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1
21
변호인 강태훈 021화
태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실제로 1심이나 2심에서 유죄의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하더라도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의 추정을 받는다.
즉 대기업을 위해 싸운다는 의미였다.
“어째서죠?”
원장은 삐뚤어진 안경을 맞춘다.
“각 개인이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전 변호사로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 피고인 혹은 피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확고하구나.’
실상 태훈의 답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애매하다. 변호사라는 걸 감안하면 당연했고, 검사 출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당함이 맺힌 확고한 대답은 흥미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원장의 말이었다. 몸을 일으킨 태훈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섰다.
* * *
11월 14일 합격자 발표가 떨어졌다.
강태훈 합격.
이범현 합격.
두 사람 모두 졸업하자마자 사법 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륙해내었다.
이에 기태는 열을 내고 과외를 최소한으로 줄인 상태에서 미친 듯이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내년 시험에서는 꼭 합격하겠다는 의지였다.
이번 시험의 최연소 합격자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리고 최고령 합격자는 쉰한 살이었다.
이 정도로 사법 고시의 문턱은 나이를 불문했다.
두 사람의 양손에는 묵직한 여행 가방이 있었다.
짐을 한가득 가지고 온 두 사람은 장대하게 높이 솟아오른 건물을 올려보았다.
사법연수원.
연수생들은 이곳을 ‘마두 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이유는 평범했다. 연수원의 위치가 일산 마두 근처에 있기 때문이며 2년간의 생활이 마치 고등학생 같아서였다.
연수생 숫자를 기준으로 16~20개 정도의 반으로 나누고 다시 반마다 20명씩 조를 편성해서 나눈다.
반장은 그 반의 최고령자가. 조장 역시도 그 조의 최고령자가 맡는다.
그리고 조마다 민사, 형사, 검찰 교수님 등이 지도 교수를 맡아주고 이것이 고등학교와 비슷하다 하여서 마두 고등학교라 더욱더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담당 교수들은 법조인이 되면 부장판사, 부장검사,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변호사라는 이름의 까마득한, 감히 얼굴 뵙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가자!”
태훈이 말했다. 두 사람이 위풍당당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사법연수원은 수년간 법조인이 되기 위한 공부 끝에 합격한 베테랑들이 모인 곳이었다.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이라는 말은 무색할 정도의 인재들이다.
진짜 비로소 경쟁이 시작되는 셈이었다.
* * *
기숙사를 배정받았다. 2인 1실이었다. 기숙사는 운이 좋아야 들어올 수 있는데 태훈과 범현이 그 운이 좋았다.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선 기숙사에 들어오는 게 낫다는 것이 두 사람의 판단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에 배정되었다.
태훈이 먼저 들어와 짐을 풀고 있었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태훈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이다. 대부분 평균 사법연수생이 서른 초반에서 서른 후반까지가 대부분이다.
“생각보다 젊은 친구하고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네.”
그는 딱 보기에도 어려 보이자 자연스레 말을 놨다.
“나 김진영이야. 올해 서른넷.”
“네, 저 강태훈입니다. 스물다섯이고요.”
김진영이라는 1년 동안 룸메이트가 될 이는 훈훈한 얼굴형에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성이었다.
셔츠와 슬랙스 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성이다.
“강태훈이면 서울대학교 수석 졸업자?”
“네.”
“이야, 이런 인재 하고 내가 같은 방을 쓰게 되다니. 반갑다.”
악수를 청하곤 양손으로 감싼 채 흔든다. 어떻게 벌써 그 소문이 연수원에 퍼졌나 싶었다.
하긴, 4학년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은 태훈이다.
“그보다 침대는 어떻게 하겠어. 난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2층은 못 쓰는데.”
조금 생뚱맞다. 고소공포증에 의해 2층 침대를 쓰지 못한다는 건.
“제가 2층 쓰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근데 여기 왜 이렇게 건조하지?”
그는 가져온 여행 가방을 주섬주섬 열더니 뭔가를 꺼냈다.
미스트였다.
그는 안경을 벗어 얼굴에 뿌렸다.
‘까탈스러운 성격인가 보네.’
미스트를 얼굴에 뿌리는 그를 보면서 태훈은 픽 웃었다. 왠지 잘못하면 꽤 피곤해질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만약 룸메이트와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까짓것 연수원 바로 근처에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해야 할 것 같다.
* * *
입소식을 끝내고 반이 배정되고 조가 편성되었다. 총 열여덟 명으로 구성된 조에 태훈과 진영이 함께 들어가 있었다.
아쉽게도 범현은 다른 반, 다른 조에 편성된 상황이었다.
첫날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같은 반에 배정된 이들의 자기소개와 지도 교수들과의 만남의 시간이었다.
차례대로 한 사람씩 자기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독 앳되어 보이는 남성이 몸을 일으켰다. 21살. 이번 사법 고시 최연소 합격자였다. 실상 나이가 어리다고 ‘대단하다’라는 분위기는 크게 없는 편이다.
그러나 이 남성이 주목받은 이유는 하나였다.
멘사 출신. 그리고 아이큐 150의 천재라는 이야기가 벌써 나돌았고 태훈도 들었던 바가 있었다. 키는 177㎝에 준수했고 얼굴도 꽤 잘생겼다.
“이환입니다. 올해 스물한 살이고 본래 살던 곳은 대전입니다.”
이 환이라는 이에게 반의 이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소개가 이어졌고 어느덧 태훈의 차례가 되었다.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을 졸업한 강태훈입니다. 올해 스물다섯 살이고 고향은 전라북도 김제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환만큼이나 태훈도 주목받았다.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강태훈. 수능 수석자이기도 했고 법과 대학에서 역시 수석을 차지했다.
