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08
208
변호인 강태훈 208화
인질극이 벌어진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여전히 태훈과 남성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을 숨긴 여성은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놓고는 이제 숨만 죽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 시간 반이 지나자, 서서히 기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건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상황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나와 있는 경찰의 지휘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고, 기자들은 경찰이 안이한 대처를 하고 있다며 비판적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도 보일 법한 상황이었다.
도혜는 태훈을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태훈을 잘 모르니까. 또한 분명 도혜의 행동은 무모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남편이 무모하게 몸을 던졌으니, 자신도 함께 던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런 남편 강태훈을 믿고 있으니까.
경찰 특공대장은 속이 탔던지 계속 줄담배만 태워대고 있었다. 다시 한 개비를 발로 비벼 끈 그는 다시 CCTV로 시선을 돌렸다.
변한 건 없었다.
그때 도혜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청장이었다.
– 발포명령 떨어졌어.
“예?”
– 빨리 진압하지 않고 뭐하는 거야!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인질범은 위협적인 행동을 가하고 있진 않습니다.”
도혜의 목에 핏대가 세워졌다.
그러나 그녀가 보기엔 전혀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고, 국민들이 보기엔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 인질을 잡고 있는데 위협적이지 않다고? 또 잡혀있는 사람이 자네 남편이라며? 인질이 여자에서 남자로 바뀌면 위협적이지 않은 거야? 빨리 들어가서 제압해. 여론이 안 좋아. 위에서도 지시 떨어졌어. 여차하면 발포하라고!
“하지만 지금 협상 중에…….”
– 누가? 자네 남편이? 경찰 특공대는 지금 뭐하냐고 뉴스에서 아주 난리가 났어!
하긴, 누가 봐도 그렇다.
경찰이나 검사, 경찰특공대도 아니고 단지 안에 있었던 일반인이 협상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긴 했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통화를 끝냈다.
“투입하라고 그러지요?”
기다렸다는 듯이 늘어뜨린 총의 멜빵끈을 고쳐 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 특공대장이었다.
“대기입니다.”
“그 무슨……. 검사님, 이러다가 검사님이나 저나 모가지 날아가요.”
다른 사건이라면 또 모른다.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그런데 지금은 현장을 지켜보는 기자들이 너무 많았다.
도혜도 안다. 자신들이 충분히 안이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경찰 병력을 투입하면?
그러다 혹여 인질범이 죽으면? 자신의 남편이 죽는다면?
그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진압과정에서 인질범이 죽으면, 위에서는 죽였다고 뭐라고 할 것이 뻔했다.
“그래도 대기…….”
“투입시키겠습니다.”
특공대장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지손가락 하나를 펼친 후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경찰 특공대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휘권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특공대 병력은 제 관할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특공대원들은 몸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도혜의 휴대폰이 울렸다.
거기엔 강태훈이란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 * *
그의 이야기는 모두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불신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다시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 억울함을 풀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아니, 사실 그는 정신병원 비슷한 곳에 가게 되기는 할 터였다.
그는 분명 인질극을 벌였고, 그 때문에 검찰은 기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안도혜가 기소를 하진 않을 것이다. 부부가 맡은 사건을 부부가 함께 재판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아마도 검찰청에서 다른 검사를 배정할 터였다.
그 재판에서 범행 이유가 어찌 되었든 형량을 받게 될 거다. 상해를 입은 사람이 분명히 존재했고, 현재 바깥에는 경찰 병력이 깔린 것은 확실하니까.
“제가 그만큼 변론할 겁니다. 최대한 형을 감면받을 수 있게요. 억울함 역시 풀어 드릴 테니…….”
“내 억울함을 어찌 풀어줘!?”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태훈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밖에 경찰이 있다는 것을 태훈도 당연히 알고 있다. 이곳이 도혜의 관할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오늘 생일인 그녀는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태훈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수애는 작게 감탄했다.
