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19
219
변호인 강태훈 219화
59장 녹음
태훈의 차량이 참 좋은 성형외과 인근의 룸카페에 도착했다. 그의 옆에는 오현수가 함께 앉아 있었다.
오늘 이수애 기자는 오지 않았다. 아니, 태훈이 오지 못하게 했다. 상대편 측은 합의를 제시하고 나서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때 상대측에서 기자가 함께 방문하는 것을 싫어할 것은 당연했다.
두 사람은 룸카페로 들어갔다. 그들은 미리 확인한 호수 앞으로 향했다. 커텐을 걷어내자 고두길 변호사가 몸을 일으키며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오현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살짝 고개만 숙였다. 태훈도 작게 목례를 취하고는 양반다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곧 주문한 차가 나왔다.
오현수는 앞에는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였다. 그녀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주사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바늘이 없는 주사기였다. 아메리카노에 조그마한 주둥이를 집어넣고 뒷부분을 쭈욱 당기자, 주사기에 아메리카노가 출렁이며 빨려 들어갔다.
고개를 뒤로 젖혀 조금씩 밀어 넣으며 그렇게 커피를 마시는 오현수였다.
그것은 일부러 보이는 행동이기도 했다.
내가, 니들 때문에 이렇게 산다는.
고두길은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많이 불편하시겠군요. 흠!”
헛기침을 한 번 한 그는 오현수와 태훈을 번갈아보았다. 태훈에게는 그들의 속내가 뻔히 보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앞으로 일이 더 커지면, 법관들도 지금 이 사태를 가벼이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의료소송. 지금까지 계속해서 논란이 되었던 양악수술 부작용을 더는 안일하게 판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번쯤은 국민들의 불만을 충족시켜야 하는 압박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고두길 변호사가 태훈이 아닌, 애송이 같은 변호사와 이 사건을 진행했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허나, 고두길이 화산이란 곳에서 최고인 것처럼, 태훈도 그 이름이 있었고 위치가 있었다. 법관들이 누군가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기에는 힘든 상황이다.
“말씀드렸다시피 합의를 하고 싶습니다. 참 좋은 성형외과에서 재수술 받을 수 있도록 하겠으며, 믿음이 가시지 않는다면 국내에서 꽤 권위적인 구강외과 의사를 통해서 수술을 받게 해드릴 예정입니다. 아, 물론 그 수술에는 성형외과 의사도 동참할 것입니다. 메스는 구강외과 교수가 잡을 것이고, 어시스트는 성형외과 의사가 하게 될 것이지요.”
합의를 해주면 두 마리 토끼를 잡게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이다. 지난번 리프팅 수술을 권유했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호의적인 태도였다.
“또한, 원하시는 금액에 맞추어서 정신적인 피해보상금 역시 지불할 예정입니다.”
오현수로서는 너무나도 혹할 내용이었다. 이미 사라진 신경을 되돌리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방면의 권위자를 통해서 최선을 다해 수술을 해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에 합당한 보상금까지 지불한다고 하니, 그녀에게는 무척 매혹적인 조건이었다.
물론, 그녀는 현재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함께 가담한 상태였다. 가장 큰 화력을 지닌 것은 오현수였다. 그녀의 승소는,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만약 오현수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함께하는 이들은 잊지 못할 배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갈등.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오늘 올림픽 대로에서 4중 추돌 사고가 일어나 총 세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중상을 입는…….’ 그런 사고에는 가볍게 흘려듣는 것이 사람이다. 내 가족이나, 내가 아니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처럼 자신 혼자만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였지만, 그녀는 구미가 당길 수밖에.
그녀는 조건을 던져본다.
“합의금은 8천만 원 정도를 생각합니다.”
고두길은 꽤나 높은 액수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한 자에게 이제까지 지불한 최고금액의 합의금은 1억 정도였다.
거기에서 2천만 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참 좋은 성형외과에서 앞으로 지원하게 될 수술과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까지 합치면 사실, 1억이 훌쩍 넘는다.
“맞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억을 웃도는 금액보다 지금은 앞으로의 일이 중요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그는 합의서를 적어 내려갔다.
고두길 변호사가 대리인 자격으로 먼저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그녀는 망설였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흐음…….”
고두길은 비뚤어지게 쓰고 있던 뿔테안경을 고쳐 썼다.
“합의금이 부족한가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고두길은 더 높은 합의금을 제시함으로써 서둘러 이 판을 끝내려는 속셈이 보였다.
태훈이 옆에 있었기에 방어하고 나섰다.
“후우, 알겠습니다. 재판에서 이기신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금액과 보상은 받으실 수 없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그것은 경고였다.
괜히 허튼 짓 하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과도 같았다. 그러니 자신에게 득이 되는 길이 어떤 건지 잘 생각해보라는 것.
‘결국, 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겠지.’
사람이 이기적이라는 건, 고두길도 잘 안다. 그 이기적인 욕심을 잘 알기 때문에 고두길은 이 자리까지 올 수도 있었다.
“일어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두길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하하 호호 웃으면서 함께 차를 마실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가 나가고 나서였다.
태훈과 그녀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녀는 사실 저곳에 도장을 찍고 싶었다. 그렇지만 태훈의 눈치가 보였기에 망설인 것이다.
함께하자고 했는데, 함께 싸우자고 했는데, 자신만 이익을 챙기고 모두를 버리려 하고 있었으니까.
“저 나쁜 년이죠……. 저 합의하고 싶어요.”
그 말에 태훈은 ‘흐음’하며 커피 한 모금을 입으로 축였다.
