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23
223
변호인 강태훈 223화
60장 뻔뻔한 재판
한눈에 보기에도 집안에는 고풍스러운 가구가 가득했다. 값비싸 보이는 오래된 도자기, 식탁, 옷장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고가품이었다. 집도 웬만한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고급 아파트였다.
식탁에는 총 네 사람이 도란도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은 강관욱 판사였다. 강관욱 판사는 로스팅 기계에서 내려진 원두커피를 커피 잔에 따라 거실로 가 찻잔을 내려놓고 신문을 펼쳤다.
아내도 식사를 끝내고 커피 잔을 들고는 거실로 나왔다.
“오늘 양악수술 관련한 재판 있다고 했죠?”
“그렇지.”
“얼마 전에 분신자살도 있고, 요즘 말이 많던데…… 그 사람들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어허, 이 사람이.”
강관욱 판사는 아내의 안타깝다는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면서 신문을 잠시 내려놓았다.
“법과 감정은 연관성이 없어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재판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좋지 않아.”
“네, 미안해요. 여보.”
그녀는 그의 성격을 잘 알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찻잔을 들었다. 이제 고 3인 딸아이는 책가방을 챙겨 나갔고, 곧 군대에 들어가는 아들 녀석은 방 안에 들어가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강관욱 판사는 찻잔을 들며 한숨을 머금었다.
3일 전, 고두길 변호사가 찾아왔다. 두 사람 사이는 친분이 꽤나 두터웠다.
고두길 변호사는 그보다 사법연수원 한 기수 선배였고, 사법연수원을 다니던 시절엔 자신이 믿고 따르던 멋진 선배이기도 하였다.
물론, 그도 그만큼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어떠했을지는 알지만. 지금 그가 부탁 받은 것은, 상당히 꺼림칙했다.
아직도 자신의 서랍에는 아내가 모르는 돈이 들어 있는 봉투가 있었으니까.
‘잠시 비난을 받을진 몰라도, 의료법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어려운 것이니까.’
술을 따라주며 봉투를 슬그머니 건네던 고두길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사실 그는 확실하게 대답하진 않았지만, 부탁을 받았다.
또 고두길의 말처럼, 흉흉한 말이 돌고 있는 시점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선택은 자신의 몫이었다.
고두길 변호사는 적당한 선에서 그들의 편도 어느 정도 들어주라고 말했다.
현재 원고 측이 제시한 금액은 7천만 원 정도였다. 그건 재수술비와 정신적 피해보상비였다.
그렇지만 약 2천 정도의 금액에서 어르고 달래주라는 것이었다.
액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원고 측이 원하는 금액만큼 받아가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이번 소송의 관건이었고, 양악수술 부작용의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번 판결에서 원고 측이 주장하는 피해보상비의 태반을 깎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두길은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2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진다면 원고 측의 완전한 패배인 것이다.
게다가 이민근 원장이라면 원체 국내에서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였다. 이번에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가는 그쪽으로도 복잡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물론, 아직 결정은 하지 않았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강태훈 변호사라…….’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이는 강관욱 판사의 눈은 착 가라앉았다. 강관욱 판사는 나름, 정의로운 판사로서 입지가 단단했다.
강태훈 변호사. 그 사람이기에 고두길이 이렇게 초조해하는 것일 거다.
오늘 변수가 있길 내심 바랐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신은 고두길의 손을 들어주게 될지도 모르니까.
원두커피가 모두 비워졌을 때쯤에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갔다. 함께 따라 들어온 아내가 양복 상의를 입혀주고는 넥타이를 매주었다.
“성현이 저 녀석은 이제 곧 군대 간다고 매일 놀기만 하네.”
“이제 일주일 남았는데 좀 풀어주자고요.”
“당신은 오늘 뭐해?”
“잠시 친정에 다녀오려고요.”
“그래.”
넥타이를 매준 아내가 밖으로 나갔다. 강관욱 판사는 걸음을 떼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서랍장을 열었다.
서랍장에 들어 있는 봉투를 꺼낸 그는 품속에 집어넣은 후 집에서 출발했다.
벤츠 차량에서 이민근 원장과 고두길 변호사가 함께 내렸다. 법원 앞에서 카메라맨과 포진하고 있던 이수애 기자가 서둘러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이 원장님.”
“아, 예.”
이민근 원장은 살짝 가볍게 묵례만 취했다.
“오늘 재판, 어떨 것 같나요?”
“흐음. 저는 제 수술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장담합니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확인을 해보았고, 그 당시엔 신경 손상 증세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는 말씀은, 환자 측에서 자기 과실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병원에 떠넘기려고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말이 그렇게 되나요? 아무쪼록, 정당한 판결이 내려지겠죠.”
이민근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이수애의 눈에는 그것이 똑똑히 보였다.
기자들의 수는 꽤나 되었다. 요즘 양악 수술 부작용이 계속해서 구설수에 오르는 만큼, 이렇듯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서 처음으로 치러지는 정식 재판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태훈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법정 안으로 기자들의 출입은 금지되었다. 출입이 허용된 사람은 딱 한 사람, 이수애 기자뿐이었다.
당연히 모든 전자기기는 차단되며, 기록용으로는 오로지 펜과 수첩만 허용되었다. 해외에서는 법정 안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은 폐쇄적으로 진행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훈은 고두길과 이민근에게 작게 묵례를 취했다. 오현수는 태훈의 옆에 서 있었다.
“이거 참.”
이민근은 혀를 쯧 차면서 몸을 휙 돌려버렸다. 고두길도 그와 함께 걸어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태훈은 쓴웃음을 집어삼켰다.
