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05
205
변호인 강태훈 205화
“허억허억.”
쫓기고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환자복을 입은 그는 계속해서 뛰고 있었다. 한때는 나름 체력이 좋다고 자부했었지만, 이젠 체력도 곤두박질을 치고 있기에 들썩이는 가슴은 당장 지쳐 쓰러질 것처럼 몹시 쿵쾅거렸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더 이상 그 지긋지긋하고 지옥 같은 곳에 있고 싶은 생각은 일체 없었다.
“저기 있다!”
남성 간호사복을 입은 이들이 그를 쫓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네 명의 남성은 그를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뛰어오고 있었다.
절대 잡힐 수 없어.
그는 일단 뛰었다. 어디로 도망을 칠지 생각을 하던 도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대형마트였다.
일단은 대형마트로 들어가고 보았다. 위쪽으로 갈까 하다가 아직 그들이 자신이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보지 못하였다고 판단하고, 지하 쪽으로 향했다.
지하로 들어와 비상구를 이용해 도망을 칠 계획이었다.
“허억허억.”
사람이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은 환자복을 입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당연하게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비상구.
그것만을 찾아 눈을 굴려댔다.
그런데, 그의 뒷모습을 보았던 것인지, 간호사들이 일제히 양쪽에 서서 그를 막아섰다.
그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새끼 보소?”
“이 ×발 새끼야, 우리가 너 때문에 얼마나 ×뱅이 친 줄 알아?”
한 간호사가 품속에서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진득한 액체가 들어있는 그것은 당장 자신을 나른하게 하고, 잠에 빠져들게 만들 것이었다.
“얌전히 가자. 소란이 생기면 우리도 피곤해지니까.”
그들도 보는 눈이 있었기에 주위를 둘러보면서 하는 말이었다. 재빨리 제압한 다음에 최대한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그를 끌고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것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바로 옆쪽에는 사과들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시식용 코너에서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대치상황인 그들을 당혹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사과를 깎아서 시식용으로 자를 때 쓰는 붉은색 손잡이의 작은 과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몇 발자국 빠르게 움직여 그 과도를 집어든 그는 오른손을 쭉 뻗어 보이며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한 발자국만 더 와봐. 나 미친 새끼인 걸 알잖아?”
“이런 ×발…….”
가장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슬슬 눈치를 보면서 뒤에서 덮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남성이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당혹한 표정을 짓는 듯하더니, 그가 다시 반대쪽 이들을 경계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을 때 그를 향해 몸을 던지려 했다.
그러나 환자복을 입은 남성이 더 빨랐다. 그가 휘두른 과도가 남성의 간호사복 가슴 부위를 찢어놓고 작은 출혈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크으윽.”
아무리 건장한 체격이여도, 아무리 깊지 않은 상처라고 해도, 칼에 베였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더 이상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환자복을 입은 남성은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대로라면 결국 도망칠 수 없다.
“꺄아악!”
그는 시식용 코너에 서 있는 여성의 한 팔을 끌어와 그녀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나 미친 새끼인 거 니들이 잘 알잖아? 응? 크흐흐! 물러나 이 새끼들아.”
“사, 살려주세요, 제, 제발요.”
마트 안이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눈치 있는 직원들은 서둘러서 손님들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이었다.
낭패였다. 저러다가 정말 한 번 쑤시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은 끝이었다. 그리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보도될 것이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이모 씨, 마트에서 여성 붙잡고 간호사들과 대치를 벌이다가 결국 인질 살해!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직장도, 가정도, 다른 모든 것도 무너질 것이다.
“빨리 물러서라는 말 못 들었어!?”
그를 꼭 잡아가야 한다는 망설임이 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의 외침에 그들의 몸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지하의 식료품과 식기를 판매하는 층에는 이제 많은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가 서둘러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성의 목에 칼을 겨눈 채 남성 간호사들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여기서 사라져.”
“뭐?”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과도가 여성의 목으로 조금 파고들었다.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고통스럽지만, 발버둥 치지도 못하는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러다간 ×된다.’
정말 죽일지도 몰랐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새끼다. 뭔들 못하랴.
하는 수 없이 그들은 거기에서 물러났다. 일단 1층으로 올라가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성의 목에 칼을 겨눈 채 비상구 쪽으로 걸어갔다.
빌어먹을.
문이 잠겨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는 위로 올라가는 것 한 대.
엘리베이터 두 개.
자신이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벌써 마트의 출입구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지키고 있을 수도 있었다.
여기서 잡히면, 자신은 인질극을 벌이다 잡힌 정신병자 새끼로 남을 것이다.
‘그냥 정말 뒈져버릴까?’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었다.
죽을까.
그게 편할까? 그래, ×발. 정신병자라는 낙인이 찍혀 살아가는 자신에게는 죽음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도혜는 업무를 처리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생일날에도 이렇게 일이라니. 자신의 처지도 참 딱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 모금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넘긴 그녀는 파일을 한 장 더 넘겼다.
벌컥.
“안 검사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그때 수사관이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온 것인지,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코롱 마트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질극……?”
인질극이라는 말에 도혜의 얼굴이 굳어졌다.
