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0
20
변호인 강태훈 020화
9장 사법연수원! 천재들의 경쟁
23살. 태훈이 대학교 4학년이 되던 때이다. 슬슬 로스쿨 제도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사법 고시는 배타적 독점과 그로 인한 법체계의 폐쇄 회로화 현상을 드러낸다는 지적 하에서였다.
전국 25개의 로스쿨이 준비 중이었다.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로스쿨 진학을 위한 법학 적성시험을 통과 후 3년 과정을 최소 6학기를 이수한 학생에 대해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부여한다고 설명되고 있었다.
로스쿨 제도는 일단은 수년간 사법 고시와 병행할 것이고, 2017년에 사법 고시가 폐지될 예정이다.
태훈의 선택은 둘 중 하나를 하라면 당연 사법 고시였다.
로스쿨. 물론 편하고 좋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법조인의 길을 걷는 이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확실하며 추후의 법조인들은 사법 고시를 통해 법조인이 된 이들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큰 편이었다.
태훈과 범현은 학교 시험에 대비하면서 이미 사법 고시 시험 준비에 들어섰다.
태훈의 경우 4년간의 고시생 생활 끝에 겨우 턱걸이 합격했던 케이스다.
반면 범현은 내년 바로 합격했던 케이스.
그러나 이젠 달랐다.
태훈 스스로는 내년 자신도 합격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이미 사법 고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사법 고시는 우리나라 국가시험 중 최고난도의 시험으로 5-10년을 공부했는데도 떨어진 이들도 많다.
그만큼 어렵다.
그리고 얼마 전 ‘VJ 특공 수사대’라는 TV 프로에서 최연소 사법 고시 합격생을 보여줬다.
14개월을 공부해서 사법 고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이라면 대단하다고 했겠지만, 법조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여성인 그녀는 공부비법을 전수했다.
단숨에 습득한 지식이 실제로 수년을 공부한 이들을 이길 리는 만무했다.
사법 고시는 합격했을지언정, 실전은 달랐기에 법조인들은 부정적 이미지다.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은 폐지 예정이다. 내후년부터는 신입생을 받지 않을 예정이며 그 후 남은 학생들이 졸업하면 완전히 폐지될 것이다.
태훈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혼자 살기에는 꽤 컸기에 기태와 범현이 자주 놀러 오고는 했다.
“애들아, 출출하지 않냐?”
기태가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원래 출출하다고 하는 놈이 라면 끓이는 거다.”
“그딴 게 어딨…….”
“라면 우리 집 거다.”
“네. 형님. 계란은 넣을까요. 말까요?”
“라면엔 계란이지, 자식아.”
친구들이 모여 공부하면 잘 안 된다고 하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자리에 앉으면 몇 시간을 공부에 매진했다. 실상 기태도 사법 고시를 벌써 준비하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인 그는 꼭 사법 고시에 합격하겠다는 의지다. 고시생 할 여건도 없었고 더불어 사법연수생은 별정직 5급이라는 공무원 신분으로 인정받고 월 90-100만 원 돈을 받아갈 수 있었다.
배우는 처지에 월급까지 받으니 사법 고시에 합격하면 살판나는 것이다.
세 사람이 모여 옹기종기 라면을 먹은 후 바람을 맞기 위해 베란다로 나왔다.
“난 진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2평짜리 아파트에서 엄마하고 나하고 같이 사는 게 소원이다. 이런 집도 괜찮고.”
기태는 오피스텔 내부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친놈. 넌 더 좋은 데에서 살 것 같은데 고작 32평이 목표냐? 한 60평은 잡아야지.”
태훈이 욕을 하듯 픽 웃었다.
기태는 대형 로펌을 지향했다.
대한 법무 법인 같은 곳도 있긴 하지만 양심적인 로펌도 몇 군데는 있었다. 물론 그 규모는 대한 법무 법인보다 작다.
그래도 잘만 하면 억대의 수익이 가능하다.
“아, 빨리 좀 지나가라. 진짜 지긋지긋하다.”
