 여인은 그의 옆에 앉았다.
태훈이 군대에 있던 때 ‘고속도로 스캔들’이라는 영화가 흥행을 터뜨렸다. 자그마치 신인 배우가 800만 관객을 끌어올리는 경이로운 수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영화에서 탄생한 여자 주연 배우가 바로 자신의 옆에 앉은 한수영이었다.
가녀린 체구에 매력적인 웃음, 활발한 성격.
또한, 국내에서 기대되는 신인 배우이자 대학생들이 손잡고 걸어보고 싶은 여자 연예인 1위.
안아주고 싶은 연예인 1위. 지켜주고 싶은 연예인 1위를 모두 섭렵한 여성.
그런 여자가 자신에게 집적된다.
“오늘 오붓하게 같이 학식이나?”
“싫어.”
“그럼 오붓하게 영화나 한 편?”
“싫다.”
“그럼 오붓하게 코피나 한 잔?”
“싫어.”
“우리 오빤 이렇게 튕길 때마다 너무 멋있다니까요!”
“……미쳐 버리겠네.”
그녀는 당찼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그녀의 주위로는 태훈 못지않은 남성이 많을 터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에게 이러는가 싶긴 하다.
애초에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는 태훈에게 관심이 있었다.
이유는 누나 강혜지와 친분이 두터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태훈도 부드럽게 대해주었더니 어느덧 아이가 이렇게 자신에게 집착한다.
“너 연예인 아냐?”
“맞는데 왜요?”
“너 언론에 알려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도대체.”
“국민 여동생 한수영! 스캔들 인정! 상대는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최고의 인재!”
그녀는 태훈의 위협에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듯 양손을 모아 황홀하다는 표정이다. 태훈은 한숨을 푹 쉰다.
말이 안 통하는 처자구먼.
실상 자신은 현재 연애에는 관심이 없기에 수영이가 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되려 이런 그녀의 집착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오빤 저와의 데이트를 결국 피할 수 없을 거예요. 흐흐.”
그녀의 마지막 웃음에서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식겁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대한민국 수많은 삼촌 팬들이 껌뻑 죽는다는 윙크를 보냈다.
오히려 태훈은 그 모습이 끔찍했다.
왠지 무서운 아이이다.
* * *
머릿속에 맴돈다.
‘오빤 저와의 데이트를 결국 피할 수 없을 거예요. 흐흐.’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주말에 범현 기태, 그리고 몇 사람과 함께 장애인 복지 센터로 봉사 활동을 오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범현과 기태가 오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에 수영을 돌아본 순간 그녀의 소름 끼치는 웃음을 볼 수 있었다.
“대단하다, 너도 참.”
“헤헤.”
그녀는 태훈의 팔 한쪽을 잡아 이끈다. 태훈은 푸른 지적장애 복지 센터를 보면서 숨을 턱 쉰다.
다른 아이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순전히 단짝 친구들을 떼어놓고 자신의 옆에 붙어 있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오늘 봉사 활동을 온 사람은 여섯 사람이었다.
실상 모두 학점이 걸려 있어서 온 것이다.
복지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절로 얼굴을 찌푸리는 아이도 있을 정도다.
“슈우웅! 날아라~ 슈우웅!”
앞쪽으로 뚱뚱한 체격의 183㎝는 될 법한 산만 한 덩치의 남성이 장난감 비행기를 들고는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오신 대학교 자원봉사자분들 맞죠?”
“네, 안녕하세요.”
원장으로 추정되는 이가 다가왔다. 안경을 쓴 그는 부드럽게 생긴 인상이 돋보였다.
“저희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안내받아서 오늘 잘 좀 부탁합니다.”
“네네.”
태훈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건장한 남성이 다가왔다.
실상 지적장애 복지 센터는 여자보다는 건장한 남성들이 많다.
이유는 지적장애라는 것이 정신연령이 뒤처지는 것이기에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 여자들로서는 막기 버거웠기 때문이다.
“이리로 오시죠.”
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양의 대소변이 묻은 기저귀들과 이불, 청소 감 등을 줬다.
“많네요.”
“그렇죠. 어? 그러고 보니 이분 연예인 아니신가요?”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저 영업용 미소. 태훈은 기가 찼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나중에 사인하고 사진 좀…….”
“그럼요, 그럼요! 헤헤.”
남성은 그녀의 외모에 반한 듯하다. 곧 그가 ‘수고 좀 해주세요.’란 말과 함께 사라졌다.
태훈이 자연스레 자원봉사 학생들의 리더가 되었다.
척척 할 일들을 쥐여줬다.
그리고 남은 건 큼지막한 대소변이 묻은 이불 빨래였다.
“어머! 오빠 노렸구나.”
“뭘?”
“샤방샤방!”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광고에 나오듯이 이불을 밟는 표정을 짓는다.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모습이다.
“네가 쌩쇼를 하는구나.”
“칫!”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불을 들고는 앞쪽으로 나왔다. 큼지막한 고무대야에 물을 받고 세제를 푼 후 그 안에 이불을 던져 넣었다.
“얍!”
그녀가 먼저 올라섰다. 곧이어 태훈도 올라서 밟았다.
그녀는 함께 밟는다는 게 기분이 좋은지 신났다.
태훈도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픽 웃었다.
