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
2
변호인 강태훈 002화
2장 회귀
따뜻했다.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기억이 남아 있다. 자신은 분명 방 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죽으려고 자살 시도를 했다.
자신은 사후세계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곳은 병원인가? 젠장, 누군가 발견하고 신고라도 했나 보다. 일이 더 안 좋게 돌아간다.
병원에 입원한 것을 사채업자들은 빠르게 알 것이다.
적어도 녀석들 손에 죽긴 싫었다. 도망쳐야 했다.
눈을 떴다.
그는 의아했다.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원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익숙했던 곳이다.
자신의 고향, 자신의 집이었다.
“뭐야.”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뭔가 이상하다.
그는 집을 둘러본다. 분명 자신의 방이었다. 설마 그 상태에서 부모님 집으로 오게 된 건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집의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익숙했으나 자신의 방은 현재형이 아니다.
걸려 있는 교복이 보인다.
노란색 명찰의 ‘강태훈’이라고 쓰여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명찰이고 교복이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울을 마주한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동공은 커졌다.
“이, 이게 뭐야?”
그는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앳된 얼굴의 소년이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다. 강태훈. 바로 본인이다.
그는 너무 놀라 몸만을 어루만졌다.
눈높이도 낮아졌고 체격도 작아졌다. 확실히 이건 중학교 1학년 때의 태훈이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침착해지고 냉정해졌다.
35살. 인생은 막장까지 치달았으나 그래도 냉철함과 사리분간 능력으로 먹고살던 인생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그의 해답은 그거였다. 자신은 과거로 돌아와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정답이다.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너 빨리 나와서 밥 안 먹을래? 학교 안 갈 거야?”
21살. 가장 예뻤던 때의 누나가 있었다.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 땡그랑 눈, 귀엽게 솟은 콧날, 적당하게 오른 볼살.
강혜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누, 누나…….”
“오냐, 내가 네 누나이니라. 빨리 나와서 밥 먹어!”
가장 그리웠던 사람과의 재회이다. 그녀를 위해 변호사가 되었으나 정작 그녀의 복수는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눈이 멀어서 하지 못했다.
미안했고 다시 그녀를 본 것에 감사했다.
주르륵-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태, 태훈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울음을 흘리는 그에게 혜지는 놀라 다가온다.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누나 되게 예쁘다…….”
그녀는 예쁘다. 항암 치료와 여러 차례의 수술을 거치면서 쇠약해졌고 머리까지 다 빠졌던 모습은 사라졌다. 항상 가슴에 얹혀 있던 그 모습이 없었다.
그의 생뚱맞은 소리에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말없이 안아준다.
“악몽을 꾼 거야? 누나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는?”
“응. 아주아주 무서운 악몽이었어.”
“누나 여기 있잖아. 으휴, 아직 애라니까.”
그녀는 태훈을 보며 빙긋 웃고는 이마에 입을 맞춘다. 항상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며 이마에 입을 맞추곤 했던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 ‘나도 이제 어른이거든!’ 했다. 그러면 그녀는 콧방귀를 끼며 웃었다.
“자, 나가서 밥 먹자.”
그녀의 따뜻한 손이 어깨에 둘린다. 그녀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사무치게 그리웠다.
* * *
부모님도 자신이 중학교 1학년 때의 모습이었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중학교 1학년 때의 풍경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전혀 없었다.
확실해졌다. 자신은 과거로 왔다.
또한, 돌아가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이건 꿈이 아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자신의 흐릿한 기억 속에 누나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평소처럼 이마에 입을 맞췄던 그녀.
그녀가 과거로 되돌려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엔 기적이 있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다.
며칠간은 공황 상태에 빠지다시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다. 실상 아무리 그가 냉정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침착함을 계속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곧 그가 결심하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다녀왔습니다.”
“태훈이 방에서 공부 좀 할래?”
“네? 네.”
어머니의 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세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부모님의 얼굴은 무척 심각했다.
이때였을 것이다.
누나가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반도체 업체에 들어간 건 말이다. 정확한 경황은 사실 알지 못했다.
이 당시 누나는 그저 돈을 벌고 싶다고 얼버무렸을 뿐이다.
태훈은 문 앞에 찰싹 붙어 귀를 가져갔다.
방음 자체가 좋은 집이 아니었기에 귀를 가져가자 잘 들린다.
“너 아무리 그래도 대학교는 나와야지. 휴학이라니? 우리 몰래 휴학이라니, 응?”
“엄마 아빠, 저도 알아요. 지금 제가 꿈만 보고 살 순 없다는 걸요.”
누나는 연기자가 꿈이었다. 예쁘장한 외모. 좋은 성적. 인덕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불현듯 휴학한 상황이다.
“무슨 소리냐. 우리가 너 대학 하나 뒷바라지 못 해줄 거 같아?”
이때 아버지는 허리를 다치셔서 농사를 지으시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어머니는 가정부로서 항상 전주에서 가정부를 하고 태훈보다는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다.
즉 마땅한 수입원이 없었다.
“저요, 이제 다 컸어요. 제가 배우가 되겠다는 건 이제 정말 철없는 소리라는 것도 알고요. 그리고 태훈이도 좋은 대학 보내고 싶어요.”
꾸욱-
자신에 대한 언급에 태훈은 주먹을 굳세게 쥐었다.
그거였던 건가? 누나가 꿈을 포기하고 도급 업체에서 일을 시작한 게.
