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40
240
변호인 강태훈 240화
그의 발 하나가 천천히 떼어질 때였다. 도혜는 눈을 감고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이라면.
지금쯤이라면.
그들을 믿는다.
타타탓!
“헉!”
“거, 검사님!”
“뭐, 뭐야!”
한 발자국을 들어 올리고 뒤를 돌아보려던 이성진이 헉 하는 소리를 토해냈다. 도혜가 그대로 그를 향해 돌진했다.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경찰관들도 놀란 신음을 토해냈다.
“누가 네 마음대로 편히 뒈지게 놔둔대!?”
피할 새도 없었다. 뛰어나간 도혜는 그대로 그의 허리를 부여잡으면서 오히려 그를 밀었다. 아니, 함께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허억!”
“거, 검사님!”
놀란 경찰관들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소방관들이 쳐놓은 안전 매트리스 위에 떨어져 있었다.
쇼크로 인해서 기절한 듯 보이는 이성진. 그리고 휘청거리면서 몸을 일으킨 도혜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개새끼가, 잔말은 존나게 많아요. 뒤지긴 누구 마음대로 뒤져.”
“허…….”
“뭐, 뭐야…….”
안전 매트리스를 설치했던 소방관들과 경찰들이 놀란 토끼눈으로 도혜를 보았다. 저 높이에서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뛰어내렸다.
더군다나, 이제 막 간발의 차로 설치가 끝나 그 사실을 보고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보고도 아직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그녀는 몸을 날린 것이다.
수사관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검사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뭐가?”
도혜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너무나도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했다.
“만약 밑에 아무것도 없었으면 어쩌려구요!”
“안전 매트리스 있잖아.”
“설치 안 끝났으면요!”
“난 우리 대원분들을 믿거든.”
도혜는 능청스레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고석환 수사관은 심장이 다 벌렁거렸다. 그녀가 이성진을 끌어안고 뛰어내릴 때, 그녀도 함께 죽으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도혜도 도박이었다.
만약 밑에 안전 매트리스가 설치되지 않았다면, 자신도 함께 황천길 구경을 했을 것이다. 구급대원들을 믿고, 또한 자신을 믿었기에 해낸 일이었다.
“강태훈 변호사님께 이를 겁니다!”
고석환이 너무나도 태연한 그녀가 가장 무서워할 만한 말을 했다. 태훈이 이렇게 무모하게 몸을 던졌던 사실을 알면 족히 한 달은 주구장창 ‘몸 좀 사리라고!’ 그런 잔소리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제발 그러지 말자. 전화하기만 해봐.”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그녀는 소름이 돋은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잠깐 정신을 잃었었던 이성진이 정신을 차렸을 때, 맨 먼저 보인 것은 안도혜였다. 성진의 품에서 꺼낸 말보루 아이스 블라스트를 도혜는 한 개비 물고 있었다.
말보루 아이스 블라스트.
그냥 단순히 담배일 뿐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유일한 실마리이자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불을 붙여 연기를 깊게 빨려던 도혜는 헛기침을 뱉어냈다.
“켁켁! 이딴 걸 뭐하러 피냐. 자.”
도혜는 여전히 정신이 멍한 채 경찰관과 소방관들에게 둘러쌓인 그에게 담배갑을 던졌다. 그것을 받아 든 성진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너 이제 담배 못 피울 거야. 마지막으로 한 개피 태워.”
나름 그녀의 배려였다.
그가 딱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죄 값을 받아 마땅했고, 더욱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죽음으로 회피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자기합리화를 해대면서.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의 사회가, 아니 무한물산의 가족들이 잘한 것도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앞으로 언론은 뜨겁게 들끓을 것이고, 도혜와 사무실 사람들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될 것이다.
담배를 입에 문 이성진이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시원한 멘솔이 목구멍 뒤로 넘어와 폐부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후우우.”
연기를 가늘게 내뱉던 이성진은 픽 하고 웃음을 흘려버렸다.
정말 못 말리는 검사다.
다시 죽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여자는 왜 날 살렸을까. 나 같은 사람을 왜?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가 담배 한 개비를 모두 태웠을 때, 경찰관 두 사람이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양팔을 한 쪽씩 잡아 형기차에 태웠다.
줄을 이은 경찰차와 경찰 바이크, 도혜의 차량이 그곳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 * *
며칠 전 있었던 숨이 막힐 듯한 추격전, 그리고 결국 생포하여 검거를 성공해낸 아내 안도혜. 이성진이라는 학생이 이성운이라는 무한물산 회장의 배다른 형을 죽임으로써 사회에 가져온 파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자들의 글은 계속해서 빗발치고 있었고,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도혜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분위기였다.
아파트에 도착한 태훈은 오늘도 늦는다는 도혜의 문자를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일이 바쁜 것을 어쩌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려던 차량을 경비원이 손짓으로 멈추게 했다.
“변호사님.”
“네, 아저씨.”
쉰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경비원은 이 빠진 얼굴로 웃어 보였다. 항상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신 분이다. 그는 태훈의 이름과 집 주소가 적혀 있는 택배를 차 안으로 밀어 넣어주었다.
“아, 맞다. 택배 왔다고 했었죠.”
태훈은 아까 걸려왔던 전화를 기억해냈다. 업무가 바빴기 때문에 일단은 경비실에 맡겨달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워낙 짧은 통화였었고, 그땐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택배 상자의 크기는 작았다. 태훈은 그것을 흔들어 보았다.
책? 같은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네에.”
작게 고개를 숙인 태훈의 차가 주차장에 멈춰 섰다. 택배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그 팔에 정장 상의까지 걸친 그는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집안으로 들어온 그는 택배를 보낸 이를 제대로 확인했다.
“이성진……?”
