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06
206
변호인 강태훈 206화
서른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가 인상적이었고, 얼굴도 예쁘장했다.
그녀는 방송국 사람이었다. 특종에 목말라 있는 방송국의 기자. 그녀는 조금 유별난 사람이었고, 방송국에서 또라이로도 유명했다.
그녀의 이름은 이수애.
이수애는 사건이 발발 하였을 때, 도망을 쳐야겠다! 하는 일반적인 생각보다는, 특종이다! 라는 생각부터 머릿속에 스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오늘날 더욱더 기자 같은 사람이 바로 그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자들이 흔히 따는 그런 일반적인 특종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연예계 기자들처럼, 사람 괴롭히면서 얻어내는 특종감.
그런 것을 그녀는 상당히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촬영하는 동영상이 그렇다고 유익한 기사거리는 아니었지만.
여성 인질을 묶어 놓은 채, 환자복을 입은 남성은 계속 술을 마시면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연놈들, 난 미치지 않았어. 난 미치지 않았다고.”
미치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리 외치지 않던가. ‘난 미치지 않았다고!’하면서. 그건 그녀도 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장면이다.
그는 딱 보기에도 지금 갈등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차라리 확 죽여 버려!?”
그는 손을 뻗어서 엄한 여성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비는 수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꺄악, 사, 살려주세요. 제발요.”
“크흐흑, 살려줘? 어차피 뒤질 거잖아?”
‘미친 거 맞구만.’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미친 건 맞는 것 같다. 물론 술을 먹어서 저러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벌써 소주 세 병을 마셨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 같은데, 그것도 오랜만에 술을 마셨으니 몸이 견뎌줄 리가 없었다.
‘왜 경찰을 투입 안 하지?’
오늘 건질 뉴스거리는 멋지게 이 상황을 종료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병력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예 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바깥은 경찰들로 쫙 깔려 있고, 기자들 역시도 깔려 있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긴, 애매하긴 하지.’
온다면 타협하러 와야 한다. 혹은 인질범을 사살하던가.
아마 곧 윗선에서 안 되겠다고 싶으면 사살명령을 내릴지도 몰랐다. 인질을 잃는 것보다는, 인질범을 잃는 게 나으니까.
문제는 둘 모두 잃을 수 있다는 것이 경찰이 망설이는 이유일 것이다.
– 밥 주세여!
그때였다.
인질범의 목소리만 맴돌던 그곳에서 정적을 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던 이수애의 휴대폰의 배터리가 부족하면서 생긴 소리였다.
당연히 인질범도 그 소리를 들었고, 그의 시선이 휙휙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것이었다.
이러다가는 자신도 발각된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
막상 이렇게 깡따구를 가지고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러나 인질범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숨이 막히는 듯하였다.
“그만하시죠.”
그때였다.
어디선가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수애도 꽤나 놀랐다. 이곳에는 자신과, 저기 인질범과 여성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반듯하고 떨림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만하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 *
태훈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중얼거리듯 내뱉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로또복권이 당첨되고, 딸과 아내가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5년을 그곳에 있었다.
남자는 그런 말들을 계속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정신병자의 푸념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파볼만한 일이기도 했다.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태훈은 정신병원이라는 곳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는 옛날에, 그와 비슷한 사건을 한 번 맡았던 적이 있었다.
그건 지금의 삶을 사는 태훈일 때가 아닌, 전의 삶을 살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당시, 정신병원의 실태를 알고는 꽤나 큰 충격에 빠졌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돈과 비리만 쫓는 사람이 아닌, 나름 정의도 추구하는 변호사였기에 자신도 파고들만큼 파고들려 했었다. 물론, 그때는 병원 측에서 자신에게 협상을 요구했기에 물러나 주었지만.
정신병원에 정말 미친 사람들만 입원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정신병원의 시스템은 그렇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곳.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였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 한 사람의 입원 요구.
두 명의 보호자의 동의.
그것만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바로 다음 날이면 ‘정신병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 사람이 정신병원에 가게 되면 어떨 것 같은가?
자신은 진심으로 미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곳엔 정말 미친 사람들도 존재했다.
처음에 입원했을 때 그들이 난동을 부리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나는 미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대며 자신을 이곳에 집어넣었으니,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밝히고 싶어도, ‘넌 미쳤어!’그렇게 말해버리니, 답답하고 화가 날 것이다.
그래서 소리를 치르며 행패를 부리면, 병원 측은 또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미친놈에겐 폭력 성향이 있다.’
그럼 더욱더 정상적인 사람을 정신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이다.
참 재밌는 일이다. 미치지 않은 사람이 정신병원에 가게 되면, 개중에는 정말 몇 년 만에 정신이 이상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앞의 남성이 정말 머리가 휙 돌았는지, 아닌지는 지금 자신이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 같아 보였다.