범현이 베란다에 양팔을 걸치면서 말했다. 누구든 지긋지긋하다. 특히나 사법 고시에 합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얽매였을 때는 더욱더 그러했다.
* * *
“상장. 위 학생은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4년 과정에서 누구보다 우수한 성적과 실력을 보였으며 학우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배려…… 이에 졸업생 대표 강태훈에게 이 상장을 수여함.”
짝짝짝짝!
단상 위에 올라선 태훈에게로 박수갈채(拍手喝采)가 이어졌다. 드디어 4년 과정의 대학교의 졸업장을 받아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한 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태훈은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의 폐지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주목되는 인재임이 사실이었다.
학사복을 입고 상장을 옆구리에 낀 채 태훈은 졸업생 대표 인사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톡-
우우웅-
마이크를 건드리자 작은 울림이 퍼졌다. 앞으로는 착석한 검은색 학사복을 입은 이들로 인해 검은 물결이 보였다.
“이거 보이시나요? 4년 동안 단 한 번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저를 이겨보려고 애썼던 학우 여러분. 배 아프시죠?”
그는 빙긋 웃으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장난이니 돌 던지지 마세요. 전 법과 대학 수석자처럼 말합니다. ‘고소할 거예요.’ 4년의 과정을 하게 되면서 어려운 것도 힘들었던 것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안의 모든 이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법조인으로서 마주하게 될 얼굴들이 많습니다. 모두 무사히 정상에 오르십시오. 이상입니다.”
다시 한번 박수가 이어졌다.
단상에서 그가 내려왔다. 평범한 졸업식 행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곧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모든 이들이 허공으로 학사모를 벗어 허공으로 내던졌다.
졸업식이 끝이 나고 태훈의 옆으로는 가족이 달라붙었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태훈 쪽으로 향했다.
그 중심에는 강혜지가 있었다.
‘쟤는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수석 졸업에 누나가 강혜지인 거야?’
라는 시선도 어느 정도 있었다.
“졸업 축하한다.”
가족과 누나의 말에 태훈은 빙긋 웃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수영아.”
졸업식을 지켜보던 수영이 다가와 혜지에게 인사했다.
요즘 수영은 태훈에게 잘 접근하지 못했다.
반년 전쯤에 매니저가 태훈에게 와서 부탁했다.
‘더 매몰차게 대해주세요. 눈길도 주지 마세요’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수영이 알았을 때 그녀는 태훈에게 괜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수그러든 것이다.
“이거 우리 범현이가 저 자리에 서길 바랬는데.”
한 무리가 다가왔다. 범현의 가족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미소로 악수를 청했다. ‘축하하네’ 하고 말한다.
“기태는 어디 갔대?”
“그러게.”
“저깄다.”
먼저 발견한 건 수영이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동했다.
누추한 차림새의 아주머니와 함께 구석진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인 듯싶었다.
‘자식 뭐가 부끄럽다고.’
태훈과 범현은 픽 웃었다. 자신들 사이에 있기 부끄러워서 저기에 있나 보다.
그러나 태훈과 범현은 그의 어머니의 행색을 꼬집진 않는다.
어려운 형편에 기태를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에 보낸 대단하신 분이다.
“어이, 한기태 거기서 뭐 해! 빨리 일로 안 와? 사진 찍어야지!”
태훈이 손을 휘휘 젓는다.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어머니와 함께 다가왔다.
“엄마, 내가 말했지? 나하고 친한 친구 범현이 태훈이. 우리 학교 수석들.”
“이 친구들이구나. 잘 생기고 훤칠하네.”
기태의 어머니 역시도 민망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범현과 태훈은 정중하게 예의를 차렸다.
세 사람이 포즈를 잡고 뒤로 가족들이 함께 섰다.
수영이 외친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김치!”
“김치!”
모두가 활짝 웃는다.
이 세 사람의 우정이 이 사진 속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서로서로 아끼고 존중한다.
* * *
2월 22일. 사법 고시 1차를 치렀다. 1차 시험은 법률 선택 과목 방식이다. 형사정책, 법철학, 국제법, 노동법, 국제거래법, 조세법 등 다양한 분야 중 1과목을 택해서 치르게 된다.
