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39
239
변호인 강태훈 239화
도혜의 차량이 저택 앞에서 멈춰 섰다. 다급하게 내린 그녀가 대문을 밀자,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집 앞에는 세워진 오토바이가 없었다.
현재 앰블런스를 동반한 경찰 병력이 신속하게 이곳으로 모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막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 도주 오토바이 성북구 KT사거리에 발견되었습니다!
무전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경찰 측에서 적절한 대처를 할 것이다.
그녀가 집안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로 입구 쪽에 쓰러져 있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가정부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바닥이 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었다. 핏방울이 떨어진 것인지, 번진 자국과 방울이 뚝뚝 떨어진 자국이 선명했했다.
도혜는 가정부를 급히 흔들었다.
다행이도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닌 듯 그녀는‘으음……’하는 얕은 신음을 흘렸다.
도혜는 떨어진 핏방울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문고리에 흥건히 묻어 있는 핏자국이 보였다.
잠시 벽에 손을 짚은 것인지,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이 역력했다.
심호흡을 내뱉은 도혜가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 순간 그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침대 위에 대자로 쓰러진 이성운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두 사람 사이에 격투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때마침 일부의 경찰 병력이 도착하였다. 고석환 수사관도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따라 올라왔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째서…… 제 형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도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성운이 동생 성진에게 저질렀던 일을 알지 못했으니까.
“구급대원들은?”
“이제 들어올 겁니다.”
“알았어……. 언론이 또 난리가 나겠네.”
그녀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무한물산 회장의 아들이 살해당했다. 그것도 배다른 형제에게.
단순히 죽이는 것이 좋아서 죽였을까?
그를 사이코패스라고 추정하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 피붙이까지 이유 없이 죽였을까?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는 이성진이 버린 듯한 스마트폰이 배터리가 분리된 채 흩어져 있었다.
모르는 번호. 공중전화로 보였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흐으읍, 하아아! 검사님. 도착하셨나요?
“도착했지…… 아주 잘…….”
방안은 말 그대로 피로 얼룩져 있었다. 곳곳에 피가 튀어 있었고, 수십 차례 이성운을 흉기로 난도질한 듯 보였다.
“어디니, 지금.”
생각보다도 도혜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침착했다. 이 미친놈의 장단에 더 이상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
– 공터요.
“공터?”
– 미진이 죽은 곳. 빨리 와요. 검사님, 보고 싶으니까.
“알았어.”
– 경찰 병력 끌고 올 거죠? 최대한 많이 끌고 오세요.
“그래.”
마치 무슨 게임을 하듯, 그는 신이 난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성진은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수사관에게 이곳의 수습을 부탁하고, 도혜는 차량에 올랐다. 무전으로 범인의 위치에 대해서 말했다.
통합관제센터에서 보내오는 정보에도 이성진이 그쪽 방면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걸 보면, 이성진의 말은 사실로 보였다.
그녀의 차량이 미진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그 공터로 향했다.
공터에 도착한 그녀는 이미 앞서 도착해 있는 경찰차량들을 발견하였다. 위쪽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정확하게 8층.
미진이가 뛰어내렸던 그곳에, 경찰 병력이 쫙 깔려 있었다. 핼맺을 쓰고 있는 경찰기동대부터, 권총으로 이성진을 겨누고 있는 경찰들까지.
이성진은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두 발자국 물러나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미친놈…….”
“검사님, 이제 왔어요?”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는 그의 손은 검붉은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깊게 연기를 머금은 그는 피식 웃었다.
“이 사람들 좀 물러줘요. 다가오지 말라고 해줘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안 그러면 저 지금 뛰어내립니다?”
당장 뛰어내릴 것처럼 말하면서도 그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도혜가 손을 들어 올리자 모두 일제히 도혜의 등 뒤쪽으로 빠졌다.
“검사님, 위험합니다.”
“뭐가?”
“현재 용의자는…….”
한 경찰에 말에 도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현재 용의자는 흉기도 소지하지도 않았고, 위협적인 요소도 보이지 않지. 그저 자기 목숨을 무기삼아 날 협박하고 있어. 저런 녀석이 날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해?”
경찰은 입을 꾹 다물었다.
도혜는 허리춤에 매고 있던 권총을 꽂아 넣었던 띠를 풀었고, 그것을 한 번 들어 올려 확인시켜준 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바로 지척.
네 발자국만 더 가면 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면,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역시 검사님은 포부가 남다르네요.”
성진은 가 태운 담배를 허공에 튕겼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어깨를 으쓱인 그는 숨을 크게 뱉어냈다.
자기 딴에는 침착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뿜어져 나오는 숨소리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저 미친놈 같죠.”
“그래, 너 미친놈 맞아. 순순히 가자.”
“근데, 나 미친놈 아닌데.”
고개를 한 번 푹 숙였다가 다시 치켜세운 그는 경찰 병력이 깔린 밑을 확인했다.
“저 하나 잡겠다고 많이도 왔네요.”
“위험하니까.”
“그렇죠. 전 위험한 존재죠. 검사님. 저는요, 살고 싶은 생각이 지금 추호도 없어요. 살아도 재미없는 인생, 뭐하겠습니까. 결국 죽으면 한낱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인생살이인데.”
