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93
193
변호인 강태훈 193화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라는 사람 역시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는 하얀 천이 머리끝까지 올라가 있는 혜영이를 발견하고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손을 혜영에게 뻗었다. 울음기가 가득 찬 그는 무릎으로 기어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천을 들어 올리자 아이의 창백한 안색이 보였다. 그는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다.
“혜영아, 끄흐흑, 혜영아. 내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끄흐흐흑!”
“여보, 진정해요.”
“끄흐흐흐흑!”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바닥을 주먹으로 두들기는 그의 모습에,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던 여인이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혜영의 아버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오열했다.
그 모습에 태훈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려던 태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의가 뒤따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태훈은 작게 묵례를 했다.
“일단은 경찰에 신고를 할 생각이에요. 어린아이가 한 행동이지만 살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살인이라…….”
태훈은 그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의사의 눈은 여전히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태훈이라는 사람이 변호사라고 하기에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담당의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혜미까지 셋 모두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어떻게 어린 여자아이가 동생을 무참히 폭행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말인가.
“가슴의 늑골이 4개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고막도 터져 있고…… 이게 어린 여자아이가 했다는 것을 변호사님은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담당의도 병원 내에서 오열을 터뜨리는 두 사람을 보았다. 그렇지만 너무 상식 밖의 일이지 않은가.
그의 질문에 태훈은 섣불리 대답을 할 순 없었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까보면 나오지 않겠습니까.”
태훈의 눈도 혜미가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까서 혜영의 입안에 넣어주던 그 모습이 여전히 잊히지 않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측에서 부른 경찰이 도착했고, 경찰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은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태훈도 그들과 동행했다.
* * *
강력계 반장은 태훈이 들어오자 묵례를 했다. 도혜로 인해 안면이 있는 반장이었고, 이곳의 형사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이렇게 순순히 동행할 수 있었다.
물론 ‘혜미의 변호사’라는 작은 명목을 가져다 붙이기도 했다.
강력계 형사들이 조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심문실로 부모들을 이끌고 왔다.
강력계 반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변호사님.”
“네.”
태훈은 조사를 받는 혜영의 어머니를 투명 유리벽 너머로 보고 있었다.
강력계 반장은 태훈의 눈에서 불신을 보았다.
“제 생각은 그래요. 범인은 저 사람입니다.”
“네?”
강력계 반장의 확신에 찬 말에 태훈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웃 주민들의 신고가 자주 들어왔던 적이 있습니다. 가정폭력이 있는 것 같다고요. 출동한 저희 순경들이 그 자리에서 저 여자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 혜영이란 아이는 볼이 많이 부어 있었고, 입안이 터져 있었죠. 뺨을 맞은 겁니다.”
강력계 반장이 함부로 추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는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그런데 여자는 계속 부인을 했고, 다른 가해자로 언니인 혜미를 지목했어요. 그리고 혜미는 그 당시에 자신이 한 것이 맞다고 했죠.”
태훈의 입이 벌어졌다.
“그런 상황이 되면 몹시 난처해지죠. 저희는 저 여자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범인이라고 우기는 다른 사람이 존재해 버리는 거죠. 그것도 무척이나 어린 여자아이가. 심증적으로 보았을 때는 저 여자인데, 자백으로 보았을 때는 혜미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어쩔 수 있나요. 이번 사건이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단순 가정폭력 사건도 아니고, 지금 혜영이라는 여자아이가 사망을 해버렸어요. 아무리 어린 여자아이라고 할지라도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될 거예요. 사실 저도 심증으로는 저 여자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대로 두면…… 정말 혜미가 조종당하고 있는 거라면, 불쌍한 아이만 인생 끝나는 거죠. 그리고 악마의 탈을 쓴 저 여자는 태연하게 거리를 활보할 테고요.”
태훈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강력계 반장도 단지 심증을 말하고 있지만, 그도 노련한 베테랑 형사였다. 그의 감을 믿을 필요가 있었고, 애초에 태훈도 의심의 눈초리를 혜미가 아닌 그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둔 상황이었다.
혜미가 스스로의 입으로 진짜 범인을 말할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아마 소년원에서 혜미를 잠시 지켜볼 겁니다. 그 기간 동안 변호사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혜미의 변호사가 되어 주심이 어떨지…….”
강력계 반장은 슬쩍 말꼬리를 흐렸다. 태훈이 이익을 추구하는 사선 변호사란 것은 알았다. 그렇지만 비상 법무법인의 이름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슬쩍 태훈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가릴 수 있게 혜미의 곁에서 보살펴 주고 지켜줬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혜미가 진범일 단 1%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는 없다.
“네.”
태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 조사는 계속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심문실로 혜미가 들어왔다.
혜미가 들어오는 것을 본 태훈은 걸음을 옮겼다. 그는 혜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다가가 살짝 묵례를 했다.
“누구……?”
“변호사라는 그분 있잖아, 혜미 챙겨주고 했던.”
“아, 안녕하십니까.”
혜미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어머니가 먼저 소개했고, 아버지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함께 자리에 앉았다.
“혜미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혜미의 변호사로요?”
“예.”