그리고 어학 과목 선택은 영어로 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확인했다. 1차 합격이었다.
범현과 기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1차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나 이제 갓 졸업한 이들이었으니 더욱 놀랍다 할 수 있었다.
1차에 합격한 후 다음 시험은 6월 25일이다. 그때까지도 세 사람이 사법 고시 공부에 열중했으며, 기태의 경우는 생활비가 필요해 과외를 하고 있었다.
1차보단 2차가 훨씬 어려웠다.
1차가 객관식이라면 2차는 논문형이었다. 가장 어려운 시험에 속했다. 헌법, 민법, 형법, 행정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상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차 시험을 보게 되었고 다시 3개월이 지났다.
합격자 발표에서 태훈은 당당하게 자리매김해 있는 자신의 이름을 보고는 쾌재를 불렀다.
“오예!”
아무리 자신이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수석이자 한 번 사법 고시에 합격한 몸이었지만, 조그마한 불신(不信)은 있었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다음으로 친구들 이름을 확인했다.
역시나 당당하게 범현은 합격자 명단에 나와 있었다.
“응?”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기태의 이름은 없었다.
두 번을 확인했다.
“떨어졌나 보네.”
실상 10년이 넘게 합격하지 못한 이들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첫 번째 불합격쯤은 쉬쉬할 수 있는 일이다.
수많은 이들도 첫 시험은 떨어져야 쓴맛을 안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함께 연수원 교육을 받지 못할 것에 안타까움이 맺혔다.
“이 새끼 질질 짜고 있는 거 아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위로라도 하자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 흑, 크흑 떨어졌어. 태훈아. 나만 젠장! 떨어지려면 같이 떨어질 것이지!
역시나 질질 짜고 있었다. ‘떨어지면 같이’라는 부분에서 조금 울컥할 뻔했지만, 녀석의 기분도 이해된다.
“내년이 있잖아. 내년이. 그때 잘하면 되지.”
– 젠장, 그놈의 과외를 너무 많이 했어. 내가 꼭 내년에는 수석으로 합격할 테다!
그는 눈물의 다짐을 한다.
“그보다 난 석차가 어떻게 되려나.”
합격 후 석차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연수원에 들어가서야 눈치껏 수석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심히 자신의 석차가 기대된다.
그는 곧 전화를 돌려 합격 소식을 밝혔다.
* * *
3차 시험은 면접이었다. 면접은 실질적으로 떨어질 확률이 4%가 될까 말까로 적다.
그 때문에 대부분 2차까지 합격하면 사법 고시에 들었다고 생각한다.
태훈의 앞으로 면접관들이 앉아 있었다.
면접관들은 이제까지 만났던 이들과 그 급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공석민 교수가 10년 이상 대형 로펌에서 일을 하였고 유능했다고는 하지만 이들만큼은 못했다.
사법시험 면접에는 고등법원장급의 원장 한 사람. 고등법원 부장판사급인 수석 교수 1인. 부장검사 수석 교수 1인.
외부로의 교수는 민사 변호사 교수와 형사 변호사 교수로 나뉘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즉 이 안의 다섯 사람은 전부 법조계에서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으며 연수원을 이끌어가는 이들이기도 했다.
아무리 웬만해선 합격시킨다고는 하지만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이 자리에 앉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긴장할 것이다.
태훈의 등 뒤로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면접은 형식적이었다.
법조인으로서 인성을 갖추었는지. 법에 대한 지식이 빠삭한지 등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고등법원장급의 원장이 물었다.
“강태훈 씨가 검사로 재직하다 변호사가 된 경우라고 예를 들겠습니다. 변호사로서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비자금에 관련한 비리를 알고 계셨죠. 그런데 이 일이 불거져 법정에 섭니다. 유죄가 명백합니다. 그러나 정의(正意)를 위한 검사 출신인 강태훈 씨는 무죄를 변론할 수 있겠습니까?”
역시나. 오랜 시간 법조인으로서 살아왔던 이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태훈의 손으로 땀이 흥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