곧 있으면 보일 고두길 변호사와 이민근 원장의 표정이 벌써부터 머리에 떠올랐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태훈과 함께 싸우고 있는 양악 수술 피해자들이 재판을 보기 위해 방청석에 들어와 자리에 착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청석에는 양악 수술로 인해 다른 병원에서 싸웠었던 이들도 몇 보였다. 이번 재판은 양악 수술 피해자와 희생자들에게는 매우 관심이 높았다.
자신들은 패소했지만, 이번 재판에서 승소하게 된다면 자신들에게도 희망이 비치는 것이니까. 비록 지금은 패소했다고는 하나, 항소함으로써 다시금 싸움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법정 안으로 강관욱 판사와 좌우 배석 판사가 함께 들어왔다. 의례적인 절차가 진행되고 강관욱 판사는 신중한 눈빛으로 고두길 변호사와 이민근 원장, 강태훈 변호사와 오현수 원고, 그리고 그 뒤 방청석에 앉아 있는 양악 수술 부작용을 앓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수애는 눈을 빛냈다.
‘그래도 꽤나 양심적인 판사라지.’
그녀는 자신도 기자이긴 하지만, 이번에 다룰 기사가 매우 중요한 만큼 담당한 판사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강관욱 판사는 나름 정직한 판사라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그 정직은 법적인 정직을 뜻한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고두길이 갑 호증의 증거 자료들을 보여준다.
수술동의서.
그건 가장 위력이 큰 녀석이었다.
“확인하시는 것과 같이 수술동의서에서는 부작용에 관련한 사항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본인의 집도의는 이민근 원장이며, 수술 중 상태에 따라 이부(턱끝) 성형술이 필요할 수 있음에 동의합니다.’”
고두길은 수술동의서에 적혀져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본인은 수술의 내용, 합병증, 후유증에 대한 의사 이민근에게 설명을 들었고, 수술 및 수술 후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합병증과 본인의 특이체질로 인하여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였으며, 이 경우 의학적 처리를 의료진에 위임하면서 수술 및 치료에 적극 협력할 것을 서약하고 동의합니다.’ 이처럼 원고, 오현수 씨는 담당의인 피고 이민근 씨로부터 부작용 및 수술과정 상황에 따라, 추가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수술에 관련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서명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태훈은 피식 웃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수애도 웃었고, 오현수도 픽 웃어버렸다. 고두길은 진지했고, 그 안에는 ‘본인의 집도의는 이민근 원장이며’라고 적혀 있었다.
애초에 이 수술동의서의 효력은 그 시점부터 사라진 셈이었다.
하지만 피고 측, 고두길과 이민근 원장은 그들에게서 스친 헛웃음을 보지 못했다. 단지 수술동의서가 여기 버젓이 있는데, 어쩔 거냐는 표정들이었다.
반대로, 강관욱 원장은 순간 스치는 그 웃음을 잡아냈다.
동시다발적으로 스치는 그들의 웃음을 보며, 그는 뭔가 낌새가 있음을 알아챘다.
‘더 지나보면 알겠지.’
“또한, 현재 원고는 수술을 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이에 관련한 갑 3호증을 제시합니다.”
고두길이 내민 자료는 2년 만에 빠지지 않던 부기가 빠지고, 턱의 신경이 되살아났다는 기사였다.
모든 수술에는 변수가 많다.
또한 말 그대로 체질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수술 후 부기가 빨리 빠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부기가 느리게 빠지기도 한다.
오현수로서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말이었다.
턱이 뒤틀렸는데, 그럼 이게 돌아오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입에선 침이 흐르고, 양악 수술한 부기가 눈까지 올라오면서 한쪽 눈이 부어오르기까지 했다.
태훈의 지인인 대학병원의 교수는 이미 신경 손상이 이루어졌다는 소견을 내렸다.
물론 그에 합당한 자료를 태훈이 제시했다.
“갑 2호증, 자료를 보시면 전북대학교 구강외과의 장지훈 교수의 소견서입니다. 소견서를 보시면 과도한 턱뼈를 깎음으로써 이미 시신경이 손상을 입었다. 라는 결과를 내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2년 후 부기가 빠진다 한들, 돌아간 턱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니겠지요. 결정적으로, 양악 수술은 부정교합을 맞추는 수술이기도 합니다. 그 사실은 피고 이민근 씨께서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태훈의 지적에 이민근 원장은 들리지 않을 헛기침을 뱉었다.
“현재 위턱과 아래턱, 즉, 위아래 어금니가 맞물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건 수술 자체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 재판장님. 병원 측은 그와 관련한 재수술과 치료에 힘쓸 의향을 밝혔던 바가 있습니다.”
“그 힘쓸 의향이 리프팅 수술과 지방 이식 수술이라는 점이 문제가 되겠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근래 가장 문제시되는 성형수술 후 부작용 관련한 문제점이 무엇일까요?”
태훈은 세 사람의 법관들에게 질문을 했다. 강관욱 판사는 말없이 그를 보았다.
“바로 수술 후 부작용이 발생하였을 때, 처음 진료를 받을 때와 확 달라지는 냉담한 태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양악 수술에 관련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만큼의 턱뼈를 깎는 것을 제지하거나 혹은 부정교합이 없을 시 수술을 해서는 안 된다 등의 제제가 없는 셈이지요. 그렇기에 그 제제를 의사가 해야 한다는 말인데, 과도하게 손댄 턱뼈가 시신경의 손상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원고 측 변호인, 현재 의사의 소견이 있다고는 하지만 시신경이 손상되었다와 의사의 과실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된다는 것이지, 그것이 환자의 과실이냐, 의사의 과실이냐가 확실치 않는 상황입니다.”
고두길은 침착하게 발언을 자제하길 권고했다. 태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 착석했다.
법정에서의 치열한 공방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