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83
183
변호인 강태훈 183화
기태는 목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 대답에 강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 이번 일을 파악하려고 뛰고 있지?”
물음이었지만 그건 확신이기도 했다. 태훈과 이범현이 지금 이 사건을 파기 위해 마음먹었다는 걸 그는 짐작했다.
“예.”
두 사람이 함께 대답했다.
그때 강태산의 그 무겁고 곧은 고개가 살짝 숙여졌다.
“내 아들 녀석을…… 저리 만든, 그 녀석을 가만히 두고 싶진 않아. 부디 힘써 주게.”
그가 두 사람에게 숙인 고개. 그건 아버지의 고개였다. 자식 잃은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저희 선에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고맙네.”
강태산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그나마 경건한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 같았다면 땅을 치면서, 울음을 토해내며 사정사정 했을 것이다.
태산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신분과 체면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가 방금 보인 행동은 그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태훈과 범현이 밖으로 나섰다.
사건을 파헤쳐보자.
* * *
영안실로 자신의 후배와 걸어가며 이범현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사실 저희도 미심쩍은 게 분명히 있어요. 혹시 사진 확인하셨어요?”
“확인했어.”
“보시면 목, 복부, 가슴 등을 찔렀어요. 그런데 한기태 씨는 분명히 그 당시 만취상태였다는 거죠. 만취상태의 가해자.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강준호 수사연구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쩍은 부분에 대해서 설명했다.
“술에 만취해 있고, 내가 이 사람을 죽여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때를 가정해 보세요. 두 사람의 신장은 거의 비슷했고요. 만약 칼을 쥔 상태에서 찌른다면 복부를 찌르는 것이 맞아요. 가슴과 목을 찌르기 위해서는 팔을 들어 올려 손이 위를 보는 상황에서 찍어 누르듯 찔러야 하고요, 목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복부를 중심으로 찔렀을 겁니다.”
이범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었다. 자신도 기태의 손에 칼자루를 쥔 흉터가 없는 것이 미심쩍었다.
“일단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가슴, 목, 복부를 번갈아가면서 찌른다는 거, 사실 이게 말이 안 되거든요. 만취상태에서. 그것도 찌른 횟수도 많아요. 제가 만약 술에 취했다면 한 번 푹! 찌르고.”
강준호 수사관은 갑자기 몸을 돌려 한 손으로는 범현의 어깨를 낚아채고, 오른손은 칼을 쥐었다는 가정 하에 범현의 복부를 찌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범현을 바라보았다.
“둘이 비슷한 신장이었으니 눈이 마주쳤을 테고, 아마 멈칫했을 겁니다. 술을 마셨다는 것은 더 감정적이 될 수도 있기도 하다는 겁니다. 눈이 마주친 상황에서 가슴까지 팔을 올리려면 이렇게 한 발자국 물러나야 되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찌르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는 목을 찌르는 시늉도 해보였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건데, 이건 너무 이성적인 행동이란 말이에요. 그렇지만 역시 문제는…… 정황이 확실하게 밝혀지거나, 한기태 씨가 무죄라는 사실이 확실하지 않다면.”
“기태가 감옥에 가겠지.”
“네.”
강준호 수사연구원은 입 안이 쓴 듯 쩝쩝거렸다.
이범현의 입에서도 착잡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영안실로 들어왔다. 들어올 때마다 이곳은 으스스하다.
철컥.
열쇠로 문을 열고 그것을 쭈욱 당겼다.
그러자 피해자 강우환의 차디찬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파래진 입술, 생기 없는 그의 육신은 그저 고기 덩어리 같았다.
이범현은 유심히 시신을 살펴보았다. 벌어진 상처에 손을 집어넣어 그 깊이를 확인하기도 했고, 다른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샅샅이 찾기도 했다.
“역시 선배도 비위 하나는 좋아요.”
“내가 이래 보여도 검사 출신인데, 그럼.”
이범현은 쓰게 웃었다.
시신에서는 다른 특별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있었다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먼저 찾아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발걸음이었지만 역시나 허탕이다.
* * *
태훈 쪽도 허탕이었다.
아무것도 건질 수 있는 게 없었다. 있는 증거라고는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모두 털어갔겠지만, 사건 현장에서도 특이한 지문이나 다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힘없는 걸음으로 태훈은 기태가 있는 병실로 들어왔다. 형사들은 태훈을 조금 아니꼽게 보고 있었다.
이두열이 허락을 했다지만, 마치 제 집 드나들 듯이 범죄자인 기태가 있는 곳을 드나드는 태훈이 못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강력계 반장은 그런 그들의 군기를 바짝 잡았다.
“저 사람 와이프가 누구인지 알아?”
“누군데요?”
“안도혜 검사.”
“히이익.”
말 한 번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듯 사색이 되는 형사들이었다. 그들은 두 번 다시는 태훈을 아니꼽게 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온 태훈은 자지 않고 의자를 창 앞으로 끌어다놓고 바깥을 보고 있는 기태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침대 밑 간이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안 주무시고…….”
“저한테 존대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존대가 나온다.
뭐랄까. 평소의 기태 같지 않아서 어색해서 그런다고 해야 할까.
“기태 너도 그럼 반말 해, 임마.”
“아. 참참. 그래. 그럼.”
기태가 싱긋 웃었다. 기태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훈도 그를 따라 바깥을 보았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먼저 운을 뗀 것은 기태였다.
“만약 진범이 잡히지 않으면, 아니, 정말 내가 범인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교도소에 가겠지. 꽤 무거운 형을 살게 될 거야.”
그럴 것이다. 다름 아닌 강태산 대표의 자녀였다. 그것이 확실시되는 순간, 태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가장 높은 형을 받도록 움직일 것이다.