“헤헤.”
‘나쁜 아이는 아니란 말이야.’
심성이 곱고 착한 아이이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을 빼면 괜찮은 아이라는 생각이 항상 든다.
힘껏 밟다 보니 허리가 아파 온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밟은 후 꾹 짜서 탈탈 털어 널었다.
그런데 아까 그 건장한 남성이 이불 하나를 또 들고 왔다.
“그새 또 쌌네요.”
“하하, 거기에 두고 가세요.”
태훈은 멋쩍게 웃었다.
남성이 사라지고 두 사람은 다시 이불을 밟는다.
* * *
어느덧 점심이 되었다. 모두가 녹초가 되었다.
식사하면서도 자원봉사자와 복지 센터 선생들은 지적장애 이들을 끼고 함께 식사한다.
“좀 흘리지 말고……!”
“이 선생님. 소리치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아, 저도 모르게.”
그러던 중 20살 정도로 보이는 마른 남성이 계속 음식을 흘리자 사회복지사가 성을 내려다 원장의 말에 아차 한다.
태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지적장애 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욱하는 게 생기게 마련일 거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떤가요. 일은 힘들어도 보람차고 그러지 않나요?”
원장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보람 하나로 어느덧 원장 일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보듬고 아끼고 사랑하는 게 이젠 저의 낙이 되었죠.”
원장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제가 훌륭한 사람이란 건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도 학점에만 연연하지 말고 때로는 베풀어도 가면서 인생을 쉬엄쉬엄 가보란 말입니다.”
“너무 좋은 말씀이세요. 원장님.”
수영이 작은 감탄을 한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훈훈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계속되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봉사 활동은 다섯 시까지 하기로 되어 있다.
네 시쯤 되자 모든 일을 끝내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관계자들도 쉬었다가 시간 맞춰 돌아가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수영은 지치지 않는 것인지 풀밭에 나와 놀고 있던 덩치 큰 남성에게 다가갔다.
되려 무서워할 만도 한데 그녀는 겁이 없다.
“으으……!”
그녀가 다가오자 남성이 오히려 겁먹는다.
차분하게 그를 진정시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상하게 웃으며 그를 안정시키는 모습을 보며 태훈은 픽 웃었다.
그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방귀를 뿡 끼는 남자를 발견했다.
뿌으으응!
“드, 들켰다! 민수, 방귀 뀐 거 들켰다!”
남자는 방귀 뀐 걸 들켰다는 게 참을 수 없었던지 불안하게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태훈이 픽 웃었다.
“괜찮아요.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있나. 몇 살이에요?”
“스물둘. 스물둘. 민수 스물두 살. 생일은 11월 3일.”
“아 민수 씨가 저하고 동갑이구나.”
태훈은 빙긋 웃었다. 본의 아니게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
그에게 옆에 앉을 것을 권하고 이야기를 몇 번 나누니 재밌다.
“저 사람 예쁘다. 예쁘다.”
“예뻐요? 난 쟤가 자주 무섭던데.”
“안 무섭다. 예쁘다.”
그가 가리킨 이는 수영이었다.
그는 수영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근데 쟤가 성격이 되게 집착적이고 말도 안 듣고 잔소리는 얼마나 많은지.”
태훈은 민수를 붙잡고 그녀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선배!”
그러던 중 그녀가 자신을 부르자 흠칫 놀랐다. 흉보던 걸 들켰나?
그러나 그녀는 다급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녀에게 성큼 다가갔다.
해맑게 웃는 덩치 큰 남성과 다르게 그의 등 뒤에 서서 옷을 들춘 수영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이거 멍 자국…….”
상의의 1/4만 올린 그녀의 팔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시퍼런 자국을 목격한 태훈은 그 상의를 확 걷어냈다.
“뭐야 이거…….”
확연히 드러난 남성의 등에는 멍 자국이 가득했다.
태훈은 사내가 입고 있던 긴 팔의 옷소매도 걷어보았다. 그곳에도 멍이 있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 여겼다.
민수에게 다가갔다.
팔을 걷어내려 하자 기겁한다.
“안 돼요! 안 돼요! 민수 팔 걷지 마요. 보지 마요!”
그는 놀라며 뭔가 두려운 듯 부르르 몸을 떤다.
그러나 태훈은 슬쩍 올라간 옷 사이로 보인 멍을 볼 수 있었다.
“이거 멍 누가 그랬어요?”
“너, 넘어졌어요! 넘어졌어요!”
규칙적이다. 넘어졌다는 말을 반복한다.
뚱뚱한 체격의 남성에게 수영이 물었다.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넘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으에에엥! 들키지 말라고 했는데!”
뚱뚱한 남성은 수영과 놀다 정신이 팔려 깜빡했다는 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수영과 태훈의 시선이 마주쳤다.
뭔가 있다.
“민수 씨 말해봐요. 누가 혹시 말하지 말라고. 들키지 말라고 말했나요?”
태훈은 차분하게 물었다. 그의 시선은 불안하게 움직였다. 손가락 역시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최대한 안심시켰다.
“원장님이 말하지 말랬다. 누, 누가 보면 가둔다고 했다! 싫다! 어둡다. 무섭다. 싫다!‘
충격적인 말이 이어졌다.
가슴이 철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