“누가 보면 여든 먹은 노인네 인줄 알겠구만.”
“푸하하, 그렇게 들렸나요? 아무튼 전 이제 곧 죽을 거예요. 여기, 미진이가 뛰어내렸던 이곳에서 뛰어내려서. 머리도 터지고, 다리도 꺾이고, 오장육부고 뭐고 다 으스러지겠죠? 그렇지만 두렵진 않아요. 그리고요. 검사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정확하게는 지금 뒤에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그는 주위를 쭈욱 한 번 둘러보았다.
모두가 치가 떨린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치 벌레를 보듯, 언제라도 돌발 행동을 보이면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 같은 표정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간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에요.”
“뭐?”
그의 어이없는 소리에 도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진이도 행복했던 아이고요. 검사님도 행복한 사람이에요. 지금 귓속말 하시는 경찰 형도 지금 되게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거 알아요? 부자들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더 행복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을.”
그런 연구결과 따위 도혜는 잘 모른다. 관심도 없다.
다만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저는요. 여러분, 저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어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는 단지 아버지를 사랑했던 죄밖엔 없었어요.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기도 했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기억나는 게 뭔지 알아요? 아버지가 저에게,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래요. 호부호형 하지 말래요. 푸하하! 얼마나 웃기던지. 무슨 홍길동전 따라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때 제 나이가 겨우 열 살 남짓 되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여기에 그 말이 남아 있어요.”
그는 자신의 왼쪽. 심장이 있는 부분을 꽉 움켜쥐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도 네가 있게 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더라고요? 매일같이 우셨어요. 제가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언제 한 번은…… 제 손을 잡고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는 회상에 잠긴 듯 보였다. 어머니의 그 모습이 눈가로 스치는 듯했다. 눈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
도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증오했던 것이 아니었나?
어머니로 인해 미국에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것이 아니란 말인가?
사이코패스들은 대개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이 많았고, 여자로서 성진을 때리고 괴롭혔다면, 성진이 컸을 때는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진은 감춰뒀던 본능이 깨어나 그녀를 죽였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 사실과 너무나 달랐다.
이성진은,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했다.
“이 세상에 나에게는 너밖에 없구나. 사랑한다. 아들.”
그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저도 어머니밖에 없었고, 사랑했죠. 근데, 이성운 그 빌어먹을 놈이 어머니를 죽였어요. 저까지 죽이려고 햇는데, 실패했죠. 그래서 저도 똑같이 죽였어요. 그가 저를 감시하라고 붙여놓은 집사 아저씨를, 죽였죠.”
그의 어머니는 성진이 죽인 것이 아니라, 성운이 그 일을 벌인 원흉이었던 모양이다.
“세상에는요, 이유 없는 범죄는 대개 없어요. 전부 다 이유가 잇는 법이죠.”
“미진이는…… 이 빌어먹을 새끼야! 미진이는!”
그 말에 안도혜의 목구멍에서 분노가 차올랐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다.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들어달라, 그런 거 같았다.
그래, 세상엔 이유 없는 범죄는 없었다.
검사였기 때문에 그 사연들 하나하나를 도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세상이 그 사연들을 모두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자신들이 이성의 끈만 잘 잡았다면, 그리 되지 않았을 것이니까. 물론, 세상에서 유일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알겠다.
그러나 미진이는 아무런 연관도 없지 않았던가.
그 착했던 아이가, 무슨 죄란 말인가.
“그래서…… 지금 사죄하려고요. 저도 감정이 있긴 하거든요.”
키득거리며 다시 웃는 성진은 슬퍼 보였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으니까. 나만 이렇게 힘들어 보였으니까.
더 엇나가고, 자신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은 스스로 하는 포장에 불과했다.
성진도 그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많이 무서웠겠죠? 그렇죠? 여기에 있는 분들. 고마워요. 당신들 기억 속엔 나라는 미친놈이 영원히 남을 테니까. 그리고 검사님.”
그는 도혜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아니, 어쩌면 이건 검사님이 아니라 남편 분인 강태훈 변호사님께 하는 말일지도 몰라요. 강태훈 변호사, 조태석 연쇄살인마 사건 맡았을 때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그를 이렇게 만든 건, 바로 우리들이다. 그를 변호하는 것이 내 몫이고. 비난한다 할지라도 달게 받겠다. 그래야 한다면, 그러겠다. 하나. 이유 없는 범죄는 대개 없듯이, 조태석 역시도 사람이었다.’ 참 가슴에 와 닿는 말이더군요. 내가 알기론 그 발언 하시고 욕 많이 드신 걸로 아는데. 이젠, 스스로의 가치관 하나로 국내에서 이거 되셨더라고요?”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좋은 남편 두셨어요. 저한테는 그분의 그 말이 가장 위로가 되었거든요. 선물 하나 드리고 갑니다. 그리고 검사님. 저…… 그렇게…… 나쁘게…… 살고 싶진 않았습니다. 남들처럼 학교 다니고, 집에 오면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고 싶었고, 가끔 학원 빼먹고 노래방고 가고 싶었구요. 아버지한테 매도 맞아보고 싶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정말 평범하게…….”
그 말이 끝이었다. 더 이상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이제 갑니다.”
“기다려!”
도혜가 손을 뻗으며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