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30
230
변호인 강태훈 230화
어제저녁 이연춘 할머니의 잠꼬대가 무슨 뜻인지, 깊은 생각에 잠긴 도혜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녀는 주먹 쥔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보았다.
“하아.”
한숨과 함께 그녀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할머니 좀 바꿔주세요.”
집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가정부가 먼저 전화를 받았고, 이어 할머니가 전화기를 들었다.
– 누구슈?
“할머니, 저 도혜예요. 오늘 저녁에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 돼지갈비?
“아, 갈비요. 알겠어요. 오늘 저녁엔 같이 갈비 먹어요.”
– 언넝 와. 알았지?
“네.”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작게 웃으며 대답한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때마침 문이 열리면서 고석환 수사관이 상기된 얼굴로 누군가의 등을 툭! 떠밀었다.
“이연춘 할머님, 자녀분입니다. 이호찬 씨요.”
“아! 안녕하세요.”
도혜는 인사했다. 일단 할머님의 자녀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아직 모르니까. 곧 고석환 수사관의 표정에 도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호춘의 등 뒤에 선 고석환은 입 모양으로 ‘이 빌어먹을 놈!’이라고 하고 있었다.
이호찬은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검사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밝게 고개를 숙여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내 아차 싶었다.
“혹시…….”
“뭐요?”
고석환은 시치미를 뚝 떼었다. 석환은 일단 그를 심문실로 데려갔다. 그 후 문을 걸어 잠군 후 다시 도혜에게로 왔다.
“검사님. 드디어 사망신고가 되어 있는 이유를 확인했습니다.”
“어떤 이유야?”
“가족들이 버렸더라고요. 사망보험금 타내려고.”
“뭐?”
“자기 딴에는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할머니가 어떻게 엿듣고 먼저 집을 나갔다고 하는데, 어찌 되었든 그냥 넘어갈 사건은 아닌 것 같아요. 일단 할머니가 살아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사망보험금을 토해내야죠.”
“하…….”
도혜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것도 자신을 보험금 때문에 버리겠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때 할머니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녀는 화가 확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어머니로서, 자식을 생각해서 그녀가 스스로 나갔다는 것은, 그 슬픔을 모두 집어삼켰다는 의미가 된다.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과도 같았겠지.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이 1위에 달할 정도로 노인들에게 무지했다. 가족을 떠나, 자신의 이름도 말하지 못한 채 정처 없이 살아왔을 할머니를 생각을 하며 도혜의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고석환 수사관은 역시나 하는 표정이다.
그녀는 성이 난 표정으로 심문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호찬은 아까 와는 정반대의 표정을 짓고 있는 도혜를 보고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정확하게 말해보세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의 앞에 마주 앉은 도혜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노트북에 손을 올리고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그녀의 기세에 이호찬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먹고 살기 힘들고, 애들 대학교 학비며, 빚 때문에 정말 어쩔…….”
“그런 푸념은 변호사나 선임해서 하시고요. 똑바로 정황을 말씀하시란 말입니다. 예?”
그녀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들겼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어떤 식으로 일이 벌어졌느냐였지 그들의 감성팔이 따위가 아니었다.
“설날이었어요. 2남 1녀인 저희들 모두 먹고 살기 힘들고 했고, 또 어머님 몸이 자주 아파서…….”
이호찬의 이야기에 도혜는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를 산에다 버린 후, 하산하자는 계획을 처음에 세웠던 그들이었다. 늙은 노인을 산에 혼자 버리면 내려오기 힘들 터. 그러니 그 산에서 혼자 죽어갈 터였다.
애초에 그들이 계획한 것은 실종이 아니라 살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살인죄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기 그지없었다.
“돈은요?”
도혜의 물음에 그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당연히 없을 것이다.
도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중요한 건, 보험사로부터 받아낸 돈을 그들은 모두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자신과 피가 섞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할머니의 아팠을 가슴을 생각하니, 자신의 가슴 역시도 저릿저릿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 * *
늦은 저녁.
도혜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태훈은 베란다에 나와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도혜의 얼굴에서 보였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버리다.
국어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가지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을 내던지거나 쏟거나 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를 낳아 준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칭한다.
물론 국어사전 속의 함축된 단어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어머니라는 단어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며 영원히 기억해야 할 사람이었다.
자신을 키워줬을 때도 늙어 힘이 없을지언정 지켜줘야 할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호찬은 국어사전 속 ‘버리다’의 단어처럼 가지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처럼, 물질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버려서는 안 될 존재를, 물질적 가치를 위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도혜가 마주해 버렸다.
그녀의 웃음이 사그라지는 걸 보니 태훈도 착잡했다.
밖으로 나온 태훈은 전기 그릴 위에 익어가는 돼지갈비를 뜯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서 씁쓸한 웃음을 짓는 도혜를 볼 수 있었다.
“맛있어요?”