변호사를 자청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딸 아이였고, 아이에게 변호사가 붙으면 더욱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그의 말에 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비췄다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저희가 변호사를 선임할 만한 돈이…….”
“프로보노 사건으로 뺄 생각입니다.”
태훈은 빙긋 웃었다.
태훈은 무료법률 지원에 관련된 프로보노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좋지 않았지만,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저희야 고맙죠.”
“그, 그렇지. 여보.”
두 사람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혜미가 평소에 폭력적인 성향을 많이 보였나요?”
“예. 제 딸아이이기는 하지만, 저희가 없을 땐 틈만 나면 혜영이를 때리고 그랬어요.”
“예를 들어서요?”
“뭐, 무엇을 먹고 치우지 않았다고 빗자루로 때리기도 했다고 혜영이한테 들었던 적이 있었고, 라면을 먹다가 흘려서 때렸다고도 들었고, 그렇지?”
“그래, 혜미가 문제가 심각했지.”
“그렇군요.”
태훈은 턱을 어루만졌다.
뭘까.
이 사람들, 너무 조잡하다. 속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이 두 사람이 범인이다. 라는 심증이 더 단단해진다.
변호사는 심리상담사와 비슷하다. 수십 년간 사람의 심리만 보는 직업이 바로 변호사였다.
태훈에게는 이들의 머릿속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물론 추측에 의해서이기는 하였지만, 혜영이가 사망한 지 이제 겨우 5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태훈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만일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저처럼 태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 그것도 그 아이의 언니가 죽였다.
그건 부모로서 정말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던가?
없다.
자신들의 사랑하는 아이가 사망했다. 그것도 언니가 어린 동생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머리가 휙 돌아버릴 일이 아니던가. 아니, 세상이 끝장난 것처럼 넋을 잃고 있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저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만큼 두 사람은 너무 태연했다.
한 번 그림을 그려본다.
태훈이 그리는 그림은 사건이 발생하였을 당시, 집에는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누군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혜미와 혜영, 둘 다 함께 있었을 것이다.
혜미를 제외한 누군가가 혜영을 폭행.
그 후, 아이가 사망할 것 같자 혜미에게 그것을 덮어씌우며 밖으로 나선다.
그러다 일을 하다 온 것처럼 알리바이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다.
설령, 혜미가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의 추악함은 빠른 시일 내에 밝혀질 것이라는 게 태훈의 생각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앞뒤가 일치하지 않는 진술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물론 혜미가 계속 자신이 범인이다! 라고 말한다면 난처한 상황이 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경찰이 그들을 계속 조여 오면 그들도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더 이상 그들과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정말 그들이 혜미에게 죄를 몰아갔다면…… 그들은 악마의 탈을 쓴 인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태훈이었다. 그들에게 묵례를 하고 걸음을 옮기던 태훈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혜영이는 이제 겨우 아홉 살 어린 소녀였다.
죽지 않고 성장했다면 선생님이 되었을지도, 아니면 자신처럼 변호사가 되었을지도, 그도 아니면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여자아이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삶을 마감했다.
그것도 ‘폭행’이라는 참담한 방식으로.
태훈으로서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건이었다.
“하아.”
그가 흘린 한숨이 허공에 흩어지며 맴돌았다.
* * *
혜미는 소년원에서 보호를 하기 시작하였고, 그 상태에서 경찰수사가 계속됐다. 경찰은 이웃주민들을 상대로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또한, 태훈의 경우엔 강력반 반장으로부터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통화를 끝낸 태훈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발…….”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모두 놀라 태훈을 보았다. 태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나도 모르게.”
태훈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렇게 욕을 내뱉을 리는 없었다. 그들은 그가 지금 무척 심란한 사건을 맡고 있음을 알았기에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태훈은 식사를 하다 말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강력반 반장과 통화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발표한 것에 따르면, 단 한 번 복부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외상성 복막염이 발생했다고 한다.
혜미의 진술처럼 아침에 때린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충격으로 외상성 복막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것. 즉, 혜미의 주장처럼 발로 한 번 채인 것.
그것이 누구의 발이든, 그것으로 인해 외상성 복막염이 발생하였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내려지는 처분이 달라지게 된다.
살해죄와 상해치사죄.
분명 누군가 죽었다는 것은 같다.
그러나 살해죄와 상해치사죄는 엄연하게 다른 부분이었다.
살해죄는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살해에 있어서 고의가 인정되는 경우다.
그러나 상해치사는 달랐다.
상해치사의 경우, 죽일 의도는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사망한 경우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그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교통사고에서 피해자가 사망하면, 가해자는 그를 죽이고 싶어서 죽였겠는가?
전혀 아니다. 의도치 않은 살인이 생기는 것이고, 이것이 상해치사라고 할 수 있었다.
상해치사의 문제점은 그 형량이 살인죄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혜미의 부모가 행한 일이라면?
사람으로서 생각하면 분명 상해치사죄 그 이상.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때려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아직 어린 소녀를 그렇게 무참히 죽게 했으니까.
그렇지만 법으로 보았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법으로 보았을 때는 높은 형을 받으면 10년 정도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