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10
210
변호인 강태훈 210화
KBC 아홉시 뉴스가 보도되었다. KBC에서 내보낸 아홉시 뉴스가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다른 방송국은 그 시간대에 CCTV 영상을 올렸다.
그에 반해, KBC방송국은 CCTV 화면과 동시에 이수애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까지 함께 내보냈다.
물론, 칼과 출혈 부위, 얼굴 등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를 한 상태에서였다. 또한, KBC 방송국은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타 방송국에 비해 상세하게 보도할 수 있었고, ‘인질범은 강제로 입원되었다고 계속 소리를 쳤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라고까지 상세하게 보도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은 집중되었고, 다른 방송국에서는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어느새 KBC방송국 측에서 강태훈 변호사를 집중적으로 도와 앞으로의 사건에 관련한 보도를 전담하게 되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어찌 보면 고작 인질범의 이야기였지만. 억울한 사연이 분명히 있다면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지사.
이번에 KBC 방송국이 제대로 한 건 문 것이다.
태훈은 경찰서 심문실로 들어가려다 미간을 찌푸렸다.
경찰서 입구에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손에 들고 담배를 태우는 이수애 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하이요.”
그녀는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능청스레 웃었다. 태훈도 작게 목례를 취했다. 그녀는 터프하게 담배꽁초를 허공으로 튕겼다.
그것을 곁을 지나가던 경찰관이 흘겨보며 엄포를 놓았다.
“벌금 물고 싶어요?”
“아, 아하하. 맞다. 여긴 신성한 경찰서 앞이었지.”
기세 등등. 허세 좀 부려보려던 그녀는 서둘러 바닥에 버려진 꽁초를 주울 수밖에 없었다.
태훈은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싶기도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건, 도와드린다고 했잖아요.”
“제가 지금 들은 이야기를 기사에 쓰겠다는 거군요?”
“네.”
“그건 절 도와주는 게 아니라, 기사를 따는 거 아닌가요?”
“일석이조죠.”
그녀는 싱긋 웃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했기에 태훈도 수긍했다. 그는 담배를 빼어 물었다. 그녀가 재빠르게 불을 붙여줬다.
치이익.
여자가 담뱃불은 붙여주는 게 어색했기에 태훈은 머쓱한 표정이었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모두 태우고 심문실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기자인 그녀는 들어갈 수 없었다. 들어가고 싶다며 떼를 쓰긴 했지만 경찰들이 그것을 허용해줄 리 없었다.
남자의 이름은 오건우였다.
오건우는 그때와는 다르게 술이 깨어 있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마주하고 보니, 그는 많이 수척한 모습이었다. 살이 다 빠져서 앙상해져 있었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마치 병에 걸린 사람처럼.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비상 법무법인의 강태훈 변호사입니다.”
태훈은 정중히 목례를 취했다. 그도 똑같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무척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이야기는 대충 이미 그때 코롱마트의 지하에서 들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자신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이유는?
오건우가 산 로또복권이 당첨된 것을 그들이 먼저 알아차렸고, 복권을 확인한 후 모두 꽝이라고 속였다. 그 후, 알코올 중독 초기 증세를 보이던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시켜버렸다는 것.
“저 같은 놈이랑 사는 거 힘들었겠죠. 이해합니다. 노가다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알코올 중독 초기 증세요? 그건 노가다꾼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질병입니다. 힘드니까, 낮에 술이라도 한 잔 안 걸치면 그 무거운 벽돌을 어찌 나릅니까.”
노가다꾼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새벽 여섯 시에 봉고차에 오르는 그들은 점심에 가벼운 약주를 즐겨 마시고, 퇴근 후에도 술을 달고 산다. 보통 하루에 소주 한 병 내지 두세 병을 마시기도 하는 편이다.
노가다꾼들 중에서는 술꾼이 많았다. 그만큼 일이 힘들어서였다.
상상해 보라.
무더운 여름날 햇빛이 내려쬔다. 피부가 새까매진 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 수 있고, 고되게 사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요, 나름 행복하고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작지만 전셋집도 가지고 있었고요, 공부 잘 하는 딸아이 대학 보내겠다고 노가다 판을 나갔다고요! 그 빌어먹을 로또…… 후우……!”
그는 한숨을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 돈이었으면 셋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들끼리 독식하려고. 하긴, 와이프가 밖에 싸돌아다니고, 딸아이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돈 때문에 남편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처넣다니요!”
태훈은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중요한 건, 일단 그를 정신병원에 넣는 것에 대해서 동의한 의사를 만나보는 것이다. 두 명의 보호자의 동의는, 두 사람이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가능할 일.
그러나 의사의 경우는 달랐다. 만약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그것을 대가로 금전이 오갔을 수도 있었다.
해당 정신병원의 기록에서 그가 정신 이상이 없었다는 증거는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미 그는 정신병원에 들어간 순간, 그저 정신병을 중증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
“지금 말씀하신 것에서 거짓은 없으신가요?”
항상 묻는 질문을 그대로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내분과 따님, 의사를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의 얼굴에 어둠이 스쳤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태훈이 캐치하지 못할 정도로.
“네. 아마 경찰이나 검찰 쪽에서도 곧 있으면 수사를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된 만큼요. 참, 그리고 정신병원에 관련한 소송 역시 준비하셔야지요?”
들어본 바에 의하면, 그의 입원해 있던 그 정신병원도 제대로 된 병원이 아니었다. 환자들 진압, 안정을 핑계로 폭행하고, 감금하고.
