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2
22
변호인 강태훈 022화
네 사람을 현란한 드리블로 빠르게 제치면서 골대에 근접했다.
그 순간 이하늘이 그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이환은 지금 차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고 여겼다.
있는 힘껏 찼다.
팡!
힘 있게 날아간 공. 골키퍼가 몸을 날렸다.
젠장! 아슬아슬하게도 주먹 쥔 손끝에 맞아 궤도가 바뀌며 골대를 맞고 공이 튕겨 나왔다.
그 순간 달려오던 태훈이 공을 힘껏 찼다.
스으우웅-
타악!
골대가 요동쳤다.
GOAL.
들어갔다.
휘이이익!
휘슬이 울렸다. 게임 종료. 1학년 1반의 축구 우승이었다.
“나이스!”
이환이 힘껏 소리쳤다. 태훈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런…….”
범현은 그 모습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친구는 친구고, 이긴 건 이긴 거다.
그다음 경기는 항상 체육대회의 묘미를 장식하는 800m 이어달리기였다.
이번에도 태훈과 이환이 같은 반에서 출전하며 진영도 달리기는 좀 한다며 합세했고, 노인수라는 연수생도 800m 이어달리기에 참여했다.
예선전이 이어졌고, 곧 결승전이 열렸다.
총 네 팀이 남았다.
준비 선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화약총이 터지는 소리에 네 팀이 뛰기 시작했다.
탕!
실상 가장 중요한 경기였다. 이유는 1학년 1반과 범현이 속한 1학년 4반이 현재 종합 동점이었기 때문이다.
타타타탓!
태훈의 팀 노인수는 예상외로 빨랐다. 2등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 바통터치. 진영이 받았다.
진영은 노인수보다는 조금 느렸다. 그러나 2등을 유지하면서 반 바퀴를 돌았다.
잘 나가나 했더니 바닥으로 넘어졌다.
철퍽!
‘저 화상…….’
한 달 같이 지내보니 알았다. 저 사람. 서른넷에 맞지 않게 조금 허당이다.
순식간에 추월당해 꼴찌가 되었다.
태훈은 입술이 바짝 말랐다.
3등과 30m의 거리를 두고 들어온 진영은 헥헥거리며 이환에게 바통을 넘겼다.
타타타타!
“우와.”
“뭐야. 저 새끼.”
이환의 달리기는 빨랐다. 태훈도 다소 놀랐을 정도였다.
“아! 이환 연수생! 단숨에 3등을 제칩니다. 놀랍습니다! 2등과의 거리 좁힙니다!”
한 연수생이 마이크를 쥔 시늉을 하면서 사회자처럼 외쳤다.
그러나 실상 환이 2등을 완전히 제치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가 이긴 것 같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범현이 장난스레 웃었다.
범현 쪽에 먼저 바통이 쥐어졌다. 3~4초의 차이로 이환이 바통을 넘겼다.
‘해보자!’
바통을 넘겨받은 태훈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바람과 같은 속도로 얼마 차이 나지 않던 2등을 제쳤다.
범현과 그의 거리 20m 정도였다. 좁히기에는 힘겨운 거리다. 그러나 태훈은 전의 삶에서 변호사 축구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게 한 장본인이었고 주특기는 누구보다 빠른 발이었다.
반대로 범현은 현란한 기술과 파워풀한 슈팅이 강한 녀석이다.
발은 태훈이 더 빠르다.
타타타탓!
“강태훈 연수생! 빠르게 선두로 내달리고 있는 이범현 연수생을 쫓습니다! 대단합니다.”
“이거 발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한 경기입니다!”
사회자 흉내를 내는 이들은 무르익었다. 태훈의 발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10m, 8m, 7m, 5m.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러나 결승지점이 거의 근접했다.
2m.
바로 뒤끝까지 쫓아왔다. 범현이 이를 악물었다. 태훈도 마찬가지였다. 종아리가 팽창해지는 느낌이다.
1m.
거의 나란히 달린다. 그러나 범현이 조금 앞섰다.
그리고 40㎝의 차이.
애석하게도 범현이 먼저 들어갔다.
