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72
172
변호인 강태훈 172화
“저희가 왜 이민규 씨를 찾았는지 아시겠죠?”
“난 잘 모르겠는디…….”
이민규의 얼굴은 성하지 않았다. 광대뼈 부위가 부풀어 올랐고 눈 한쪽이 심하게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터졌던 입술이 다시 아물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분명히 그들과의 마찰로 인해 생겨난 상처이리라.
이민규는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술기운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몸은 사시나무 떨 듯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좌우로 흔들리는 눈은 도혜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럼 왜 도망가셨어요?”
오줌 마려운 놈이 제 발 지린다고 한다. 캥기는 것이 있으니 도망 간 것. 그는 왜 도망갔느냐는 추궁에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 얕은 한숨이 나왔다.
“내가 죽였소. 김경오. 그 친구를 죽인 게 나요.”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말했다.
의외로 너무나도 순순히 자백을 하자 태훈과 도혜가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실토할 줄은 몰랐다.
“어떤 식으로요?”
“이재두라는 그 친구하고 둘이 술 먹을 때 내가 밖에서 숨어 있었지. 원래 두 시간 전쯤에 같이 있었는데, 누가 온다길래 나가는 척하면서 숨어서 지켜본 거여. 그리고 이재두 그 친구가 나가자마자 소주를 병나발로 불더라고? 이때다 싶었지. 술에 취해 바로 잠들어 버렸으니까. 기름 좀 뿌리고 불을 붙였지.”
“왜요?”
“그냥 요새 말하는 말뽄새가 마음에 안 들더라고. 우리 같은 사람들, 어차피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들이니까. 누구 하나 죽는다고 슬퍼할 사람도 없잖아.”
그는 픽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도혜와 태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사주를 받았다. 그 대가로 돈을 받기로 했겠지.
“얼마 받기로 했었죠?”
“5천…… 음?”
도혜의 자연스러운 질문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가 멈칫했다. 술기운과 더불어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그녀의 유도심문에 말려든 것이다.
도혜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태훈이 이민규의 등 뒤로 다가가 그의 어깨 위에 양손을 올렸다.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사주를 했다는 걸요. 5천만 원을 주기로 했던 거군요.”
이민규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애초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은 방화 살해에 관련해서 다 불어버린 것이고. 그는 그렇게 그들이 더욱더 파고들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줘 버린 것이다.
그러나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그 이야기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혼자 다 독박 쓰실 건가요?”
도혜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주는 무슨. 전부 내가 한 일이야! 내가 한 일이라고. 그 새끼가 기분 나쁘게 해서 내가 불 질렀다고!”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태훈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마찰이 있었군요. 일을 지시했던 쪽과. 원래 주기로 했던 돈을 주지 않았다거나 하는.”
태훈은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런 사람들 수법이야 뻔할 뻔자 아닌가. 더군다나 상대는 노숙자였다. 속여먹기 쉬웠고 이용하기도 편했다. 노숙자는 그 사실을 세상에 까발리기 두려워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살해한 것은 틀림없으니까.
그쪽은 그것을 이용했겠지.
애초에 돈을 지불할 생각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영약하다.
원재남. 생각보다 더 악랄한 사람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간파 당하자 이민규는 더욱더 불안해 보였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자해하는 것이었다.
퍼억 퍼억!
그의 갑작스러운 자해에 도혜도, 태훈도 깜짝 놀랐다. 만약 날카로운 것이 있었다면 그는 단숨에 자신의 손목을 그었을지도 모른다.
“잡아!”
이민규의 등 뒤로는 수사관도 함께 서 있었다. 수사관의 체격은 컸고 그가 팔을 제압하자, 이민규는 발만 동동 구르면서 허공에 발길질을 해댔다.
“놔! 놔 이 씨X놈들아!”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태훈이 그의 다리를 잡았다.
“카아악 퉤! 내가 말 한마디라도 해줄지 알지? 응? 내가 했다고 X뿔놈들아!”
그는 가래를 끌어 모아 태훈에게 뱉었다. 수사관은 그를 바닥으로 눕혀 제압했다. 그리고 팔을 등 뒤로 끌어와 서둘러 수갑을 채웠다.
결국 고분고분하게 데려가기는 글렀다.
일단은 그를 차에 태웠다.
검찰청으로 향했다.
물론 비밀리에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어떤 검사도 안도혜가 잡아온 범인을 두고 관심을 갖지는 않을 것이었다.
안도혜는 검찰청 내에서도 은밀하고 조용하게 일을 진행시킬 예정이었다.
– * *
검찰청으로 데려와 그를 심문실에 박아놓았다. 심문실에서도 그는 난리를 피우며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에 의자에 묶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어르고 달랬다.
대체 그가 이토록 자신이 모두 독박을 쓰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노숙자여서?
아니, 그것보다 무언가 있겠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노숙자라고 할지라도 독박 쓰고 교도소에서 평생을 썩기는 싫을 것이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도혜가 불쑥 물었다.
“가족을 두고 협박했나요?”
욕을 중얼거리면서 도끼눈을 뜨고 도혜를 노려보던 그의 눈이 그 순간 착 가라앉았다.
“가족을 이용해서 협박했군요. 자수하면 가족은 무사하지 못할 거다. 이런 식으로요.”
결국 숨기려고 했던 것이 모두 들통 나 버렸다.
