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85
185
변호인 강태훈 185화
50장 비상으로!
“끄으읍.”
머리가 아팠다. 흩어졌던 퍼즐들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주마등처럼 자신의 모든 인생이 스쳐지나갔다.
누추한 차림새로 졸업식장에 왔던 어머니를 부끄러워했고, 김민석의 곁에서 그에게 떡고물 떨어지는 것을 받아먹었던 그때.
식당에서 일을 하는 어머니의 가게를 찾았다가 혼이 나는 그녀가 부끄러워 발걸음을 돌렸던 때도 있었다.
민석과 태훈이 충돌을 일으켰을 때, 진짜 친구라는 존재를 얻었을 때, 사법연수원…… 군 법무관…… 대한 법무법인, 그리고 비상 법무법인…… 나의 진짜 친구들을 찾기 위해…….
그리고 강우환과의 마지막 기억의 퍼즐.
“하아하아.”
바닥에 쓰러진 기태의 입으로 거친 숨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범현은 걱정스러운 듯 자세를 낮췄다. 범현이 부축하자 천천히 기태의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뿌드득.
기태의 이빨이 갈렸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발 새끼…….”
범현은 그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욕설을 내뱉자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기태의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듯했다. 천천히 기태의 고개가 돌아갔다.
놀란 표정의 범현과 기태의 눈이 마주쳤다.
“내 친구, 이범현. 누구보다 떳떳한 변호사 이범현. 이 새끼야. 지켜줘서 고맙다.”
그는 범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눈을 맞췄다. 그리고 범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줬어.”
기태는 싱긋 웃었다. 그는 바깥을 가리켰다. 담배를 피우자는 의미였다.
범현은 기다렸다. 그가 욕을 내뱉었다. 그의 표정은 무척 좋지 않았다. 그가 찾아낸 기억에 무척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 것이다.
두 사람은 경찰관을 대동해 함께 나왔다.
기태는 담배 한 개비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는 경찰관들은 들을 수 없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범인의 얼굴을 난 그때 똑똑히 봤어.”
“정말……?”
범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제 기태의 무죄가 입증될 수 있었다.
“응, 아주아주 불쌍한 아이야.”
“뭐……?”
“이번 사건…… 나도 가만히 있진 않겠어.”
기태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아이를, 그 아이들을 지켜줘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의 두 손으로.
* * *
태훈과 범현은 기태의 기억의 퍼즐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태가 말했던 아이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은 두 사람은 뿌드득 이빨을 갈았다.
아마 태훈이나 범현이 그의 입장이라고 해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했을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은 기태의 말을 존중하기로 하였다.
최대한 은밀하게, 그 아이들을 잡아야 했다.
도혜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판자촌.
구불구불한 길 양쪽에 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허름한 집 앞에 태훈과 범현이 서 있었다.
태훈이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였다.
똑똑.
“누구세요?”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이 대답을 하지 않자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경희 씨, 택배 왔습니다.”
범현이 한 말이다. 그렇지만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낌새를 눈치챈 것 같았다. 범현의 손이 문을 확 열었다. 그러자 낡아빠진 나무문은 너무나도 쉽게 열려 버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앳되고,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빌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태훈과 범현은 겁먹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태훈이 몸을 낮춰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너희 오빠는 어디 있니?”
“모, 몰라요. 저도 몰라요. 안 들어온 지 한참 됐어요.”
실제 사람을 죽인 건 자신이 아니라 오빠였다. 그러니 오빠가 도망만 간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여겨 거짓말을 했다.
“난 기태의 이야기를 듣고 너희를 도와주고 싶어서 온 사람이란다.”
“기태…… 변호사님이요?”
“그래.”
태훈은 싱긋 웃었다. 곧이어 뒤쪽으로 발걸음 소리가 났다. 그것을 감지한 범현이 빠르게 튀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버둥치는 176cm 정도의 야위고 피부가 까맣게 그을린 남자아이의 양팔을 등 뒤로 붙잡은 한 채 범현이 돌아왔다.