“스스로에게 더 이득이 되는 걸 하는 게 맞는 겁니다.”
“그냥 욕해요. 차라리. 그게 더 속 편할 것 같으니까.”
오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속으로 그는 자신을 씹고 있을 것이라고. 험악한 욕을 뱉고 있을 것이라고. 네가 다 망쳤다면서 격분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지만 태훈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웠다.
“아니요. 욕이라뇨. 의뢰인이 잘된다면 저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것이겠지요.”
그녀가 합의를 하면 분명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한, 작은 혼란과 마찰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정말 옳은 것은, 그녀가 잘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잘 되지 못한다고 해도. 의뢰인이 잘되려고 하는데, 태훈은 그것을 욕하고 싶진 않았다.
“나쁜 년…….”
차라리 욕을 듣고 싶은 심정인데, 태훈이 변함없이 자신을 배려해주자, 스스로를 욕하는 그녀였다.
태훈은 다시 찻잔을 들었다.
* * *
비상 법무법인 앞에 왔을 때는 오현수와 함께 오지 않았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온 것이었다.
애가 탔던 것인지, 비상 법무법인 앞에서 줄담배를 태워대고 있었던 이수애가 그를 반겨주었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합의 안 보기로 했죠?”
“예.”
“역시!”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것인데.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가락을 퉁겼다.
“일단은요.”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녀가 생각하고 있던 불안감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태훈은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쪽에서 제시한 합의금과 재수술에 관련한 여건이 무척 만족스러운 정도입니다. 오현수 양도 생각을 해보기로 했고, 합의를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고려요? 그럼 지금 합의를 볼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요?”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런데 태훈의 표정이 너무나 태연해서 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예.”
“이거 완전…… 미친 거잖아요!”
그녀는 양팔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싸우려 한다. 그런데, 자신 혼자만 살겠다고 모두를 버리겠다니?
하물며, 그녀는 이번 재판을 하게 되는 당사자였다. 그녀가 주축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주축이 사라진다면, 그동안 들인 공도 사라진다.
게다가 다큐멘터리의 주요 인물도 그녀였다.
그녀가 승소하는 스토리까지 잡아내는 것. 그것이 생각하고 있던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배신 때문에.
“안 되겠어요.”
“어딜 가게요?”
“머리채라도 잡아야죠.”
그녀는 크게 배신감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태훈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지 마요.”
“지금까지 했던 노력이 억울하지도 않아요? 저희 방송국에서 찍어온 영상은요? 조사했던 자료는요? 이러다 이대로 흐지부지 끝나면요!”
“의뢰인이…… 만족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한 사람의 의뢰인을 위해서 싸우는 판이 아니잖아요!”
“왜 다른 사람과 함께해서 승소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저 그렇게 무능하지 않아요.”
알고 있다. 태훈이 무능하지 않다는 것은.
허나, 오현수는 획기적인 큰 수였지 않은가.
오현수를 제외하면, 다른 두 사람은 현재 의사 측의 과실이 인정될지 미지수였다.
다른 병원에서도 의심은 들지만, 과연 수술 후 자기부주의로 인한 부작용인지, 혹은 의사 측의 과실인지 확실하게 답변을 내놓진 못하고 있으니까.
“한 사람이라도 만족한 사람이 있다는 게 좋은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만족할 사람은 만들어가면 되는 거고요.”
“진짜, 강태훈 변호사님은…… 고집불통이네요.”
당장 오현수를 쫓아가 머리채라도 잡으려던 모습을 보였던 그녀는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지금 자신이 그녀를 쫓아가서 머리채를 잡는다고 달라질게 뭐가 있을까.
자신의 화만 풀릴 뿐이지.
부디, 오현수가 자신들을 위해 옳은 판단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여 깊게 빨았다. 담배를 피워대는 속도가 빨랐다.
아무리 그래도 쉽게 화는 진정되지 않는 듯했다.
“참, 현아 부모님한테서 전화 왔어요. 취재에 동참하고 싶대요.”
“그거 다행이군요.”
태훈의 얼굴에 화색이 생겼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취재에 동참을 한다는 것은, 증인의 자격으로 참석을 해주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양악수술로 인한 사망자의 가족이 그들이었고, 그들의 도움은 꽤 큰 것이었다.
“내일 바로 취재하러 갈 예정이에요. 집안과 현미 양이 생활했던 공간까지 촬영이 허가가 되었으니, 여론의 관심은 충분히 끌 수 있겠죠.”
“네.”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이 떠나갈지도 모르지만, 다른 이들이 도움을 주려 한다. 결국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는 것.
지이잉.
그때 담배를 태워대던 수애의 품 속 휴대폰이 울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냈고, 모르는 번호에 미간을 찌푸렸다.
“네, KBC 방송국 이수애 기자입니다.”
– 안녕하세요. 저 강동관이라는 사람입니다. 양악수술 관련해서 취재하고 계시죠?
“예, 그렇습니다.”
양악수술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흥미가 동했는지, 담배를 더욱 깊게 한 번 빨고는, 재떨이에 비벼 끄며 허공으로 연기를 뱉어냈다.
– 2개월 전에 사실 양악수술을 참 좋은 성형외과에서 받았었거든요. 근데요. 뭔가 미심적은 게 있어서요.
“미심……쩍은 거요?”
그녀는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태훈을 보았다. 태훈도 그녀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은 듯했다.
–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희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 여기가…….
그에게 위치를 전해 들었다. 꽤나 가까운 곳이었다. 두 사람이 서둘러 차량에 올랐다.
뭔가 하나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