코롱 마트 쪽의 인질극 소식이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어온 이유는, 그곳이 자신의 관할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 지청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 어서 빨리 경찰 병력 보내고, 투입해!
“알겠습니다.”
– 여차 하면 발포명령 떨어질 것 같으니까, 안 검사도 총 챙겨.
“네.”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 일단 현장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경찰에 전화를 했을 때, 이미 경찰들은 코롱 마트 인근에 거의 도착해 있는 상태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인질극이라면 서둘러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만일 대처를 안일하게 한다면 검찰이든, 경찰이든 언론이 헐뜯기 위해서 달려들 것이 분명하였다.
특히나 도혜를 항상 깎아내리려는 이들은 오히려 기회를 엿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고, 수사관이 그녀를 뒤따랐다.
삐보삐보.
그녀의 차량이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빠르게 질주했고, 곧 코롱 마트 앞에 도착했다.
이미 경찰 병력은 주변의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코롱마트의 각 층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경찰차량 뿐만이 아니라, 얼마 후 경찰특공대도 도착했다. 검은색 방탄복과 헬멧, 총으로 무장한 그들은 서둘러 주위를 포위하고 나섰다.
문제는 저격수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사건이 벌이진 곳은 지하였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
그렇다는 것은, 경찰병력이 인질을 무시하고 들어가서 제압해하거나 아니면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위험했다. 인질이 혹여 크게 잘못된다면 언론의 비난은 무시할 수 없을 터.
경찰특공대가 있으면 뭐하는가.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갔다가 총구를 본 그가 놀라 칼 한 번 움직이면 모든 상황은 끝이다.
그다음으로는, 후자.
타협은 상대방을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인원이 들어가선 안 된다.
오로지 한 명.
한 명이 들어가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후자가 최선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 정신병원에서 탈출을 해?”
도혜는 경찰로부터 상대방의 신상에 대해 전해듣고는 깜짝 놀랐다.
“예, 이분들이 그 병원 간호사들이라고 합니다.”
“미치겠네.”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는 것은 정신이 온전히 못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타협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도혜는 손톱을 깨물었다.
“안 검사님.”
수사관이 다급하게 그녀에게로 뛰어왔다.
“아직 지하에 사람이 두 명 남아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다행히도 인질범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진 않았다. 하긴, 혼자의 힘으로 작은 과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묶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그 과도가 기다란 식칼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도혜도 이곳에서 장을 보곤 하는데, 지하층에는 식료품뿐만이 아니라 식기도구도 팔고 있었고, 그중에는 아주 값비싼 날이 선 식칼들도 있었다.
위협을 하려면 그 정도로 해야겠지 싶어서, 그런 칼 하나 쯤 집었을지도 모른다.
“CCTV에 잡혔습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들이…… 구경이라도 났대!?”
그녀는 성이 났다. 이런 위급 상황에 지하에 이상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녀는 CCTV를 확인하기 위해 걸어갔다. 그리고 CCTV를 확인한 도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 사람은 휴대폰으로 계속해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성이었다.
도혜의 코가 씰룩였다.
“진짜 개 미친 거 아니야……?”
동영상 촬영이라니, 그것도 숨어서!
들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아마 페이스북이나 SNS에 올려서 인기 좀 끌겟다고 저기에 남아서 촬영 중이라면, 저년은 미친년이 분명했다.
도혜는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성이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그는 몸을 숙이고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현재 인질범은 노끈으로 인질의 다리와 손을 단단히 묶어 바닥에 앉혀놓은 채 소주를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도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현재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지만, 왠지 그 모습이 무척 낯이 익었던 것이다.
그때 CCTV 속의 남성의 고개가 이내 뒤로 휙 돌아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도혜는 놀란 목소리를 내뱉었다.
“태훈아!”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남편이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저녁에 보자는 말과 함께 출근을 했던 남편.
그가 어째서 마트에 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위험한 곳에 자신의 남편이 왜 있냐는 것이었고, 왜 탈출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곧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태훈의 성격을 잘 안다. 그는 인질을 두고 도망치지 않은 것이리라. 자신의 남편, 강태훈은 분명 그럴 사람이었다.
“어찌할 겁니까?”
경찰특공대 대장은 턱수염을 너저분하게 기르고 있었는데, 헬멧을 한 손에 든 채 물어왔다.
“제가 들어갈까요?”
그녀는 도혜가 겁을 먹었거나 혹은 마땅히 보낼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니었다.
험상궂은 외모에 다혈질적인 그가 들어가면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랬다간 누가 죽든, 피 보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가 발포하거나, 인질범이 쑤시거나.
최악의 상황에서는 인질범도 잃고, 범인도 사살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흉기를 든 범인이라고 무조건 사살해도 된다는 편견은 가져선 안 되는 것이었다.
“일단. 대기합니다.”
“지금 상황이 촉박하지 않습니까?”
“지켜본 후에 안 되겠다고 판단되면, 제가 직접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검사님께서요?”
“예.”
그녀는 그 대답을 끝으로 다시 시선을 CCTV 모니터로 옮겼다.
지금 자신이 믿는 사람이 바로 저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