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99
199
변호인 강태훈 199화
54장 천 원 설렁탕
재희의 소설 타임은 말 그대로 세계로까지 뻗어나간 국내의 베스트셀러였다. 그와 달리 현재 재희를 고소한 작가의 경우엔 이름도 들어보기 힘들 정도로 무명에 가까웠다. 게다가 두 작품을 비교해 보아도 표절이라고 하긴 어려워 보였다.
물론 무명이고 유명이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소송을 건 작가는 재희보다 한 발자국 앞서서 반년 빠르게 책 출간을 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클리세로 보였다.
작품을 깎아 먹겠다.
말 그대로 타임은 표절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면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승소를 하기엔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지만 말이다.
“저도 그거 때문에 미치겠어요.”
재희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기자들은 기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1면에 당당하게 ‘한재희 작가의 타임‘표절 의혹에 휩싸이다’라는 자극적인 제목까지 걸고서.
그 논란 속에서 어떤 독자는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을 했고, 또 어떤 독자는 이건 전형적인 클리세이며 말도 안 되는 트집이라고 반박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표절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표절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가 없고, 오히려 표절 의혹을 받았다는 그 자체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싸움을 끌어서 합의금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보이는데, 상대방 연락처 좀 주겠어? 내가 만나보도록 할게.”
태훈은 그녀에게 연락처를 받았다.
“재판으로 넘어가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야지. 웬만해서는 네가 결백하다는 게 인정될 거야. 문제는 상대방이 이 사건을 얼마나 끌려고 하느냐는 건데, 그것을 처음부터 차단하기 위해서 무고죄로 맞대응하는 게 어떨까?”
“무고죄요?”
무고죄.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받았을 때, 상대방을 역고소하는 방법이었다. 일단 고소를 당하게 되면 자신이 죄가 없다고 할지라도 여러모로 피곤해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상당하게 받게 된다.
일반 사람들은 일단 ‘고소’라는 용어만 들어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그 때문에 무고죄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무고한 사람을 공격했을 때, 이 사람은 다시 그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이 받았던 피해에 대해서 고스란히 돌려주며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는 한재희의 인지도에 비하면 거의 무명에 가까운 작가인지라 과연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였다.
태훈은 주차장까지 그녀를 배웅했다.
“걱정 마. 잘 풀릴 거야.”
“믿어볼게요.”
한재희는 비상과 법무법인과 태훈을 믿기도 했다.
또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은 상대방의 작품을 읽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음이 사실이니까.
그녀가 돌아갔다. 태훈은 곧바로 재희에게 받았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무척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히려 너무 앳된 목소리였기 때문에 태훈이 의아할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한재희 씨의 담당 변호사인 비상 법무법인 강태훈 변호사라고 합니다.”
– 무슨 일이시죠?
변호사라고 하자 상대는 당연히 경계를 머금었다.
“이번 소송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요.”
– 할 말 없는데요?
상대는 퉁명스레 나왔다. 태훈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본인이 안 되시면 변호사와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 저 변호사 없는데…….
“흠…….”
태훈은 얕은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초대형 작가를 고소하기 전에 대부분 변호사를 선임하기 마련이다. 무고죄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
“만나 뵐 수 없을까요?”
– 네, 끊어요.
그녀는 당차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태훈은 머쓱해져 콧잔등을 긁었다.
“뭐 조만간 보겠지.”
태훈은 크게 걱정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가 보았을 때는 표절이 인정되기엔 너무 힘든 부분이었으니까.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가볼 곳이 있었다.
장원동.
저번에 오 여사와 갔던 곳을 오늘 다시 간다.
* * *
장원동.
저번에 오 여사와 함께 걸었던 길 어귀에 태훈은 도착할 수 있었다. 태훈은 주위의 간판을 훑어보았다. 그는 만나러 온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오 여사가 말한 구숙자 할머님의 자녀였다. 사실 저번에 한 번 통화를 하기는 했었다.
구숙자 할머님의 자녀는 요즘 사람 같지 않았다. 휴대폰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인터넷을 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 덕분에 태훈과 오 여사가 생각하는 수가 더욱 잘 먹혀 들어간 것 같았다. 아마도 오 여사의 자녀들은 태훈을 매수하거나 혹은 구숙자 할머님의 자녀와 접촉하거나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하였을 텐데, 그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아마 허탕을 쳤을 것이다.
휴대폰 조회도 안 되고, 인터넷 사용도 안하는데다가 금융계좌 역시 잘 사용을 안 한다고 하니, 추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태훈도 그가 먼저 전화를 해주었기에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그를 반겨준 이는 머리를 시원하게 밀고 모시옷을 입은 남성이었다. 남성은 둥근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셨습니까.”
얼핏 보면 스님 같은 느낌이 난다.
그는 유리 찻잔을 들어 쟈스민의 향을 음미하고는 입술을 축였다.
“이제 드디어 준비가 끝났네요.”
“그렇군요. 드디어 먹어볼 수 있는 겁니까?”
“네. 다음 주쯤이나 될 겁니다.”
“재밌겠군요.”
태훈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유쾌하다는 듯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태훈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역시 저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뭐, 오 회장님께서 구상하는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으니까요.”
태훈은 코를 찡그렸다.
몇 사람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유재성이나 유대훈이 보낸 사람들일 확률이 100%다.