남자아이의 손에 일단은 수갑을 채웠다.
“앉아.”
범현은 짧고 굵게 말했다.
파르르 떨리는 몸으로 남자아이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태훈과 범현은 두 아이를 잠시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가 한 일이지?”
경태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미 모두 드러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 그랬니.”
“×바아아알!”
범현의 목소리에 경태는 수갑을 찬 양손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그에 그치지 않고 계속 수차례 바닥을 내리찍었다.
퍽퍽퍽!
“이 ×바아알! 개 ×같네 진짜! 으아아아! 그런 새끼는 뒤지는 게 맞는 거예요. 그딴 개새끼는 죽어야 맞아. 그 사람은 우릴 두 번 죽였어. 그 새끼는 죽어 마땅하다고!”
벌떡 몸을 일으킨 그는 두 사람에게 독기 품은 눈을 보이고 있었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결국엔 자신과 여동생은 쓰레기라고 불릴 것이고, 자신은 교도소에 갇혀 오래 동안 썩을 것이다. 강우환의 죄는 알려지지 않고, 자신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억울했다. 원통했다. 그래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 아이, 경태의 어깨 위로 범현의 손이 올라갔다.
“우린 경찰도, 검사도 아니야. 우린 변호사야.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얼마나 원통할지도 알아. 우린 기태가 보내서 왔어. 걱정 마. 기태가, 우리가 너희를 지킬 거니까.”
기태가 부탁했다. 그 아이들을 지켜야한다고.
이 아이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아이는 평생 교도소에서 썩을지도 모른다. 이 불쌍한 아이는, 더욱더 큰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아이들을 도와야 했다.
* * *
서울의 대현병원.
코에 호스를 차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무척 야위어 있었다. 계속된 항암치료로 인해 그녀는 무척 지쳐 보였다. 살도 거의 다 빠져 이젠 뼈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힘없이 두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들 경태와 경희였다.
경태의 손이 야윈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내일 모레면 수술이야. 있잖아 엄마, 나 엄마 따뜻한 밥 한 끼 못 사먹였어. 그러니까 우리 이겨내자.”
3기의 암. 3기의 암은, 수술을 할지 죽을지를 결정할 때라고 할 수 있었다. 도행히도 병원 측은 희망을 보았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지었다.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경태는 서울대학교의 자랑스러운 학생이었다.
경희는, 공부를 잘하진 않지만 나름 번듯하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어머니는 홀로 궂은일 한 번 마다하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셨다. 그렇게 모든 것을 짊어지셨다. 거칠어진 손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런 어머니의 자궁암 소식.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다.
경희는 사실 술집을 나간다.
경태는 지금 학교를 휴학하고 노가다판을 다닌다. 수술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수술비를 마련한 그들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다. 그래서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왜 또 울어.”
경희가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머니의 수술이 성공하기를. 어머니가 보란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를 그녀는 간절히 기도했다.
함께 예전처럼, 아니, 이젠 경태가 기둥이 되어 어머니가 힘들지 않은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경희는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엄마, 사랑해.”
* * *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수술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수술하기로 한 전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이 있었다.
치험.
치험이란 정식으로 상품화하기 전의 약을 인체에 투약해 약을 테스트해 보는 것을 뜻한다.
보통 치험의 경우 암 말기에 해당하는, 살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게 생명연장을 위해서 시술하기 마련이었고, 그들을 통해서 담당의는 약의 효과를 파악한다.
어머니는 암 3기였다.
치험을 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담당의는 치험을 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신약은 말 그대로 아직 확실한 검증이 되지 않은 약이다. 제약회사와의 협약에 눈이 멀어 담당의는 암 3기인 그녀에게 신약을 투약한 것으로 보였다.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 이야기를 들고 경태의 눈은 뒤집혔다. 그가 행패를 부리면서 병원은 발칵 뒤집혔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것은 ‘치험’이란 것이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게다가 항암치료제는 신약이 환자에게 무척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에 현혹되었던 것은 바로 경태였다.