“그려, 먹지 않고 뭐해?”
“전 배부르네요.”
“그래도 하나 더 먹어봐.”
젓가락으로 돼지갈비 한 점을 집은 그녀가 도혜에게 권했다. 그것을 입에 넣은 도혜는 우물우물 씹으며 애써 웃어 보였다.
이연춘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돼지갈비를 씹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도혜는 창문 밖을 보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할머니 거기서 뭐 하세요?”
“고마워, 검사 아가씨.”
도혜의 부름에 그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는 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도혜의 눈이 커졌다. 그 눈에 화색이 돌았다.
“기억이 돌아왔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도혜가 기쁨에 자신도 모르게 성큼 다가가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잘 되었네요.”
“나같이 나이든 노인네를 보살펴주고. 예전에도 느꼈지만 참 참해.”
“아니에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도혜의 얼굴에 다시 어둠이 드리워졌다.
이젠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말해야 했다.
“저, 할머니.”
“응? 걱정 마. 오늘 바로 집으로 갈 거야.”
“그게 아니라…….”
그녀의 얼굴에 난감하단 기색이 비치자, 자신이 신세 지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 할머니의 말에 도혜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저 다 알아버렸어요.”
“응?”
“할머니…… 버림받은 거…… 그걸 이용해서 자식들이 보험금 수령한 거.”
그녀가 기억을 잃었었다고는 하지만 도혜가 그녀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
도혜의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수사할 거예요.”
수사. 그 말에 할머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게 맞는 것이었다.
그래야 한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도혜의 아픈 가슴에 더욱더 불을 지폈다.
“아이구! 검사님! 다, 다 제가 잘못한 거예요! 이 늙은이가 꾸민 일이란 말이에요!”
그녀는 무릎을 꿇고 양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도혜의 옷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이러시면 안 돼요. 할머니…….”
“그 녀석들은 아무 잘못 없어요. 제, 이 발로 걸어 나간 거라고요! 저, 저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죽으라면 죽을게요. 그러니까…… 자식들은 건들지 마요!”
도혜로서는 자신의 할머니 같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자신 앞에서 싹싹 빌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녀의 입술이 질끈 깨물어졌다.
“안…… 돼요.”
“한 번만…… 한 번만 봐줘요. 그, 그냥 한 번만 모른 척 해줘요. 그, 그럴 수 있잖아요. 검사 아가씨는 착한 사람이니까.”
착한 사람.
그것을 떠나서 안도혜는,
그녀는,
대한민국의 검사였다.
“죄송……합니다.”
“아이구! 제발요…… 끄읍! 다 제 잘못이에요. 미워도 못나도 제 자식입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요…… 제발이요.”
그녀는 양손을 계속해서 비볐다. 도혜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보고 싶지 않았다. 또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게 되지 않았다.
소란을 들은 태훈이 문을 열고 들어와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태훈이 서둘러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그 아이들은 잘못 없어요. 다, 다 자식새끼들 잘못 키운 제 탓이에요. 한 번만 눈 감아 주세요!”
버림받아서도, 어쩌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식들인데, 그녀는 감싸려 했다.
부모이니까.
자식들이 미워도.
그녀는 ‘부모’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 자식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그 가정이 무너지지를 않게 하기 위해서.
“제발요……!”
“이러시면 안 돼요.”
태훈은 이 난감한 상황에 그녀를 힘으로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도혜는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황급히 그녀를 끌고 거실로 나서는 태훈이다.
도혜의 입에서 얕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눈물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왔다.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그녀는 무척이나 버거워 보였다.
“하, 할머니!”
그때 들려온 태훈의 놀란 음성에, 도혜는 반사적으로 방에서 뛰어나갔다.
충격 때문인지, 그녀는 쓰러져 있었다.
엠블런스가 그녀를 실고 갔고, 일시적 쇼크로 인한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으로 출근을 한 도혜의 얼굴빛은 좋지 못했다. 고석환 수사관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녀의 앞에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내려놓았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커피 한 모금으로 입술을 축인 도혜는 돌아가려는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네?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표정에서 뭔가 평소와 다른 것을 본 고석환은 그녀를 따라 함께 옥상으로 올라왔다.
“담배 한 대 태워도 될까요?”
그녀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부터 경찰에 사실 알리고 이호찬 사건, 본격적으로 수사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있잖아. 고 수사관.”
“네. 검사님.”
머뭇거리면서 자신을 보는 도혜의 표정에서 고석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기억 찾으셨어.”
“그래요? 잘됐네요.”
“근데 아침에…….”
그녀는 차마 목이 메여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할머니의 심정은 이해가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배로 배 아파 낳은 이들이었다.
지키고 싶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난관을 자신이 헤쳐야 한다는 것.
“우리 있잖아. 이번 사건 덮을까……?”
“예? 그게 무슨…….”
고석환 수사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