타타탓!
“우승! 결국, 1학년 4반이 800m 이어달리기 우승을 차지합니다!”
사회자는 이젠 극도의 흥분 상태다.
그러나 정작 태훈과 범현에겐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허억허억.”
“커허억. 허억.”
태훈은 결승선에 들어오자마자 드러누워 버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심장의 펌프질이 귓속까지 퍼졌다.
간발의 차이로 졌다.
아쉽다.
달렸더니 햇빛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해가 얼굴을 비쳤다. 그리고 뻗어진 손 하나를 잡아 몸을 일으켰다.
범현이었다.
“자식, 잘 뛰긴 어지간히 잘 뛰어요.”
“아깝다. 역전극이 재밌는 건데.”
범현이 그의 등을 털어주었다.
승리가 무엇이 중요한가. 재밌었으면 된 거지.
1학년 4반이 사법연수원 체육대회의 우승을 차지한다.
실상 연수원 기간에는 체육대회 때나 수학여행 때가 가장 재밌는 추억거리이지 않나 싶다.
* * *
6월 말. 해가 뜨겁다. 다행히도 연수원 반의 에어컨은 빵빵하게 잘 돌아간다. 그렇지만 연수생들은 식은땀을 줄줄 흘려가며 시험에 임하고 있었다. 1학기 평가였다.
1학기의 평가는 시험 과목도 많았고 암기량도 장난이 아니었다. 첫 평가를 받는 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출제 방식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다.
보통 객관식이면 4~5개 정도의 지문을 낸 후 ‘틀린 것’ 혹은 ‘옳은 것’을 고르시오, 한다.
고르는 방식은 같다.
그러나 연수원의 1학기 평가의 객관식 지문은 8~9개였다. 이중 맞는 것을 정확히 집어내야 해서 난처한 상황이다.
지문을 제대로 고르지 않으면 오히려 점수가 깎일 수도 있다. 때문에 ‘어중간하게’가 아닌 확실하게 답을 아는 사람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시험을 끝낸 후 태훈은 그제야 펜을 놓았다.
그에게도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는 숨을 훅하니 뱉어냈다.
1주일 후 점수가 나왔다.
점수만 보여주고 일부러 석차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연수생들은 자신들끼리 경쟁의식이 붙기에 자신들 만의 석차를 만들고는 했다.
태훈도 중앙 휴게실에 걸려 있는 성적표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가지게 된 패배의 독주라고 해야 할까.
이환이 8점 차이로 태훈보다 높았고 태훈은 그의 밑이었다. 아마도 전체석차 2등일 거다. 그 밑으로는 범현이 아니었다. 범현은 석차 5위 정도였다.
그만큼 이곳 사법연수원의 수준 자체가 높다는 의미였다.
‘후우, 낙심(落心)하지 말자.“
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은 천재가 아니었다. 단지 삶을 한 번 더 사는 것일 뿐. 패배는 인정하는 게 속 편했다.
등 뒤로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범현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너한테 진 기분 알겠냐.”
“이런 기분이었냐. 뭔가 쌉싸름하면서도 날 되돌아보게 되네.”
“어쩌겠냐. 암기의 천재인데.”
실상 시험 자체가 암기로 해결되는 시험과 마찬가지였다. 범현의 말이 맞았다.
이환은 점수로는 8점 차로 자신을 이길 수는 있어도 실전에서는 절대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몸을 돌렸다가 빙긋 웃던 이환과 눈이 마주쳤다.
이환은 ‘아차’ 하며 표정을 지웠다. 무례라고 판단한 것이다. 태훈은 손을 휘휘 저었다.
“다음번에는 어림없다.”
나이를 그보다 더 먹었는데 꼬장꼬장한 건 추태다.
쿨한 게 좋다.
다음 기회는 언제든지 있으니까.
* * *
생각보다 기회는 빨리 왔다. 7월 해외로 연수를 다녀오고 8월의 행사에는 봉사 활동이 있었다.