자신이 아둔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의사란 족속의 말만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낼 순 없었다.
어머니를 빼앗아간 그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내 최고의 법무법인이라고 불리는 대한 법무법인에 찾아갔다.
“제발 도와주세요!”
하지만 법무법인에서도 얘기를 다 듣고는 난색을 보였다. 확실히 치험에 대한 법정 싸움에서 승소할 확률은 거의 없었으니까. 또한 의로인들의 남루한 행색을 보니 자신들의 선임료를 부담할 능력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프로보노 사건으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대현병원은 국내에서 알아주는 규모를 가진 대형병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 변호사가 다가왔다.
김유환 변호사.
그는 자신들을 이끌었다. 조근조근한 말로 자신들을 진정시켜주었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에게 강우환이라는 변호사를 소개받았고, 그날 강우환으로부터 이번 싸움에서 꼭 승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 * *
기태의 차가 대한 법무법인 주차장에서 멈춰 섰다. 차량에서 내린 그는 피곤한 듯 숨을 한 번 훅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모자를 깊게 눌러쓴 가녀린 여자아이를 볼 수 있었다. 얼굴이 눈에 익었다. 유심히 보니 얼마 전 법무법인에서 도와달라며 소리치던 바로 그 여자아이였다.
그녀의 손엔 묵직한 가방이 보였다. 그녀는 주저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곁을 지나치는데, 휘발유 냄새가 났다.
미간이 찌푸려진 기태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기.”
“……예?”
기태가 부르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키가 무척 작은 편에 속했다. 기태는 무릎을 살짝 굽혀서 그녀와 눈을 맞췄다.
“얼마 전에 대현병원 치험에 관련건으로 사건 의뢰하러 오시지 않았나요?”
기태의 부드러운 미소에 흠칫 놀라던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기태는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어머니를 위해서 법무법인으로 달려왔던 두 아이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사건은 잘 해결되었나요?”
그 소송건은 김유환 변호사가 맡기로 하고 오누이를 돌려보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기태는 그다음 일의 진행사항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 좋은 일이 또 있었나요?”
기태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그녀는 다리에 힘이 탁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소리 내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기태는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무언가, 일이 있었구나.
그는 대한 법무법인 사무실을 돌아보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차 안으로 이끌었다.
“전 대한 법무법인에서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조금 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기태는 한참을 설득하고 믿음을 주는 말을 건넸다. 그제야 아이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을수록 기태의 입은 벌어졌다. 그 얘기를 모두 듣고 기태는 차량 밖으로 나와 담배를 연거푸 피어댔다.
한 개비. 그 자식이 감히.
두 개비. 저 불쌍한 아이들을…….
세 개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담배 세 개비를 연달아 피우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강우환, 이 씨X놈아. 너 지금 어디야.”
기태는 자신이 변호사 옷을 벗을지라도, 자신이 다른 어떤 것을 버릴지라도 가만히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 * *
강우환은 아이들을 미끼로 사용했다.
‘그런 치험이었다면, 암 3기의 환자였다면 충분히 승소를 할 수 있는 사건이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 사건을 맡아 진행할 것이다.’
아이들은 강우환의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
사실 승소하긴 힘든 싸움이었다. 게다가 값비싼 변호사인 그가 그 궁색한 아이들의 사건을 맡아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는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김경희를 유인해 성폭행했다. 얼마 전 어머니를 잃었던 어린 여자아이를, 그 어머니와 관련된 소송 때문에 법무법인 사무실을 찾아왔던 그 가련한 아이의 몸을 농락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참을 수가 없었다.
기태가 그 아이들을 돕고 싶었던 이유는, 그 아이들의 형편과 과거 자신의 모습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태는 밤이 되어서야 강우환을 만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