그렇지만 일부러 미행을 당해준 것을 알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태훈은 몇 마디 말을 그와 더 나누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김성배도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 * *
태훈을 미행하며 김성배의 종적을 찾던 이들은 두 사람이 만나자 당연하게도 김성배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김성배는 강경하게, ‘오고 싶으면 지들이 오라 그래!’라며 미행자들에게 호통을 쳤다.
김성배의 그런 반응에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30분 시간을 내기도 힘든, 거물급 인사들임이 사실이었으니까.
김성배는 그들이 제시하는 많은 제안들도 당차게 거절하고 있었다. 오히려, 오 여사님이 주신다는 그 선물 아주 좋은 일에 잘 쓰겠다며 그들을 약 올리기까지 했다.
유대훈은 피곤한 듯 안경을 벗고는 이마에 손을 짚고 있었다.
“오고 싶으면 나 보고 오라고? 선물을 잘 쓰겠다고? 나 참.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사람이라는 것은 노는 물이 다 다른 법이다. 김성배가 어머니의 지분을 받아서 잘 사용할 수 있을 리도 없었으며, 돈을 더 불려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뭐, 그것으로 흥청망청 평생을 살 수도 있겠지만.
유대훈이 사람을 시켜 조사해봤을 때, 그는 그런 삶을 살려고 하는 자 같지는 않았다.
김성배는 평생을 요리에 매진해온 사람이었다.
그것도 딱 하나 설렁탕.
그런데 그것마저도 주위에 워낙 가게가 많이 생겼기 때문인지, 결국 장사를 접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속이야 자신이 제대로 알 리가 없겠지만.
그렇게 유대훈이 깊은 상념에 잠겨있을 때 누군가 노크했다.
“들어와.”
곧 사내가 들어왔다.
“김성배 씨가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다음 주 월요일에 장원동의 ‘훈성우 설렁탕’으로 오시라고 합니다.”
“훈성우?”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가게였다. 체인점은 아닌 것 같았고, 개인이 운영하는 시장 바닥에 흔하게 널린 그렇고 그런 그런 가게인 것 같았다.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과 같은 기업의 경영자를 고작 설렁탕집에서 보자고 하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안 가기도 뭐했다. 그가 가진 지분을 이용한다면 더 이상 유재성이 기회를 엿보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때 시간을 한 번 내서 가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직접 간다면 달라지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휘 저었다.
사내가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깊게 한 모금 들이키다가 실소를 내뱉었다.
“건방진!”
저번에 강태훈도 그러더니 이번엔 김성배가 그런다. 하나 같이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 * *
며칠 새 오 여사는 너무 쇠약해져 있었다. 항상 뵐 때마다 보여주시던 당찬 모습이 이제는 아련해질 정도였다. 그녀의 양쪽 콧구멍에는 호흡을 위해 조그마한 호스가 들어가 있었다.
누워 있던 그녀는 태훈에게 하얀색 종이봉투에 담긴 것을 내밀었다.
그녀의 옆에는 노신사가 서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폐렴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다시 그녀의 옆에서 보필하며 병간호도 함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보기 좋았다.
“내가 직접 그놈들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그러게요. 정말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죠.”
태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 변호사.”
“네.”
“그 말도 안 되는 일에 나와 함께 동참해줘서 고마워.”
“말도 안 되는 일은요. 아닙니다.”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하려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어머니라면 한 번쯤 하고 싶은 그러한 일이다.
태훈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고놈들, 표정이 참 재밌겠구만.”
“그러겠네요.”
노신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가르침 하나를 주려고 한다.
“눈이 계속 감기네.”
“한숨 주무십시오.”
노신사는 이불을 그녀의 목까지 끌어올려주었다. 작은 웃음을 지은 그녀는 곧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 * *
‘훈성우 설렁탕’ 앞으로 외제차 여러 대가 멈춰 섰다. 경호원 몇 사람이 동시에 내렸고, 그 뒤를 이어 유대훈 역시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유대훈은 ‘훈성우 설렁탕’이라는 간판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막 개업을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가게였다.
가게는 외형이 조금은 특이했다. 신식 건물의 느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누추해 보이지도 않았다. 한옥으로 이루어진 가게는 꽤나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때 다른 차들이 줄줄이 도착했다.
그것이 누구인지 짐작한 유대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놈이……!’
김성배. 이 사람이 자신들을 가지고 노는 것인가 싶었다.
차에서 내린 이는 동생, 유재성이었다.
“형님.”
정답게 서로를 부르기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자신을 부르기에 혹여 제안하는 것을 받아들이나 싶었더니, 김성배는 두 사람 모두 부른 것이다.
이미 막내는 손을 뗀 걸로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두 사람 중 누가 김성배의 마음을 얻느냐가 관건이라고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량들이 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설렁탕 가게 앞으로 고급스런 외제차들이 줄을 이었다. 그것을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거릴 정도였다.
이번에 차에서 내린 이는 셋째 유재우였다.
유재우도 이 어리둥절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
그에게는 김성배가 직접 연락을 해왔다. 자신에게 지분을 주고 그 대가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포기하려는 마음을 고쳐먹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런데 와 보니 자신의 형님들도 모두 와 있는 게 아닌가.
세 사람의 이빨이 동시에 빠드득 갈렸다.
이거 완전히 우리들이 놀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한성 그룹의 주축인 자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