괜히 검사 양반이 아니었다. 자신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물론 계속 부정하는 방법도 있었다. 계속 부정하면 결국 사건은 그대로 진행될 테고, 자신은 독박을 쓰고 교도소에 가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속성은 더욱더 넓은 구멍으로, 빛이 더 많이 들어오는 곳으로 나가고 싶어 하기 마련이었다.
만일 더 좋은 수가 있다면, 이민규도 그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가족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이 조건이면 되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만 듣고 어떻게 믿겠는가.
안도혜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실 그들의 협박은 애초에 실행할 의지가 없는 겁주기 용으로밖에 안 보였다. 일이 틀어진다고 해서 그들이 이민규의 가족을 건드린다면 형량은 더 커질 것이다.
복수심? 그런 것도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한 노숙자의 가족이었다. 그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겠다고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한 번만 믿어주세요. 그리고 억울하시잖아요.”
억울하지 않으냐는 그 말에 그는 입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 억울했다.
아니, 그는 자신이 너무나 멍청하고 아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병신같이 돈을 준다고 해서 친구를 살해하다니, 자신은 쓰레기다. 자신보다 더한 쓰레기는 없을 것이다.
순간 눈앞에 김경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저희를 믿어주신다면! 이민규 씨가 수사에 협조를 해주었다는 것을 이유로 정상참작 받을 수 있게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족의 안전은 당연히 보장하며, 이번 일을 뒤에서 사주했던 이들의 뿌리까지 뽑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에게 굳이 그 배후에 국회의원 원재남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도혜의 말은 유혹적이었다.
대한민국의 수호자인 검찰.
반대로 정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을 상대로 방화를 하라고 시킨 의문의 사내들.
둘 중 누구를 믿겠는가?
당연히 수호자인 검찰한테 더 신뢰가 갔다.
이민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요?”
– * *
이민규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는 평소처럼 잠을 잘 곳을 물색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옷 목깃 쪽에 도청장치와 단추처럼 교묘하게 숨겨 놓은 초소형 카메라가 있다는 점이었다.
도혜와 태훈의 계획은 다시 이민규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태훈은 이민규를 찾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미리 귀띔해 주었다.
이민규가 다시 밖으로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이민규를 찾게 될 것이었다.
크게 위험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위치추적도 가능하게 조치를 해 놓았다. 만일 허가가 된 수사였다면 지원을 받아 GPS를 부착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수사는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고, 소형카메라, 도청장치는 어찌어찌 구할 수 있어도 GPS를 받기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휴대폰 어플에서 위치를 확인시켜 주는 어플을 사용했다. 주로 커플들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까는 어플이었는데, ‘커플각서’라는 앱이 GPS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도혜가 생각한 수사 방식은 먼저 증거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검거. 거기에 덧붙여 원재남의 꼬리까지 밟아 간다.
그것이 계획이었다.
이민규는 적당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을 청했다. 정말 평소 그 어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노숙자의 삶을 보였다.
그렇게 이틀째 되던 날.
이민규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검은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성. 그는 이민규의 얼굴에 덮인 신문지를 걷어내고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민규를 일으켜 세웠다.
“뭐요? 또 그 변호사님이 보냈나?”
“예. 그때의 일은 죄송하다고, 사죄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까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요.”
“내가 뭘 믿고?”
이민규는 의심을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능청을 떨었다.
그때 그 일을 당했는데, 순순히 따라준다면 그것이 더 수상하다. 너무 고분고분하지 않은가.
남성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무척 난감한 얼굴이었다. 자신 같아도 순순히 따라오진 않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를 어르고 달래서 조용히 데려오라는 여정훈의 말이 있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도망이라도 치면 자신들이 낭패를 본다.
“믿어주십시오. 정 그러시다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람 많은 곳?”
사람 많은 곳이라는 말에 이민규는 혹하는 표정이었다. 사람이 많으면 쉽게 건드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의심하는 척하며, 실랑이를 30분 동안 벌였다. 그러다 결국 못 이기는 척 그는 몸을 일으켰다.
“아참참, 혹시 천삼백 원 있어?”
“예? 예.”
“나 좀 줘.”
이민규는 능청을 참 잘 떨었다. 소형 카메라로 보고 있는 도혜와 태훈이 감탄할 정도로. 젊은 시절 연기자로 나갔으면 성공했을 텐데, 그런 웃기는 생각도 스쳤다.
남성은 만 원짜리를 꺼내 내밀었고, 이민규는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 몇 병을 비닐에 담아 나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거스름돈을 품속에 넣었다.
‘병신 같은 놈…….’
남성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으나 곧 지워졌다.
이민규는 그대로 소주를 한 병 까서 꿀꺽꿀꺽 들이켰다.
“꺼억. 가자고. 이번에도 또 그때처럼 나오기만 해봐.”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들이마신 그는 비틀거리면서 일부러 택시로 그를 이끌었다. 그의 차를 타고 가면 불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잠시 후, 번화가의 한 술집으로 두 사람이 들어섰다.
남성은 여정훈에게 미리 문자를 보냈다. 그를 데려가기 위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여정훈도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이민규는 들어오자마자 테이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여정훈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또 두들겨 팰라고?”
“그건 아닙니다. 사실 그때의 일은 제 독단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쪽에서 상당히 불쾌해 하시더군요. 제 일처리가 잘못되었다고. 잘 챙겨주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일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정훈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민규는 헛기침을 하면서 ‘험. 그래, 잘못한 걸 알았으면 됐지.’ 하면서 조금은 겁먹은 듯한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못 믿겠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여정훈은 그에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