동생인 자신을 좋은 대학교에 보내기 위함이었던 건가?
그녀는 빠르게 상황을 인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설사 배우가 된다 해도 자기 혼자 벌어먹기 힘들 정도의 수입을 수년간 낼 것이고, 이 생활이 지속되면 태훈을 대학에 보내기에도 벅찰 것을 안 것이다.
그러고 보면 태훈을 지방이지만 법대에 보내 준 것은 누나가 받은 합의금에서 나왔다.
오로지 누나는 자신을 위해 죽어서도 많은 것을 주고 간 사람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누나가 돼서, 동생 더 좋은 거 입히고 좋은 거 해주고 하는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잖아요. 저 아는 사람 통해서 인성 기업에 취직하기로 했어요. 아시죠? 인성 기업. 되게 유명하잖아요.”
“흐흐흑.”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결국, 누나를 막지 못하는 자신들의 가진 것 없는 현실에 그녀를 만류할 수 없으신 것이다.
“에휴…… 내가 허리만 다치지 않았어도.”
아버지의 한숨 또한 들린다.
그리고 태훈의 눈가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왜 이렇게 많은 걸 주기만 했던 거야. 걱정하지 마. 누난 배우가 될 거야. 그리고 난 누구보다 떳떳한 사람이 되겠어.’
그는 그 순간 다짐했다.
누나의 꿈을 막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역시 누구보다 떳떳하고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 * *
자신의 나약함과 나태함을 증오하게 된 순간. 사람은 변하게 된다.
굳은 결심을 한 강태훈은 꿈을 잡았다.
서울대, 법과 대학.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법대.
그곳이 목표다. 그러나 그냥 일반 학생이 아니다. 수석을 목표로 잡는다.
대학교의 모든 것을 장학금으로 다니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의 자신은 충분히 가능했다.
학교에 온 태훈은 달라졌다.
항시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수업을 철저히 듣기 시작했다.
무척 쉬웠다. 실상 중학교 1학년 과정이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 국사나 과학, 국어 등은 실상 다시 한번 흩어보면 또렷이 기억이 나고 애초에 명석한 두뇌는 빠르게 습득해나갔다.
“너 요즘 약 먹었냐?”
“약? 먹었지. 인생이라는 독약.”
친한 친구였던 장지훈의 말에 그는 노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하…… 이상한 놈. 야, 학교 끝나고 PC방 가서 스타나 한 판 할까?”
“아니, 공부해야 돼. 미안하다.”
친구인 지훈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한 말이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독약을 마셔본 순간 자신의 성공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로지 공부, 공부, 공부만이 살길이다.
그의 공부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시간은 촉박했다.
1주일 후에 기말고사다.
누나를 잡기 위해선 자신의 우수한 성적이 필요했다.
노트 위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코피가 나면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이토록 노력했구나’라는 걸 아는 것이다.
그러나 코피가 몇 번이나 난지 태훈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밤낮으로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태연하게 휴지로 닦아내고는 다시 펜을 잡는다.
서울대, 법과 대학을 가기 위해선 중학교 1학년인 지금도 누구보다 우월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기말고사 시험을 치게 되었다.
모든 시험지는 술술 풀려나갔다. 하루에 2~3시간 쪽잠을 잤던 것의 효과가 나오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후에 그는 초조하게 달력을 보았다.
10일 후면 누나가 인성 기업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전에 성적표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아침 종례시간 들어오는 담임의 팔에 묵직한 종이들이 들려 있었다. 반 아이들은 모두가 직감했다.
‘성적표다.’
누군가에는 두려운 것일 거고 누군가에는 노력의 성과가 깃든 것일 거다.
담임은 앞서 반 아이들을 둘러보며 빙긋 웃었다.
“우리 반에 전교 1등이 나왔다.”
“오오-”
작은 감탄이 퍼진다. 아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반장에게 향한다. 안경을 끼고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의 반장은 항상 전교 2등에 그쳤다.
1학년 2반의 김재민이라는 이가 항상 반장을 눌렀던 거다.
실상 친구들은 반장이 드디어 김재민을 눌렀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픽- 하고 웃으며 삐뚤어진 안경을 맞췄다.
그러나 그의 입에선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강태훈. 만점. 축하한다.”
“……!”
아이들의 놀란 시선이 일제히 강태훈에게 향한다. 태훈은 빙긋 웃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자, 강태훈 앞으로 나와라.”
담임의 얼굴에는 자랑스럽다는 웃음이 가득했다. 태훈은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섰다.
“선생님 혹시 효민이 성적을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닌가요?”
반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태훈을 보고 있었다. 그의 짝꿍인 여자아이가 대신 묻는다.
“선생님들도 놀라서 확인만 세 번 했다. 태훈이가 전교 1등이 맞고 아쉽게도 효민이는 이번에 전교 3등이더구나. 너희들도 봤을 거다. 태훈이가 요즘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했던 모습을.”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모습이었지만 곧 한편으로는 수긍했다.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 가는 것 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태훈은 공부만 했다.
친구들은 근래 이상해졌다고 여겼고 그 노력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다.
어쩌면 노력이란 말보다는 본래 가지고 있던 지식의 힘이 더욱 컸다.
일반적인 중학생이었다면 아무리 몇 주간 이리 공부했어도 만점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너희들도 하면 된다. 태훈이를 보고 본받아라. 자 박수.”
박수갈채(拍手喝采)가 이어졌다. 평범했던 학생에서 반 최고의 우등생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