지도교사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2조에 예사롭지 않은 친구들이 들어왔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같은 조원이었다. 실상 사람들은 이환보다는 태훈을 더욱 경계했다.
소리, 소문 없이 법조인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돌고는 했는데, 한마음 법무 법인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그는 실제 변호사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인재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그리고 또 도는 소문 중 하나는 강태훈과 이환의 사법 고시 성적이 같은 수석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성적은 동일했다.
나이가 있긴 하지만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IQ150의 천재와 견주는 강태훈은 심히 경쟁에서 경계해야 할 요주의 인물이 분명했으며 태훈 본인도 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재밌겠네’
같은 조원. 그리고 동일한 성적. 스물한 살의 천재 멘사 회원. 그와의 경쟁이 눈앞으로 태훈은 선하게 보이는 성싶었다.
* * *
3~4월에는 교재 강의를 하고 사례 연구나 기록 작성 등을 배운다. 강의 진도나 시험이 많이 부담스러운 편이었으나 태훈은 줄곧 우수함을 보였다.
그리고 경쟁자라고 생각되는 이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녀석 성격이 개차반은 아니었다.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자신의 의견은 또박또박 말할 줄 아는 아이였다.
“하, 이 날씨에 무슨 체육대회냐. 애들 장난도 아니고.”
룸메이트 진영은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봄인지라 해는 따뜻했지만, 그는 ‘아, 자외선’ 하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사법연수원의 4월 가장 큰 행사는 체육대회였다.
공부만 했던 놈들이 체육대회에 임하면 얼마나 임하겠어.
실상 많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르는 소리다.
사법 연수생들은 자만심이 큰 이들이다.
지는 것을 죽어도 싫어하는 족속들이다.
막상 체육대회가 시작되면 전쟁이 시작된다.
전에 태훈도 사법연수원 체육대회에서 열이 붙었다가 팔 골절이라는 어이없는 피해를 보기도 했었다.
“그래도 옛날 생각나고 좋죠.”
“옛날 생각은 무슨. 에휴, 여어! 미영아.”
“오빠!”
김진영은 들어오자마자 커플이 생겼다. 우미영을 보고는 손을 흔든다. 미영은 스물여섯. 그리고 진영은 서른넷. 자그마치 여덟 살 차이였다.
나이 차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 뭔가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분명 3월 초에 진영의 손가락에 껴 있었던 결혼반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특별히 그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더불어 같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기에 알았다. 밤마다 한 여성과 통화를 하는데, 저번에는 지나가다가 ‘당신은 밥 먹었어?’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보통 사람들의 ‘당신’은 배우자나 약혼 관계의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3월 말이 되었을 때 그의 왼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고 그와 동시에 그가 미영과 만나기 시작했다.
수상스럽기는 했지만, 태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일이었고 자신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
1학년 반은 총 스무 개로 구성되었고 균등하게 각 반에서 운동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이 각 종목에 출전한다.
축구, 농구, 발야구(여성), 줄다리기, 단체줄넘기, 400m 이어달리기 등의 정말 중고등학교 때 하였던 것들 위주로 한다.
태훈의 경우 축구와 800m 이어달리기에 참여한다.
실상 서로가 공부만 했던 사람들이라 운동 실력은 잘 알지 못한다.
태훈이 운동에도 빠삭하다는 것을 오늘 알려줄 기회였다.
축구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환도 함께 뛴다.
샤워장에서 본 녀석은 몸도 다부졌다. 한 경기 할 것 같았다.
휘이익!
휘슬이 울리고 중앙지점에 있던 축구공이 상대편 팀에 의해 요리조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공격수인 태훈과 이환이 날카로운 눈으로 축구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 *
“저 새끼들은 공부도 잘해, 운동도 잘해, 얼굴도 잘났어. 키도 커. 나이도 어려. 에라이 X팔.”
태훈과 범현, 이환. 젊은 피 세 사람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계속 골을 연발해내자 터지는 탄식이었다. 다른 연수생들은 세 사람에게 기가 질린다는 표정이다.
못하는 게 뭔가.
나이도 어린 것들이. 그들의 얼굴로 짜증이 팍 났다.
타타타탓!
그러나 그들의 외침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훈의 이마로 땀이 흥건하게 젖었다.
결승전에서 만난 팀은 다름 아닌 범현의 반이었다.
범현이 에이스로 거듭나 혼자서 독점 골을 많이 넣었고 현재 스코어는 3:3 동점 상황이다.
수비 진영을 파고들려고 하지만 앞쪽에서 첩첩산중(疊疊山中)으로 막고 있었다. 낭패였다.
더군다나 범현 팀원 중 이하늘이라는 서른두 살의 연수생이 범현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에이!”
앞을 막고 있는 이들을 드리블을 이용해 피해 가려다가 태훈은 다시 몸을 빼낸다.
서서히 숨통을 조여 왔다. 그들이 일구어낸 포지션도 빈틈없이 촘촘한 것 같았다.
그때 포지션의 중앙을 살며시 찌르며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신호를 보냈다.
‘일단은 승리가 먼저다!’
그는 다름 아닌 이환이었다. 다리에 힘을 주어 방향을 잡아 힘껏 차올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을 이환은 헤딩으로 속도를 늦추어 가슴에 퉁기어 받고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이환은 빠르게 움직인다.
한 놈 두 놈, 석 삼 너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