인질범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훈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침착했다. 마치 정신과 의사처럼. 그는 인질범의 이야기에 맞장구까지 쳐주고 ‘저런…….’하면서 안타까운 탄식을 흘리기도 했다.
사람을 진정시키는 재주가 분명히 태훈에게는 있었고, 그나마 지금 인질범은 많이 진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태훈은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주소록에 흠……!”
태훈은 말을 하다 헛기침을 했다.
“거기 달링이라고…… 찍힌 사람한테 전화 좀 넣어주시겠습니까?”
태훈은 민망한 어조였지만, 남성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당신 와이프요?”
“네, 검사입니다. 지금 바깥에서 아마 대기 중일 겁니다. 이 관할이거든요. 제 와이프한테 정확히 들어보십시오.”
그는 순순히 전화를 넣었고, 곧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곧 딸칵이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태훈은 긴 말을 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되었을 시 검찰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을 물었다.
– 만약 정신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제 입원이 되었다는 사실만 증명이 된다면, 불법감금죄에 해당하는 죄를 물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손해배상 역시 받으실 수 있을 것이며, 아내 분께서 그 일을 계획하였으면, 그 일을 근거로 이혼신청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이 가능해집니다. 또한, 검찰 혹은 경찰은 그 당시 진료를 받았던 의사 역시도 심문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처럼 그때의 정신병원의 송치가 강제적이었다는 사실만 입증된다면, 하실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남성의 얼굴에 작은 갈등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어차피 지금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안다. 그래도 바로잡고 싶은 건 분명히 있었고, 자신을 이리 만든 아내와 딸아이를 그대로 두고 싶진 않았다.
– 현재 상부에서 발포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도혜는 말끝을 흐렸다.
경고이자, 어서 나오라는 협상제안이었다.
– 더 이상 지체하게 된다면 최악의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음을 밝힙니다.
도혜의 목소리도 굳어 있었다. 자신도 더는 투입되는 경찰 병력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었다.
남성은 결국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도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게 없음을 안다. 또한 이미 마음은 굳혔다.
그는 태훈의 다리를 묶고 있는 노끈과 손의 노끈도 풀어주었다.
“갑시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훈은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두 사람은 터벅터벅 위로 올라가기 위해 걸어갔다. 그러다가 태훈은 문득 뒤를 돌아봤다.
도둑고양이처럼 저기 어딘가에 숨어 있는 누군가도 곧 나올 것이다.
* * *
서서히 진입을 준비하고 있던 특공대가 특공대장이 손을 들어 올리자 잠시 멈췄다. 도혜는 통화를 하고 있었고, 곧 통화를 종료했다.
그녀의 시선이 CCTV에 집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성이 태훈을 속박한 것을 풀어주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온다. 전원 긴장 늦추지 마!”
특공대장의 긴장 어린 목소리였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방금 전까지 꽤나 초조해 보였던 도혜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쳐졌다. 그녀는 어느덧 팔장을 끼고 있었다.
“제 남편과 인질범이 함께 나란히 걸어 나올 거라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훈이 인질범에게 뭔가 말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남성이 조심스레 양손을 머리 뒤로 가져다대었다.
경찰특공대와 경찰들은 인질범이 순순히 자수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인질범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때 다가간 것은 도혜였다.
“안 검사……! 못 말리겠군.”
특공대장은 그녀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태어날 때부터 삭제하고 태어났나?
남성의 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곧 수갑을 꺼내어 손을 등 뒤로 하고는 결박했다. 그녀는 수사관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렸고, 곧 수사관이 그를 이끌었다.
남성은 태훈을 보았다.
“저 안에서 했던 제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훈은 작게 목례를 해 보였다. 그런 태훈의 모습에서 남성은 믿음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작게 두 번 끄덕이고는 경찰차에 올랐다.
“훅! 상황 종료되었다. 상황 종료되었다.”