그는 확 죽어버릴까 하면서도 갈등하고 있었지만, 살고자 하는 진심이 말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밥 주세요’라는 휴대폰의 알림 소리가 들렸다.
태훈은 당황했다.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앞의 남성은 더욱 길길이 날 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숨어 있는 누군가가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신은 그에게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다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일개 변호사일 뿐이었지만, 검사들만큼의 깡따구와 운동 실력, 그리고 그에 뒤지지 않는 두뇌를 가진 것이 강태훈이었다. 아니, 어쩌면 현시대의 골빈 동태눈깔의 검사들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 태훈일지도 몰랐다
그는 조금도 떨지 않았다.
몸을 일으켰고, 당연히 상대방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는 성큼성큼 태훈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덧 그의 손에는 과도가 아닌, 날이 시퍼렇게 선 식칼이 들려 있었다. 식칼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지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있었다.
만일 저 식칼에 찔린다면 몸에 쑤우욱 하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태훈의 몸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천천히.
자신이 걸어 나가야, 그와의 거리가 좁혀질 것이다. 그래야 숨어있는 다른 사람이 드러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한 행동이었다.
“당신은 뭐야? 썩 꺼져!”
남자가 한눈에 보기에도 태훈은 너무나 건장해 보였다. 자신을 제압하려 한다면 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싸움을 잘하고 운동을 했어도 총알을 피해갈 수 없는 것처럼, 술에 취했어도 칼을 쥔 사람을 쉽사리 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태훈은 그를 제압하기보단 설득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훈이 계속 자신과 거리를 좁히자. 혹여 자신이 제압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 남성이 뒷걸음으로 이동해 인질 여성의 목에 칼을 겨눴다.
“썩 꺼지라고! 죽여버리겠어! 응?”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당하셨다고 했죠?”
태훈의 말에 남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나 보다.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병원에서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하셨죠?”
“이 ×발! 네 새끼가 뭔데 상관이야! 썩 꺼지란 말 안 들려!?”
그는 여성의 팔을 그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저씨 빨리 나가요! 제바알, 흐흐흑!”
태훈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 두려움에 차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태훈은 다시 몇 걸음음 뒤로 물러났다. 인질범과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그가 안심할 수 있게.
“전 변호사입니다. 강태훈. 그게 제 이름입니다. 그쪽 분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이런 일은, 정말 정신병자나 벌일 만한 일이 아닙니까?”
태훈의 말에 그의 눈이 흔들렸다.
말 그대로였다.
정말 정신 이상자나 벌일 법한 행동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은 맞았다.
“나 정신병자 맞아! 썩 꺼지라고 이 새끼야! 이 여자 뒈지는 꼴 보고 싶어!?”
그는 다시 한번 여성의 목에 칼을 겨눴다.
태훈은 한쪽 무릎을 천천히 굽히더니, 다른 무릎도 굽혔다. 그렇게 양 무릎을 바닥에 대었다. 그리고 양손을 머리 뒤에 가져다댔다.
“저는 당신에게 악감정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강태훈 변호사라는 사람입니다.”
“강태훈이고 뭐고!”
태훈은 손을 조심스레 품속으로 뻗었다. 그것을 보고 사내가 움찔했다. 그러나 태훈이 꺼낸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태훈은 한 손으로 뭔가를 검색했다.
포탈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은 후, 휴대폰을 바닥에서 쭈욱 밀었다. 밀려나간 휴대폰은 남성의 발에 막혀 멈췄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고 태훈의 신상을 확인했다.
태훈은 나름 유명한 변호사였다. 특히 인성기업이나 조태석 연쇄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았을 때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방송에도 출연한 이력이 있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언론 기사는 태훈의 칭찬으로 가득했다.
기사에서는 우리나라에 몇 없는 정의로운 진짜 변호사 중 한 사람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고, 국선 변호사로 활동했을 때와 인권 변호사 활동했던 때를 보여줌으로써 약한 자의 구제에 힘쓰는 변호사임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믿음.
그것을 그에게 줘야 했다.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 이런 행동은, 스스로를 더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거 알지 않습니까.”
태훈의 말에 그는 술기운이 조금씩 달아나고 있었다.
태훈은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얼굴부터 가져가 아예 엎드려 누웠다.
사실, 태훈이라면 상대가 칼을 들고 있더라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그러나 태훈은 상대를 제압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을 돌리는 것을 선택했다. 격투 끝에 그가 잡힌다면, 그는 더욱더 불리해질 것이다.
태훈은 남자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됐는지, 정확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대부분 이유 없는 사람은 없다.
흉악한 살인마들이라 할지라도 불우했던 가정형편,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과의 이별, 참을 수 없는 고통 등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그리 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인질로 삼기엔 여자는 보기 안 좋지 않나요? 대신 제가 인질이 되겠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태훈이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