이성진이라는 이름을 보자 태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성진이라면 이번에 도혜에게 검거된 그 고등학생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택배를 보냈다. 위험한 물건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까 전 흔들어 보았을 때 분명히 책 같은 것이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듣기로는 이성진이라는 고등학생은 경찰들을 따돌리는 과정에서 수제폭탄을 터트리기도 했다고 한다.
태훈은 짐짓 조심스러웠다. 커터칼을 이용해서 테이프를 조심스레 잘라내고 상자를 젖혔다.
긴장을 머금은 채 상자를 열었던 태훈은, 순간 맥이 빠졌다. 역시나 안에는 책이 있었다. 아니, 책이라는 말보다는 묵직한 일기장에 가까웠다.
눈에 띄는 것은 일기장 앞표지에 붙어 있는 사진이었다.
열 살 남짓한 어린 남자아이와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들의 등 뒤로 커다란 코끼리가 있는 것을 보니, 사진을 찍은 장소는 동물원인 것 같았다.
거기에는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누군가 기억한다면, 그는 살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태훈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성진이라는 아이와 자신이 안면이 있던가?
아, 그러고 보면 도혜가 그 이야기를 하긴 했었다. 이성진은 자신이 조태석 사건을 맡았을 때 했던 발언으로 자신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태훈은 휴대폰을 들고 도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자기야. 왜?
전화를 받은 그녀는 무척 바쁜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로 사무실 사람들이 다급히 주고받는 이야기가 지나갔다.
“내 앞으로 이성진이라는 고등학생한테 택배 왔네.”
– 드디어 왔구나. 도대체 안에 뭐가 들었어?
안도혜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는 목소리였다. 사실, 이성진이 태훈에게 선물을 하나 보냈다고 해서 도혜는 걱정을 조금 했었고, 그를 추궁하며 그것이 도대체 뭐냐고 묻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성진은 부드럽게 웃을 뿐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당당하게 택배로 배달이 될 물건이라면 위험한 것일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 도혜의 판단이었다.
게다가 성진은 태훈은 동경했던 것으로 보였기에 위험한 물건을 보냈을 리가 없다고도 여겼다.
“일기장…… 같은데?”
– 일기장이라……. 일단은 자기한테 온 선물이니까. 물론 나도 이따 가서 확인하겠지만. 뭐 위험한 거는 없지?
“응, 없는 것 같아.”
일기장을 상자에서 꺼내 거꾸로 들고 털어본 태훈이 답했다.
곧 ‘검사님’하는 수사관의 목소리가 들렸고 도혜가 바쁜 목소리로 ‘나중에 통화하자’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태훈은 한 장 한 장 일기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성진이라는 아이가 열 살 때 쓰기 시작한 일기장 같았는데, 그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쓰는 교환일기였다.
흔히 커플들이 자주 쓰는 그런 일기 같은 거였다.
어머니가 쓰고 난 후에는 아들인 성진이 쓰고, 성진이 쓴 후에 다시 어머니가 쓰고.
꽤 빽빽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태훈은 촤르륵 한 번 손으로 책장을 넘겨보고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첫 장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우리 성진이가 오늘도 상을 타왔다. 금상 부문에 적힌 성진이의 이름을 보니 너무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오늘 저녁은 성진이가 좋아하는 수제 햄버거를 만들어주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맛있게 먹어준 내 아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잠을 자는 천사 같은 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쓸어내리는데,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우리 성진이가 내 아들이라는 게 너무 행복하다.
그 밑으로 성진이 쓴 일기가 있었다.
– 마이클이라는 흑인이 나에게 마늘 냄새가 난다며 놀려대었다. 혼내줄까 하다가 엄마 생각이 나서 참았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
이렇듯, 두 사람이 써내려가는 일기장을 태훈은 계속 읽어보았다. 일기를 매일매일 쓰지는 않았다.
2~3일에 한 번 꼴, 늦으면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에게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일기에 적어 내려갔다.
그러던 일기장은 언제부턴가 이성진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태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강가로 추락한 차량. 그리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다리는 찌그려진 차체에 눌려 묶였고, 안전벨트에 묶여 버둥거리는 성진의 벨트를 풀어주고 그의 입에 입을 맞춰서 마지막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그녀가, 아들 성진이라도 살리기 위해 마지막 남은 숨 한 모금조차 그에게로 넘겨준 것이다.
그리고 강에 뛰어든 용감한 청년에 의해 성진은 구출되었고, 어머니는 사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이성운에 관련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이 부분도 도혜에게 들었던 내용인데, 이성진의 일기로 마주하자 상당히 가슴이 답답했다.
원망스럽고, 죽이고 싶고.
마지막 사람을 빼앗아간 원망스러운 사람이라고 적져 있었다.
물론 그건 간추려서 말을 해서 그런 것이다. 하루하루, 그가 이성운을 원망했던 일기의 내용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가슴이 답답했다.
태훈은 자신도 모르게 잉크가 번진 부분을 검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건 일기를 쓰면서 성진이 흘렸던 눈물로 보인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태훈은 깊은 날숨을 뱉어냈다.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 세상에 이유 없는 범죄는 없다.
마지막 글귀를 읽은 그의 눈을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이 일기장 하나로, 이성진이라는 아이가 변화하게 된 과정을 한 편의 영화처럼 본 것 같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태훈은 일기장을 곱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 일기장은 도혜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이 일기장을 토대로 도혜는 더욱더 그때의 정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수사를 하게 될 것이고, 형을 감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검토할 것이다.
괜스레 일기장을 읽었더니 혼자 있는 집에서 더욱 마음이 심란해진 기분이다.
태훈은 숨을 깊게 내뱉으며 몸을 일으켜 침실로 가서 와이셔츠와 정장바지를 벗고 편안한 청바지와 후드집업으로 갈아입었다.