봉사 활동은 약 2주에서 4주 정도 하게 되는데 보통 구청, 법률 구조 공단, 노동단체, 소비자 단체 등에서 방문자와 전화를 통한 상담, 인터넷 상담 등을 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국선 변호사 사무실에서 작은 무료 법률 상담을 운영한다고 한다.
시범 단계로써 요즘 국선 변호사들이 너무 성의 없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제출되자 이미지 완화를 위해 무료 법률 상담을 택한 것으로 안다.
그 때문에 사법연수원에서 특별히 연수생 중 태훈과 이환을 국선 변호사 사무실로 봉사 활동을 보냈다.
두 사람의 조촐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국선 변호사.
공익변호사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공익변호사들은 기부금을 통해서 월급을 받는다. 반면 국선 변호사는 나라의 국고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약식기소를 받는 이들이 아닌 형사재판에 서게 된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변호사들이었다.
그 층은 군사법원에서 선고를 내리는 사건이나 의사표시 표현이 힘든 미성년, 농아자, 심신장애, 70세 이상 고령자, 또 다르게는 국민 참여 재판 시 변호해 줄 수 있는 변호인이 없을 때 등이었다.
국선 변호사들을 이끄는 김한기 변호사는 협소한 자리에 ‘무료 법률 상담’ 패를 걸고 앉아 있는 태훈과 이환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보았다.
연수원 원장에 의하면 둘 다 모든 방면에서 특출한 인재라고 했다.
한 사람은 IQ 150.
한 사람은 서울대 법과 대학 수석.
또 연수원에서도 수석을 다투는 두 사람이다.
‘IQ 150이냐. 법과 대학 수석이냐. 재밌구먼.’
흰 머리가 많이 올라오고 쉰두 살의 그는 부드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한 사람은 애초에 천재적이었고 한 사람은 노력형 천재로 판단되었다.
두 사람이 무척 기대된다.
국선 변호사 사무실은 나름 붐볐다. 총 일곱 사람이 팀을 이뤄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환과 태훈은 무료 법률 상담을 원하는 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딸랑-
문 열리는 소리에 절로 시선이 돌아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선임된 변호사가 없는 이였다.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났고 키도 작았다.
교복을 입고 있는 남자아이였다.
그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무료 법률 상담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이쪽으로 오시죠.”
이환이 가로챘다.
태훈과 두 사람의 거리는 30㎝도 되지 않을 만큼 실상 무척 가깝다.
“변호사 맞으신가요?”
소년은 국선 변호사라고 해서 낡은 정장을 입은 중년 정도를 생각했는데 젊어 보이자 의아했다.
“정식 변호사는 아직 아니지만, 연수원 과정을 수료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는 빙긋 웃었다. 실상, 다른 이들이라면 막상 상담하려면 덜컥 겁난다.
고작 연수원 한 학기를 배웠는데 법률 상담에 능통할 리 없어서다.
그러나 이론으로는 누구보다 앞서는 그는 당당했다.
이야기를 들었다.
태훈도 파리만 날리고 있었기에 같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학교에서 한 친구 녀석에게 집요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힘겹게 입을 뗐다.
“어려운 건 없네요.”
이환은 빙긋 웃었다.
“말씀하신 것에 의하면 경미하지만, 폭행도 있었고 친구들을 선동한 따돌림도 존재했네요. 금품갈취 역시도 있었고요. 대게 요즘은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학교 폭력 대책 자치 위원회가 열려 진상 조사를 하게 됩니다. 조정을 통해 금전적인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고요, 형사 처벌을 원하시면 보호자인 부모님을 통하여서 형법 제260조 1항에 의거하여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과료에 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가해 학생이 상습범이라면 그 죄에 가중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형법 제283조 협박죄에도 해당하여…….”
“자, 잠깐만요. 너무 어려워요. 형사 고소요? 손해배상이요?”
소년은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환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바싹한 것처럼 남도 바싹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소년의 표정을 보았을 때 소년은 그 정도까지의 처벌을 원하진 않는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태훈이 조심스레 운을 떼는 순간이었다.
소년은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태훈의 바로 앞자리로 왔다. 이환은 순식간에 의뢰인을 뺏기자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