그런 이야기가 오건우의 입에서 나왔다.
그 쪽에 관련해서도 아마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고, 태훈이 할 수 있는 건 그 사실이 확인되면 병원 측에 소송을 거는 일이었다.
“조만간 또 찾아뵙겠습니다.”
“네.”
태훈은 목례를 하고 나섰다. 그가 막 나가려고 할 때, 그의 등 쪽으로 손을 뻗어 뭐라 말하려던 오건우는 손을 다시 내렸다. 그는 왠지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털었다.
“에이 ×발, 몰라. 그년들이 멀쩡한 날 집어넣은 건 사실이잖아.”
자기합리화.
그는 태훈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 * *
경찰서를 나와 카페로 자리를 옮긴 태훈은 오건우가 주장하는 억울함에 대해서 이수애에게 털어놓았고, 그녀는 신나게 노트북을 두들겼다. 태훈의 얘기를 모두 받아 적자, 손가락 마디를 우두둑 푼 그녀는 만족한 듯, 노트북을 덮었다.
그러다 태훈과 눈이 마주쳤다. 태훈은 능구렁이처럼 능청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도 아네?’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뭔가를 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금 제 덕분에 꽤나 만족하시는 것 같군요. 앞으로 다큐를 찍게 된다면 더 만족하실 테구요.”
그녀는 어깨만 으쓱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긴 하다. 꽤나 만족하고 있었고, 앞으로 더욱더 만족하게 될 것이었다.
“주고받기는 확실히 해야죠.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태훈은 카페모카의 빨대를 쭉 빨았다. 달콤하고, 진득한 그 맛이 혀에 알싸하게 남다가 목 뒤로 넘어갔다.
“어떤 일이요?”
“얼마 전에 한재희 작가 저작권 관련해서 소송 걸렸던 것 아시죠?”
오현수과 관련된 일이었다. 현재도 진행형이었고, 앞으로 계속 싸울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그 걸 모르는 바보가 있겠는가. 물론 한재희가 소송에서 이겼고, 사실 그 분야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재희의 승소가 확실하다고 다들 예측하고 있었던 일이다.
게다가 한재희 작가가 승소한 후 오현수 작가라는 사람은 죄송하다는 식으로 사과 기사를 냈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제가 한재희 작가의 변호사였는데. 이번에는 오현수 작가님…….”
태훈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얻으려는 것은 말 그대로 언론의 힘.
병원은 계속 시치미를 뗄 것이 분명하였으며, 턱뼈를 과도하게 깎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방송국 기자라는 것은 매우 유용했다. 다큐를 제작한다고 분명히 그녀는 말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그 병원에서 수술한 후 부작용을 일으킨 피해자들을 취재한 후, 싸워나가는 장면을 그려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분명 병원의 숨통을 조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협력관계.
사실 태훈에게 이수애라는 사람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특종에 목이 멘 일반기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그녀가 태훈을 이용하는 것처럼, 태훈도 그녀를 이용하려하는 것. 그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뭐, 어렵진 않은 일이네요.”
방송국 기자인 그녀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때마침 태훈은 방송 쪽 관계자를 찾고 있었고, 그 대상이 그녀가 된 것일 뿐이지만.
태훈이 다시 빨대를 쭉 빨 때였다.
“엉덩이 만지셨잖아요!”
“뭐!? 아니 사람을 변태로 몰아가도 유분수지!”
그때 소란이 일어났다.
카페에 앉아 있는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곳에는 아르바이트생 복장에 카페 브랜드의 앞치마와 모자를 쓴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고, 건장한 체격에 딱 보기에도 운동 좀 했을 법한 남성이 있었다. 남성은 덩치가 산만하게 컸는데, 팔뚝에 헤엄쳐 올라가는 용 문신을 하고 있었다.
언뜻 보니 남성은 카페의 사장 같아 보였다.
소란을 듣고 한 남자아이가 뛰쳐나왔다. 아이도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사장에 비하면 키가 한참이나 작았고 체구도 훨씬 외소한 편이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저도 몇 번 봤고요, 그동안 참아왔거든요!”
“뭐? 이 쌍놈의 새끼들이 나를 변태로 몰아가?”
“제 엉덩이 만지셨잖아요!”
여자아이는 울먹이기까지 하였다. 남성은 기가 차다는 듯 헛바람을 내뱉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이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연인으로 발전한 귀여운 커플 같았는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카페 안에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사장인 남성이 한때 조직에 몸담은 것처럼 험상 굳었기에 쉽사리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와, 진짜 간만에 뚜껑 열리게 하네!”
우르르.
그는 쟁반이 쌓여 있는 곳을 위로 후려쳤다. 그 바람에 쟁반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리자 여자아이는 흠칫하였고, 남자아이도 움찔했다.
그렇지만 남자아이는 몸을 피하지 않았다.
“신고할 거예요.”
남자아이의 발언이었다. 사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때 태훈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이수애가 몸을 일으켰다.
태훈의 눈이 흥미를 머금었다.
“아주 네가 미쳐서 기어 처 오르는구나? 응?”
사장의 손이 뒤로 젖혀졌다.
앞뒤 가리지 않는 다혈질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 손을 이수애가 잡아챘다.
탁!
손을 잡긴 했지만, 사내의 힘이 여간 센 게 아닌 듯 그대로 앞으로 휘청거리는 그녀였다.
그러나 몸으로 버텨내며 그의 가슴팍을 퍽 하고 밀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