무전기에 입 바람을 한 번 넣은 특공대장은 뒷문 쪽에 포진해있는 이들에게 상황 종료를 알렸다.
곧 빠르게 철수가 이루어졌다.
기자들은 인질범이 자수를 하였고, 대치상황이 종료되었음을 국민들에게 쉴 새 없이 알리고 있었다.
“여보.”
한동안 노끈에 묶여 있던 손목과 팔목이 저릿저릿했다. 그때 손목을 돌리고 있던 태훈은 부드럽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와이프.
도혜.
그런 그녀의 부름에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배에 강렬한 통증이 밀려들어왔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쿨럭!”
“누가 그런 위험한 짓 하래!”
그녀의 눈가에 이제야 습기가 차올랐다. 강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녀도 여자였다. 불안했고, 당장 뛰어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남편 태훈을 믿었기에 참고 있었다.
걱정을 하면서도 참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마트에는 왜 있었던 거야? 지금은 거기에 있을 시간도 아니잖아.”
“글쎄.”
태훈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생일을 맞아 도시락이라도 싸가려고 했다는 말이 민망해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혜의 눈빛은 여전히 추궁하고 있었다.
“당신 오늘 생일이잖아. 아침에 미역국도 못 먹여서 보냈는데…… 음식 좀 만들려고 했지.”
도혜는 태훈의 말을 듣고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너무나도 멋있기도 한 내 사람. 용감하기도 한 내 사람.
걱정했다. 많이.
태훈은 그런 도혜의 등을 토닥였다. 남들 앞에선 누구보다 강해도, 자신 앞에선 누구보다 아름답고 여린 여자였다.
상황이 종료되자 밑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이수애가 총총 걸음으로 눈치를 보면서 건물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도혜는 이미 CCTV를 통해 그녀의 존재 여부도 확인한 상태였다.
도혜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수사관.”
“네.”
“나 더 빡치기 전에 저 이상한 여자 좀 잡아와봐.”
“넵!”
태훈은 그렇다 치고,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었던 그녀는 정말 미친년 중의 미친년이었다.
수사관이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고왔다.
“어머! 이거 왜 이래요? 이거 성추행 죄로 고소한다니까요?”
“일단 오시죠. 어차피 경찰서로 한 번 가셔야 합니다.”
“아, 싫다니까.”
“제가 끌어올까요, 그럼?”
도혜가 그녀를 보았다.
‘안도혜 검사…….’
안도혜가 누군지 그녀도 안다. 강태훈의 와이프이자, 대한민국 검찰계에서 몇 없는 인간미 넘치는 진짜 여검사.
그리고 잘못하면 자신이 뼈도 못 추릴 사람.
“당신 뭡니까? 도대체.”
도혜의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그녀는 자신이 기자인 걸 밝히면 더 껄끄러워질 것이란 생각이 들어 얼버무리려 했다.
“그냥 마트에서 장 보던…….”
“이 기자. 이 기자도 여기 왔었어?”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녀를 알아본 같은 방송국 사람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지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하하하!”
‘저 십장생 호랑말코 같은 새끼가.’
그녀는 방금 전 자신을 부른 남성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자였군요? 그래요, 취재 건수는 건졌나요?”
도혜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건수는요, 뭐 무서워서.”
“CCTV 보니까 열심히 촬영하던데요. 다음에 한 번 봅시다. 뭐, 사생활 침해건이나 이런 거 많잖아요.”
도혜는 웃으면서 살벌하게 말했다.
무모한 건 좋다. 그런데 남 심장 쫄깃하게 하진 말아야지? 게다가 기사 따겠다고 그 지랄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것이 그녀의 직업이고,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도 할 수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혜는 태훈과 함께 차로 가려 했다.
그때 이수애의 머릿속에 번뜩 뭔가 스쳤다.
그녀는 태훈의 팔을 잡았다.
도혜가 그 손을 기분 나쁘다는 듯이 탁 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