최소 15년, 어쩌면 무기징역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내가 정말 그랬을까?”
기태는 고개를 돌려 태훈을 보았다.
“아니, 넌 그러지 않았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넌 이루고 싶은 게 많은 놈이거든. 근데 아직 이루지 못한 게 딱 한 가지가 있어.”
태훈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감돌았다.
기태는 자신이 대한 법무법인의 에이스 변호사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곳의 에이스라면 국내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실력자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게 무얼까?
“너 우리들하고 함께 비상 법무법인 이끌기로 했었거든. 넌 아마 그게 가장 이루고 싶었던 걸 거야.”
“아. 이범현하고 태훈이 너하고? 너희 같은 좋은 친구들과 함께라면 정말 좋기는 할 거야.”
기태는 싱긋 웃었다.
아니, 단순히 좋은 정도가 아니라 기태는 그것을 진심으로 갈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자리에서 그가 비상으로 오겠다는 말을 했을 때, 오랫동안 참아왔던 말을 내뱉듯이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누군가를 죽이기엔 자신의 친구 기태는 너무나 순박했던 놈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어? 너희들이 말하는 그냥 좋은 사람 말고.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어떤 사이였고, 얼마나 각별했는지 궁금해. 나와 20년 지기 친구라면, 나만큼 너희는 나를 잘 알 거 아니야. 어쩌면 기억을 살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지금 가장 좋은 수는 기태가 기억을 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범인의 얼굴을 봤을지 안 보았을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너는 되게 바보 같은 놈이었지. 아마.”
처음 그를 만났던 것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당시 그는 정말 바보 같았던 놈이었다. 김민석의 똘마니처럼 자신들에게 그의 말을 전해주려고 왔으니까.
“때론 강하기도 했지.”
사법고시에서 한 번 떨어진 그는 자신들의 뒤를 쫓겠다며 미친 듯이 공부, 공부, 공부에만 전념했다.
“너에겐 꿈이 있었어.”
그는 꿈을 위해 많은 것을 버렸다. 어쩌면 그 버린 것 중 자신들도 포함될 뻔했었다.
“남부럽지 않은 풍요로운 삶을 살아보는 거. 그 꿈이 지금의 한기태를 만든 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기태는 행복하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린 가끔 싸우기도 했고.”
기태와 자신이 술집에서 다툼을 벌였던 날. 아직도 그때가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가슴은 먹먹했다. 그 착했던 친구가, 이런 식으로 변질될 줄은 몰랐으니까.
“화해하기도 했지.”
그가 비상 법무법인 사무실을 직접 찾아왔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그가 비상 법무법인으로 오고 싶다고 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넌 나름 괜찮은 그런 놈이었어.”
그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해주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얘기가 이어졌지만, 기태에게는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생소하게 들렸나 보다.
“그래. 그랬던 나인데,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아니, 내가 고맙지. 너 같은 새끼를 만나게 해줘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태훈은 무안했던지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담배 태우러.”
“나도 태웠나?”
“개꼴초 새끼였지.”
“같이 가도 되려나?”
“글쎄, 한 번 물어볼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니 지금의 기태와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친구는, 결국 친구인가 보다.
태훈은 밖으로 나왔다.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형사 두 명이 보였다.
저러다 튀면 어쩌려고. 뭐, 그들도 피곤하긴 할 것이다.
“여기요.”
“으음.”
잠에선 깬 그들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서둘러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았다.
기태는 병원에서 퇴원해도 된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곳이 아닌, 경찰의 감시를 받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예, 무슨 일이죠?”
“기태하고 담배 하나만 태웠으면 하는데.”
형사는 그 말에 황당한 표정이었다.
감시를 받는 놈이 뭐 담배?
하지만 곧 강력계 반장의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는 말이 떠올랐다. 게다가 이두열 검사도 괜한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다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떠올랐다.
“그러면 저희랑 함께 가시죠.”
“네.”
태훈은 싱긋 웃었다.
“가시는 길에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네.”
태훈도 무리한 부탁을 했다는 것을 알기에 한 말이다. 문을 열고 손짓하자 기태가 쪼르르 따라 나왔다.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뽑아 형사들에게 건넨 후 두 사람은 옥상으로 함께 올라갔다.
태훈과 기태는 옥상 끄트머리의 난간 앞에 서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태웠고, 형사 둘은 그들과 5m 정도 거리를 둔 곳에서 담배를 태웠다.
“만약 말이야. 내가 정말 강우환이라는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나를 보러와 줄 수 있어?”
기태의 말에 태훈은 순간 화를 낼 뻔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녀석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잖아. 난 지금 떠올리고 싶어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그런 내가 살인자까지 되어버리면 누가 나를 찾아와줄까 생각해봤어. 어머니, 그리고 너나 범현이.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너희 둘은 와줄 거지?”
“아니.”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기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내가 살인자면 친구고 뭐고 없나, 역시?”
“그렇지 않아. 네가 죽이지 않았다는 걸 믿으니까. 그러니 난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믿음.
태훈은 그를 믿는다. 기태를 믿는다. 혹시라도, 어떠한 상황에 직면해도 자신은 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맙다.”
태훈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기태는 한 모금 연기를 빨아 길게 내뱉었다. 간만의 담배였던지라 몸이 못 받아들이는 것인지 머리가 지끈했다.
그 순간이었다.
머리가 띠잉 하며 찰나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나 마음에 안 들지?’
‘병신 같은 새끼, 넌 결국 그렇게 쓰이다 버림받는 새끼다.’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 그곳에서 자신을 비웃는 목소리.
기태는 자신의 머리에 손을 짚었다.
“크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